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각설이
이상길
서귀포항에서 덴섬을 돌아보는 유람선에서의 일이다. 선실 공연장에서는 각설이 공연이 한창이다.
우리나라 각설이 분장은 모두 비슷하다. 남자가 우스꽝스런 여자옷을입고 화장을하고 까만 고무신에 옷은
덕지덕지 기운 누더기다. 사람을 웃겨야하고 노래는 아주 잘한다.그리고 장구 ,꽝과리. 북은 기본이다.
평소에 나는 각설이 공연을 저질 천민 문화 정도로만 치부해 버렸다. 하지만선실에서 한시간을 기다리느니 그거라도 봐야 시간이 빨리갈것같아 그 자리에 있엇다. ebs세계테마기행을 이십년을 줄기차게 시청한 나에게 제주도 관광쯤이야 아내의 대한 배려일 뿐이다. 한바탕 노래로 흥을 돋운 각설이가 "엄니 어디서 왔 우? '광주; "에이 촌년이네. .....와 하하하하.......모두웃었다. 대답한오십대 여자도 얼굴이 빨개지면서 웃고만다. 그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킨다." 거기 형님은 어디서 왔우? 못본체 하고 딴청을 부리는데 재차"우리형님 워디서 왔슈? "광명...아니 부안...; 그가 순간 멈칫한다."부안어디? ..".곰소...: "진서면이지 곰소가 뭐여? 에이 더 촌놈이네.: 웃음 소리가 없다. 순간 선실에 잠깐의 긴장감. 이백명의 사람들은 직감 했으리라. 저들은 한고향 사람이다. 순간 내 기분은 더없이 참담하고 창피하다. 일어서서 나갈수도 없고 공연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렸다. 아내와나는 죄인처럼 두눈을 내리깔고 그가 한가지를 끝낼때마다 건성으로 박수만 쳤다.
...고향...곰소.....나에게 고향이 있었던가?.... 삼십년을 왕래도없고 친구도잊고 살아왔다. 불현듯 삼십년전의 그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스물여덟. 그때는 내가 조치원. 지금은 세종시로 바뀌었지만 .금강에서 중장비기사로 일할때이다. 장마에 물이불어 모래채취를 할수없어 회사에서 며칠 휴가를ㅇ 보내줘서 고향집에서 쉴때였다. ㅂ밖에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둘째형 친구분이 찿아와 자기배에 기관장이 병원에 입원했으니 하루만 바다에 나가달라고 했다. 배나 중장비나 엔진은 같으니 시동만 켜주고 끄면된다고 한다. 싫다고 했더니 바다에 쳐둔 그물을 오늘 건지지 않으면 그안에 생선이 모두 썩어버리니 제발 사정좀 봐달라고 성화다. 사정이 딱해 얼결에 승낙하고 말았다.
곰소항을 출발한 어선은 신나게 달렸고 아닌게 아니라 키만 돌리면 시동은 바로 걸렸고 중장비와별반 다르지않았고 이십톤의 배는 밖에서보면 작아보여도 배안에서보면 의외로 커보인다. 선장이 벨을 한번울리면 스로틀레버를 조금 당기고 두번울리면 조금세게 세번울리면 레버를 끝까지당기라고 가르쳐줘 참으로 쉽고 재미도 있었다.두시간 만에 우리는 위도를 지났다. 작은 돛배 한척만 있어도 고기가 넘쳐나 자식들 대학보내고도 남는다는 칠산 앞바다. 나는 바다를 너무 몰랏다.
위도를 지나고부터 파도가 점점 높아지더니 배가 가랑잎같이 흔들린다. 앞서가던 어선이 보이다 말다를 반복한다. 집채만한 파도에 가려 보이지않다가 파도 꼭대기에 배가오르면 스크류까지보이다 다시내려 앉기를 반복한다. 나는 얼이나갓다 기관실 바닥에서 뱃속의 모든걸 게워내었고. ㅂ기관실 출입문이 밖에서 잠겨있었다. 공포에 떨며 문을 두드리니 아예 문에다 못질을 해버렸다.
