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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 작품
대상(운문)
가족사진
서울시 구의동
김 예 린
임대 아파트 307호 욕실 수챗구멍 속
헝클어진 머리카락들이 정체되어 있다.
새벽 찬 이슬 지붕에 이고 달리는
마을버스 속 엄마의 퍼머 풀린 머리카락
자정을 넘어 고물 화물차 시동을 켜는
아버지의 반백의 머리카락들이 뒤섞인 채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체납 고지서는 못 다한 빨래마냥 쌓여가고
어두운 방구석엔 인기척 대신
한숨 섞인 먼지만 풀풀 날린다.
그 와중에 엄마는 제 집보다
천 배는 커다란 빌딩청소를 위해
매일 새벽 수직상승하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렸다.
엄마는 투명한 유리창에 비친
어스름을 바라보셨을까
제 집 일용할 양식보다 만 배는
무거운 화물을 이고 달리는 아빠
밤새 헤드라이트에 달려드는
눈먼 하루살이들이
검은 눈물로 흩뿌리는 화물차
차가운 새벽을 뚫고 서울 톨게이트에
무사히 통과했을까
식탁 위 덩그러니 남겨진 찬밥을
물에 말아 먹으며 가방을 메는 나
긴 하루를 엉덩이에 붙이고서
책과 씨름하다 돌아오는 하굣길
소리 없이 따라오는 달의 그림자는
누구의 눈길인 것일까
욕실 수챗구멍 헝클어진
머리카락들을 갈무리한다.
정체되었던 물들이 빠져나가고
번진 가족사진이 떠밀려온다.
나를 닮은, 내가 닮은
그들의 번진 미소가 수챗구멍에 턱 하고 멈춘다.
나는 번진 미소를 건져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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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제 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 작품
최우수상(운문)
가족사진
진선여자 고등학교
김지현
보이지 않는 추억까지 현상된다
빛을 등지며 되돌아오는 기억의 프레임
삐뚤삐뚤한 손글씨처럼 앉은 베트남 아내와
늙은 남편은 가족사진을 찍는다
사내는 머쓱하게 벗겨진 머리를 넘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내와 마음을 나누기 위해
표정을 읽는 법을 알아야 했던 사내
가족이 된다는 것은 서로의
초점을 하나로 맞추어 가는 것일까?
어느새 두 사람의 말투가 점점 닮아갔고
더듬더듬 자세를 잡는 아내의 사투리
카레라 앵글에 맺혀 줌인 되는 부부의 상은
가운데로 선명하게 고정된다.
플래시를 터뜨리는 까닭은
가장 환한 순간을 필름에 담기 위해서다
사진사의 손을 타고 사진이 현상되자
필름 속에 눈썹이 약간 기울어 있지만
삶을 돌이켜 보면 찡그린 얼굴이라도
가족사진은 늘 행복의 순간이 된다던 사내
가족사진 속에 나란히 저장된
기억의 이목구비가 점점 밝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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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최우수상 작품(산문)
맨발의 유월
중앙대학교
정유진
뜨겁게 달궈진 편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용광로에서 시작된 열기가 작업장 안을 가득 채웠다. 벌써 유월이었다. 습한 공기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손가락 사이사이에 긴 못을 끼운 채 쇳덩이를 다루는 아빠의 모습이 낯설었다. 말 앞발 하나에 편자를 대어보고 다시 다듬기를 여러 번, 편자는 쉽게 들어맞지 않았다.
한 번에 달칵하고 쉽게 들어맞는 건 없다고, 아빠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셀 수 없이 붉게 달궈졌다, 식길 반복한 후에야 편자는 겨우 들어맞았다. 날카로운 못이 말발굽 속으로 파고드는 순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바깥쪽에 네 개, 안쪽에 세 개, 망치질 세 번씩에 못이 차례로 박혔다.
