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었읍니다. 걸어서 옛길을 찾다가 두차례나 뒤돌아 왔다가 자전거 타고 나서서 겨우 찿을수 있었지요. 할머니께서 딱지를 사주시던 그점빵이 어디쯤 인지도 사라져 버렸읍니다 . 저도 보물찿기에서 한번도 찿아본 기억은 없네요. 지금도 읍내 옛물건 파는곳에 주둥이가 긴 작은항아리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고맙읍니다.
농촌 이었던 우리는 삼각비닐봉다리 음료가 유일한 음료수 였던것 같읍니다. 나중에 서울로 수학여행가서 많이 사먹었지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폐교가 되고 그자리엔 학습체험장이 들어섯더군요. 저도 자전거 타고 옛길을 찿아서 다녀옵니다. 공동묘지가 있던곳 여우가 할머니로 둔갑하는 여시굴제 추억을 길들을 찿아서요. 고맙읍니다.
소풍길 더듬어 가보노라면 아련한 옛추억 떠오릅니다. 농촌인 우리들은 논길따라 밭길따라 그리고 솔밭 사잇길을 따라서 걷고 또 걸었지요. 지금은 무성한 솔나무숲으로 변하였지만 그때의 넓고넓은 잔디밭이 우리들의 소풍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말씀처럼 옛날에 그리넓던 신작로나 다리들이 이제는 좁은 길이 되었고 새로놓여진 커다란 다리옆의 옛날 다리는 초라할정도로 작아 보입니다. 키가작았던 어린시절에 경험해보아서 그런것 같읍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참말로 눈물나도록 정겨운 모습입니다.
많은 부분 저의 추억과 겹치기도 하네요.
그런 손자가 할머님 손에 커서
큰나라에 까지 진출했다가 금의환향해
옛 모습을 더듬고있으니
할머님이 보시면 얼마나 대견스럽게 생각하실까요.
할머니께선 저를 특별하게 아껴주신것 같읍니다.
다른 형제들도 물론 아껴주셨지만
아마도 집안 장손인 저에게 더큰
사랑을 주신것 같읍니다.
지금도 가끔씩 선산에 찿아 갈때엔 할머니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하지요.
"하이고..우리 언놈 왔능가~~"
무악산님의 소풍길 따라는
나의 소풍길을 더듬어 가는
추억의 길이지요.
소풍은 논밭을 지나
신작로를 따라 걸었지요.
온갖 동요를 부르면서...
소풍가는 날은
예쁜 옷 입는 날이지요.^^
우리모두에게 그런 추억길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변하고 사라지고 했지만요.
그옛날 뛰어놀던 잔디밭은 밭으로
개간 되거나 잡초가 우거진 야산으로 변하였읍니다.
그때 불렀던 행진가 처럼 용감했던 동요들 노랫말 도 이제는 가물가물 해졌네요.
고맙읍니다.
첫 사진부터
" 아이 멋있네,, "
이런 감탄사가 절로 나오네요~
그 삼각 비빌봉다리에 담긴 음료~
저도 그것만 생각납니다.
갈색의 커다란 다라에 지하수 찬물을
잔뜩 붓고 넣어둔후 팔던 그것!
그러나 초등 시절 다니던 소풍길과 그
장소는 다 허물어져 찾을수가 없더군요!
아! 옛날이여^^
소풍때쯤엔 삼각비닐봉다리 단물 을 몇차례 먹을수 있었지요.
누나들도 소풍가서 며 개씩 사왔으니까요.
저도 처음엔 옛기억 더듬으며 소풍길을 찿았지만 옛길이 사라져서
자전거를 타고 김제 까지 갔닥이정표를 보고서야 찾을수 있었답니다.
흥복사입구 커다란 고목나무도
고속화 도로가 뚫리면서 베어진것
같으네요
고맙읍니다 .
참 기억력도 대단하십니다
수십년전 기억이..
마치 지금처럼 줄줄이 소환되고 있으니
해피주말되십시요~
마치 모든것이 그시절기억으로
멈춤한것 같읍니다.
