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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수행체험 동참 스님들 | 양평 미타정사 법만스님 韓中불교수행 체험수기 지난 9월 9일부터 14일까지 중국 하남성 백마사에서는 제7차 韓中불교수행 체험 행사가 진행됐다. 한국측에서는 법현스님(열린선원)을 단장으로 41명이 행사에 동참했다. 양평 미타정사 법만스님과 부산 도연암 대화스님의 체험 수기를 차례로 실어 수행의 법열을 함께 나눈다. (편집자 주) 성지 순례나 공식적 행사와는 성격을 달리하여 중국 수행자들의 방식으로 그들의 수행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나선 이번 중국 여행길은 그야말로 새로운 설레임이었다. 기대 속에 어느덧 정주 공항에 도착하였고 마중 나온 스님들을 따라 정주에서 버스로 낙양(洛陽)의 백마사(白馬寺)에 입성하자 현지 사부대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백마사(白馬寺)(한나라 때인 서기 64년에 창건)는 약 2000년 전 불교가 인도로부터 전파되어 오면서 세워진 중국 최초의 절이며, 法水東流의 원천이 되었던 곳이니 앞으로 있을 수행에 관한 은근한 기다림과 궁금증으로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04시 새벽예불... 백마사의 스님들, 한국 스님들은 안행(雁行) 형식으로 법당에 들어선다(대열을 맞추어 법당에 들어서고 나가는 예불 전후의 전경은 한국의 사찰과 같았다). 예불이 시작되었다. 한국 스님 40명, 현지 스님 약 70여명은 언어는 다르지만, 예불 공양 올리는 한결같은 신심이 느껴졌다. 고요함 속에 범종의 웅장함이 울려 퍼졌다. 백마사의 범종은 낙양 8대 경관의 하나로 백사고종(白寺固鍾)이라 하며, 각루의 범종이 울릴 때마다 25㎞ 떨어진 낙양성내의 고종(古鍾)이 함께 울린다. 신기하게도 공명을 이룬다는 사실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백마사의 전각은 대불전(大佛殿), 대웅전(大雄殿), 천왕전(天王殿), 접인전(接引殿), 비노전(毗盧殿), 육조전(六祖殿), 청량대(淸凉台) 등과 건축물로는 돌패방(石牌坊), 석마(石馬), 궁형 돌다리 등은 다양한 특색과 훌륭한 石예술을 보여준다. 육조전에는 중국 선종 1대 달마부터 6대 혜능까지의 스님이 모셔져있는데, 특이할만한 것은 이곳에 영가 위패도 함께 봉안 되어있다는 것이다. 또한 청량대는 한명제(漢明帝)가 더위를 피하던 곳이기도 하며, 인도에서 온 축법란(竺法蘭), 가섭마(迦葉摩) 스님이 최초 <불설 42장경>을 번역한 곳이라니 지날 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각 전각마다 장엄되어 있는 모습과 스님들의 공양 올리는 모습은 “...阿僧祇塗香 末香 衣服珍寶 幢幡妙蓋...아승기 바르는 향과 가루향이며 의복과 보배와 당기와 깃발과 일산과...” ⌜화엄경(十行品第二十一之二:21.십행품)⌟의 내용과 같이 부처님께서 계신 데 나아가 예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는 모습을 그대로 연상케 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확했고, 또한 엄숙해보였다. 중국에서 재를 봉행하여 공양 올리는 모습은 또한 인상적이었다.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백마사 스님들과 한국 스님들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의식은 봉행되었다. 중국의 재의식은 진언과 수인이 주류를 이룰 만큼 밀교적인 성향이 짙지만 그렇다고 아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집전하는 스님들 몇 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스님들은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한 자리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물은 마시지 않는 것은 아귀 고통을 동감하고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끝까지 용맹정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중 스님이 전원 참석하는 이러한 큰 의식은 일 년에 2~3회 봉행된다고 한다. 백마사의 주요 수행은 염불이다. 매일 아침 공양 후 사부대중은 모두 염불당으로 모여 아미타경을 독송하고 아미타불 정근의 염불 수행을 주력하였다. 이곳의 수행자들과 재가불자들은 모두가 머리에 관세음보살님처럼 아미타불을 정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끊임없는 그들의 염불소리는 마치 극락세계에서 법을 설하시는 아미타불의 법문을 절절히 간구하듯, 혹은 가슴깊이 경청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한 모습은 혹 그들이 승가든 재가불자든, 팔이 하나가 없건, 눈이 사팔이든 장님이든, 다리를 절던 관계없이 모두가 참으로 거룩해보였다. 그들의 이러한 신심과 원력으로 백마사에서는 주말마다 수행자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이 있고, 주 월∙ 화는 자체적으로 진행되나 교수진을 초빙하여 적극적인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한국 수행자들을 포함 불교 관련 토론회가 열리던 날은 하남성 과학대학에서 30여명 정도의 불교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과 불교 연구 위원, 불교학자, 불교 관련 담당 공무원들도 참석하였다. 낙양은 현장법사(玄裝,602-664년)의 출생지이다. “서방에 여행하여 의심스러운 것을 묻고, 더불어 17지론을 가지고 모든 의심을 풀려고 맹세했다”라고 하며, 단신으로 국법을 범하면서 나는 새도 없고 기는 짐승도 살지 않았으며 초목도 전혀 없는 사막 길을 여행하였던 구법의 강한 열망의 피가 세월을 타고 내려온 것일까? 