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2)-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도행전 2:22~36
우리가 지난 주에도 살펴본 바 있듯이,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예루살렘 오순절 명절의 순례자들 앞에서 첫 번째 복음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한 설교는 자연스럽게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 초점이 옮겨졌습니다. 지난 주에는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 중에 기사와 표적을 행한 일과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고 곧장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데서 다시 살아나신 일은 갑작스럽게 된 일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이 있었습니다. 사도는 특별히 선지자였던 다윗 왕의 시편 16편8~11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거기에 보면,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는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은 다윗 본인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미 무덤에 묻혀서 천년이나 흐른 그 때까지 아무 일도 없이 흙에 썩은 상태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언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대로 다윗의 예언 뒤 천년이 지나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나사렛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베드로와 함께 있는 120명 성도들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산 증인들이라고 담대히 증언합니다. 3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할렐루야. 그리하여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에 모인 회중들 앞에서 그의 첫 복음 설교의 대부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은 성도의 구원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떠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일까요? 수많은 변화와 영향이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발생하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여기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를 믿는 자들의 죄를 청산하고 의롭다 함을 보증하셨습니다.
로마서 4:25 말씀에 이르기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죄가 전혀 없는 자로서 모든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사 죄값을 지불하셨음으로, 이제 죄인들 위에 군림하던 죄의 권세가 꺾여지게 된 것입니다. 죄의 세력이 궤멸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롭다 하심이 인정되었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 하심이 전달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고 그 앞에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죄인은 감히 하나님 앞에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써 죄를 청산하시고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죄인에게 의롭다 하시는 은혜가 전달됨으로 이제 하나님 앞에 서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점이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자들에게 가져온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의 부활로 인하여 죄의 권세가 꺾여지고 의롭다 함을 입어서 하나님 앞에 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의 부활 덕분에 사망의 권세가 꺾여지고 영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디모데후서 1:10 말씀에 이르기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죄하신 자로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음으로써 모든 죄인들 위에 군림하던 죄의 세력을 꺾을 뿐 아니라 죄로 인하여 군림하던 사망의 권세도 꺾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무죄하신 자로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려내심으로써 그로 하여금 사망의 세력을 완전히 꺾어버리시고 죽음이 다시는 이길 수 없는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다 죽음의 권세 아래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 마지막 아담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22 말씀에 이르기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 하신 말씀이 그러한 뜻입니다. 그 동안은 사망 권세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무서운 권력을 휘두르며 다 굴복시켰으나, 이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주인 노릇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1:17~18 말씀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밧모 섬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자기에 대하여 소개하여 이렇게 일러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전에는 죽었지만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쥐고 계신 자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사망의 열쇠, 죽은 자의 거처가 되는 음부의 열쇠까지 쥐고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사망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왕노릇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그가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것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5:11,12 말씀에서 이렇게 확실하게 선언합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할렐루야. 예수님 안에 이 영원한 생명이 있음이 그의 부활로써 확실하게 입증된 것입니다. 그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주인이심을 확실히 인친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한 후에 그를 믿는 자들까지 살려주시는 영이 되셨고 그를 믿는 자들을 다시 살리신다는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영원히 살아나신 것은 그 자신만 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요 그를 믿는 자들도 역시 그와 동일하게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혼자만 살아나고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4:14 말씀에 이르기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첫 사람 아담과 다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45 말씀에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만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자들도 반드시 죽음에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승천하신 후에 그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그것도 바로 그를 믿는 자들이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보증을 위하여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4,5 말씀에 이르기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1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의 부활로써 부활의 모델이 되어주셨고 믿는 자들에게 장차 동일한 부활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성령을 보내사 보증까지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동일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께서 예수님을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는 죽을 수 없는 몸으로 영광스럽게 살려내신 것처럼, 우리들의 몸까지도 마지막 날 주님의 재림의 그 날에 무덤에서 우리 몸을 다시 영광스럽게 살려내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넷째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천지 만물의 대권을 받으신 존귀하신 분임을 증거합니다.
