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이프]

요즘은 바야흐로 여류작가의 시대라고 볼 수 있을만큼

문단 신진기예들의 성비가 여성쪽으로 편중된 느낌이 듭니다.

각종 공모전 당선자들도 소설 쪽에서는 여성들이 많더군요.

특히나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의 작가들은요.

한강은 그들보다는 문학적으로 한두세대 위의 작가입니다.

신인시절의 작품에서 부터 이미 세련된 문장과 견고한 구성으로 동세대 여성 문인들 중

가장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가입니다.

소설가 한강에게 이상문학상을 안긴 작품 '몽고반점'은 수작입니다.

그런데 이 몽고반점이라는 중편소설은 생선의 가운데 토막 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등분 중 가운데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 '채식주의자' 는 크게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가 육식을 거부한 한 여성이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까지의 과정을 그린 '채식주의자' 입니다.

두번째가 정신병원 치료를 받은 처제를 예술적, 성적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예술욕과 성욕을 이루어 내는

형부의 이야기 '몽고반점' 입니다.

세번째는 미쳐버린 동생과 동생과 불륜의 예술행위를 저지른 남편을 가진 아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버티어 서있는 모습을 그린 '나무불꽃' 입니다.

각각의 중편들은 소설 개체로서의 완결성을 지니고 있고, 그 결과로 가운데 토막인 몽고반점의 이상문학상

수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이 세편의 연작을 모자이크-그라데이션 기법의 소설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그냥 제가 임의로 붙인

엉터리 같은 이름이니 괘념치 마십시요. 하핫...

제가 파악한 '채식주의자'의 주제의식은 폭력과 세속으로 상징되는 육식으로부터 한여자의 도피 내지는

대결 입니다. '몽고반점'의 주제의식은 윤리와 상식으로부터 탈출한 미적 가치와 본연적인 성욕입니다.

'나무불꽃'의 주제의식은 삶의 일상적 폭력성으로 부터 견디는 의지입니다.

언뜻 보면 전혀 다른 세가지 주제의식의 세 중편소설들은 긴밀한 인과관계를 통해 엮여 있습니다.

극단적 육식회피와 채식주의로 인해 가족들과 갈등하고 저항으로 자살을 기도하는 처제를 엎고 병원까지

달음치는 형부는 처제의 피냄새와 그녀의 몸에 남아있는 몽고반점으로부터 예술적, 성적자극을 받고

그 결과로 초래된 가정파탄의 상처를 언니는 견디어 내고 있는 이야기로 세편의 중편이 얽혀있지요.

그렇다면 세 연작소설을 각각이 아닌 전체로 조망했을 때의 주제의식은 무엇일까요.

저 쪽에는 때묻은 현실의 폭력성을 거부하고 자기 안의 이상으로 들어가 버린 동생 영혜가 있습니다.

이 쪽에는 시련과 상처를 견디어 내고 아직 밖으로 버티고 선 언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 어딘가에

자신의 이상을 완전히 드러내지도 못하고,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서지도 못한 남편이 있습니다.

소설가 한강은 차안과 피안, 그 사이에 존재하는 예술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대개의 뛰어난 작품이 그러하듯,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사실, 이 쪽이 더 보편적인 해석일거라

생각이 되는데... 각 중편의 화자를 통한 작품 해석입니다.

'채식주의자'의 화자는 미처버린 여자 영혜의 남편입니다. 그녀의 무난함이 장점으로 여겨져 결혼했고,

그녀보다 더 예쁜 처형에게 소심한 매력을 느끼고, 직장 생활을 성실히 하고... 전형적인 도시민의 모습을

한 이 남자는 아내가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장 큰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라 주장하면서 주저없이

그녀를 떠납니다. 미친 아내는 그의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능을 드러나게 하는 존재입니다.

'몽고반점'의 화자는 처제를 탐하는 형부입니다. 그는 처제의 엉덩이에 남아있는 몽고반점을 생각하며

자기 안에서 끓어오르는 성적 욕망과 그것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예술적 욕망에 달아올라 몸부림 칩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처제의 몸을 촬영하고, 섹스도 하게 됩니다. 그의 두가지 욕망은 처제가 아니라면

인식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처제가 아니라면 해소될 수도 없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처제는 그 안의 내밀한

욕망과 본능을 드러나게 하는 존재입니다.

'나무불꽃'의 화자는 미친 동생을 둔 언니입니다. 자매(엄밀히 말하면 남동생까지 포함한 형제)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그 아버지의 폭력은 주로 언니보다는 동생에게 집중됩니다. 언니는 성실함과 생활

력을 가장해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거나 무마시킬 수 있는 생존력을 기르게 되고 결국 도시로 나가 어느정도

기반을 잡는데 까지 성공합니다. 반대로 동생은 유순하기는 하나 기민하지 못해 그 모든 폭력들을 고스란히

뼈에 새기게 됩니다. 언니 또한 삶이 주는 신산함과 폭력적 무감함에 떠밀려 자살을 기도하나 아기(지우)로

인해 그 충동으로부터 뒷걸음질 쳐 생활로 돌아옵니다. 동생은 자신의 비겁함과, 생활인으로서 의지를 드러

나게 하는 존재입니다.

아내이자 처제이자 동생인 여인 영혜는 식물적인 존재입니다. 그녀가 가진 식물성으로 인해 다른 화자들은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것이 이 연작소설의 또 다른 해석입니다.

책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따로 있을 때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해지면 그중 어느 것도 아닌 다른 이야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녀의 시도는 무척, 무척이나 성공적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동세대 다른 여성작가들에 비해 그녀가 유독 빛나 보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blossom]

한강 소설 검은사슴 읽어보셨나요?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쿠우]

바람이 분다, 가라 추천이용 보고나면 땀이나요 땀이.

[shine]

오... 한승원님의 따님...... 저도 고교시절 글을 너무 못써서 창피해서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보면서 연습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한강님이 한승원님 따님 이시더군요... 정말 대단한 가족. 몽고반점 밖에 못 읽어 봤는데 나중에 꼭 읽어 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