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함민복
큰 탈이 나고서야 알았지요
피를 뿜어주는 심장에 튼튼한 근육이 있고
그 근육에 피와 산소를 공급하는 핏줄이 있는데
모양이 왕관을 닮아 관상동맥이라 부른다네요
박물관처럼 왕관을 품고 살아왔지 뭐예요
생전 벗지도 않고 심장에 척, 쓰고 살았다니
생명의 샘인데, 심장이야 왕관을 쓸 자격은 충분하죠
어찌 보면 나무뿌리를 닮기도 했더라고요
사진으로 캐어보니 세 가닥 모두 심각하게 막혀
핏줄을 닮은 왕관 줄기를 벌리고 스텐트를 박았어요
다른 환자들에 비해 시술 시간이 곱절도 더 길어져
아내는 대기실에서 팔천 보를 걸었다네요
쉿, 나도 말은 안 했지만 컴퓨터에 마지막 인사말도 써놓고
그동안 썼던 시들도 다급히 정리해
'삶과 죽음의 모래시계, 끝나지 않은 키스'라고 가제도 달고
집을 둘러보며 길고양이 물도 가득 떠놓았었지요
다행히 시술이 잘되어 지병만 얻고 퇴원하니
한약사인 손위 동서는 한약을 지어 보내고
사업하는 후배는 헬스클럽 회원증을 끊어주고
사촌 형은 봐두었던 산삼 한 뿌리를 캐주네요
왕관 수리를 했으니 조심조심 살아가라며
내 친구는 그거 하고 십오 년 넘었는데 산만 잘 탄다며
우리 어머니는 이십 년을 더 살다가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며
나는 세 번에 걸쳐 여섯 개나 박았다며
나를 감싸주는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
내 마음에 산소와 피를 공급해주고
나를 살피는
따뜻한 왕관임을 깨달았다니까요
저 봐요, 지금도 거리에
일하는 왕관, 살아 있는 왕관을 쓰고
보이지 않아 더 빛나는 누군가의 왕관이 되어주려
사람들이 사람들에게로 분주히 걸어가고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