아빠는 소년티를 갓 벗은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장제 일만을 배웠다고 했다. 사람의 발톱처럼 말발굽도 계속해서 자라나고, 더 쉽게 닳았다. 편자를 정기적으로 갈아주지 않으면 말은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불편해졌다. 딱딱한 바닥을 질주하는 경주마의 발굽은 더욱 그랬다. 거울보다 여름에 더 자주 편자를 갈아주어야 했고, 때문에 아빠의 일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아빠는 출발선에 선 경주마처럼 늘 바쁘게 뛰어다녔다. 집에서 눈 붙일 틈도 없이 일만 하는 아빠에게 무리하지 말라며 잔소리를 해보아도, 집에서 빈둥대는 것보다 바쁘게 일하는 것이 백 번 낫다며 고개를 젓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피곤한 얼굴로 들어와 쓰러지듯 잠드는 아빠, 그것이 내게 가장 익숙한 아빠의 모습이었다.
아빠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쫓기듯 살아가는 걸까. 유월 즈음, 여름이 시작되고 나면 아빠와 보내는 시간은 아예 사라져버렸다. 가족 이야기를 늘어놓는 친구들 틈에서 나는 늘 입을 꾹 다물고 아빠 생각을 했다. 지쳐 잠든 모습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아빠를. 얇은 이불 사이로 아빠의 발끝이 비죽 나와 있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보는 아빠의 발은 유난히 검고 거칠어 보였다. 이불을 완전히 젖히는 순간, 말발굽 모양으로 변해버린 아빠의 발을 보게 되진 않을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빠가 허리를 다쳐 입원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아빠는 여름을 맞아 밤낮없이 일을 한 상태였고, 허리를 짓뭉갠 갈색 말은 덩치가 아빠의 두 배쯤 되었다고 했다. 너무 오랫동안 편자를 갈지 않은 채 달려서 결국 사단이 나고야 만 것이었다. 말은 씩씩대는 소리를 내며 앓았고, 아빠는 말을 혹사시킨 것에 격분했다. 망치를 든 손이 피곤 탓에 심하게 떨렸다. 평소와 달리 망치질 소리가 둔탁하다고 느꼈을 때, 갈색 말이 경기를 일으키며 날뛰었다. 아빠는 이성을 잃은 경주마에게 채여 고꾸라졌다. 그렇게 아빠의 허리는 산산이 부서진 것이었다.
아빠는 여태껏 모자랐던 수면을 한 번에 취하려는지 아주 오랫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습관처럼, 이불 끝에 발이 조금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하얀 병원 이불을 젖혀버렸다. 당연하게도 아빠의 발은 유난히 굳은살이 많은 것을 제외하고는 말발굽과 조금도 닮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뼈가 툭툭 불거질 만큼 앙상하고 작았다. 처음 보는 아빠의 발이 아주 클 것이라 상상했는데, 나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 작고 마른 발로 아빠는 그리 바쁘게 뛰어다닌 것일까. 나는 조용히 병원 화장실로 향했다.
대야 한가득 따뜻한 물을 받았다. 침대 밑에 대야를 버려두고 흰 수건을 담갔다 뺐다. 물을 꼭 짜낸 수건으로 아빠의 발을 살며시 감쌌다. 아빠가 말의 발에 정성을 다하는 것처럼 나도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아빠가 발에 닿은 온기 때문인지, 뒤척이며 눈을 떴다.
‘유월이면 한참 일이 밀려들 시기인데, 이렇게 여름을 내리 다 쉬면 우리 딸 등록금은 어쩌누......
아빠의 말에 나는 멈칫하고 손을 멈추었다. 아빠의 유월은 나와 많이 달랐던 것이었다. 내가 아빠의 매정함을 탓할 때, 아빠는 묵묵하게 나를 위해 일했다. 단절의 시간이라 생각했던 이 여름이, 아빠의 자랑이었던 것이었다. 대야 안에 담긴 아빠의 발이 유난히 더 새카맣고 초라해 보여 코끝이 찡해졌다. 아빠를 경주마처럼 변하게 만든 것은 나였다. 나를 위해 그렇게 쫓기듯 살아온 것이었다.
