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 [모든 성인 대축일]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독서: 요한 묵시록 7,2-4.9-14
<만남의 체험이 모든 노력을 앞선다>
박보영 목사가 아이들을 데려다 키울 때 그들이 길에서 입고 있던 옷들을 버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길거리에서 살던 아이들이 한 달 정도 지나면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등의 규칙적인 생활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목사님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입던 옷을 입고 나가라고 던져줍니다.
그들은 깨끗한 옷을 벗고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견딜 수 없는 더러움에 그들은 옷을 벗고 목욕을 오래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자기들의 옷을 가져다버립니다.
이렇게 어떤 만남은 이전의 자기가 살던 세계로 절대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변화는 공부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을 이끌어줄 누군가를 깊이 만나야만 가능합니다.
오늘 모든 성인의 날인데 성인들은 바로 그런 만남을 통해 자신을 들어높인 사람들인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신학대전을 집필하다가 주님을 뵈옵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평생 이뤄놓은 신학대전이 지푸라기처럼 보여 다 태워버리고 싶어 합니다.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읽고 쓸 줄도 몰랐던 시에나의 카나리나 성녀는 예수님을 만나 뵈옵는 체험을 하고는 많은 진리를 깨치고 ‘대화’라는 책을 써서 교회 학자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도 이분들만큼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진리 자체이십니다.
진리는 공부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근처에까지 갈 수는 있으나 그 맛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직접 본 사람은 평생을 공부한 사람보다 월등한 경지에 다다르게 되고 학자들이 이해 못하는 것들까지도 순식간에 깨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 제2독서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을 뵈오면 진리를 깨치게 되고 우리 자신도 진리를 닮아 그분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 뵈오려면 어떤 준비가 되어 있어야하는데 이는 차원을 넘나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 끝에 와 있어야합니다.
바다의 끝에 와 있어야 주님께서 부르시면 바로 물에 뛰어들어 뭍에 올라 그분을 만날 수 있는데 너무 멀리 있고 물고기 잡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예수님을 만날 때는 세상의 가장 끝에 서 있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신이 평생 연구해왔던 것에 지쳐있었고, 자캐오는 돈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물고기를 잡지 못한 허망함에 어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부르시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물에 뛰어들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뵈옵고 성인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성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성인은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보영 목사는 서른아홉까지 돈만 바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심장병이 걸려 죽음 직전까지 갔고 아내가 자신을 떠나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야 주님은 그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비참함에 구토를 하며 밤새 울었고 새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가진 재산을 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의사 자격증도 찢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떠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주님께서 만나주십니다.
요즘은 성인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너무나 신앙이 미지근한 것이 정상이 되어버린 듯 합니다.
성인은 행복한 분들입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다면 성
인들이 주님을 만났던 그 만남을 우리도 청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11월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성모님 발현 목격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은 순명이고 침묵이고 겸손입니다!
모든 성인의 날 축일을 맞아 성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덕행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성인으로서 갖춰야할 가장 기본적인 덕행은 아무래도 겸손의 덕이요, 사랑과 온유의 덕이겠지요.
또 빼놓지 말아야 할 덕행이 있다면 순명과 침묵의 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깊은 침묵에서 우러난 하느님께 대한 순명, 장상에 대한 순명, 동료 인간에 대한 순명, 긴박한 시대의 요청에 대한 순명...
순명하면 프랑스 파리에서 성모님 발현을 체험한 목격자, 기적의 메달로 유명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의 사랑의 딸 수녀회 카타리나 라부레 성녀(1806~1876)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성모님과 친밀한 교류를 나눈 이 신비스런 수도자 카타리나 라브레는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성모님 첫 발현이후 그녀는 4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소중한 비밀을 홀로 간직했습니다.
그 동안 그녀는 파리에 있는 수녀 공동체 병원에서 양로원 병실과 양계장 담당자로의 소임에 충실하며 숨어서 지냈습니다.
교회 당국의 지시에 철저하게 순종한 카타리나 라브레 수녀의 모습은 성모님 발현 목격자로서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밀을 간직하라니 46년간에 걸쳐 비밀을 간직하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성모님 발현 목격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은 순명이고 침묵이고 겸손입니다.
기적의 메달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중에도 카타리나 라브레 수녀는 침묵 속에 있었기에 고해사제 알라델 신부님 외에 그 누구도, 주변 동료 주차도 그녀가 기적의 메달과 관련된 성모님 목격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후에 카타리나 라브레 수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원장 수녀에게 자신이 그 은혜로운 목격자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충격에 사로잡힌 원장 수녀님의 말씀입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저는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생활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간호하고, 닭모이를 주고, 우리와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순명의 덕! 하면 이 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루르드의 성녀 벨라뎃다 수녀님(1844~1879)입니다.
그녀는 루르드에서의 성모님 발현 목격 이후, 느베르 애덕 수녀회에 입회해서 평생토록 침묵과 기도, 희생과 봉사 속에 수도생활을 해나가셨습니다.