그날 저녁 이어지는 토론회는 수행자들과 불자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그들의 열기와 적극성을 보고 있자니 지난 과거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등으로 불교계에 들이 닥친 광풍의 아픔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과연 부처님을 향한 불교인들의 신심은 그 어떤 풍화작용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내려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재가 있어야 미래도 있다”는 백마사 방장 인락 스님의 언중에서 문화유산 가치를 높여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던 20세기의 중국 불교는 가고, 21세기 깨어나고 살아나는 중국 불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신심과 원력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남은 이틀간의 성지순례 일정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중국의 3대 석굴의 하나인 용문석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용문석굴(龍門石窟)은 북위 효문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400 ~ 495년을 기점으로 하여, 동위, 서위, 북위, 북주 및 수당 시대(5세기 말~9세기까지)를 거치는 400여 년 동안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 중 ⅔가 당나라 때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하(伊河)의 양안에 있는 용문산(龍門山)과 향산(香山)의 암벽에는 2345개의 석굴이 현존하며, 석벽은 1.2㎞나 뻗어 있고 그 속에 약 10만점에 이르는 불상과 2860개의 비문이 새겨져있다. 용문석굴 안의 불상은 석질이 단단하고 암벽에 .직접 조각한 것이 특징이며, 불상은 날씬한 것이 대표인가 하면 모두 표정이 풍부하며 매우 예술성이 높은 편이다. 그 중 한 부처님을 조성하는데 약 60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했다니 과연 부처님을 향한 신심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이러한 대작 불사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한참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부처님과 그 당시 용맹정진으로 불사를 이루신 조사 스님들께 오체투지하여 공양 올리고 참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짜여진 일정으로 돌아서려니 아쉬움이 남아 나머지는 그저 가슴에 담았다. 역사적 정치적 요인으로 일부 파불된 불상으로 인해 가슴이 아팠지만, 2000년 11월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더 이상의 손실 없이 보존될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다음날 우리가 찾은 곳은 개봉에 위치한 대상국사(大相國寺)였다. 백마사와 함께 중국의 10대 사찰로 속하는 대상국사는 오랜 역사를 위시하듯 개봉 시내 중심부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수행단이 도착하자 대상국사 스님들이 줄지어 환영에 맞이하는 불교 음악을 공연하였다. 그 음악을 듣자니 본인이 처음 출가하여 눈시울 붉히며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구도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던 그 순간처럼 가슴이 찡했으며, 또한 본인이 마치 정토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환희의 감동도 느껴졌다.
대상국사의 불교 음악은 오랜 전통을 계승하여 온 것으로 국가적 환영 의식이 있을 때에도 공연한다고 한다. 연주하는 스님들은 각자 2~3가지 악기를 다를 줄 알며 인상적인 것은 불교 음악(범패)에 악보가 있다는 점이었다. 과연 기원 555년 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원 불교 음악의 대표라는 것이 실감났다. 대상국사의 각 전각은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각 건물마다 독특한 불상들과 나한상들이 기나긴 역사를 가늠할 불교 장식들로 넘친다. 또한 나한전 안쪽에 독립적인 높은 건물에는 265명의 나한(원래 500 나한이었다고 함)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을 둘러싸고 있다. 관음상은 은행나무의 고목을 조각해서 금도금 하였는데 높이가 7m가 되며, 1048개의 손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점은 관세음보살 천수와 아미타불의 48원을 합쳐 조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보았다. 이러한 관세음보살의 원력을 안 탓일까? 일찍이 당나라때 일본의 공해스님, 신라의 여러 스님들도 상국사를 찾아 수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든 일정을 회향하는 시간이 되자 나는 일주일간의 수행 일정이 빠듯하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갓 사미가 된 때처럼 부처님을 향한 환희심과 새로운 신심으로 몸과 마음의 기운이 넘쳐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전을 떠날 때에 백마사의 모든 사부대중은 가을 하늘처럼 맑은 웃음으로 한국 수행단을 환송하였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부처님을 향한 하나의 마음이 끊어지지 않은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이러한 그들의 원력과 우리의 원력으로 지난날 용맹정진하였던 선사들의 원력이 그러했듯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세생생에 멸하지 않고 더 멀리 더 깊이 더 많은 이들에게 홍포되어지기를 염원해본다. 법만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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