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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픽션들’
작가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초판 ; 1940
알젠틴의 작가로서 1935년의 ‘불한당의 세계사’와 후기 작품으로 1970년의
‘칼잡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수수께끼 같은 단편집 ‘픽션들’에서 보르헤스는 동화처럼 매혹적인 단편소서로서 그의 복잡한 환상적 상상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열입곱 편의 이야기는 활기가 넘쳐나면서도 잘 정돈되어 있다. 산문체는 보석처럼 정교하다. 그 특유의 어조로 심오한 형이상학적 불안이 묻어난다.
첫 번 째 이야기는 위치를 알 수 없는 나라에 대한 백과사전 항목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너머지 단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해 비평하다보니 그 생겨난 일, 우연에 지배하는 고대 사회, 바벨의 무한한 도서관, 기억력이 완벽한 사람 등에 대해 이야기 한다.
*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으며, 20세기의 가장 주목받는 중남미 인으로 꼽히는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Borges, Jorge Luis, 1899~1986)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이다. 세계 주류무대에서 소외된 중남미 문학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를 보르헤스가 극복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포스트모던한 기법을 도입하면서 문학에 새영역을 개척한 보르헤스의 문체적 특성을 살펴보자면 ‘책 자체를 소재로 삼은 책에 대한 글쓰기’와 중남미의 전통적 토양에서 발화한 ‘마술적 사실주의’의 도입, ‘탐정소설 구조’등이 있다. 이 혁신적인 기법들은 매너리즘에 빠진 세계 문학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다분한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중남미의 토속적 미학성 위에 혁신적인 소설기법을 도입했으며, 단일한 지역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주의를 지향함으로써 일반적으로 국수적 환경에 머무르는 보통 작가들과 변별되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보르헤스는 일곱 살에 제 2의 모국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로 작문을 하고, 여덟 살에 단편 희곡을 썼으며,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스페인어로 번역할 만큼 언어에 대한 우수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성격 때문에 평생 정부의 견제를 받으며 어려움을 겪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50년대에는 유전적 영향으로 시력이 실명상태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도 보르헤스의 왕성한 창작의욕을 꺾을 수는 없었는데, 지극한 어머니의 도움으로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는 1955년에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직을 맡게 되고, 1956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대학 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특히 도서관에서 세계의 고전을 섭렵하며, 문학과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에세이와 저서를 출간하였다. 이를 두고 ‘신이 시력을 빼앗아 가고 나서 이렇게 많은 지식을 주셨다’는 실존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표현한 말이 이미 유명하다.
보르헤스의 소설은 대부분이 단편으로 엮여있다. 그는 소설 픽션의 서문에서 “방대한 양의 책을 쓴다는 것은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정신 나간 짓이다.”라고 말한다. 보르헤스 작품의 주요 특징으로 세계 문단에 충격적으로 출현한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지독한 영화광이기도 했던 보르헤스는 영화 기술인 몽타주 기법을 도입하여 소설의 시점을 다양화하는 효과를 주었는데, 이는 동시에 사건을 진행하며 독자가 개괄적인 면을 조망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또 그가 쓴 작품의 대표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을 상호텍스트적인 성격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글쓰기 방식인 하이퍼링크 기술을 마치 예언이라도 하는 듯이 보인다. 즉 거미줄처럼 연결 된 인터넷망에서 문서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전개하는 방식을 소설에 도입하여 각 텍스트의 장벽을 허무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문학 형태를 한 단계 혁신한 것으로 황병하는 “단일 배경에 머무르지 않는 공간 확장 능력에 힘입어 무한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보르헤스는 신, 죽음, 영원, 시간과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를 표현하기 위하여 몰두하였다. 그는 추상적 관념을 묘사하기 위하여 '책'이라는 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 불명확한 대상을 두고 탐구하는 존재론적 탐색을 마치 미로에서 길을 잃고 해매는 것처럼 불안하다고 말하였다. 이는 불안한 정치 환경에 기반을 둔 중남미 특유의 니힐리즘으로써, 대부분 문학 작품에 나타난 일반적 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중남미 토속의 허무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불안하게 내던져진 현 존재가 '꿈'을 꿈으로써 현실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주창한다. 이것이 바로 보르헤스가 창조한 환상적 가상 공간이다. 앞으로 보르헤스의 대표 작품인 ‘픽션’을 중심으로 그의 문체적 특징이 두드러진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보르헤스의 대표작 '픽션'에 가장 먼저 실린 작품 ‘틀뢴, 우크바크,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는 틀뢴이라는 가상 행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지명을 실질적 근거를 들어 마치 사실처럼 보여주는 것은 소설의 (픽션) 근본적인 속성이기도 하다. 보르헤스의 환상적 기법이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작품인 ‘픽션’은 현실과 환상을 묘하게 병치시키며 접히는 주름 부분에 생성되는 가상의 공간을 보여 준다. 이는 작가가 창작하고자 하는 이상의 세계와 다름이 아니다. 문예학자 츠베랑 토도르프는 이 환상성을 “경이와 기괴 사이의 미묘한 망설임”이라 정의하는데, 고딕양식으로 쓰인 유럽의 낭만주의 사조에서 이 특성을 빈번히 발견할 수 있다. 구체적인 환상문학의 예로 카프카의 ‘변신’,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엘런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 등이 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해리포터’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으로 큰 인기몰이를 하는 것이 환상 문학의 흐름이다.
