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시편 133편 1 - 3절
1 형제들이 함께 다정하게 살고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좋고 즐거운 일입니까!
2 그것은 머리 위에 부어 수염으로 흘러내리되 아론의 수염으로 흘러내려 아론의 예복의 깃으로 흘러내리는 향유와 같습니다.
3 그것은 마치 헤르몬 산의 이슬이 시온 산 위로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그곳에 여호와께서 주의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영원토록 주시기 때문입니다.
<묵 상>
1. 본문은 <예배 드리러 올라가는 자의 노래>로 ‘성전 순례시’ 15편 중에서 14번째 시편입니다. 다윗의 시로 내용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땅 시온에 올라와 연합하고, 그들이 누리는 복과 영원한 생명을 노래하는 감사 예배시입니다. 배경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되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다시 안치함으로, 그동안 깨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의 연합이 회복된 것을 즐거워하며 노래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다정하게 살고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좋고 즐거운 일입니까!"(1절) ‘형제’는 좁은 의미로 ‘혈연’, ‘혈족’ 등 같은 부모를 둔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넓은 의미로는 같은 나라 백성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같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이기심도 있고, 탐욕과 교만한 마음도 있습니다. 상대와 싸워 이기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신앙인의 표상이 되는 다윗도 형들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구박덩어리로 보였습니다. 미운털이 박힌 존재로 생각되었습니다. 다윗의 자녀들 사이에서도 오빠가 이복여동생을 겁탈하고, 그 여동생의 오빠가 이복형을 죽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형제들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다정하긴 뭐가 다정하고, 좋긴 뭐가 좋겠습니까! 거기엔 즐거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다정하게 살고 있을 때, 그것이 좋고, 즐거운 일이라고 역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개인을 사랑하시지만, 고립된 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보다 공동체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을 좋아하십시다. 한 개인에게 말씀하셨을 지라도 그것은 그 개인만을 위함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함입니다.
초대교회에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에서 이탈하여 개별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공동체를 깨뜨리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사람들을 향해서도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여기서 ‘합당하다’는 '알맞다', ‘어울리도록 좋다’는 의미입니다. 한데 섞여 어우러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울리는 삶이 있는데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가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형제들이 함께 다정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어울립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좋고, 즐거운 일입니까!"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렇게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일에 합당하게, 어울리게 살아야 합니다.
2. 시인은 하나님 안에서 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2가지의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먼저는 ‘흘러내리는 향유’와 같다고 합니다. "그것은 머리 위에 부어 수염으로 흘러내리되 아론의 수염으로 흘러내려 아론의 예복의 깃으로 흘러내리는 향유와 같습니다."(2절) 향유는 가정에서 사용하거나 누구든지 먹을 수 있는 기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나 함부로 만들 수 있는 기름도 아닙니다. 향유는 제사장이 임직을 할 때에 부어서 사용했는데,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이라는 의미로 ‘관유’라고 불렀습니다. 그 보배로운 기름, 관유가 사용되는 모습을 '아론의 수염으로 흘러내려 아론의 예복의 깃으로 흘러내린다'고 표현했습니다. "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출 29:7, 9) ‘관유_구별된 기름’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수염’은 권위와 영화로움의 상징입니다. ‘예복의 깃’은 제사장들이 입는 옷의 가장자리를 의미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향유’, ‘수염’, ‘예복의 깃’은 모두 대제사장의 거룩함을 나타냅니다. 즉 향유인 거룩한 기름이 거룩한 몸의 상징인 수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그 향유는 구별된 옷을 타고서 바닥까지 흘러내립니다. 이러한 모습을 그림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름부음을 받는 대제사장의 모습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다고 표현는 것입니다. 순례길에 오르고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모두 제사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대제사장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향기로운 기름과 같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마치 헤르몬 산의 이슬이 시온 산 위로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그곳에 여호와께서 주의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영원토록 주시기 때문입니다."(3절) 하나님 안에서 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헤르몬산의 이슬이 시온 산 위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2절은 그림 언어를 '흘러내리는 향유'로 표현했다면 이제는 '산 위로 떨어지는 이슬'로 표현합니다.
헤르몬 산은 1년 중에 8개월 이상이 눈으로 덮여 있어서 요단강의 근원을 이루며, 많은 양의 이슬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3절은 2절의 말씀과 좋은 대구가 됩니다. 헤르몬 산은 아론에 해당하고, 이슬은 향유, 시온의 산들은 예복의 옷깃이 됩니다. 이슬, 물은 생명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높은 헤르몬 산에서 만들어진 이슬. 즉, 생명이 낮은 산과 언덕과 같은 시온의 산들, 메마르고, 황량한 곳에 흘러내려 생명이 움트고, 살아나는 토양으로 만들어 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향유와 헤르몬 산의 이슬을 기억하며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 구별된 삶을 살게 하시고, 이슬로 적셔주심을 통해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신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순례자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근거는 그곳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영원토록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라고 찬양합니다.
<오늘의 기도>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보배로운 향유와 생명의 이슬로 나의 영혼을 적셔 주시고, 풍성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내가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도 영원에 잇대어진 삶을 살 수 있도록 복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혈연을 나눈 집안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게 하옵소서. 신앙의 공동체와 연합하여 다정한 삶을 이룰 수 있도록 교제의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은혜, 주님께서 베푸신 참된 생명으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덧입혀 주옵소서. 그러한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은혜가 흐르게 하옵소서. 생명이 흘러넘쳐나게 하옵소서. 다정스러움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핍절의식 속에 살아왔던 나의 의식과 가치관을 풍성함으로, 풍부함으로, 충만함으로, 넘쳐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메마르고, 황폐한 영혼들이 살아나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