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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은 절대로 ´反한나라당 연대´의 구심점이 될 수 없다
고건發 정계개편 과연 가능한가?
5.31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역사적인 대참패를 기록했다.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중 전북 단 1곳을 차지한 것은 물론, 수도권 기초단체장 66곳 중 구리시장 단 1곳을 차지하는데에 그쳤다. 이토록 엄청난 참패를 기록한 여당은 헌정사상 단 한번도 없었거니와 여당이 아닌 제1야당조차도 이와같은 성적을 거둔 경우는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은 어떠한 형태로든 깨질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정계개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이 현재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인 듯하다.
민주당의 경우는 어떠한가?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더불어 이번 지방선거의 승리자 중 하나라고 한다. 물론, 현재의 민주당 당세만을 놓고 이야기한다면 그러한 평가가 적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호남인들의 기준에서 놓고 볼 때에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결코 승리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호남 지역당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는데에 완전히 실패했을 뿐아니라 그나마 호남 지역당으로서의 위상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에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광주를 제외하고 전남과 전북에서 민주당은 기초단체장의 과반수를 넘어서는데에 실패했다. 비록 광역단체장 당선자 수에 있어서는 열린우리당보다 앞섰으나 기초단체장 수에 있어서는 큰 비교우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최소한 호남 민심만을 놓고 볼 때에 민주당은 열린우리당과 경쟁구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한화갑 대표의 지역구인 무안, 신안, 이낙연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함평, 영광 등을 열린우리당 혹은 무소속이 차지함으로써 민주당은 스스로 승리자임을 외치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이와같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함께 위기 국면을 맞고 있고,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사 혹은 구심점이 고건 전 총리라는 것이 ´고건發 정계개편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정치적 지향점과 전국적인 조직에 있어서 결정적인 취약점을 갖고 있는 고건 전 총리가 이들 두 정당과 결합할 경우 상호간 확실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실제로 1997년 김대중은 김종필과 손잡음으로써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했고, 2002년 노무현은 정몽준과 손잡음으로써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현실화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의된 ´고건發 정계개편론´은 정치공학적 시나리오 수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계개편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현재의 정당구조가 올라서있는 바닥판 자체를 대지진 혹은 쓰나미를 통해 뒤집어 엎자는 것이다. 따라서 정계개편의 필요성만 갖고 이야기해서는 안되며, 실제로 정계개편을 일으킬 수 있을만한 추동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정계개편이 발생했던 사례들을 살펴보면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진다. 첫째, 기득권 세력이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성사시킨 경우(91년 3당 합당과 DJ정권의 의원 빼가기), 둘째, 확실한 맹주를 갖고있는 정치세력이 지지기반을 통합함으로써 성사시킨 경우(DJP연대 및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이 정치권에게 쓰나미를 발생시킨 경우(85년 2.12총선, 87년 6월항쟁, 2004년 총선, 2006년 지방선거)이다.