한 번에 달칵, 쉽게 들어맞는 것은 없다. 계속해서 조금씩 어긋나온 아빠와 나도, 두 번 세 번 달궈졌다. 식길 반복하다 보면 꼭 들어맞게 변할 수 있을까? 오랜만의 휴식이, 이 맨발의 계절이 우리를 그렇게 빚어내리라 믿는다. 문득 친구들이 가족 이야기를 할 때에 떠올릴 아빠의 모습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나은 것 같다며 나를 치켜세우는, 작은 발을 가진 아빠의 모습이. 유월이 가고 있었다. 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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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대학일반부 으뜸상 (운문)
6월 서신
박혜진
유월에 핀다는 노랑꽃 창포는
여름 산이 타는 줄마냥 긴 줄기
그 위에 외롭게 피어난대요
여름 바람이 빼어 문 주둥이가
꽃잎에 입 맞추는 운율
풍물 잽이 장구 가락처럼 둥둥
귓전에 포개어지면
꽃대 향해 줄을 타는 풀벌레 잰걸음
할아버지 흙빛 손 마구 잡고 걷던
십여 년 전 발걸음 흘끗 대고 있어요
사라진다는 것은 여름날 줄타기 같아
슬며시 붓고리 흐리던 당신 말씀
두 발 대신 아린 가슴으로 내딛던 삶의 줄은
내내 얼마나 지독히도 출렁였나요
비로소 그리운 계절에 나는 알아요
휘청,
설령 줄 밑 하염없는 곤두박질도
결국 늪 아닌 땅의 품이죠
이윽고 후드득
꽃 빛 여름 해가 터지고 흘러나온 어둠이
싱싱한 녹음 빛 청포 줄기 핥으면
낭창한 어릿광대 넉살에
우리 함께 미소 짓던
세월이
할아버지 삶의 서사시.
그 줄을 서럽게 끊어냈던
보세요
바야흐로
유월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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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대학일반부 버금상 (운문)
내 아버지의 키
일반부
최경희
아버지의 키가 작아집니다.
세월을 거치며
병마와의 싸움을 지나며
그렇게….
내 아버지는
당신의 키를 나누어
마늘을 키워내고
세월도 키워냅니다.
아버지의 작아진 키만큼
손주들의 키가 자랍니다.
내 아버지의 작아진 키는
아픈 상처와 딱지를 남기고
상처 속 고름으로
많은 이유들을 키워냅니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같은 하루처럼….
오늘 나는
그 태산 같은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슴에 남길
사진 한 장 찍을까 합니다,
허나,
눈물을 참아낼 용기가 없어
매번 돌아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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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대학일반부 장려상 (운문)
휴대폰
대전시
박희준
누군가 창문을 여는데 어두운 것들이
입을 벌리고 나는 이름을 잊어버리는데
우리는 표정없는 병을 앓고 있어요
질문들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갑니다.
손가락 사이에서 태어난 감정
페이지마다 창문이 생겼습니다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
새로 배치된 것들은
출구가 없는 방입니다.
누군가 겨우 입술에서 빠져나와 목소리가 됐어요
완벽하게 감정을 숨기는 방법을 배워요
밀어서 잠금해제
이제 내가 완벽해지는 순간입니다
창문 좀 닫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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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대학일반부 으뜸상(산문)
가족사진
부천시
김정환
텔레비젼은 묵묵부답이다. 어둑한 하늘에 소낙비가 내려서 전파가 미약했다. 경남 진주에 운석이 떨어졌고 10억 원 값을 한다는 전문가의 말이 보도되고 있을 때였다.
“나는 한 달에 10만 원 버는 것도 힘든데 누구지는 몰라도 팔자게 좋네….”
헛웃음 짓는 할아버지가 안쓰러워 좋아할 만한 소식을 상기시켰다.
할아버지와 알고 지낸지 두 해가 넘었다. 인연이 닿은 곳은 여기 향기네 무료급식소로 나는 봉사원으로 있었다. 급식은 오후 1시 부터이다. 하지만 급식 받는 사람들은 미리 참석해 있다. 하루하루 계획하는 삶 보다 쫓기는 삶을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식이 집안 문을 안 열어줘서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애써 너스레로 말하는 사람, 할아버지처럼 폐지를 주워 하루살이 같이 사는 노인들로 붐빈다. 그들에게는 배를 채우는 일 밖에 중요한 게 없다.
노인들의 고단한 삶은 지진으로 인해 산맥이 일어나듯이 오랜 풍파로 얼굴주름이 깊게 패였다. 그런 것을 볼 때 마다 내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배식 받는 사람들은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수증기가 피어나는 손에 들린 무국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왜 안 줘!”
