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이기에 가능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아닐까.
모두가 잠든 토요일 새벽, 오늘도 기대를 한껏 품고 라운딩을 준비한다.
오늘은 오랜만의 바탐 나들이.
<퍼스트 나인 세컨드 나인 72타 (9972) 차 번호 좋다...ㅋㅋ>
깜깜한 어둠을 뚫고 달려 타나메라 페리 터미널에 도착하니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7시.
티켓팅을 하고 가방을 부치고 이미 식당에 도착한 사람들을 만난다. 모두 12명.
싱가포르에서 8시에 출발한 페리는 7시 40분에 바탐 농사 선착장에 도착한다. 시간을 거꾸로 산다.
에이전트에게 여권을 건네주고 준비된 셔틀에 몸을 싣자 10분 만에 Tering Bay 골프장에 도착한다. 역시나 락커룸에는 내 이름이 붙어있는 락커가 준비되어 있다.
익숙하지 않은 외지 라운딩에 모두들 들떠서 옷을 갈아입고 선크림을 바르고 오늘의 라운딩 전의를 다진다.
챔피언 조에 속한 나는 이글아이, 블루스타 형님, 마도로스와 함께 몸 풀 시간도 없이 첫 티샷을 준비한다.
2조는 요기, 뉴튼, 알란, 아르맹 그리고 3조는 에디, 얌얌, 보따 형님, 처음처럼... 아르맹이 임의로 정한 조 편성에 하루의 운명이 결정되고...
<골프장 인근의 마을 꼬마들이 티샷후에 박수를 쳐 준다. 블루 형님이 나눠 가지라고 10불을 주신다. 아 맘씨좋은 우리의 블루 형님!>
첫 홀부터 '파'로 시작한 이글아이와 나는 8번 홀까지 세 개 오버 이븐, 여섯 개 오버 이븐으로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결국 전반 마지막 홀에서 전반의 승자가 결정 나게 되었는데... 우아한 티샷을 날렸던 이글아이는 오비! 더블이 한번 있긴 했지만 버디 한 개와 8홀 중 4홀 파를 기록한 스코어 카드에 어울리지 않는 오비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이글아이를 잡겠군... 음 하하하~~ 나 또한 파 2개에 보기 여섯 개로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었기에 뭐 당연히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안정적이던 내 티샷은 티박스 앞 해저드 돌담을 맞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싶었는데... 한참 후에 티박스 옆 오비 말뚝 안으로 풀썩 떨어진다... ㅋㅋㅋ. 나도 오비! 그때부터 정신은 가출하고... 결국은 양파. 이글아이는 더블... 후반의 이글아이는 다시는 그런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버디 한 개에 파만 8개. 결국 전체 원 언더로 일등! 나는 원 오버로 이등, 후반 이등을 한 마도로스는 후반에만 7개로 이븐... 이글아이가 전반 후반 전체를 또다시 휩쓸었다.
오늘 오전 라운드의 승자가 된 이글아이가 두 명의 캐디팁을 주고 맥주를 산다. 시원한 인도네시아 빈땅 맥주로 갈증을 달랬지만 이른 아침식사에 허기져 있던 우리는 무료 식사 바우쳐가 있다는 골퍼 라운지의 몸매 이쁜 아가씨 말에 식사를 시키고 만다. 원래 계획은 팜스프링스 골프장에서 점심을 먹는 계획이었는데...
점심을 먹으며 알란이 에디와 같이 치고 싶다는 낭보가 들려온다. 이게 왜 낭보냐... 어떻게든 승승장구하는 이글아이와 떨어지고 싶었던 우리 모두에게, 공공의 적 이글아이를 다른 팀에 보내버릴 절호의 기회라 낭보일 수밖에...
그리하여 2조의 알란은 3조로, 마도로스와 같이 치고 싶다는 3조의 얌얌은 우리 조로, 우리의 이글아이는 2조로 보내버릴 수 있었으니...
핸디가 고만고만한 블루스타 형님과, 마도로스, 그리고 얌얌과 나는 어느 때 보다 편안하게 오후 18홀을 시작할 수 있었다. 코스는 팜 스프링스 리조트 - 아일랜드 코스...
1번 홀. 파 5. 티샷이 해저드에 들어가기 10센티 앞에 떨어진 행운의 블루 형님은 두 번째 샷을 그린 옆에 부치며 여유 있게 첫 홀부터 버디를 잡는다. 나는 첫 티샷부터 해저드... ㅠㅠ
첫 홀부터 앞에 있던 처음처럼 조의 홀 아웃을 기다려야 해서 초조했던 우리는 2번 홀 파3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2번 홀을 건너뛰자! 그린에서 퍼팅 중이던 처음처럼 조를 유유히 건너뛰어 3번 홀에 도착한 우리는 캐디의 한 홀 더 건너뛰라는 말을 무시하고 '빨리 치면 되지'라는 말도 안 되는 몰상식으로 3번 홀 티샷을 강행한다. 이렇게 잘 맞는데 한 홀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만 결국 이건 오늘의 가장 큰 실수가 됐다. 더 억울한 건 빠른 일몰로 결국은 모두 끝내지 못했다는 건데... 싱가포르보다 오히려 동쪽에 있는 바탐인데도 (싱가포르: 동경 103.85도, 바탐: 동경 104.02도, 참고로 한국은 동경 125도) 시간은 오히려 한 시간 늦어 바탐 시간 5시 반이 되자 해가 지기 시작한다. 결국은 마지막 두 홀은 티박스에 올라가 보지도 못한 채 마무리를 지어야 했으니...
전반 스코어는 파 네개에 보기 네 개를 기록한 (파3, 2번 홀을 스킵했으니...) 마도로스가 3 언더로 전반 우승, 마지막 두 홀 연속 버디에 힘입은 내가 원 언더, 1번 홀 버디와 3번 홀 파를 제외하고는 보기와 더블을 기록하신 블루 형님은 3 오버, 얌얌은 5 오버...
후반 16번 홀까지의 전체 스코어는 계속 3 언더 마도로스가 일등, 원 오버인 내가 이등, 각각 4 오버의 블루 형님과 얌얌이 3, 4등이었는데... 내기는 저녁 내기였었다. 2,3,4등이 20%, 30%, 50%로 일등을 사주고, 니어 버디는 민족자본 5불씩... 내가 버디 2개에 니어 한 개, 블루 형님과 얌얌이 각각 버디 한 개씩의 버디 풍년이 나왔는데 정작 일 등을 한 마도로스만 버디가 없어 니어 버디만 정산을 하고 나머지 저녁 식사는 마도로스 빼고 1/n을 하기로 했다. 건너뛴 2번 홀의 실수가 흠이 되긴 했지만 이해를 해주신 보따형님과 처음처럼, 그리고 에디와 알란 덕분에 그나마 즐거운 라운딩이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8시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배 시간을 생각하면 빡빡한 일정 이었지만 나름 여유 있게 샤워하고 선착장 옆 아마존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의 꿀 잠! 아. 바탐 골프 괜찮다...
추신.
바탐에 도착하자마자 있는 슈퍼에서 담배를 샀다. 35,000 루피아. 싱달러로 약 3불 30... 싸도 너무 싸다.
첫댓글 사진, 글 모두 멋져요!!
고마워요. 봉 작가와 달보까 작가에게 영감을 받았어요...
앤디형님 등단! ^^
잘 읽었습니다.
저도 다음에 바탐 다녀오고 싶습니다~~~
즐겁구 행복한 란딩이었습니다^^. 재밌는 후기도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