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신탁은 폭력과 강포에 기초한 영광이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바벨론에게 있는 영광은 잠깐 있다가 불에 타버릴 일시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의 거룩한 뜻과 공의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요 범세계적인 것이다. 그래서 14절은(2장) 이렇게 결론 짓는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사 11장 9절 참조)
영화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강성한 나라 바벨론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되면, 마치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할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야훼 하나님이야말로 영광을 받아야 할 유일한 분임을 깨닫게 될 것이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이어 하박국은 15-17절에서 네 번 째의 저주 신탁을 노래한다. 이 저주 신탁에 의하면 바벨론은 마치 홧김에 이웃에게 술을 퍼먹여 곯아 떨어지게 하고는 그 알몸을 헤쳐 보는 자와도 같다.(15절. 렘 51장 7절 참조) 그리고서는 그들은 자기들이 그러한 승리로 인해 큰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들이 강대 제국으로 얻은 영광은 대단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되면 그들이 남을 능욕한 것처럼 그들 역시 실컷 능욕 당할 때가 올 것이다.
이전에는 그들이 남의 나라 백성들을 벌거 벗겼으나 이제는 역으로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린 심판의 잔을 받아 마시고서는 곯아 떨어져 그 알몸을 드러낼 것이다.(16절)
이처럼 바벨론이 심판의 잔을 받아 취하리라는 것(시 11편 6절. 75편 8절 참조)이나 그 알몸을 드러내리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상징하는 표현들 중의 하나이다.(시 11편 6절. 75편 8절 참조) 이사야(51편 17절)는 진노의 술잔에 대한 표현을 예루살렘의 파멸에 적용하고 있으며, 예레미야(25장 15-28절)나 오바댜(1장 16절)는 그것을 예루살렘을 비롯한 모든 주변 나라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으로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나훔(3장 11절)은 앗수르가 하나님의 진노의 술잔을 받아 취하게 될 것이라고 보며, 예레미야 애가(4장 21절)는 에돔이 그 잔을 마실 것이라고 말한다. 계시록(16장 19절)은 사탄의 무리를 상징하는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알몸을 드러낸다는 것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겪을 수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훔(3장 5절)과 애가(4장 21절)는 제각기 앗수르와 에돔의 패망에 그것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사야(47장 2-3절)는 바벨론의 파멸에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시고서 알몸을 드러냄으로써, 자기들이 이제껏 영광을 누린 것 만큼이나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더러운 욕(수치)이 이전의 영광을 완전히 가리우고 말 것이다. 과거에는 그들이 레바논에서 마음껏 폭력을 행하였지만(사 14장 8절. 37장 24절) 그때 저지른 폭력이 이제는 그들 자신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레바논의 짐승들을 잔인하게 죽인 그 두려움이 그들을 덮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지난 날에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마을들을 짓밟는가 하면 성읍마다 쳐들어가 그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기 때문이다.(17절)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도구로 선택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이상의 폭력을 행한 까닭에(사 47장 5절. 슥 1장 15절)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