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을 내조하라
역대 대선과 달리 이번 20대 대선에서는 특별히 주목받고 있는 이슈가 있다. 대통령 후보가 아닌 후보 부인과 가족들의 도덕성과 행적 논란 이른바 ‘대통령 영부인 후보 리스크’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지, 대통령 영부인을 뽑는 선거인지 헛갈릴 정도이다.
이번 대선이 끝나면 우리는 12번째 대통령 영부인을 맞는다. 역대 영부인의 역할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내조만 하는 전통형과 적극적인 정치 참여형으로 구분된다. 아내를 남편의 삶에 종속된 객체로 보던 시절, 대통령 영부인의 역할은 ‘그림자 내조’였다. 그러나 성 평등 시대, 영부인은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 위상이 올라갔다. 대통령의 1급 참모이며 한국 여성을 대표하고 그 역할에 따라 국가의 자랑이 될 수도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내조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공적인 역할과 기능을 함께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대통령 부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
대통령 영부인은 대통령처럼 국민이 뽑은 선출직이 아닌 동반 당연직이다. 그러나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법률이 따로 있지는 않다. ‘대통령 경호 관련 법률’에서 경호 대상에 배우자가 포함되지만, 영부인의 의무와 역할, 책임, 보수 등에 관한 규정은 없다. 다만 청와대 비서실 조직을 보면 대통령을 보좌하는 제1부속실과, 영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영부인은 사실상 공직자의 역할을 한다. 대통령처럼 정책을 결정하는 행보는 아니지만, 국내외 주요 행사에 함께 참석하고 대통령을 대신해 대외 활동을 한다. 해외 순방도 함께 다닌다. 각종 봉사 활동에 참여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다독이는 임무를 수행한다. 영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은 공적 영역으로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각종 의전이 제공된다. 그러나 보수가 없어서 세금은 내지 않는다.
미국은 대통령의 배우자를 지원하는 법안이 있고 영부인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정하는 퍼스트레이디 사업 즉 펫 프로젝트(Pet Project)가 있다. 로잘린 카터 여사는 ‘정신건강위원회’ 활동을 하며 정신건강시스템 법이 법률로 채택되도록 했고 낸시 레이건 여사는 마약 남용 방지 캠페인을 펼쳤다. 바버라 부시 여사는 문맹 퇴치를 위한 도서관 운동을 전개했으며 힐러리 클린턴 여사는 의료보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맹활약했다. 힐러리는 특히 선거전에서 ‘표 한 명 값으로 두 명이 일한다’는 기치를 내세웠고 백악관 입성 후에는 행정부 일에 깊이 관여해 언론으로부터 ‘두 명의 대통령’이란 조롱을 받기도 했다. 미셸 오바마 여사도 비만 퇴치 운동인 ‘렛츠 무브(Let‘s Move)’ 캠페인을 주도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 영부인은 누구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까? 선출직은 아니지만,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한다면 선거 과정에서 도덕성과 행적에 대한 검증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영부인 검증은 대선 본선이 아닌 각 정당의 당내 경선 과정에서 함께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래야 ‘배우자와 가족 리스크’에서 벗어나 대통령에게 국민의 선택이 집중될 것이다.
국력과 위상에 걸맞고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는 영부인 관련법 제정은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니다. 통제받지 않는 안방 권력(베갯머리 권력)은 권력형 비리 추문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부인으로서 자질과 능력을 검증받고 국민적 합의를 이룬 영부인법의 보호를 받으며 당당하게 남편과 국익을 동시에 내조하는 대통령 영부인. 영부인의 5년이 대통령의 임기 5년에 포함되지 않고 합계 10년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영부인법 제정을 위한 프로젝트가 다음 정부에서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