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가장 내 눈에 띄었던 것은 넓은 땅에 널찍널찍하게 지어진 1층짜리 단독주택들이었다. 철마다 서로 다른 꽃들이 피고 지는 앞뜰, 그리 크진 않아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와 풀장을 설치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나오는 뒷뜰을 갖춘 집. 시골이 아닌 다음에야 다닥다닥 붙은 2층, 3층 다세대 주택 아니면 높기만 하고 멋이라곤 없는 아파트만이 즐비한, 땅 좁고 사람 많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미국 대학가에 자리한 이 주택가의 풍경이 참 부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내가 부러워하는 그 풍경 속에 이 사회의 인종적/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은 결코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미국에서 엔지니어링 계열로 최고 순위를 자랑하는 학교가 있는 동네다.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고 잘 알려진 '닐 암스트롱'이 이 학교 출신이고, GMO/제초제 등과 관련된 문제로 최근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몬산토'라는 기업이 이 학교 농업/생물공학 분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이 학교는 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학부생/대학원생 비율이 높다. (박사과정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외국인 학생들은 엄청난 금액의 등록금을 자비로 내며 다닌다) 다시 말하면 이 동네에 거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교육 면에서 상위계층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동네는 많은 부분이 이 학교를 중심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안전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이 동네에서 강 건너 옆 동네로 조금만 넘어가 봐도 사정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나이들고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 빈곤층 거주지역에 사는 아프리칸 아메리칸(흑인)이나 히스패닉(남미 계통 사람)들이다. 그들이 많이 타고 내리는 지역에는 낡은 단층, 2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많고 도로 사정도 주변 환경도 그리 좋지 않다. '저소득층 아파트'라고 불리는 시내 한 서민 아파트는 5층 이상의 낡고 우중충한 건물이고, 한 때는 번화했을, 그러나 지금은 쇠락한 시내 중심가(다운타운)에는 일자리가 없어 한낮에도 담배를 피우며 그저 거리를 어슬렁대며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여기도 이럴진대,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의 빈민가는 오죽할까. 서울에서 청년기를 보낸 나 역시 대도시의 '발전'과 '재개발'뒤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져야 할 존재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용산 재개발 지역 사람들이 살기 위해 투쟁할 때 내가 그토록 그 곳에 마음을 썼던 것도, 대학가 주택가에 엄마 아버지 동생과 함께 살며 월세를 내지 못해 반지하 방으로 쫓겨나다시피 거주지를 옮겨야 했던 내 처지가 용산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돈을 내고)'사는 것'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돈이 없어 이리 저리 '치워지는' 존재가 되어가는 느낌은 참으로 참담하다.
이 곳에서 박사과정생 남편과 함께 작은 원베드룸 아파트를 하나 얻어 살면서, 거기다 아이까지 키우면서 제법 쾌적한 주거환경에 살게 되자 더더욱 '집'의 의미를 깊이 새기게 된다. 길 가다 마주치게 되는 노숙인이나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너무 미안해져 고개를 들기가 어렵다. 외국인인 내가 그저 교육을 더 많이 받았다는 이유로,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시민인 그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당혹스럽다. 바로 몇 주 전에도 미주리 주 한 동네에서는 흑인 소년이 백인 경찰관의 총에 맞아 억울하게 죽었는데, 집 밖에만 나서면 혹시라도 백인 경찰 눈에 잘못 찍혀 총 맞아 죽을까봐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흑인 밀집 지역 아이들의 저 삶은 어쩔 것인가. 그리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 아이들의 삶은 또 어쩔 것인가. 위험한 고압송전탑을 옆에 두고 살게 된 우리 할매들은? 마침 오늘 뜬 뉴스 기사에 나오는 우리 아이들은? (SBS 뉴스, <아동 열명 중 한 명 '주거 빈곤'>
<대표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지역, 서안지구에 사는 한 아이의 거주지.
조너선 코졸이 쓴 것처럼, 빈곤층 밀집지역의 그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자녀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꾸리기 위해 애쓴 부모들이 있다. 빈곤층에 속해도 이리저리 임시거주지(shelter)를 떠돌아 다니며 사는 것과 장기 거주가 가능한 집을 배정받아 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처럼,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 지금 내겐 다행하고도 감사하게도 우리 세 식구 따뜻하게 살 수 있는 '집'이 있지만, 한국에 가면 돌아갈 물리적인 '친정집' 이란 게 없다. 엄마는 요양원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숙식을, 아버지는 여느때 처럼 공장 한켠에서 숙식을 하며 지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 몸 하나 누일 '내 공간'이 없는, 내 지친 마음 하나 편히 쉬게 할 '안식처'가 없는 사람들의 삶을 외면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나의 '책읽는 부모 따라읽기 프로젝트' 첫 책이었던 이 <희망의 불꽃>은, 이렇게 내게 '집'에 대한 깊은 생각 하나를 남겼다. 다음 주에 정리하게 될 나의 두번째 생각은 '교육'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