결국, 정계개편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권력이 움직이거나, 막강한 맹주를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움직이거나, 국민들의 거대한 힘으로 쓰나미를 발생시키거나 셋 중 최소한 한가지 요소가 결합되어야 한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할 때 일단 권력이 정계개편의 동인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이번 5.31 지방선거를 통해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집권세력은 정치적 ´금치산 선고´를 받았다. 물론, 여전히 막강한 권력의 칼을 휘둘러 판을 뒤엎을 힘은 갖고 있으나 그렇게 되바뀐 구도를 유지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정계개편을 시도하였다가 그것이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될 경우 상상할 수 없는 역풍이 부는 만큼 권력이 그와같은 무모한 시도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조직이 정계개편을 주도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왜냐하면 정치권을 통틀어서 조직을 가동할 수 있는 정당은 한나라당 밖에 없음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입증되었다.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직기반마저 무너졌고, 민주당은 정치적으로 겨우 연명할 수 있는 수준의 조직기반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 고건 전 총리의 경우 과거 YS의 민주산악회, DJ의 연청 등과 비교할 수 있는 조직 자체를 아예 갖고 있지 않다. 결국, 한나라당을 제외한 그 어떠한 세력도 정계개편을 주도할 수 있는 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들은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켰다. 그와같은 쓰나미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은 ´민주개혁세력 대통합´을 부르짖었고, 민주당은 ´고건과의 연대´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민주개혁세력 대통합´도 ´고건과의 연대´도 결코 진정성 있는 대안으로 다가가지 못했기에 민심의 쓰나미는 구심점을 찾지 못한 채 정계개편의 동인으로는 작용 못하고 기존 정치질서를 파괴하는 수준에서 머물러야만 했다. 즉, 유일한 정계개편의 동인이 될 수 있는 민심을 ´노무현 정권 심판´을 위해서만 모두 소진함으로써 그 정치적 이득을 한나라당이 독식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고건發 정계개편론´은 국민을 향한 거대한 사기극이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정치권의 간절한 희망만 갖고 정계개편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87년 6월항쟁 이후 야권의 분열로 노태우가 어부지리로 집권한 정치구도를 깨기위해 무려 10년을 기다려야만 했으며, 국민의 정부 중반 이후 지속되어온 한나라당 주도의 여소야대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또다시 5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토록 긴 기간 동안에 정계개편을 해야한다는 정치권의 간절한 바램이 지금보다 결코 모지라거나 뒤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헌정사는 그러한 정치권의 간절한 바램이 권력, 조직 혹은 민심과 결합되는 상황에서만 정계개편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으로 상징되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았으며, 민주당이라는 취약한 조직은 사실상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고건은 정계개편의 구심점 역할을 할 능력과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이미 한번의 거대한 쓰나미로 ´反한나라당´ 진영을 초토화시킨 민심이 정계개편의 추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고건發 정계개편론´을 외치고 있는 정치권과 언론은 사실상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청와대와 열린우리당내 친노세력은 2007년 대통령선거를 포기하고 제1야당으로 정계의 중심축에 자리잡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참패에 침묵하는 노무현 대통령, 참패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정동영 퇴진을 강력하게 압박한 김두관 최고위원, 그리고 7월 이후 당으로 복귀하게 될 유시민-천정배. 이 모든 정황들이 열린우리당을 ´친노 탈레반 정당´으로 변모시키려는 밑그림으로 비춰지고 있다. 즉, 박근혜-이명박-손학규 등 ´빅3´ 이후의 대안을 한나라당이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하에 2007년 대권을 한나라당에게 넘겨주고, 2012년에 정권을 되찾아 한나라당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든다는 전략이 가동되고 있다.
결국, 고건이라는 ´얼굴 마담´을 통해 2007년 혹은 2012년까지 겨우 수명을 연장하다가 완전히 궤멸당하는 것보다는 2007년에 잠시 대권을 넘겨주고 2012년에 완전한 대세를 장악하는 쪽이 보다 현실적이고 유리하다는 쪽으로 청와대와 친노직계의 노선이 수정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와같은 시나리오를 꿈꾸기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열린우리당과의 제1야당 경쟁에서 승리하여 개혁진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쪽으로 정치적 계산을 가져가고 있다. 그나마 ´反한나라 진영´ 내에서 겨우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춘 집단이 모두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계개편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고건發 정계개편론´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현재의 상황에서 정계개편을 너무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세력은 고건 전 총리와 정동영 전 의장 밖에 없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며, 정동영 의장 쪽의 조직은 이번 지방선거로 완전히 와해되었다. ´反한나라당 연대´를 통한 정계개편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은 고건과 정동영이라는 두개의 ´썩은 동앗줄´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물론, 국민중심당도 이들 못지않게 정계개편을 갈망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텃밭인 충청권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은 집단이다.
