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한복음 14:1-3)
아는 장로님 중에 한분이 젊은 시절 한양공대 건축과를 나왔다. 좋은 건축 회사에 들어갔는데 문제는 주일에도 출근을 하는 날이 많았고 회식을 할 때는 술판이 벌어졌다. 마음이 편치 않아서 직장에 사표를 내고 그만 두었다. 직장을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리어카를 하나 사서 야채 행상을 시작했다. 주일에 교회 나가도 되었고 먹고 사는 일에 지장이 없었다. 한 일년동안 리어카 행상을 했는데 젊은 사람이 야채 행상을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후에 유민 건설이라는 회사에 들어갔고 내가 그를 만났을 때는 40대 초반에 회사의 이사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은 교회 장로요 자기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 되었다.
좋은 직장을 다니다가 주일을 지키려고 직장을 그만 두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이 직장을 잃었을 때, 실직을 하였을 때 마음이 힘들 것 같다. 따박따박 나오던 월급이 끊어지면 어떻게 살아가나? 근심하고 걱정할 것 같다. 믿었던 것이 사라졌을 때,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 근심하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다. 믿고 의지하던 예수님, 병자들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 바람을 꾸짖어 잠잠케 하던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 이제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가신다고 하니 제자들이 근심하고 있었다. 근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시면서 해 주셨던 말씀이 오늘 성경 말씀이다.
첫째,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너희는 마음에 염려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무엇을 근심하는가? 아들을 생각하면 근심할 수도 있다. 딸을 생각하고 근심 할 수도 있다.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갔더니 정밀 검사를 해보자 하면 근심이 된다. 잠도 안 오고 밥도 안 넘어가기도 한다. 아는 목사님이 소변을 보니 피가 나왔다.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더니 목사님은 나가고 보호자 사모님만 들어오라고 해서 목사님이 아 암인가 보다.... 지레 겁을 먹고 걱정하고 근심했다. 나중에 별것 아니라는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마음이 지옥을 헤맸다고 한다.
우리는 사는 것이 걱정 될 때가 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걱정할 때가 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다. 들의 백합은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지만 솔로몬의 영광스런 옷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셨다.
공중의 새를 보라 창고에 양식을 쌓아놓지 않아도 하나님이 먹이신다고 하셨다.
욥기 38:41절에 보면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 아니냐고 하셨다.
너희는 들의 백합화보다 귀하고 공중의 새보다도 귀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하나님의 딸이 아니냐?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공중의 새들에게 먹을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다.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믿고 의지한다. 예레미야 17장 5-7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말씀하셨다. 우리가 믿어야 할 분은 하나님이다.
둘째,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 하셨다.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예수님을 믿으라 하셨다. 예수님을 믿을 때 염려와 근심이 사라진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아내, 가이드로 삼고 사는 것이다. 그리하면 내 인생 길을 인도하시고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10에 나는 선한 목자라 하셨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내가 사망의 골짜기, 죽음의 골짜기로 다닐 때에도 나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그 예수님을 믿을 때 근심이 없어진다.
내가 아는 분 중에 허원석이라는 사람이 있다. 1970년에 서라벌예대를 나와서 KBS 텔레비전 방송국에 피디로 들어갔다. 학교 동기 중에 임권택이라는 영화감독도 방송국에 같이 다녔다고 했다. 내가 허선생을 만났을 때는 2003년경이다. 김해 출신으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에 형님하면서 종종 찾아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
허원석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피골이 상접하여 사람의 모양이 아니었다. 바싹 말라서 바람에 날려 갈 것 같았고, 손이 떨리고 몸이 구부정한 불안해하는 노인이었다. 그 집 방에 들어가니 조그마한 교자상이 있고 그 위에 불상이 있었다. 지난 35년간 모시던 제단이었다.