1866년 7월 8일, 22세 되던 날 벨라뎃다는 애덕 수녀회 입회하게 됩니다.
바로 다음날, 벨라뎃다는 300여명 남짓한 애덕 수녀회 수녀님들 앞에 서게 됩니다.
원장 수녀님의 부탁으로 수녀님들에게 루르드 목격담을 이야기하기 위해 강단에 선것입니다.
벨라뎃다는 목격담을 시작하기전 청중들에게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루르드 성모님 발현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전제 조건 하에 말씀을 시작합니다.”
그후 벨라뎃다는 평생토록 애덕 수녀회 수녀원 담안에 자신을 감추었습니다.
침묵과 기도, 순명과 적극적인 사랑의 봉사 속에 남은 수도생활을 불태웠습니다.
성모님 발현 목격자로서 참으로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처신이 아닐수 없습니다.
순명과 침묵은 커녕 철저한 불순명과 과도하고 그릇된 홍보로 선량한 신자들을 현혹시키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나주 ‘마리아의 구원방주’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봅니다.
조금이라도 특별한 영적 체험이나 은사를 받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즉시 카타리나 라브레 성녀나 벨라뎃다 성녀를 바라보셔야 할 것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특별한 은혜, 각별한 사랑에 깊이 감사드려야 할것입니다.
절대로 여기저기 떠벌이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우쭐한 마음도 버려야할 것입니다.
그 특별한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며, 더 열심히 이웃사랑의 실천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11월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이다.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을 기리며, 또한 우리가 성인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는 날이다. 아무리 많은 성인을 모시고 그분들을 공경한다 하여도 내가 성인이 되지 못하면 그 성인들과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사 성인이 되도록 결심하는 날이어야 한다.
복음: 마태 5,1-12 : 참 행복: 산상 설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1절) 산으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사람들을 더 높은 삶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제자들로 하여금 가장 높은 영적 덕을 갖추고서 그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진리의 신비를 배우고자 한다면 교회라는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신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3절)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회개하여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진 사람을 말한다. 세상의 부보다도 하느님 안에서 부유하게 된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하늘 나라는 이미 덕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삶이다. 이렇게 복된 사람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가난해진 사람들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4절) 슬퍼하는 사람은 슬픔이라는 고통이 끝남으로써 위로를 받는다. 여기서 ‘슬퍼한다.’는 말은 죽음이 아니라 죄 때문에 슬퍼한다는 의미이다. 나의 죄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 그리고 온 세상의 죄 때문에 슬퍼하는 이들은 더욱 복된 이들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5절) 복음 정신으로 젖은 온유한 사람은 주님의 온유함을 본받는다. 온유한 이들은 모욕을 하기보다는 모욕을 견디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이 세상과 앞으로 올 세상에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세상이 타락의 종살이에서 풀려나 하느님 자녀의 영광에서 오는 자유를 얻으면, 살아있는 온유한 이들의 땅이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6절) 이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의로움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의로움에 대한 목마름은 가난도 배고픔도 두려워하지 않는 참된 부를 낳는다. 하느님을 뵙는 것은 우리가 무로 사라지는 종말이 아니라, 우리가 완전해지는 종말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7절) 하느님께서 주시는 보상은 인간의 선행에 대해 다른 이들이 내리는 어떤 보상보다 뛰어나다. 거지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하느님 앞에서 거지임을 기억하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거지를 대하는 대로 당신의 거지를 대하실 것이다. 참으로 자비로운 사람은 자신의 원수들에게도 자비를 베풀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8절)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죄를 끊고 믿음과 의로움을 실천하여 쌓는 행실로 하느님 마음에 든 사람을 의미한다. 바르게 행동하며 그렇게 하고자 생각하는 이는 누구나 하느님을 본다. 인간의 정의는 하느님의 정의와 닮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어느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9절) 평화는 믿음이 빛나고 희망이 굳게 자리 잡고 자비의 불이 타오르는 곳에 있다. 평화를 이루는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 말씀 아래 하나 되어 교회의 평화를 지키는 이들이다. 이 평화가 있는 곳에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모든 일에 질서가 잘 잡혀있으며, 다툼이 없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다스림을 몸소 보여주는 이들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10절)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견디는 이들에게는 불안에 떨지 않고 그것을 견디는 은총이 주어진다. 사도들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의로움을 위하여 받는 박해의 복됨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박해는 외국인에게서 만이 아니라, 자기 백성에게서도 의로움 때문에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11-12절)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 나라를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영광에 걸맞은 동료가 될 수 있도록 어떤 고통이라도 견뎌 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땅에서 걸림돌에 부딪히면 하늘의 영광을 그것에 비교해 보아야 한다.
이 행복한 사람들을 묵상하며 우리 자신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 하늘 나라를 얻는 우리, 즉 성인이 되도록 노력하고 참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결심하고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는 오늘이 되도록 주님의 도우심과 은총을 청하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