정계개편의 가능성이 사실상 소멸되었다는 것을 정치권과 언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고건發 정계개편론´을 부르짖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즉, 자신들의 거취가 확실하게 정해질 때까지 국민들의 관심을 붙잡아들 필요가 있기 때문에 거짓말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정당구조를 바꿀 힘을 상실한 상태인 것은 분명하나 몇몇 정치인의 운명을 좌우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기 때문에 국민을 상대로 기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국민들의 관심이 완전히 사라질 경우 정치인들의 운명조차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차원에서 볼 때에 현재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짚고 있는 두 인물은 바로 한화갑 민주당 대표와 김두관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이다. 한화갑 대표는 민주당의 당면 목표를 열린우리당내 친노세력과의 제1야당 경쟁으로 분명하게 포커스를 맞춘 상태이며, 김두관 최고위원은 고건과 정동영을 끌어안고 가는 ´잡탕 비빔밥´으로 몇년간 더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는 광야에서 지팡이를 들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고건發 정계개편´이라는 신기루 쪽에 베팅하기 보다는 한나라당이 2012년 이후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쪽에 베팅하는 쪽이 훨씬 더 크게 먹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치인 고건은 건재하지만 대권후보 고건은 이미 끝났다
고건 전 총리에게는 최소한 세번의 기회가 있었다. 염동연과 임종석이 열린-민주 대통합을 외쳤을 때에 역할을 할 수도 있었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동영-김근태 진영이 앞다퉈 ´고건 영입´에 나섰을 때에 역할을 할 수도 있었고, 열린우리당 참패-민주당 현상유지로 결론이 난 지방선거 직전에도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앞선 두번의 기회는 침묵으로 놓쳐버렸고, 마지막 기회는 이와의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임으로써 도리어 하이에나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지방 선량으로 뽑힌 3,000명이 훨씬 넘는 정치인들 중 고건 전 총리를 의식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미 이들은 고건 전 총리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함께 가져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건 전 총리의 침묵으로 인해 ´한나라당 압승 구도´를 깨지 못하고 패배한 수만명의 후보자들에게 고건은 ´공공의 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고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조리 쓰나미에 휩쓸려 죽어나가더라도 나는 오로지 내 정치적 이해타산만 따지겠다는 사람은 이미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상황에서 신당을 만들고 국민으로부터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정당을 향해 확인사살에 나선다면 이것이야말로 파렴치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을 쫓아서 모여들 사람은 권력을 쫓는 불나방 같은 기회주의자들 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국민들 대다수가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거대한 기회주의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명분이 약하고 조직력이 떨어지는 ´보다 다운그레이드된´ 기회주의 세력에게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바로 이와같은 고건 전 총리의 오판으로 인해 한화갑 대표와 김두관 최고위원은 일찌감치 냉수 마시고 속 차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고건에게 주어진 역할은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향해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 밖에 없다. 즉, 자신이 ´反한나라 연대´의 구심점이 될 수 없음에도 마치 될 수 있는 것처럼 환상을 심어주는 가운데 이들의 자체적 정화 및 업그레이드 작업을 철저하게 방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과 유일하게 정치적 빅딜을 할 수 있는 한나라당과 협상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판에 계속 남게 될 고건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이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내 다수가 ´고건發 정계개편´이 신기루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스스로에 의해 정치적 운명을 개척해나가겠다는 쪽으로 움직일 경우 ´고건 카드´는 보다 빠른 시점에 폐기 처분될 수 있다. 현재의 흐름으로 보건데 열린우리당내 정동영계와 통합파가 당내 헤게모니를 장악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민주당내 反한화갑파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만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친노 개혁탈레반 세력들과 한화갑계 중심으로 움직일 경우 고건은 더 이상 정치적 변수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정치인 고건은 아직 건재할 수 있지만 대권후보 고건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어쩌면 이와같은 냉엄한 정치적 현실을 정치권도 언론도 국민들도 모두 알고 있는데 오직 고건 전 총리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쩌면 고건 전 총리야말로 ´고건發 정계개편론´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대국민 사기극의 또 한명의 피해자혹은 희생자일지도 모른다.
[이진우 칼럼리스트]
첫댓글 고건이 구심점이 된다? 착각은 개인의 자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