그기억들을 모두 찿아내서 이루어내면 어이할지 그후가 궁금해 지기도 하고요.
고맙습니다.
옛적 학교 소풍 가는 날은 평소 먹기 힘든 군것질을 할 수 있는
날이여 즐거웠지요. 그 날 만큼은 오징어, 혹은 삶은 달걀,
운이 좋으면 미제 초로렛 까지 먹을 수 있었으니 ㅎ
옛 추억이 떠오르는 글, 사진 잘 보았습니다.
건강히세요.
명절날 보다도 더 신나는 날 이었지요.
5원이나 10원의 거금을 받을수 있는 날이었으니요.
정월대보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곳의날씨는 싸늘합니다.
해외에서 항상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초등학교 소풍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겠지요.
저도 십여리나 걸어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계곡으로 소풍을 가곤 했지요.
소풍날 보물찾기를 하던 생각이 납니다. 한 번도 찾지는 못했지만요.
쌀 한 줌씩을 모아 손자의 행운을 빌어주시던 할머니의 깊은 정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참으로 눈물겨운 사랑입니다. 따스한 볕을 받으며 서있는 자전거, 잠시 후 저 자전거를
타고 가셨겠지요 ㅎㅎ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었읍니다.
걸어서 옛길을 찾다가 두차례나
뒤돌아 왔다가 자전거 타고 나서서 겨우 찿을수 있었지요.
할머니께서 딱지를 사주시던 그점빵이 어디쯤 인지도 사라져 버렸읍니다 .
저도 보물찿기에서 한번도 찿아본
기억은 없네요.
지금도 읍내 옛물건 파는곳에 주둥이가 긴 작은항아리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고맙읍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을 추억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누구나가 초등학교 소풍은 오래
추억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삼각비닐봉다리음료
뭉클해지네요. 아직도 입안에
아직도 달달새콤한 맛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환희의
맛이었지요.
얼마 전 저도 어릴 때 살았던
집에서 그 당시 국민학교 가는 길
까지 걸어보았습니다.
공동묘지와 충혼탑은 그대론데
길은 잘 닦여져 있더군요.
무악 산님 덕분에 또다시
학교 다니던 길과 소풍길까지
추억 속에 그려 보는 시간
행복합니다.^^
농촌 이었던 우리는 삼각비닐봉다리 음료가 유일한 음료수 였던것
같읍니다.
나중에 서울로 수학여행가서 많이 사먹었지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폐교가 되고
그자리엔 학습체험장이 들어섯더군요.
저도 자전거 타고 옛길을 찿아서
다녀옵니다.
공동묘지가 있던곳 여우가 할머니로 둔갑하는 여시굴제 추억을 길들을 찿아서요.
고맙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소풍길 더듬어 가보노라면 아련한
옛추억 떠오릅니다.
농촌인 우리들은 논길따라 밭길따라 그리고 솔밭 사잇길을 따라서
걷고 또 걸었지요.
지금은 무성한 솔나무숲으로 변하였지만 그때의 넓고넓은 잔디밭이
우리들의 소풍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말씀처럼 옛날에 그리넓던 신작로나 다리들이 이제는 좁은 길이 되었고 새로놓여진 커다란 다리옆의
옛날 다리는 초라할정도로 작아
보입니다.
키가작았던 어린시절에 경험해보아서 그런것 같읍니다.
고맙습니다.
@깜장콩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도로나 마을길이 정비되면서
옛날것은 무조건 버리고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덮었으니까요..
그 틈에 새어나가서 장식품으로
나갔을 수도요..
무악산님의 글을 읽으면서
유년의 시절로 돌아갑니다
다시돌아 갈수 없어서
늘 그립기만한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까지 생각나는 오후입니다
정감 가는 글 잘보고갑니다
해외생활에 고향을 많이 그리워
했었지요.
그래서 제가 좀 유별나게 옛추억을 찿아다니는것 같읍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수는 없어도
옛길을 다니면서 추억에 젖어보곤
합니다.
가신분들 그립지요.
저는 지금도 할머니 못잊어 합니다.
저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셨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