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죄의 얼굴
(마태복음6:1~5)“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4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은 언제나 남과 비교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교의 결과는 우월감이나 열등감, 이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우월감과 열등감 .이것은 나는 없고 남이 내가 되는 것이고,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이상한 구조입니다. 관계가 단절되는 이것이 인간관계를 망치는 암과 같은 것인데 이미 선악과를 먹은 아담 안에 있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강제로 유전된 것입니다. 때문에 천하 인간은 이렇게 길들여져 있습니다.
신약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은 이런 면에서 우월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언제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비교하며 그들보다 더 의롭고 선하고 특별한 신앙적 존재들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들의 노력의 방향은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이 보기에 옳고 선하다 하더라도 그 동기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 중요한 종교생활을 가지고 근본적인 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 생활입니다. 기본적 원리를 가지고 그들의 악을 드러내셨습니다.
참된 신앙이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굴복 입니다. 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외식된 구제를 말씀 하십니다. 2절,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외식의 기도입니다. / 5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의 금식입니다. /
그들은 금식을 할 때 자신이 금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의 신앙의 우월성을 이웃들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식을 할 때 세수를 안했으며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일부러 초췌한 모습을 하였습니다.
결국 기도나 금식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이웃에게 긍휼을 행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인데 그들은 오히려 이웃에게 탁월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늘의 모습이 아니라 땅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세상에서 이웃과 하나 되라는 의미에서 육신을 멈추고 영적인 것을 회복하라고 회개하는 금식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고로 금식이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나 어떤 능력을 받기 위해서라면 세상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금식하는 이유는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자신에 대해서 깊이 절망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기 원하는 것입니다. 음식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싶습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선악과 죄를 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이미 탁월한 인간으로 등극 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여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마귀적인 자들 이라는 것입니다. 경쟁적 선행이기에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을 목적 했다는 것입니다.인간이 중심에 있는 상태입니다.
마태복음23장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7번이나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들의 외식된 신앙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23:5)절입니다.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이것을 거짓된 신앙 곧 외식이라고 합니다. 23장에서 “외식”이라는 단어를 7번이나 사용 하셨습니다
외식하는자란 거짓된 신앙이라는 뜻입니다.
(13,15,23,25,27,28,29절). 그렇다면 외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맡겨진 배역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 ‘무대 연기자’ 즉 ‘위선자’, ‘외식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외식적인 종교생활을 주님은 악으로 드러내기 위해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구제 / 3절, “오른 손이 하는 것을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기도 / 6절,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금식 / 18절,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함이니라”
때문에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왜 사람에게 보이려고 집착하느냐? 그 이유는 사람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명분으로 자신에게 영광 돌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우상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5장부터 등장하는 산상수훈 앞에서 우리는 계속하여 우리의 죄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 결과 종교인은 죄를 감추고 신앙인은 죄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인은 사람들의 기준에,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