KBS에 다니던 어느 날부터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하고 마음이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수십년간 불단을 모시고 살았지만 몸은 병들고 폐인이 되어 있었다. 한때 그렇게 총명하고 영특하던 젊은이가. 늙고 병들고 페인이 되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분의 딸이 목사를 모셔와서 예배를 한번 드리자 하여 심방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권면으로 불단을 없애고 예수를 믿기로 했다. 그 후 허선생은 예배시간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고 목사의 지도를 따라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보니 볼에 살이 차고 얼굴 표정이 밝았다. 그 가정 식구 아내와 아들, 모두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가정이 새롭게 되었다. 어느 날 그 부인이 나에게 상의하기를 용산구청 맞은편 사거리 코너에 조그마한 가게가 났는데... 개업예배를 드리고 그 가게, 은하슈퍼를 열게 되었다. 그때, 그분 나이 70세였다.
한 3-4평 밖에 안 되는 작은 가게였지만 장사는 아주 잘 됐다. 이제 허선생 부부는 아무 근심없이 살게 되었다. 한때 폐인이 되어 살았던 허원석 선생이 교회에서 집사 직분도 받고 교회 여러 성도와 교제를 하며 평화로운 노후 생활을 보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근심이 사라지고 행복한 사람이 된다.
셋째, 아버지의 집에 있으면 근심이 없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오래 전에 내가 신학교를 다닐 때, 신길동 교회에서 전도사를 했다. 우리가 사는 집 근처에 고향의 후배가 살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하나 낳았다. 우리 아들보다 한 살이 많았다. 단란하게 살고 있는가 했는데 어느 날 그 집 부인이 다급하게 우리 집 문을 두들겼다.
나가보니 그 부인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우리는 그 부인을 옥상으로 대피시켰다. 조금 있다가 그 남편이 우리 집 문을 두들겼다. ‘갑도 엄마 여기 오지 않았냐? 갑도 엄마 내 놓아라.’ 우리가 모른다고 하니... 이럴 때 정직하면 사람 죽게 된다...고함을 지르고 악을 쓰다가 집으로 갔다.
갑도 엄마 이야기를 들으니 남편은 알콜 중독이고 술만 먹으면 자기를 때린다고 했다. 이대로 살면 맞아 죽을 것 같다고.. 그 갑도 엄마 배울 만큼 배웠고 좋은 가문에서 자랐는데 이상한 남편 만나 고생 참 많이 했다.
이렇게 알콜 중독자 만나 매 맞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살려고 도망쳐 나온 아내들이 주로 경찰서로 피해 들어가는데 경찰서에서는 이런 여인들을 남편에게 돌려보내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남편에게 떼어 놓고 보호해 준다.
매 맞고 도망 나와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곳이 있다. 경찰에서 전화가 와서 데려가라고 한다. 우리 감리교회 여선교회 연합회에서 이런 사람들을 돌보는 센터가 있다. 사랑의 둥지이다.
사랑의 둥지가 만들어진지 한 20년이 된 것 같다. 이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이 감리교 여자목사님이다. 벌써 한 20년을 헌신하고 있다. 이곳에서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여인들이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곳에 있으면 두려워 할 것도 무서워 할 것도 없다. 더 이상 걱정 할 일이 없다. 더 이상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호한다. 사랑의 둥지는 외부에 공개를 하지 않는다. 남편이 다시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이 마련하려는 거처가 사랑의 둥지와 같다.
예수님이 우리의 거처, 우리 영혼의 집을 마련하기 위하여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우리 영혼의 거처를 마련하시고 바로 우리 영혼의 집, 아버지의 집에서 근심없이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의 집은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이 사는 집이니 성전이기도 하고 교회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집하면 누가복음 15장에 집나갔던 아들, 탕자 비유가 말씀하는 대로 세상에서 제멋대로 살다가 재산 탕진하고 알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환대하고 잔치하는 말씀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아버지의 집에 마음의 평화와 안식이 있다.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 걱정과 근심이 없다.
사람의 영혼의 제자리는 하나님의 품속이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편안해진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시편 90:1에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하나님이 내 영혼의 거처, 영혼의 집이 되는 사람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집이라는 말씀이다.
성 어거스틴은 내 영혼이 하나님의 품속에 깃들이기까지 내 영혼에 안식이 없었다고 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의 품에서 참된 평안과 쉼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