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제3의 사나이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연합군의 공동 관리하에 있는 패전국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미국의 B급 소설가 홀리 마틴스(죠셉 코튼 분)가 도착합니다. 그가 대서양을 건너 비엔나를 찾아온 이유는 친구인 해리 라임(오손 웰스 분)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해리는 그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사진, 마지막 명장면, 멀리서 애나가 걸어오지만 마틴스를 외면하고 그대로 지나칩니다)
홀리가 도착하기 직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그는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사고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눈치 챈 홀리는 해리의 애인인 애나 슈미트(알리다 발리 분)와 함께 사고를 조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확인됩니다. 해리가 사고를 당한 그 현장에 제3의 인물이 있었음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아무리 추적해도 전혀 윤곽이 떠오르지 않는 제3의 사나이.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요?
1949년에 제작된 이 영화 <제3의 사나이>는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작가 가운데 한명인 그레엄 그린이 시나리오를 맡았고, 훗날 <올리버>라는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게 되는 캐롤 리드가 감독을 맡은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암울한 도시 비엔나를 배경으로 하여 펼쳐지는(사진, 쫓기는 제3의 사나이)
수수께끼와도 같은 사건을 완벽한 콘트라스트를 이루는 흑백화면에 담아낸 이 작품은 완성과 더불어 영화 비평계로부터 대단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해 칸느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게 되며 그리고 미국의 감독협회는 최우수 감독상을, 아카데미는 최우수 촬영상을 이 영화에 안깁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들은 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걸작으로 기억하는 이들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특히 해리 라임으로 나오는 대배우 오손 웰스의 다음과 같은 대사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명대사입니다.
“이탈리아! 30년간의 보르지아 체제 하에서 이탈리아에선 전쟁과 공포와 학살이 난무했네. 하지만 그들은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를 만들어 냈지! 스위스? 그들은 동포애를 갖고 있지. 500년 동안이나 민주주의와 평화를 누려왔고...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게 도대체 뭔가? 고작 뻐꾸기 시계 뿐일세! 이 친구야!”
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라고 할 수 있는(사진, 친구 사이인 왼편 마틴스와 해리)
이 불쾌한 대사는 영화의 후반부에 나옵니다. 더 이상 제3의 사나이가 바로 자신임을 숨길 수 없게 된 해리 라임은 결국 친구인 홀리 마틴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때 그가 자신만만하게 뱉어내는 대사가 바로 위의 대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체에 치명적인 불량 페니실린을 유통시키다 경찰에게 쫓기는 사기꾼의 언사답게 불쾌할 정도로 강렬한 이 궤변(!)을 쓴 사람은 시나리오를 맡은 그레엄 그린이 아니었습니다. 해리 라임 역을 맡았던 오손 웰스가 이 대사의 창조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손 웰스의 천재성을 거론할 때 가끔 언급되곤 합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해리 라임의 진짜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애나와 홀리 마틴스가 만들어내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입니다.
저 멀리 소실점에서 대각선 구도로 뻗어 나온 쓸쓸한 가로수 길을 걸어오는 여주인공 애나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홀리 마틴스의 곁을 지나 걸어 나가는 롱테이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볼 때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금방 일어나서는 곤란합니다.(사진, 애인이었던 해리의 장례식장에서 애나)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안톤 카라스의 경쾌한 듯 우울한 지터(Zither) 연주 속에는 우정과 사랑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할 것이므로....
[ 안톤 카라스와 주제곡 ]
이 영화의 인상적인 주제곡을 작곡한 안톤 카라스, 그는 캐럴 리드에게 발탁되기 전만 해도 비엔나의 칼렌베르크 산자락 호이리게 주점에서 지터를 연주하는 가난한 악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갑부 영화 제작자 칼 하르테는 이 술집의 단골이었습니다.
헌데 그가 어느 날 멋스런 부부를 초청했는데 그가 바로 영국인 영화 감독 캐럴 리드였죠. 캐롤 리드는 카라스의 환상적인 치터 연주에 단박에 반해 버렸습니다. 캐롤이 묵던 호텔 아스토리아에 불려간 카라스는 영화 <제3의 사나이>에 대한 구상을 듣습니다. 작가는 그레엄 그린, 제작자는 알렉사더 콜더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혼신의 정력을 기울여 작곡에 몰입합니다. 주제곡은 ‘해리 라임(오손 웰스) 테마'ㅡ.
이 영화음악은 미국`전미 주크박스 베스트10' 차트 2위에 올랐고, 51년 4월, 비오 12세 로마교황 어전연주의 빛나는 영광을 입게 됩니다.
이것은 49년 9월 영국 국왕 조지6세(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의 어전 연주가 성공적이라는 평판을 듣고 나면서였습니다.(사진, 오스트리아의 전통 악기 지터)
참고로 치터는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널리 애용되고 있는 민족적 발현악기로 악기의 크기와 현의 수는 일정하지 않으며 연주법도 일정하지 않은 악기로 애조 띤 음조가 특색이며 노래의 반주나 독주에 쓰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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