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世)와 세손(世孫)
김성문
요즈음은 일 년 중 5세(대)조 이상 조상의 산소에 묘사를 지내는 시기이다. 계절도 천고마비(天高馬肥)이다. 5년 전에는 참사(參祀)하는 숫자가 많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참사 못하는 데는 조상에 대한 공경심이 적어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이 바쁘거나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로 나이 든 문중 어른들이 주를 이룬다.
묘사 참사자 중 60세 이하는 자신이 시조로부터 몇 세이고 항렬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예도 있다. 시간을 내어 참사하는 후손들은 묘사 방식을 문중 어른들이 해 온 방식대로 따라 한다.
문중 대표는 오늘 묘사에 모처럼 참사한 후손에게 헌관을 부탁한다.
“몇 세손입니까?”
“22세손입니다.”
“그럼 항렬이 어떻게 됩니까?”
“곤(坤) 자입니다.”
항렬은 고려말부터 사용하면서 보편화됐다. 문중마다 항렬자를 만들 때는 주로 목화토금수의 오행상생법(五行相生法)이나 십천간법(十天干法), 십이지지법(十二地支法) 등을 사용했다.
우리 문중은 오행상생법으로 항렬자를 정했기 때문에 항렬자만 알면 몇 세손인지 금방 알 수가 있다. 문제는 항렬자를 알고 있는 후손이 자신이 ‘몇 세?’ 또는 ‘몇 세손?’인지를 구분해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묘사 헌관을 부탁받은 후손도 항렬은 알고 있는데, 자신이 파조(派祖)로부터 몇 세인지 또는 몇 세손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 우리 문중에서 ‘곤’자 항렬이면 파조로부터 22세이다. 손(孫)이란 글자를 붙이면 숫자 하나를 감하고 21세손이 된다.
보통 후손을 말할 때 자신은 1세, 아들은 2세, 손자는 3세, 증손자는 4세, 고손자는 5세라 한다. 그런데 세손(世孫)이라 할 때는 자신은 손(孫)이 될 수 없으므로 0세손이고, 아들은 1세손이며 손자는 2세손이다.
위로 조상을 말할 때도 자신은 1세, 아버지는 2세, 할아버지는 3세, 증조할아버지는 4세, 고조할아버지는 5세이다. 그런데 여기에 조(祖)를 붙이면 자신은 조상이 될 수 없으므로 자신은 0세조, 아버지는 1세조, 할아버지는 2세조, 증조할아버지는 3세조, 고조할아버지는 4세조가 된다.
우리는 ‘세’와 ‘대’의 글자를 혼용해서 사용한다. 후손을 말할 때는 ‘세’로, 조상을 말할 때는 ‘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세’나 ‘대’의 의미는 같은 의미이다. ‘세’와 ‘대’는 시조(始祖)를 1세로 하는가, 아니면 1대로 하는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조상이나 후손을 헤아릴 때 모두 ‘대’를 쓴 경우가 있다. 조선 시대 학자 한주(寒洲) 이진상 문집에 나오는 묘지 부분에 보면, ‘6대조고’와 ‘6대손 진상’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조상을 헤아릴 때는 ‘대’를 쓰고, 후손을 헤아릴 때는 ‘세’를 쓴 예도 있다. 조선 시대 주자학자 면우(俛宇) 곽종석은 자기의 문집 묘표 부분에 ‘8대조고’와 ‘8세손 종석’으로 기록했다.
한편 세수를 헤아릴 때 위로나 아래로 모두 ‘세’를 쓴 경우도 있다. 『삼국사기』 ‘김유신 상’ 편에 보면, 시조인 김수로왕을 ‘12세조’로 기록하고, 가락국 10세 양왕을 ‘9세손’으로 기록했다. 김유신은 시조로부터 13세이니 12세손이 된다.
대부분 성씨의 족보를 보면, ‘세’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옛날부터 ‘세’로 써 왔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세’와 ‘대’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가. 이는 1846년 청나라 지경학재장판(知敬學齋藏板)에서 출판한 『피휘록(避諱錄)』이란 책이 있다. 피휘록은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 그것을 감히 바로 읽지 못하고 달리 읽는 것을 고증한 책이다.
이 책에 중국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이름을 당시 사람들이 다른 글자로 고쳐서 읽는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당태종의 이름이 이세민이기 때문에 당나라 사람들은 이를 감히 읽을 수 없어 모든 글에서 ‘세(世)’는 ‘대(代)’자로 바꾸어 읽었다. 이를 ‘피세작대(避世作代)’라고 했다. 즉 ‘세’자를 피해 ‘대’자로 바꾸어 사용했다.
예를 들면 ‘치세(治世)’를 ‘치대(治代)’로 고쳤고, 민(民)자도 바꾸어서 본래 ‘민부(民部)’라 쓰던 것을 ‘호부(戶部)’라고 했다. 이때부터 ‘몇 세’라는 말도 ‘몇 대’로 바꾸어 쓰게 됐다. 이와 같이 글자만 바꾸었기 때문에 세수나 대수에는 혼란 없이 써 왔다.
그런데 1960년대 한갑수 선생의 세수(世數) 계산법은 잘못됐다. 그는 『바른말 고운말』이란 방송을 했다. 이때 몇 세손이라 할 때는 자신을 넣어 계산하고, 몇 대조라 할 때는 자신을 계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그 당시 내용을 들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한 번 기억된 사실을 좀처럼 일반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 묘사 대상자는 헌관으로부터 위로 17세인데, 문중 어른이 헌관은 17세손이고 묘사 대상자는 16세조라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사용했다. 실제는 헌관이 16세손이고 묘사 대상자도 16세조이다. 결국은 문중 어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대로 따랐다.
묘사를 받는 조상들은 이놈의 후손들이 자기가 몇 세손이고 내가 몇 세조인지도 분명하게 모른다고 호통을 칠 만한데도 묘사는 조용하게 경건한 마음으로 무사히 마쳤다. 묘사든 제사든 모시는 사람의 정성이겠지만 자신의 조상을 바르게 표현하고 지내는 것도 바른 숭조(崇祖) 사상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문중 어른이 시키는 방식대로 묘사에 참사했다. ‘세’를 사용하든 ‘대’를 사용하든 숫자를 바르게 사용하여 묘사를 봉행해야 하겠다. 묘사는 모든 후손이 즐겁게 기꺼이 참사하여야 한다. 산소에 있는 조상들은 그래도 묘사를 지내주는 후손들이 대견한 듯 따뜻한 햇볕을 비춰준다.
첫댓글 아....저도 여태 대와 세를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깨우침을 주셔서.....
유당 선생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정된 습관을 고치기는 참 어렵다고 봅니다.
요즈음 묘사철이지만, 문중에 따라 묘사를 하는 문중, 안하는 문중도 있습니다. 좋은 계절에 조상을 모신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개인적인 여건때문에 다소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나 세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 좋은 예로 잘 설명 해 주어 고맙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ᆢ 채성만
채 선생님!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세와세손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조 선생님! 좋은 보탬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보람된 시간 보내셔요.
김성문 선생님 대와 세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친정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밥상머리 교육은 있었으나 귓등으로 흘려 보냈답니다.
이제 확실하게 알았답니다.
감사합니다.^*^
혜원 선생님!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