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에겐 세 개의 문이 있다
김지은
닦고 밀고 쓸었다. 엎드려 있었다. 기주는 네모나고 단단하고 어쩔 땐 물렀다. 비가 오면 문이 잘 열리지 않았고 겨울이면 느슨하게 문이 열렸다. 기주가 있는 만큼 작아진 방. 4년 전 겨울 기주를 집으로 들였다.
어느 여름부터 기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주의 겉을 쓸면 서걱거렸다. 건조하고 부드럽지만 무엇인가 손바닥 안에 작게 걸렸다. 기주는 너무 무겁고 나는 밤에 기주의 모서리에 자주 부딪혔다. 멍이 여러 번 들었다.
아날로그 카메라와 화장품과 이젠 피우지 않는 담배들, 선물로 주지 못한 여행 기념품이 아무렇게나 섞여 쌓여있었다.
세 개의 문은 각기 다른 각도로 벌려졌다. 나는 두 번째의 것이 좋았다.
기주를 열어 드럼을 넣고 싶고, 자유로를 넣고 싶고, 내 생일을 넣고 싶고, 여름 흙냄새를 넣고 싶었다.
기주 문을 닫는 게 귀찮아서 열고 지내는 동안 나는 몇몇 사람들과 헤어졌다. 기주를 한 번도 닦지 않았다. 가져올 때부터 붙어있는 스티커가 떨어지는 동안 그 근처에서 섹스하고 한 권의 책을 썼다.
낮잠을 자다 기주 겉에 칼로 뭔가 새겨넣는 꿈을 꿨다. 무릎을 꿇고 기주 아래 바닥에서 우표가 붙어있는 엽서를 찾았다.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가끔은 기주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주와 함께라면 독일로 이민 가지 못할 것이다. 잘 듣지도 않는 CD를 잃어버린 후 기주 안을 뒤집어놓을 것이다. 문을 열면 화장솜이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발코니에서 기주는 보이지 않는다. 서재로 들어오면 기주 위에 컵이 올려져 있다. 누가 가져다 뒀는지 모르겠다.
ㅡ 2026 호미곶 흑구문학상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