아이가 보채는 것 마냥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터져나왔다. 급식을 시작하면 반찬을 더 담아주고 밥을 더 하느라 정신이 없다. 먼발치서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뿌듯하게 쳐다보면서도 은연중에 숟가락을 매만졌다. 시계의 큰 바늘이 한 숫자를 건너뛰고서야 앞치마를 벗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잘 먹었다며 토닥토닥 등을 어루만졌다.
저 멀리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해가 저물듯 언덕길로 사라질 찰나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에 불에 데인듯했다. 서둘러 그곳을 향해 뛰었다. 할아버지는 입술을 깨물고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옆에는 오토바이가 가로등을 들이받아 부서져 있었다. 빗길을 내려가던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할아버지를 친 것이다. 급히 구급차를 부르고 구급대원들은 서둘러 할아버지를 들것에 태웠다. 나도 보호자를 자처하고 병원으로 갔다.
“일은 어떻게 하고…. 참.”
할아버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맺혔다. 매일 새벽부터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주울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한숨이 나왔다. 할아버지의 손톱은 썩은 고목처럼 보였다. 겨우내 동상에 시달려 검어지고 문드러진 것이다.
‘1kg, 80원으로 어떻게 살았어요?’
온갖 폐지들을 강산이 변하도록 계속 고물상에 팔며 살았다는 것에 내가 억울했다. 할아버지의 인생을 젊은 날로 되돌리고 싶은 허상을 꿈꿨다.
할아버지의 옷가지를 챙기기 위해 할아버지 집에 갔다. 쪽방에는 온갖 고철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공간을 메꾸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자주 끌고 다니던 핸드 카트도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고 돌아 둘러보는 순간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향기네 급식소 단체 사진이었다. 사진 속 할아버지 품에 안긴 나도 보였다. 할아버지는 가족이 없었다. 향기네 급식소가 밥 한 끼를 떠나 할아버지의 안식처였나 보다, 작은 창으로 햇빛 한 줄기가 사진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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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대학일반부버금상(산문)
가족사진
중앙대학교
이은선
나는 가족사진을 평생 찍을 수 없다. 네 살 무렵 낯선 남자를 처음 봤을 때 배운 것은 밖에선 아버지가 아닌 스님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노을을 뒤로한 채 쌀가마니를 어깨에 지고 걸어왔다. 엄마는 몇 번이나 스님으로 불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사를 하자 아버지는 쌀을 내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몇 년간 아버지가 없는 채로 살았다. 간간히 하는 통화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뿐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는 집 근처에 절을 마련했다. 가끔 함께 밥을 먹긴 했지만, 걸을 때면 늘 한 발자국 뒤에서 걸었다. 우연히 신도들을 마주치면 난 오래 전 남편을 잃은 우보살의 딸이었다. 같이 여행을 가게 돼도 아버지는 사진을 찍어주기만 할 뿐 한 번도 카메라 안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나는 어머니와 같이 찍은 사진 옆에 아버지의 사진을 끼워 놓곤 했다. 지금까지도 가족 셋이서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집 거실에 걸린 흔하디흔한 가족사진이 왜 내겐 없는지, 왜 늘 뒤에서 걸어야 하는지 깨달을 무렵,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수행과 인연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딸로 남고 싶었다.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절로 찾아가 승복을 던졌다. 다신 집에 발들이지 말라는 말을 하며. 그날, 아버지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그때는 아버지가 가졌을 괴로움을, 그래서 나의 말의 가시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나를 호적에 올리기 위해 조계종에서 쫓겨났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았다. 처음 만져본 손은 투박하고 거칠었다. 나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울음을 토해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서류상에 적힌 이름도, 사진도 아니었다. 아주 조금의 온기였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긴 수행을 떠났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 이후로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손에서 작게 뛰던 맥박, 추춤거리다 이내 꼭 안아주던 두 팔, 그것들이 나를 변화시켰다. 목덜미에 적셔진 아버지의 눈물이 그간 아버지가 느꼈을 번뇌를 담고 있었다.
