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보던 날
김경숙
힘찬 함성과 북소리가 울린다. 20여년 살아 온 삶 중 12년간 쌓아 온 지식창고를 오늘 대량 방출하려는 앳된 학생들의 얼굴에서 의미심장함이 온 몸을 소름 끼치게 한다. 이 날을 위하여 숨죽이고 까치발 걸으며 아들, 딸들을 위하여 애간장을 녹이며 뒷바라지 해 온 어머니들의 모습은 수도승처럼 정갈함과 간절함이 녹아 있다. 굳게 닫힌 교문을 두고 교실에서는 그동안 수 없이 반복하여 연습한 실력을 발휘하느라 뜨거운 청춘의 피를 토해내고 있겠지. 철창 밖 한 쪽에서 두 손 모아 숨죽이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게 한다. 대학 3년을 마치고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가겠다고 휴학을 하고 수능공부를 시작한 아들과 본인의 꿈을 키워나가겠다고 삼수를 한 딸이 그동안 눈 비비며 잠을 참고 온갖 유혹을 물리치며 지나온 날들이 심장을 떨리게 한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나! 이날이 빨리 지나, 텔레비전 소리 크게 틀어놓고 껄껄 웃어볼 수 있는 해방의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나! 시험장에 딸을 내려놓자마자 차를 돌려 아들을 수능고사장에 내려놓으니 마음이 허전하고 콩콩 심장이 두근거려 온다. 그대로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이 왠지 내키지 않아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 책상에 올려 있는 책들을 붙잡고 떨지 말고 차분히 풀어나가기를 기도했다. 어느 날 딸아이가 했던 말이 자꾸 머리에서 맴돈다. “어른들은 꿈을 가져라.”해놓고 “아이가 꿈을 갖고 그 꿈을 위해 달려가려하면 어른들 잣대로 꿈을 짓밟으려 한다.“고 항변하던 모습이 오늘따라 더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심란한 마음으로 출근하여 앉아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다.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이 오늘은 다 같은 마음 일게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뒤엉킨다. 밥 먹는 시간 빼고는 하루 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으니 두 아이 모두 체중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딸아이가 “엄마, 숨 쉬기가 힘들어. 살이 쪄서 호흡이 곤란해.”한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커지는 얼굴이 내심 걱정되기도 하였다. 앉아 있으니 살찐 복부의 팽만함이 가슴 쪽으로 올라와 앉아있기가 정말 힘든가보다. 공부하기도 힘들 텐데 볼 상 사납게 변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아이를 우울하게 할지 짐작이 갔다. 친구들은 온갖 멋을 내고 남자친구도 만나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대학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부랴부랴 식이조절과 함께 살 빼기위한 처방을 받아왔다. 공부도 좋지만 자기에 대한 사랑과 함께 자신감 찾기가 더 급한 상황이 되었다. 한 달여 식이조절과 처방받은 약으로 두 아이가 체중조절을 하고 외모에 변화가 생겼다. 조금은 가벼워진 몸 때문에 아이들도 전보다 더 자신감이 생기고 밝아졌다. 하루는 딸아이가 친구를 만나고 오더니 “엄마, 나도 얼른 학교 다니고 싶어.”한다. 1년도 아닌 3년을 대학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있으니 얼마나 친구들이 부러울까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없이 아파왔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30여 년 전 어머니의 얼굴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시험 못 봤다고 탓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신 어머니! 어머니의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보고 싶으면 달려가서 볼 수 있는 곳에 계시니 너무 좋다. 나의 어머니처럼 아이들에게도 옆에 있어서 마냥 좋은 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삶의 절반을 살아보니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성적이 학벌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커다란 욕심이 아닌 자신이 꿈꾸고 있는 삶을.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이들의 엇갈린 환호성들이 쏟아질 시간이 다가왔다. 이왕이면 함박꽃처럼 환한 두 아이의 얼굴을 맞이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제 1년 동안 쌓였던 체증을 풀고 아이들이 교문을 향해 나온다. “덤덤하게 맞이해야지. 욕심 부리지 말자.”를 수없이 되뇌어 본다. 아들의 얼굴이 멀리서 보인다. 달려가 “그동안 고생했다.”하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듬직한 모습으로 웃는 얼굴만으로도 고마웠다. 자신보다는 동생이 더 걱정된단다. 시험이 어려웠다며 동생이 이번엔 잘 봐야 할 텐데 걱정이란다. 딸이 시험 본 고사장 앞은 시험이 끝나고 나오길 기다리는 부모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고사장 밖 풍경은 아들이 시험 본 곳과는 사뭇 모습이 달랐다. 딸아이들을 기다리는 곳이라 그런지 애태우는 모습이 더 역력하다. 드디어 시험시간이 끝나고 초조함으로 가득 매우고 있던 부모들이 교문 안으로 들어가 딸아이가 나오기를 목을 빼고 기다린다. 한 여학생이 나오며 “이제 해방이다. 속이 시원해.”한다. 묶어 놓았던 억눌림을 분출하는 그 표정은 그저 해맑기만 하다. 아빠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딸, 만세를 부르는 딸, 모두의 얼굴엔 해방감과 함께 아쉬움이 가득해 보인다. 드디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나오는 딸아이는 웃음으로 인사한다. 어려웠다고 큰 걱정을 한다. 아침에 고사장 앞에서 힘차게 소리치던 후배들의 “합격, 대박나세요.” 라는 울림이 아직도 교정에 여운으로 맴도는 것 같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머리에 쥐가 나도록 뇌를 썼으니 피곤도 할 텐데 수능이란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아이들을 들뜨게 한다.
매년 반복되는 고사장 앞의 진풍경처럼 아이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1년 365일 지속된다면 우리 아이들이 혼자 속앓이하며 가슴아파하고 목숨을 잃는 일은 생기지 않을 텐데. 성적에 대한 관심, 결과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부모들이 반성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12여 년을 대입합격을 위한 오늘을 위해 달려온 아이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인생의 출발을 알리는 첫발을 내딛은 거라고 박수를 보내본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길 그리고 꼭!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