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주대환이 홀로 동진강과 만경강을 따라 사흘간 걷는 가운데, 익산역에서 30분 정도 만나 짧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 때 나에게 건넌 책이 ‘k-데모크라시’다.
주대환은 ‘전향한 좌파’인가?
나는 ‘전향한 좌파’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본다.
이 말은 은연 중에 정통 좌파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친북 성향의 사회주의’를 상정하고 있는 낡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해방 후 80년의 역사를 거치며 분단된 두 나라의 현실이 여러 단어들의 의미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현실을 실사구시로 바라보고 미래를 제대로 설계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우리의 정서를 지배해 온 ‘민족주의’로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중층적인 모순으로 얽힌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족은 관념이고, 국가는 현실이다.
전통적인 좌파가 관념인 ‘민족’에 경도되고 현실인 ‘국가’를 경시한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과도 모순되는 것이다.
일찍이 이런 점에 착안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한국 좌파의 견고한 벽에 부딪쳐 new left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new right로 ‘전향’하였다.
물론 그들의 개인적인 신념이 바뀐 것도 있다.
남북 두 국가의 체제경쟁의 지금까지의 결과는 북(北)의 완패다.
김정은의 통일포기와 적대적 두 국가선언은 이런 현실을 표명한 것이다.
사회주의의 대의를 배반한 것은 역대 사회주의 정권들이었고, 가장 극심한 배반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봉건적 세습왕조의 기미는 김일성 시대부터 감지되었다.
나는 청년 시절 사회주의자였지만, 이 시기부터 북(北)을 동지로 보는 것을 그만 두었다.
북(北)이 일관되게 견지한 것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통일전선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의 선언은 그것을 파기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좌파 민족주의는 설 땅이 애매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의미 있는 세력으로 종북(從北) 세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종북도 극소수는 있을 수 있고, 민족주의의 오랜 정서 상 친북(親北)적인 좌파민족주의 사람들은 다소 있겠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양식 있는 좌파들이 이런 내용을 커밍아웃하지 못한다. 따라서 철학이나 사상이나 정치적 담론을 생산하지 못한다.
주대환은 스스로 그런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낸 사람이다.
나는 그를 ‘전향한 좌파’가 아니라 ‘신좌파(new left)’로 부르고 싶다.
물론 그의 담론들을 읽으면서 다소 ‘절대적’인 표현들이 있지만, 국가관이나 역사관이나 사회주의관 등의 치우침을 바로잡기 위한 과정으로 보고 싶다.
며칠 전 익산역에서의 대화에서도 이 점을 나는 지적하였다.
역사는 끊임없는 현재와의 대화다.
‘절대적’ 표현은 탐구자가 가장 피해야할 요소다. 단정(斷定)하고 고정(固定)되기 쉽기 때문이다.
교조(敎條)를 다른 교조(敎條)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면 그것은 옳은 길이 아니다.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일 뿐 아니라, 과거의 시점에서의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지금의 결과를 보고, 과거를 평가하는 것 또한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는 아니다.
나는 주대환을 ‘사회민주주의자’로 보고 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바로 어떤 신뢰가 생겼다.
그것은 이 나라가 만나고 있는 퇴행적인 편가름에 의한 심리적 내전을 종식시키지 않으면 그동안 한강의 기적을 통해 이룩한 밑천을 더 큰 국가적 도약으로 이끌 기회를 잃고 쇠락의 길을 가리라는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자유민주주의(보수)와 사회민주주의(진보)의 연합정치 내지 협동정치’를 그 해결책으로 보았다.
아마 이번 사태로 그가 받았을 충격은 그의 주장들이 한낱 그 자신의 정파적 사심(私心)으로 비춰지는 정국의 악순환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조선 선조 시대의 당쟁을 그린 ‘왜 선한 직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라와 사회가 상전벽해로 변했는데, 권력을 둘러싼 정치투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음에 새삼 놀라고 있다.
당시 동인(東人)들은 이이(李珥)의 ‘조제보합론’ 자체를 이이(李珥)의 사심(私心)일 뿐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야하지 않겠는가?
12.3 사태로 이루어진 탄핵 국면에서 그 동안의 심리적 내전에 가까운 상태로 몰고 간 원인의 하나였던 87체제를 끝내고 ‘정상적인 진영’ 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연합정치 또는 협동정치’가 제도적으로 가능한 헌법 개정을 통해 제7공화국을 출범 시키는 방향으로 힘과 지혜가 모아지기를 바란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이번 사태로 시험대 위에 올라섰다. 내부의 진통을 극복하고 신(新)보수가 건강하게 형성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마찬가지로 진보도 낡은 관념과 정서에서 벗어나 현실에 바탕을 둔 신(新)진보가 무대의 중심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합리적이고 애국적(愛國的)인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가 새로운 문명을 지향하는 녹색주의자들과 경쟁적 동반자로서 연합정치와 협동정치를 펼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주대환의 노력을 나는 이런 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책 내용은 소개하는 글들이 많아서 더 보태지는 않겠지만, 진보의 새로운 정립을 위해 필요한 테마를 던졌다고 본다.
주대환의 견해에 찬반을 떠나 한국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이 시기에 이 책의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