가끔 아버지를 상상한다. 어느 산속의 절에서 날 위해 목탁을 두드리고 있을 뒷모습, 잿빛의 승복. 스님의 옷이 회색인 이유는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뜻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아버지도 가족의 연과 수행의 길 둘 중 한 곳에도 머무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해 모질고 긴 수행 길에 들어선 아버지를 떠올린다.
나는 가끔, 아버지의 사진을 본다. 잿빛 장삼을 걸친 채 불상 앞에 서 있는 아버지의 사진. 아버지가 긴 여정을 걸을 동안 우리는 슬픔을 감추고 가슴에 묻어두는 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우리의 가족사진은 언제나 반쪽이고 회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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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대학일반부장려상(산문)
휴대폰
안성시
김세희
“얘, 니 동생 편에 열무김치랑 오이소배기 한 통씩 보낸다. 쉬기 전에 얼른 냉장고에 넣어둬라”
“얘, 막내야, 마당에 보리수 열렸다. 요번 일요일에 다녀가라. 큰 애 보리수 좋아하잖니. 더 놔두면 무른다, 꼭 와 따가라, 잉?”
“얘, 얘, 그리고 깜빡할 뻔 했구나. 이달 말에 아부지 기일인 거 알지?”
일흔일곱 되신 친정어머니의 전화다. 요즘 우리 어머니는 휴대폰 전화거시는 재미에 빠지셨다. 시도 때도 없이 하루에 두 서너 번은 전화를 거셔서는 이런저런 사소한 당부와 당신의 일상을 시시콜콜 털어놓으신다. 감자 심은 얘기, 배추밭에 벌레 잡은 얘기, 노인정에서 들었던 이런저런 시국 얘기까지. 우리 어머니가 이토록 수다스러운 사람인 줄은 전엔 미처 몰랐다. 정치에, 시국사건에, 드라마에도 이렇게 관심과 의견이 많으신 줄 정말 몰랐다.
내가 그동안 숨겨져 왔던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바로 휴대폰을 사 드리고 난 다음이다. 연세가 많으시니 휴대전화가 무슨 소용이냐 싶어 그간 간과해오던 어머니 휴대폰을 작년 초에 사 드린 후 모든 자식들의 전화번호를 단축번호로 저장하고 일일이 설명하고, 또 설명한 후 일 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전에도 물론 집에 전화야 있었지마는 자식들에게 요즘처럼 열성적으로 전화를 하신 적은 없었다. 늘 직장생활과 가정일에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는 이런 어머니의 전화가 귀찮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해서 그 저 “네, 네”, “알았어요. 나중에 다시 전화 걸게요” 하고 전화를 끊는 일이 많았다. 엄마가 전화를 기다리실거란 생각도 못 할 만큼 무심히 지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내 아이들에게 우리 어머니처럼 하고 있다.
“밥 먹었니?, 학원 갔다 왔고? 학교는 별일 없었어?”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반응은 나와 똑같다.
“네. 네. 그냥요. 알았어요”
‘무심한 놈. 애미 속도 모르고’
‘어쩜 저렇게 멋대가리가 없냐’
난 끊어진 전화기를 씁쓸히 바라보며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달랜다.
‘너도 너랑 똑같은 아들 낳아 봐라. 그 땐 내 속을 알테니.’
마음속으로 물거품과도 같은 원망을 하며 내 휴대폰의 단축번호 5번을 길게 누른다.
“막내냐? 뭔 일 있어 전화한 거 아니지? 밥 먹었고? 엄만 노인정이다. 내 새끼가 엄마 걱정돼서 전화한 겨?”
어머니의 목소리가 오늘 딸 유난히 더 커진다. 노인정 할머니들 보란 듯이 더 명랑하고 당당한 목소리다.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우리 모녀는 그렇게 그렇게 사소한 일들로 웃고, 걱정하고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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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고등부 으뜸상(운문)
휴대폰
안양예술 고등학교
고서연
한낮의 사막은 고요하다.
땡볕이 등허리에 가시처럼 박히는 노량진사막은
학원이 끝난 시간이면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부산스러운 낙타 떼의 행렬
길 잃은 낙타가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기도 하고
마지막 사구를 넘지 못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낙타도 있다.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혹과 편한 복장, 모래바람을 막아줄
도수 높은 안경뿐이다.
