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CORONA 10YEARS
백신은 치료제가 아니다. 백신을 맞는다고 해서 그 병에 안 걸리는 게 아니라 백신을 맞아서 감염률을 떨어뜨려야 되는 것이다. 남이 먼저 맞든 내가 먼저 맞든 빨리 맞는 게 상책이라고 이택광은 주장한다. 커피나 초콜릿이 어디서 오는가? 모두 가난한 나라에서 온다. 그들 나라 노동자들이 필수 노동으로 공급한 것이다. 코로나로 그 가난한 나라 노동자들이 희생되면 누가 우리에게 커피 한 잔을 가져다줄 것이며, 누가 우리에게 초콜릿 한 조각을 주겠는가? 글로벌 자본의 이점을 누리려면 백신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이택광은 주장한다.
팬데믹은 반드시 다시 온다. 왜 코로나의 완전한 종식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코로나와 같이 살아갈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리처드 헤쳇’의 전망을 보자. “취약계층에게는 여전한 위협이 된다. 그래서 이전 세상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단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백신을 접종하고 확산 정도가 최소한으로 낮아진다면, 감시체계나 게놈 감시체계가 필요해질 것이고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 때 빠르게 대응하도록 새 방침이 필요해질 겁니다. 백신을 얼마나 자주 맞아야 할지 모르지만 몇 년에 한 번은 맞아야 할 것이다. 전 세계가 전염병과 팬데믹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주요 기관들이 변화하고 대응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사람들은 지쳤다. 어차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 체념하고 일상을 되찾고 싶다는 욕구도 점점 커진다. 백신을 맞았으니 마스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백신 접종이 많이 이루어지고 감염률이 낮으면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일상은 이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팬데믹은 다시 올 수 있고, 코로나바이러스는 예고편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에 많은 것을 정리해 놓아야 하는 이유다.
‘제롬 김’은 2050년까지 매년 천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 주장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경제 규모 피해는 매년 100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찌 대처할지를 안다는 것이다. 무엇을 통하고 통하지 않는지를 알고 있단다. 전 세계 국가들이 다음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어떤 것이 효력이 있고 어떤 것이 방역에 효과적인지 연구해 사람 간, 국가 간 전염을 막을 능력을 갖추면 좋겠다고 주장한다.
‘바시다 캐리’는 세계가 트라우마에 걸렸다고 생각한단다. 여러분 나라가 영향을 받지 않을지라도, 여행가 친척을 만날 수 없고, 경제가 다쳤으며, 세계는 뒤집혔다. 하지만 코로나로 우리는 건강의 중요성을 배웠단다. 그래서 이전과 다른 가치를 두고, 예방키 위해 동동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란다. 그의 말은 울림이 크다. 언제나 희망을 손에 들어주고 있으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려있단다.
2020년 이후 다시 10년 만에 발생한, 팬데믹, 신종독감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확진자가 14,000명을 넘기자 학교들의 임시 휴교령이 확대된다. 시험을 온라인 과제물로 대체하고, 유치원은 물론 초·중·고등학교 역시 원격수업을 이어간다. 아예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외롭지 않을까 싶지만, 컴퓨터만 켜면 언제라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가상현실 속에서 아바타로 친구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게임을 하거나 대화를 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 스마트 폰, 태블릿, VR 헤드셋 등으로 세상과 연결된다. 메타버스 플랫폼에 모여 함께 쇼핑 하기고 한다. 이것들이 없었더라면, 팬데믹의 긴 터널은 훨씬 더 혹독하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우리가 수없이 보아온 영화 속의 세상. 이미 와있거나, 오고 있는 세상, 하지만 빛이 있으면 늘 어둠이 존재하듯이 팬데믹이 빠르게 앞당긴,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플랫폼화가 진행될수록 일자리는 점점 불안정해집니다. 프리랜서라는 계약직 형태로 노동을 수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자리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안정감은 낮아진다. 결과적으로 플랫폼 종사자들은 경제적 약자로 전락한다. AI가 노동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배달노동자 경우 경로나 소요 시간에 AI의 관여를 받는다. 기계가 중심이다 보니 사람은 기계 일부가 되어 효율을 중시하고, 더 비인간적인 노동에 종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령 자율 트럭이 나와도 운전사가 직장을 잃는 것은 아니다. 자율주행 차량이라도 사람은 필요하다. 타이어가 펑크 나 수리하고, 상하차와 일지를 쓰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니까. 중요한 것은 AI가 핵심을 맡고, 사람은 보조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질이 떨어지니 임금도 낮아진다. 이는 의사나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도 마찬가지다. 혁신하지 못하면 비참한 노동을 하며 살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데 팬데믹이 이를 급속하게 앞당기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그린 지경에 빠지지는 않는단다. 똑똑한 기계를 끼고 혁신하는 사람은 더 거대한 시장을 바라보면서 비즈니스를 하여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얻는단다.
