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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어원을 따져보면 '파르티잔' 즉 '산사람'이라는 용어가 됩니다. 그게 우라나라식 발음으로 "빨치산"이 된거지요 빨치산들은 대개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주 무대는 지리산입니다. 인근의 덕유산과 오늘날 이른바 백두대간이라고 부르는 능선 상으로는 많은 활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 무대는 지리산과 덕유산 그리고 회문산 등입니다.
6.25 전쟁때 서울을 함락한 북한군과 거기에 동조한 좌익세력들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끊기자 각자의 활동구역에서 산으로 피신했다가 자연스레 집결한 곳이 지리산입니다. 빨치산이 활동하며 제일 큰 문제는 식량의 문제 였습니다.
북으로부터 보급이 안되고 보급투쟁이라는 명하에 산간주민에게 약탈을 일삼고..산간주민들과도 사이가 악화되었죠..물론 이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알게모르게 빨치산에 끌려가 강제로 싸워야만 했습니다.
빨치산으로 인한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밤에는 빨치산의 삭량약탈에 당하고 낮에는 국군이 왜 빨치산에게 식량 대줬냐고 산간부락민들 추궁하고 또 빨치산 잡느라고 산에 불을 놓아서 자연환경과 일부문화재가 소실되고 군경 6,333명과 빨치산 줄잡아 1만명이라는 젊은 목숨이 희생되고 외관상으로는 누가 빨치산이고 산간부락민인지 알 수 없어서 거창사건같이 국군이 덮어놓고 산간부락민들 학살하기도 하고
(당시 국회조사단의 조사로 8,522명의 양민이 빨치산과 내통한 혐의로 처형된 것이 밝혀졌습니다...나중에 신성모 국방장관이 보상을 했다고는 합니다만.)
소위 반동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빨치산에게 사형당한 부락민들도 부지기수이지요 빨치산에 의해 강제로 징집되어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도 많아요. 마지막 빨치산은 흔히57년에 잡힌 정순덕씨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52년3월 국군 지리산토벌사령부가 해체된 이후 빨치산은 남한서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
첫댓글 전쟁은 없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