쌍봉을 등에 지고 삼 년 째 횡단 중인 남자,
그 안에는 2차 사구를 넘지 못한 경찰행정 수험서
더 멀리 보기 위해 새로 산 계정판 문제집
대충 김에 싼 주먹밥 몇 덩이가 들어있다.
지쳐있는 남자한테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힘내자고 위로하는 낙타도 있지만
전화부에 가족번호만 찍힌 휴대폰이
남자의 유일한 오아시스다.
가족들의 문자를
나침반 삼아 걸어가는 낙타들,
사막에서의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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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고등부 버금상(운문)
그리운 6월
강원 고성고등학교
박희은
엄마가 늦게 오는 밤이면
남동생과 나는
시큰둥하게 바뀐 계절을
나란히 누워서 염탐했다.
더위에 이불을 걷어차고, 소곤대는
목소리에는 설익은 물 냄새가 났다.
현관문을 꼭 잠그고
이불 사이를 뒤척거리다가
바람 소리를 들었다.
미지근한 다리를 쭉 뻗으면
어설픈 비누 향이 났다.
오랜 적막이 이어지면
동생은 누나, 하고 나를 불렀다.
나는 짙은 소독차 냄새를
가만히 맡고 있었다.
말라가는 작은 옷에서
익숙한 페브리즈 향이 났고,
선풍기는 소곤대는 얘기를 따리
목소리를 낮췄다.
먼저 잠들지 말라는 말을 하며
동생이 이불 속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어설픈 비누 향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짧았던 밤, 매미는 밤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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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고등부 장려상(운문)
가족사진
동작고등학교
오현신
쩍쩍 떨어져 나가는 앨범의 살결
시간이 얼어붙는 일이 뜸해질수록
온몸으로 얼어 들러붙은 살결들이
먼지가 내린 척추를 타고
반대편으로 넘어간다.
앨범을 펼쳐놓고 엎드린 아이
열섬처럼 여기저기 움크리고 있는 온기를
불거진 골반 뼈로 짓누른다
루즈를 바르고 짧은 파마머리를 한 낯선 여인과
오래도록 눈을 마주친다.
기침이 끼인 코끝으로 파마 약 냄새가 끼친다
아니면 듬성듬성 드러난 앨범의 살갗 냄새인가
오랫동안 비어 있던 방의 냄새인가
앨범 사이로 스며들었다가
펼쳐진 틈으로 흘러나오는 것인가
왜 앨범은 그토록 아픈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지
아이가 사진 위로 얼굴을 묻는다
한 번 떨어졌다 붙은 비닐이 기포를 물고 있다.
바닥에 녹인 앨범 한쪽이 얼굴 위로 내려앉고
여인의 귓가에 어설프게 고개 내민 진달래가
눈가에 균열을 부르며 뿌리박는다.
다시 잠잠해진다.
왜 살갗은 떨어지면서 그토록 아픈 소리를 내는지
앨범에서 오래도록 비어 있던 베개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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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고등부 으뜸상(산문)
가족사진
고양예술 고등학교
장하나
“엄마! 왜 우리 집엔 가족사진이 없어?”
친구네 다녀오면 나는 줄곧 묵묵히 설거지를 하는 엄마의 등에 그렇게 묻곤 했다. 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얼버무림이나 질문에 어긋난 대답뿐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이 그 물음이 잊혀져갈 때쯤 엄마가 집을 나갔다.
엄마랑 아빠는 동갑내기였다. 무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둘은 작은 단칸방에서 힘겹게 신혼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힘겨운 그 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나였다. 나는 마치 가뭄처럼 갈라져 버린 그들에게 단비였었다. 그러나 그 단비는 소나기인 듯 다시 말라가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아빠! 엄마 어딨어?”
7살,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을 나이 나는 잠시 엄마와 떨어져 살았다. 아빠의 회사에서는 정리해고라는 명목하에 아빠를 내쫒았고, 갈 곳 없는 아빠를 대신해 발품을 팔며 돈을 번 것은 아빠밖에 모르던 엄마였다. 엄마가 근처 마트에서 직원으로서 갖은 모욕을 당할 무렵 자존심이 너무나도 강했던 아빠는 무너진 자신을 쉽사리 일으키지 못했다.