비바람이 치는소리가 들리고 기관실엔 토사물과 기름으로 사뭇 미끄럽다. 배는 더욱흔들려 머리를 수도없이 뱃전에 찧었고 이쪽 벽에 서 저쪽벽으로 부딪치길 반복한다. 이때 쪽문으로 흠뻑젖은 허영래 영감의 얼굴이 쑥 나오더니"야. 태풍이다. 도라무통 잡아라.엔진꺼지면 모두 죽는다. 우리 목숨은 너한테 달렸다. 엔진만 살아있으면 나무배는 파도를 잘 탄다. 문잠갔으니 엔진꺼지면 그 안에서 죽어라.: 쪽문이 닫혔다. 가끔 선원들이 술자리에서 하던 얘기.말로만 듣던 기관실 못질이 나에게 현실이 되었다. 다른 생각이날리없다. 어린나이지만 살아야 한다. 들썩이는 드럼통을두손으로안고 깍지껴보지만 기름기때문에 바로풀린다. 아예 끈으로 내몸을 드럼통에 묶어버렸다. 바닥에앉아 양발로 드럼통을 감고 몸을 통에끈으로묶고 양손으로 통을안은 자세로 버텼다. 드럼통이 넘어져 기름 호스가 빠지면 시동꺼지고 모든게 끝이다. 바람소리. 파도소리 빗방울소리.무엇이날아가는지 가끔 쿵쿵거리고 선원들의 악다구니. 빗소리 "담배 가져와라:는 선장의 쉰목소리만 겨우들린다. 선장이 키돟치면 배가돌아 넘어지기때문에 소변이나 대변은 선채로 옷 입은채로 해결해야한다. 담배도 남이 불을붙여 입에 물려줘야 피울수 있다. 너울성 파도는 정면보다 약간 비스듬이 넘어야되고 배는 약간 기울어야 파도타기가쉽다. 배속력은 중간 정도가 안전하다.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비바람에 밀리지않아 제자리에서 폭풍이 지나가기를기다리는게 일반 선원들의 상식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얼굴과 온몸에 기름이요. 여러번의소변에바지는 다리에 찰싹붙었다. 배가크게 흔들릴때마다 주입구로 튀는기름은 내얼굴로 흐르고 가슴으로 흐른다. 다행인 건 눈에 경유가들어가도 불편하지 쓰리진않다. 사투는 밤까지 이어졌다. 어느순간 배가붕뜨는느낌이왔고 나는 드럼통에 머리를 세게 부닺쳤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지났는지 모른다.
너무 추웠다.누군가옷가지로 얼굴을닦아주고 있었다. 태풍은 지나갔는지조용하다. 가끔나를 내려다보는 선원들이 비닐에서젖지않은 담배를찿아 피우고 그들을보며 나는 모두 무사히 태풍을 이겨낸줄알았지만 허영감이 사라졌다. 어젰밤 태풍속에서 선장의 입에 마지막 담배물리고 나서 실종됐다.날이 밝아왔다. 나도 일어나야했다. 그대로 있었으면 누가 밟아 죽일까 겁이나서 슬며시뱃전에 주저앉았다. 얼마후 경비정이 달려왔고 위도 파장금항에서 어선이 떼로 몰려와서 수색했지만 허사였다. 이틀후 배는 곰소항으로 돌아왔다. 거친 바람으로 배안에는 ㅇ어구하나 솥하나도 남아있지앟았다. 나중에 들으니 선원들도 포기하고 가진돈모아 스치로폼에 비닐로싸서 준비했었다.배가 가라앉아도 돈이라도 운좋은 사람에게 쓰이라는 마음이었다.
선창 한쪽 구석에서 허영감의 넋 건지기는 굿이 벌어졌다. 허연 쌀밥을 그릇에 담아 끈으로묶어 바다에던지면 죽은 사람의 혼이 밥그릇따라 온다고했다. 몇시간이고 무당은 그 짓을 반복한다. 밥그릇속에 머리카락이 들어올때까지이다. 굿은 이틀을 넘기고 끝이났다. 허영감의 시신은 사흘째되는날 곰소항입구 왕포에 밀려왔다.온몸에 소라를 붙인채로 말이다. 사람들은 무당 삼바실이 용하다고 수군댔다. 허영감의 장례식 다음날 나는 조용히 고향을 떠나왔다.
유월이 끝나가고있었다.
.....떠더더더덩.......우레와같은 장구소리에 고개를든다.여느 농악단이나 국악단에서 들을수없는.생전 처음듣는 장단의 조화. 오장육부가 놀라고 천상에서나 들릴법한 솜씨다. 모두의입이 벌어지고 탄식이 절로나온다. 이것이 정녕 각설이의 실력인가?.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화음. 바다가 깨어나고 산이 울고 죽은혼령도 깨워내는 신비의 묘음.소리는 이어져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판다 국악에 문외한인 아내도놀랐다. 나도모르게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선사에서 그를 데려온 이유를 알만햇다. 나는 이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랏지만 아쉽게도. 배가 서귀포항에 도착햇다. 선실에 승객들.그 누구도 일어서려하지 않는다. 모두내리라는 방송이울리고서야 아쉬운듯 하나둘 일어선다. 그가 다시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한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건필시 나를두고 부르는 노래같다.옆구리를 찌를는 아내를 무시하고 나는 맨 마지막까지 노래가 끝날때까지 기다렸다. 선실엔 그 와 나 아내 셋만 남앗다. 쭈빗거리며 내민 손을 그가 덥석 마주잡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랑스러운 동향사람아. 한때 먼 엣날에 우리는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지않앗던가? 자랑스런 내친구야.일부러 잊은체 살아왔지만 내가 세상에 태어나던날 맑은공기로 나를 감싸주고 여린 내 몸을 받쳐준 부드러운 대지가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피를 나눈 내형제의 태가 묻혀있고 지금은 돌아가신 내부모의 안식을 지켜주는 그곳을 내 어찌잊으리. 훗날 나 이세상 하직하는날 내 영혼도 기쁘게 그 곳으로 달려가리라........
그때였다. 민망하게도 내코에선 선홍빛 코피가 방울방울 흘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