인생은 아름다워(1059) - 한여름의 감로수와 생존게임
연일 폭염이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밤 최저기온이 30도가 넘는 초열대야가 등장했다. 기상청은 8월 2일 강릉의 밤 최저기온이 30.5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날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열대야(밤 최저기온 25도 이상)현상을 겪었다. 때에 맞춰 주민쎈터와 사회단체의 프로그램도 당분간 휴식에 들어갔다. 폭염을 마주한 한여름의 일상. 아침에는 걷기와 체조 등으로 체력다지기, 낮에는 도서관에 파묻혀 다양한 분야의 독서삼매경, 저녁에는 관심 있는 TV 프로그램 시청 후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규칙적인 리듬에 힘입어서인지 열대야에도 숙면을 취할 수 있어 다행이다. TV 보다가 새긴 교훈, 어려운 상황은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 요체라네. 유례없는 더위 슬기롭게 견디시고 온통 초록빛 세상, 행복하고 건강하게 보내시라.
아침 산책코스에 찾는 무심천변의 체육시설
엊그제 도서관 가는 길에 동년배의 여성들과 잠시 동행하였다. 무더위에 굴하지 않고 노인일자리 나서는 길, 길가의 나무에 둥지를 튼 낯선 꽃 한 송이 꺾어 향기를 맡으며 내게도 건넨다. 폭염 속 밝은 표정으로 일터 향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아름다워라.
노인일자리 터 가는 길의 향기좋은 꽃송이
같은 날 부부가 회원인 카톡방에 오른 메시지, ‘사랑하는 회원님들께! 너무 더운 날씨에 건강하게 계시지요? 지난번 사랑하는 저희 아버님 장례 때 문상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큰 슬픔이었지만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보내드리는 전복 드시고 무더위에 기운 펄펄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저명인사로 인품과 역량이 탁월한 분, 90대 후반까지 장수하셨다. 장례 때 많은 인원이 줄지어 문상하는 행렬을 보고 그분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미루어 짐작, 조위금을 받지 않고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뒤늦게 큰 선물로 회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마음 씀이 갸륵하여라.
어제 일본의 지인으로부터 받은 메시지, ‘저의 집은 시내 중심에 있는데 산이 많습니다. 70~80대 분과 친해져서 매일 함께 산에 갑니다. 폭염, 일본도 36~39도 되는 지역이 많은데 제가 사는 곳은 왜 그런지 32~3도라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더운 여름,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가 한여름의 더위를 식힌다. 그녀가 사는 곳은 일본의 최고봉 후지산을 조망할 수 있는 시즈오카, 청명한 기운이 감도는 아름다운 도시다. 지난봄 서울~도쿄 한일우정걷기 때 시청의 환영행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 시즈오카에 들어서니 산천에 맑은 기운이 가득하여 심신이 가뿐하게 느껴진다. 후지산의 웅장한 기상과 시즈오카의 청명한 기운에 힘입어 도쿄까지 힘차게 걷겠다. 따뜻한 환영에 감사드리며 시즈오카의 발전을 기원한다.’ 뇌리에 깊이 박힌 시즈오카의 청명하고 아름다운 정경을 떠올리게 하는 메시지가 고마워라!
일본의 지인이 보내온 시즈오카 풍경, 멀리 뵈는 봉우리는 후지산인듯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기간(8월 2일~12일)에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가 전라북도 부안의 새만금 매립지에서 열리고 있다.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5년 전의 아제르바이잔 여행 때, 수도 바쿠를 탐방 중 ‘2017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열린 시설을 돌아보며 그 대회에서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한국유치가 결정된 것을 처음 알았다. 88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등 세계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을 떠올리며 금년의 한국대회를 멋지게 치를 수 있으리라는 자긍심을 가졌는데 엊그제 개영식에 즈음하여 들려오는 소식은 ‘폭염에 생존게임 된 망신살 잼버리 대회’라는 뜻밖의 상황이다. 언론의 보도내용,
‘전북 부안의 새만금 매립지에서 진행 중인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서 온열 질환 등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한낮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대규모 야외 행사를 강행한 데다 주최 측의 운영 미숙까지 겹친 탓이다. 그제 대회 개영식에선 100명이 넘는 온열 질환자가 발생했다. 참가자들 사이에선 축제가 아니라 생존게임이란 말까지 나온다. 폭염에 대한 경고는 대회 시작 전부터 있었다. 대회 기간인 8월 초순은 통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더운 시기다. 바다를 메워 조성한 새만금 야영장은 애초부터 숲이나 나무 같은 자연 그늘이 거의 없는 곳이다. 한낮 땡볕을 피하기 어려운 야외에서 행사를 진행하면서도 냉방장치나 샤워실 등은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지난달 쏟아진 장맛비로 곳곳에 물구덩이까지 남아 있어 야영장은 흡사 한증막을 방불케 한다는 참가자들의 경험담도 올라왔다. 사전에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상황에도 조직위의 행사 준비는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숫자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청소나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한다. 무더운 날씨에 먹을 것과 마실 것까지 부족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부실한 행사 운영이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영국은 행사 기간 폭염과 폭우 등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서한을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영국은 이번 대회에 해외 참가국 중 가장 많은 4500여 명의 대원을 보냈다. 새만금 잼버리는 우수한 한국 문화와 자연환경을 세계에 알린다는 명목으로 유치한 국제 행사다. 세계 159개국에서 온 참가자는 4만3000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부실한 운영으로 참가자들의 불만이 쏟아진다면 한국에 대한 홍보는커녕 불신만 초래할 게 우려스럽다. 이번 행사가 한국을 홍보하는 기회가 될지, 국제적 망신이 될지는 남은 기간이라도 정부와 조직위가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2023. 8. 4 중앙일보 사설, ‘폭염에 생존게임 된 망신살 잼버리 대회’에서)
폭염을 견디기 어려운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장의 야영시설
예고된 사고가 계속되자 결국 당정이 고개를 숙였다. 개막 직전까지 정부가 현장 점검에 나섰음에도 이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데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정부와 여당은 뒤늦게 대응책을 내어놓았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위기대응태세의 미숙과 안일한 대처를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할까? 정부와 관계기관의 총력대응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