“당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내년이면 애 학교도 보내야 하고 이사도 가야하는데, 언제가지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살 건데?”
나는 밤마다 귀를 뚫고 파고 들어오는 싸움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더 생생히 파고들어 오는 느낌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아빠! 엄마 언제 와?”
엄마가 집을 나간 지 사흘째,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그 날이었다. 어김없이 술은 아빠의 수면제였고, 나는 그런 아빠 곁에서 눈물을 삼켜낼 뿐이었다.
“아빠 내가 잘못해서 엄마 안 와? 내가 가족사진 찍으러 가자고 그래서 엄마 안 오는 거야?
내가 잘못했으니까 엄마 좀 불러 줘. 엄마 보고 싶어.“
어린 딸의 애처로운 울음 때문이었을까? 아빠는 굳게 입을 다물고선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영문도 몰랐지만 조용히 하고 있으면 엄마에게 갈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울음을 멈추고 아빠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아빠가 날 데려온 곳은 찜질방 앞이었다.
“여기 있으면 엄마 오니까 꼼짝 말고 있어. 알겠지?”
어렸던 나는 엄마가 온다는 말을 믿고 한쪽 구석에 앉아있었다. 날 힐끔힐끔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보다는 언제 엄마가 올까 고개를 쭈욱 뺀 채 몇 시간쯤 기다렸을까. 멀리서 눈감고서도 알 수 있는 실루엣의 엄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 큰 소리로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나를 본 엄마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들어 안아올렸다. 엄마의 품이 얼마 만인지 나는 잊을 수 없는 그 품에 안기자마다 울음을 쏟아내었다.
“내가 잘못했어. 엄마! 더 이상 가족사진 찍자고 떼 안 쓸게….! 집에 가자. 엄마!”
내 울음 섞인 목소리에 엄마는 울먹이며 나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어떻게 왔어?”
“아빠가 여기 있으면 엄마 온다고 그랬어.”
“아빠는?”
나는 엄마의 품에 고개를 묻고선 엄마의 물음에 대답 하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아빠는 실오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양반이 애를 여기다 놓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엄마가 휴대폰을 들고선 아빠에게 연락하려고 한 그때였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손에 낡은 카메라를 들고 아빠가 나타났다. 아빠는 뻘쭘한지 쭈뼛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사진기를 내밀었다.
“이거…. 우리 가족사진….
날카롭게 변한 엄마의 표정이 풋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풀어졌다.
“이거 가지러 갔었어?”
엄마의 물음에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세 명이 모두 모여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물론 배경이 목욕탕 앞이었지만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떤 사진관에서 예쁘게 찍는들 이런 웃음이 나올 리 없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아직도 탁자위에 올려져있다. 소나기는 언제나 그렇듯 예고 없이 내린다. 그리고 소나기가 그치면 꽃들이 자라난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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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고등부 버금상(산문)
가족사진
고양예술 고등학교
김지민
할아버지가 입원한 것은 오월이었다.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는 한 자리를 지키고 누워 계셨으니까. 엄마는 할아버지의 입원을 결정하면서 몇 번인가 울음을 터뜨렸다. 병원에서는 할아버지의 상태가 좋은 않다고 우리 가족을 설득했다. 오래 앓아오셨던 간경화 때문이었다. 의사는 곧 복수가 차오를 거라고, 할아버지의 배가 물풍선처럼 빵빵해질 거라고, 함부로 그런 말을 했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입원하시고 난 뒤 일주일에 한 번 골로 병문안을 갔다. 더 자주 가고 싶었지만, 가족끼리 시간이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병문안을 가는 토요일마다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셨다. 그러나 침대에서 일어나지는 못하셨다. 몸이 더 안 좋아지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할아버지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흰 병실 벽을 바라보며 눈물을 꾹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사진이나 한 장 남기자고 하셨다. 우리는 그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소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던 할아버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 앨범 안 할아버지의 사진은 매우 적었다. 나는 잠깐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들을 꺼내들었다. 제대로 된 사진기가 아닌 게 마음에 걸렸지만 할아버지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병실 침대를 조절해 몸을 일으키신 할아버지는 좋지 않은 안색이셨지만 어느 때보다 기뻐 보이셨다. 나는 휴대폰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할아버지의 옆으로 가 섰다. 가족들은 모두 사진 찍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찰칵, 작은 소리가 조용한 병실 안을 울리고 사진이 찍혔다. 사진을 찍고 난 뒤 할아버지가 나의 손을 꽉 잡으셨다. 천천히 입을 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할아버지는, 이 사진처럼 항상, 우리 가족 사이에 남아있고 싶다.”