다시 보르헤스의 작품 ‘픽션’에 나타난 사실적 기반을 살펴보자면 엄밀한 권위를 가진 인물과 매체를 근거로 하여 독자를 설득시키지만, 이 권위성이란 허구에 토대를 둔 유희적인 것이다. 바로 신뢰 있는 텍스트를 몇 단계 비트는 화법을 사용하여 현실과 가상 사이에 미묘한 망설임, 즉 환상의 영역을 조성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는 작품에서 가상공간 ‘우크바크’를 증명하기 위해 근거로 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칼 리터의 ‘지리학’, 까를로스 마뜨로나르디의 발언, 빌헬름 라이프니치의 가설, 데이비드 흄과 버클리의 논쟁 등이 바로 이 허구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가짜 주석과 인용) 이들의 권위를 비틀며 허구에 병치시킴으로써 독자의 이성적 망설임을 유발하게 된다.
작품에서 작가 보르헤스가 화자 '나'로 출현한다. 그는 친구 까사레스와 저녁식사 중, 일인칭 화자를 바탕으로 한 소설작법에 관한 긴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사실을 흐트러뜨리며 생략하고, 소수의 독자들에게만 받아들여지는 일인칭 화법을 강하게 비판하게 된다. 이 가운데 깊은 밤 우리를 염탐하는 것처럼 보이는 괴기스런 거울의 분위기를 느끼게 되어, 마침 친구 까사레스는 우르바크의 한 이교도 창시자가 언급한 “거울과 성교는 사람의 수를 증식시키기 때문에 가증스러운 것”이라는 말을 꺼낸다. 이 경구의 출처를 찾기 위해 둘은 백과사전을 뒤지지만 46권 마지막 장의 웁살라와 47권 처음의 우랄-알타이계 언어 사이에 ‘우크바크’라는 지명은 찾을 수 없다. 지식의 총체인 백과사전에 기록되지 않은 우크바크의 완충성이 상상과 현상 사이에 낀 환상성을 조성하는 장치의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나중에 까사레스는 자신이 소유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 10판의 재인쇄본인 영미 백과사전 46권에서 우크바크를 설명하는 부분을 찾아 '나'에게 보여준다. 책에 묘사 된 우크바크는 모두 근원적인 애매성을 바탕으로 사실적이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환영이거나 궤변이다. 거울과 부성은 가증스러운 것이다”라는 마법사 에스메르디스의 발언은 사실 희랍시대의 철학자 플라톤의 이론에 상당부분 근거를 두었는데, 보르헤스가 이용한 상호 텍스트적인 요소를 분명히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위적으로 플라톤이 사기꾼 마법사 에스메르디스의 모습으로 변형 된 것이다. 화자는 지리부도와 카탈로그, 지리학회의 연감, 여행자와 역사가들의 비망록 등 활자화 된 모든 매체에서 우크바크와 관련된 자료를 찾지만 까사레스가 소유한 백과사전 말고는 그 흔적을 찾지 못한다.
