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댐 / 전윤호
영하 십칠 도의 아침
29억 톤짜리 악몽에서 깨어
서리꽃 핀 산을 바라본다
123미터도 부족한가
평생을 가둬놓기엔
자갈과 모래로 다진 530미터 벽 아래
여전히 얼지 않는 저 거대한 슬픔
강으로 흘리는 눈물 천 리를 가는데
후회로 묶여 흔들리는 배 한 척
이제는 알겠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평생을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북인, 2020)
* 전윤호 시인
1964년 강원 정선 출생,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1991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 『연애소설』 『늦은 인사』
『천사들의 나라』『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등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2020년 편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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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편운문학상을 받았지요. 윤호 형!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전윤호 시인의 신작 시집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는 오롯이 춘천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춘천의 가장 바깥에서 가장 중심까지 훑으며 그가 춘천에서 건진/건지려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궁금하다면 꼭 시집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춘천에 살고 있는 사람도 몰랐던 '춘천들'이 당신의 마음을 훑게 될 테니,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춘천'이라는 '어떤 추상' 하나쯤 건져내어 마음 한 켠에 걸어두게 될 테니 말입니다.
시집 속에서 한 편 골라봤습니다. 표제시 <소양댐>입니다.
전윤호 시인이 요즘 다이어트로 살을 뺐다지만 여전히 0.1톤의 거구인 것을 생각하면,
인간 소양댐 같은 그 몸 어디에 이런 예민한 감각이 숨어 있는 건지 참, 참, 신기한 일이지요.^^
소양댐을 이렇게 아름다운 연시로 바꿔놓은 것을 보면
그야말로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울고 갈 노릇이지요.
여러분은 이 시를 어떻게 읽을까요?
저는 사랑의 역설로 읽습니다.
동양 최대(?)의 댐으로도 가두기 벅찬 "거대한 슬픔"이야말로 '사랑의 본령'이라고,
그 어떤 사랑도 마침내는 이별로 끝을 맺는 것이니, 어쩌면 사랑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일일 터,
그 슬픔의 힘으로 어쩌면 우리는 일생을 버텨내는 것이라고,
그러니 더 이상 후회도 이별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윤호 시인이 전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닐까 혼자 그리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2020. 7. 13.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