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야마! 아키야마!” 일본 응원단은 신나게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자국선수의 이름을 불러댔다. 아키야마 요시히로(27·秋山成勳). 한때 추성훈으로 불리던 이 재일동포 4세는 이제 일본인이다. 작년말 귀화해 일본 남자 유도 81㎏급 대표로 ‘할아버지의 땅’을 밟았고, 1일 결승에서 한국의 안동진(24·경남도청)과 만났다. 이곳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 몇 번 겨뤄봤던 적수였다. 이날 따라 몸 상태는 썩 좋지 않았지만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한국대표’와 침착하게 맞섰다. 팽팽한 힘겨루기가 계속됐다. 종료 44초 전엔 나란히 주의를 받았다. 승부는 심판 판정으로 넘어갔다. 숨막히는 적막을 깨고 심판 셋 중 둘이 빨간 기를 들었다.
아키야마와 일본의 승리였다. 아키야마는 두 눈을 부릅뜨고 응원석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매트에서 내려가자마자 응원석 난간 위로 뛰어올라가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금메달의 쾌감을 만끽했다. 아직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아버지 추계이씨와 어머니 류은화씨, 여동생 정화 등 친지와 팬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일본 대표팀의 사이토 히토시 감독은 제자를 끌어안으며 굵은 눈물까지 떨궜다.
작년에 한국 국가대표 2진 자격으로 아시아선수권에 나가 우승한 게 고작인 ‘유도 이방인’은 유도 종주국의 새 챔피언으로서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아키야마는 내외신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기분 최고다”라며 “유도환경이 더 좋은 일본에 귀화했지만 한번 한국인은 영원한 한국인이다. 날 성원해준 동포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평소처럼 “앞으로도 즐겁게 유도를 하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국제유도연맹회장국(IJF)인 한국 유도가 판정에 또 울었다. 이틀 연속 판정패로 2개의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쳤다. 김미정 용인대 교수는 “남자 100㎏급의 장성호와 81㎏급의 안동진의 경기는 5-5, 또는 6-4로 앞선 경기였다. 금메달을 빼앗겼다”고 말했다. 국제대회에서 막상막하의 판정 승부일 경우 홈매트에 유리한 쪽으로 손이 올라가는 것이 대체적인 관례. 전기영 대표팀 트레이너는 “어이가 없다. 현역시절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해 일본 선수와 맞붙으면 판정으로 가면 무조건 진다는 생각으로 경기했다”고 꼬집었다.
두 경기 모두 일본 선수에게 져 결국 심판진을 틀어쥔 유도 종주국 일본의 뿌리 깊은 텃세에 밀린 결과다. 심판 배정과 활동에 전권을 쥐고 있는 가와구치 아시아유도연맹(JUA) 심판위원장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는 심판진이 ‘알아서 기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 회장직을 내준 IJF나 JUA 등에서 여전히 주요 요직을 두루 꿰차고 칼을 휘두르고 있다.
김정행 대한유도회장 겸 JUA 부회장은 장성호와 박성근의 경기에 배정된 홍콩의 양류린 심판이 한국 선수에게 불리한 편파판정을 했다는 의심이 든다며 가와구치 심판위원장에게 한국팀에 배정하지 말아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허망하게도 2일 연속 판정 충격에 빠진 한국대표팀은 “속수무책이다.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앞으로 편파판정이 없으리라고 누구도 보장 못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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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 단 추성훈 金… 답답한 유도계
건군 54주년인 1일 유도인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게다.
아키야마 요시히로가 된 재일동포 추성훈에게 패해 한국이 금메달 하나를 놓쳤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아키야마는 지난해까지 추성훈이란 한국이름으로 한국무대서 활약했던 재일동포 4세다.
그러나 그에게 고국의 유도계는 너무나 냉담했다. 재일동포란 차별대우에다 파벌싸움이 극에달한 고국의 유도계는 그에게 늘 좌절감만 줬다. 급기야 그는 일본인으로서 귀화를 결심하고 다시 현해탄을 건너갔다.
아키야마란 이름으로 이번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그는 보란듯이 남자 81kg급 결승서 한국의 안동진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서 일본과 종합 2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효자 유도' 종목의 차질로 2위 예상치는 빗나가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은 3명을 결승에 진출시켰으나 겨우 금메달 하나를 건지는데 만족해야 했고 1일에는 재일동포 추성훈에게 마저 금메달을 빼앗겼다.
외형상으론 하나의 금메달을 빼앗겼지만 결과적으론 추성훈의 금메달이 일본으로 돌아가 금메달 2개를 잃은 셈이 됐다.
한국 유도는 그동안 큼직한 국제대회때마다 금메달을 쏟아내며 한국 스포츠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최근에는 종주국 일본 유도까지 앞지르며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국제유도계까지 평정하며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세계유도연맹 회장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유도계의 파벌병폐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내대회가 열리는 곳이면 늘 판정시비가 일고 있고, 많은 유도인들은 특정대학의 텃세 때문에 유도할 맛이 안난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따낸 추성훈은 "한국민들의 응원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과연 우리가 그에게 해 준것이 뭔가. 유도계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뼈아픈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