우크바크에 대하여 결정적인 단서를 찾게 되는 것은 무성한 인동덩굴과 거울들의 환영적 깊이에 자리 잡고 있는 아드로케 호텔의 철도 기술자 허버트 에쉬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에서 였다. 60진법으로 수열을 표현하는데 관심이 있었던 에쉬는 1937년 동맥파열로 죽게 되고, 브라질에서 온 에쉬의 한 권의 책에 바로 틀뢴과 우크바크,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가 발견되는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액자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 부분은, 작품과 창작 과정 사이를 묘하게 중첩시킨 메타텍스트 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책에 따르면 “‘밤중의 밤’이라고 불리는 이슬람의 어느 밤에 천국의 비밀 문이 열리고, 물의 맛이 달콤해진다.”고 한다. 소설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혹성 틀뢴이 이 천국의 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책에는 가상 혹성 틀뢴에 존재하는 건축과 놀이기고, 신화의 공포와 언어의 흔적, 황제들과 바다, 광석, 새, 고기, 기하학, 불, 신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논쟁과 전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룬 방대한 자료까지 영어로 쓰인 1001페이지에 통일성있게 정리되어 있다. 아마도 이 저서를 만들기 위해 위대한 천재의 주도하에 천문학자, 생물학자, 엔지니어, 형이상학자, 시인, 화학자, 도덕가, 화가, 기하학자까지 세계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였을 것이다. 종이라는 카오스 위에 코스모스를 부여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 그들의 흔적이 보인다. 화자의 친구는 “발톱을 보고 사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자”라는 라틴 격언을 들며 책의 모자란 부분을 우리가 채워 보자고 말한다.
틀뢴의 환상적인 면모는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하여 설명 된다. 먼저 문학적 용법 가운데 시학적 필요성에 따라 순간 집합되었다가 흩어지는 관념적인 실체들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는 시각적, 청각적 성격을 가진 두 개의 용어의 결합으로 나타진다. 예로 태양이 떠오를 때의 색깔과 한 마리 새의 아스라한 울음소리의 병치, 태양과 수영 하는 사람이 가르는 물, 감은 눈 속에 떠오르는 어렴풋한 그림자의 장미, 강물이나 꿈결에 실려 가도록 내버려 두는 감각 등이 다른 실체들과 결합하며 무한히 지속되는 형태를 보인다. 그밖에 책은 틀뢴의 고전문학, 절대관념론, 유물론, 언어, 기하학, 책 등 현실과 상이한 틀뢴의 전통적 문법을 통하여 환상 세계의 생생한 모습을 고증한다.
사실 이 틀뢴이라는 환상을 벗기게 되는 계기는 바로 책의 주인인 허버트 에쉬가 소장한 한 통의 편지에 의해서이다. 틀뢴이라는 찬란한 역사는 17세기 초 어느 날 밤, 비밀 자선 결사단체에 의해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털어 한 나라를 창건하기 위하여 몇 해동안, 비밀회의를 갖는다. 하지만 한 나라를 창건하는 것을 무리라고 깨닫고, 그들의 지식을 세습하며 혹성을 창조하게 되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틀뢴인 것이다. 이를 전두지휘한 백만장자 버클리는 무신론자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성으로도 창조할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하고자 했으며, 40권에 달하는 틀뢴의 백과사전의 만들어지게 된다. 이 틀뢴은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라고도 불리며 현실 세계로 침투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화자와의 접촉처럼 우연스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으면 그의 가짜 인용과 주석에 따른 '허구의 사실화 기법'이 동시대에 살았던 프랑스의 미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을 연상케 만든다. 이는 뒤샹의 기성품(Ready-made)이라 불리는 것인데, 뒤샹은 1917년 뉴욕에서 열린 ‘독립미술가'전에 가명으로 남성용 병기를 출품한다. ‘샘’이라고 지칭된 이 작품은 기존 미술의 엄격성과 가치를 파괴하는 혁명적인 사건으로 주목받으며 ‘개념미술’이라는 장르로 불리게 된다. 이 사건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덧붙는데 가명으로 작품을 제출한 남자와, 미술전의 심사위원으로 ‘샘’을 격렬하게 비판한 미술인, 잡지에 ‘샘’을 옹호하는 글을 올린 기자 모두 동일인 마르셀 뒤샹이라는 사실이다. 한 편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짜서 기존 미술계의 엄숙성을 파괴 전복하는 전위적 퍼포먼스가 보르헤스의 허구 인용과 주석을 연상케 만드는 부분이다.