힘이 드신 건지 중간마다 말이 끊겼다. 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전처럼 다정하신 말투였다. 문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주름이 가득 박힌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을 우리의 가족사진이 생각났다.
‘남아 계실 거에요’
그 말이 가슴 속에서 작게 소용돌이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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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안성맞춤 백일장 수상작품
고등부 장려상(산문)
휴대폰
용인 홍천고
손나영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역시 오늘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언제쯤 나의 전파는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같은 동아리의 여학생을 짝사랑하고 있다. 그녀는 예뻤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내 머릿속의 이상형을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면 딱 저렇게 생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어렵사리 용기 내어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번호를 얻는 데 까지는 성공했는데 그녀는 나의 전화를 절대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와 내가 아무런 소통을 하지 않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다. 그녀는 나에게 문자로 매번 연락을 해온다. 그 연락의 내용은 주로 이렇다.
“내일 내가 좋아하는 가수 앨범 나온다는데 진짜 갖고 싶다. 돈이 없어서 못 살 것 같은데, 진짜 갖고 싶긴 한데 어쩌지?”
내가 그녀와 문자를 했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면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바보라고 한다. 뻔히 걔가 나를 이용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면서 걔가 집을 사 달라고 하면 집도 사 줄 거냐며 나를 타박했다. 좋아하면 다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럴 돈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데 친구들은 그녀가 나를 가지고 노는 거라며 연락을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녀와 나의 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예쁜 여자애와 연락을 주고 받아서 열등감이 생기는 걸 거다. 이해한다. 그녀는 그 정도로 예뻤으니까.
나와 그렇게 연락을 자주하는 그녀가 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전화 통화. 나는 매일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는 한 번도 받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녀에게 문자로 왜 나의 전화를 받지 않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전화 통화를 하는 건 왠지 진심을 주고받는 느낌이잖아. 난 너한테 진실 같은 거 없어.”
그녀의 단호한 말에 조금 마음이 상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녀를 향한 나의 진실의 무게가 무거우니까 내가 그녀를 두 배로 사랑해주면 되는 거였다.
그녀와 휴대폰 문자를 주고받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항상 그녀에게 진실을 말했다. 그녀에게 고백했다. 놀랍게도 그녀가 나의 고백을 받아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나에게 비밀연애를 하자고 말한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사 주고 그녀가 사고 싶다는 물건들을 사 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아직도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도 진심이 없는 걸까.
그러던 그녀가 나에게 휴대폰을 커플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녀와 처음으로 맞춘 물건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먼저 제안한 거니까 그녀는 나에게 진심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와 나는 그날 이후로 커플 요금제를 쓰기 시작했다. 커플 요금제를 쓰는 사이에는 전화요금이 무료였다. 나는 그녀에게 더 많이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동아리 시간에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 시간에도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교실에도 찾아가 보았지만 그녀가 사라진 이유를 아는 아이들은 없어 보였다. 며칠 뒤 학교에서 그녀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엄마가 술집 여자이고 그녀 또한 비슷한 부류라서 어딘가로 도망갔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이었다. 그 이야기는 SNS의 타임라인을 가득 채웠다. 모두 휴대폰을 들고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그녀는 정말로 아이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인 걸까?’ 아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일 리가 없다. 내가 본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무도 그녀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나는 오늘도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언제쯤 나의 전파는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첫댓글 쓰시느라 애쓰셨어요
대상 작품 6연에 찬 밥, 인것 같아요^*^
네 수정했습니다.
정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참으로 수준높은 글들이군요. 안성맞춤백일장이 탄탄하게 자리를 잡는 것 같아 보람있습니다.
이 낳은 글을 옮기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 고생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