마태복음 28:18 말씀에 이르기를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7:3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온 우주의 왕이시며, 만민의 심판자로 높이 세우신 것을 드러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재림하실 그 날까지 온 세상을 다스리며 통치하시는 권세를 부활의 주님께서 행사하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 창조의 주인이 되심을 말해줍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은 우리가 보다시피 독특합니다. 문이 다 잠겼는데도 문도 안 열고 그 방안에 순식간에 들어와 계십니다. 부활하신 첫날 예루살렘에 계시다가도 막달라 마리아, 두 여인, 사도 베드로을 사적으로 만나주시고,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어시간 제자들과 동행하시기도 하시고 밤이 깊은 때에는 예루살렘에 다시 나타나기도 하셨습니다.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시고 갑자기 예상치 아니한 때에 나타나기도 하셨습니다. 그는 떡을 먹기도 하시고 구운 생선을 먹기도 하셨고, 제자들이 알아보기도 하였지만 잘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갖기도 하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이시고 그 성품이나 기억은 여전하지만 잘 알아보기 어려운 모습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나 사도 요한의 경우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만나주셨을 때에는 그들의 눈과 귀가 감당할 수 없이 그 영광이 커서 감당치 못하여 쓰러져 죽은 자처럼 되거나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새로운 차원의 영광의 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오래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고 잠깐 나타나셨다가 떠나시고 또 잠깐 나타나셨다가 또 홀연히 떠나시기를 반복하시다가 40일 후에 승천하여 하늘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지금의 이 세상 질서로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자기 백성들과 영원히 살 수 있기 위해서는 그의 백성들 역시 부활의 몸을 입게 하시는 역사가 있을 것이요 온 세상도 새롭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현존 질서로는 불가능하기에 이 세상은 불로서 태워질 것이고 더 새롭고 온전케 될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주님과 함께 우리도 변화되어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영광 중에 살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5 말씀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라는 말씀하실 때가 머잖아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들은 다시는 죄가 없고 저주가 없고 사망이 없고 눈물이 없고 마귀도 없고 불의와 불법도 없는 새로운 세상을 우리 주님께서 만드실 것이요 우리의 본성과 기질과 몸도 완전히 새로워질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 말씀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는 이 말씀이 현실화될 것입니다. 그 변화는 단지 마음의 변화만 아니라 우리의 몸의 변화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는 늙지 않고 다시는 쇠하지 않고 질병이 없고 죽음이 없고 마음의 슬픔과 근심이 없고 전적으로 새로워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을 사랑하며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어느 곳에도 죄도 없고 악인도 없고 전쟁도 없고 오염도 없고 모든 것이 안전하고 평안하고 정결하고 공의와 공법이 가득하고 풍요로와 우리 주님께서 친히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상이 우리에게 펼쳐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결코 꿈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만주의 주가 되시고 온 세상의 영원한 임금이 되시고 장차 임할 새로운 세상의 창조주가 되셨기에, 때가 되면 분명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스러운 우리의 미래인 것입니다. 그 날에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우리 주님께서 그 날에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지극히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새 세상을 부활의 신앙을 가진 그의 백성된 우리와 더불어 함께 보고 누리기를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 동일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이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졌으니 우리들은 죽은 뒤의 부활이 있고 내세가 있고 상급이 있음을 아는 자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 말씀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겨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머잖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과 그의 교회와 성도들을 섬긴 일에 대하여 반드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씁시다.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죄와 방탕과 세상 유혹에 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2절 이하에 이르기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죽은 뒤에 부활이 있고 심판이 확실히 있기에 우리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속삭이는 소리와 세상 친구들의 시험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일 종말이 와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심정으로 우리들은 묵묵히 부활의 신앙 가지고 의와 거룩함을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부활의 지극히 영광스러운 사실을 굳게 붙들고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그렇게 무력하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동일한 몸을 입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의 쓴 맛을 맛보셨습니다. 그 때에 주님이 경험한 그 죽음은 얼마나 쓰디 쓰고 얼마나 불쾌하고 얼마나 전갈의 독보다 더 독하고 지옥의 어두운 지하방보다 더 냄새나는 것이었을까요? 예수님의 영혼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죽음에게 자기를 내어주었을 때 두려움과 슬픔에 잠시 압도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그의 능력의 손과 약속하신 바의 언약을 붙들고 그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기꺼이 의탁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에 그는 마침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셨습니다. 그것도 다시는 죽음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원한 생명으로 충만한 불멸의 생명의 주인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 되사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생명 자체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처럼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큰 희망의 소식이 달리 없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다시 나셨습니다! 이 위대한 역사적 사실을 사도는 확실하게 자기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고 손으로 만졌기에, 이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기꺼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우리도 이 지극히 영광스럽고 놀라운 이 부활의 복된 소식을 힘을 다하여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들어도 믿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들은 전하고 기도하고 또 전합시다. 우리 주님께서 그 외롭고 험한 죽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사 마침내 활짝 열어놓으신 부활의 영광스러운 생명 길을 우리 곁의 수많은 이들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전하는 부활의 증인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