그리고 책에 실린 비교적 짧은 단편 ‘칼의 형상’에 대해서 살펴 보겠다. ‘칼의 형상’은 얼굴에 긴 흉터가 있는 사내의 이야기인데, 앞서 말한 보르헤스의 몽타주 같은 시점이 적용된 작품으로, 중남미 문학 특유의 시점의 파괴(태아의 시각 혹은 죽은이의 시각으로 묘사)가 잘 나타난 작품이기도 하다.
‘영국인’이라고 불리는 사내는 얼굴에 반달처럼 긴 흉터가 있다. 책에는 이 흉터가 ‘관자놀이에서 시작해 턱의 광대뼈로 이어진 잿빛의 거의 완벽한 활 모양의 흉터’라고 묘사 되어 있다. 사내는 작품 가운데 잔인할 정도로 염격하며 공정하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모습으로 비추어 진다. 어느 날 밤 그는 흉터가 생긴 연유에 대하여 나에게(보르헤스) 긴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사내는 1922년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영국과 싸운 공화주의자이며 가톨릭교도이기도 했다. 이 아일랜드인들의 반란은 이름 없는 전투에서 대부분 희생당하며 드물게 벌이는 국지적에서 지루한 싸움을 이어 나간다. 전투가 이어지던 날, 빈센트 문이라는 공화주의자 청년이 무리를 찾는다. 문은 세계사를 야비한 경제 투쟁의 역사로 비난하는 강력한 맑시스트이며 혁명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문은 강력한 이상과는 별개로 겁이 많고 전투에는 서툴러서 화자인 사내를 종종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 적에게 쫓기던 나와 문은 버클리 장군의 별장 안으로 달아나는데, 보르헤스가 종종 사용하는 허구적 배경의 특성상 버클리 장군도 역시 가상의 인물이다. 별장으로 도망친 둘은 초조함 속에 아흐레를 하루처럼 보내게 된다. 그 와중에도 문은 비판적이고 사변적인 논쟁으로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열흘째 되던 밤, 나는 별장 밖으로 정찰을 나가고, 광장에서 꼭두각시를 세워 넣고 사격 연습을 하는 영국군을 보게 된다. 순찰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신변에 대한 안전을 보장을 받고 나를 밀고하는 문을 목격 한다. 이 비겁한 이상주의자를 응징하기 위해 나는 문을 쫓아가 장군의 반월도로 얼굴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피의 반달을 새겨 넣는다. 그리고 문은 브라질 어딘가로 도망가고 나는 광장에 놓인 꼭두각시처럼 총살당하게 된다. 이 부분에 와서 누구나 짐작할 수 있지만, 사내는 “내가 바로 빈센트 문이요. 이제 나를 마음껏 경멸하도록 하시오.”라고 고백하며, 시점의 대변환을 보여준다.
큰 기복 없이 무난히 조성된 이 짧은 작품에서 시점의 다양화 기법은 충격적인 반전을 제시한다.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라면 근본적인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체는 고백을 통해 죄의 원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비밀은 말해지는 방법을 통해 그 가치를 이어나가며, 어떤 희생이라도 원형적 죄의식에 묻힌다는 심리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치욕의 표적’을 달고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또 보르헤스의 적극적인 현실참여 의식을 엿볼 수 있으며, 빈센트 문으로 대변되는 명백한 '이성의 한계'를 비난하고 실천의 가치를 주창한다.
사실 보르헤스의 작품은 난해하다. 이 난해함은 단순히 문체의 어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자유로운 기법을 도입한 실험적인 면모와, 복층으로 짜인 구조의 어려움에 근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제약 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개인의 독백 때문이기도 한데, 이 기법은 세계 문학사에서 난해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나 토마스 만의 공통적인 면모이기도 하다. 특히 보르헤스의 난해함은 그의 광범위한 독서 습관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용되는 저서와 작가들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현학적인 감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임과 동시에 단편임에도 불과하고 상호텍스트 즉 하이퍼텍스트 적인 성격으로 단일 텍스트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광범위하게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보르헤스의 분량은 가벼우면서 또 무겁다. 개인적으로 문학작품으로서 보르헤스를 온전히 읽기 위해서는 작품에 거의 1/3이상 차지하는 주석이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고유 명사를 해석 없이 어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조차 문학의 한 부분이어서 그렇다.
분량적인 제약으로 보르헤스의 많은 작품을 다룰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혹시 기회가 생긴다면 보르헤스의 작품을 진지하게 공부해 보았으면 한다.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