”러다이트, Luddite“란 말을 아는가? 영국 노동자들이 벌인 반자본주의 운동 즉 기계 파괴 운동이다. 노동자들은 대량생산으로 일자리를 잃자 기계를 파괴했다. 공장에 불을 지르기도 했으나 원칙은 있었다. 사람에게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다. 기계와 인간의 대립으로 노동자의 적은 기계라 본 것이다.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밖에서 서성인다. 경쟁은 일상이고 노동자의 적은 노동자가 된다. 여기서 해결 방법은 자동화가 어려운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로봇이 못하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이고 창의력이 넘치는 일은 뭐가 있나를 찾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직관적인 영역과 로봇의 노동력이 함께 결합하는 세상이 우리가 볼 미래가 아닐까 본다.
‘장하준’은 말한다. 팬데믹 사태로 영국에서 키 워커라 불리는 주축 노동자, 미국에서 필수노동자라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시장의 경제이론에서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시장에 맡길 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가치 있고, 돈을 많이 받는 물건이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돈을 못 받는 사람이나 물건은 사회에서 쓸모가 없는가?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중요하면 병원, 양로원 청소부도 없다. 팬데믹에 의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저임금 노동자인데 제일 대우를 못 받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겼습니다. 시장을 없애는 것이 아닌 시장의 한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사회상을 위해 필요한 노동의 형태와 시장의 힘이 조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다. 나라의 가치관과 문화가 다르니 중간 지점을 정하기 어렵다. 이를 계기로 지나친 시장주의에 재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장하준’은 말한다.
사회적 대립을 막기 위해 코로나 이후 어떤 정책을 각국은 펴야 하나? ‘슬라 조예 지책’은 말한다. “지금은 전시 상황과 같다. 절체절명의 시간을 시장경제에만 맡길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백신이 필요한 것은 전시 상황과 같으니 시장경제에 맡기면 안 됩니다. 경제보다 사회 통제를 먼저 지시해야 합니다. 즉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옛날 방식인 기본소득을 적용했습니다. 굶주리지 않고 기본권을 보장받으며 생존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런 것은, 시장 법칙을 억제하면서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각국 정부는 어마어마한 돈을 살포하고 있다. 다가올 경제위기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대비는 하지만 시장원리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나 기타 조율기관들이 간섭해야 합니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모두가 기본적으로 인정을 갖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회복력은 없을 겁니다. 일부 집단이 취약하면 우리가 모두 취약한 것입니다. 새로운 사회합의가 필요한 이유이자, 모두에게 경제적인 안정을 제공하는 겁니다. ‘가이스텐딩’의 주장이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반 이상향, 즉 디스포피아를 상상하기는 쉽다. 그게 지금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문제다. 그것을 막을 힘과 지혜는 기술이 인간을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해방하는 유토피아를 향해 걸음을 계속한다면 이 시기에 ‘가이 트텐딩’은 놀랍고 익숙한 개념을 우리에게 언급했다고 본다.
2022, 01, 22
팬데믹 이후의 세게-2
JTBC 팩 추월 제작진 지음
중앙 북 간행
첫댓글
코로나 이후 10년간
역시 낙관아닌 비관쪽이네요
팬데믹, 플랫폼화, 사회적 대립...
힘든사회에서 노년으로 살기...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