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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의 아침
1202주일설교 사사기12 사사기5:1-31 드보라의 노래
본문: 사사기5:1-31
제목: 드보라의 노래
오늘은 사사기5:1-31의 말씀을 가지고
“드보라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드보라의 노래”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이 있습니다.
시편은 주로 다윗이나
성전 찬양대의 지휘자가 절기에 따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남자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여인들의 노래 곧 찬양이 나옵니다.
먼저 나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부르는 미리암의 노래이고
그 다음은 사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과
전쟁 후에 부르는 드보라의 노래이고
그 다음은 사무엘이 아들을 낳고 부르는
어머니 한나의 노래이고
그 다음은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들을 임신하고
부르는 마리아의 노래가 나옵니다.
그러한 노래들은
먼저 둘은 전쟁의 승리한 후에 부르는 노래이고
나중 둘은 주신 아이로 인하여 부르는 노래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드보라의 노래를 나누겠습니다.
드보라는 전쟁이 끝난 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노래를 부릅니다.
여기서 드보라와 바락의 이름이 모두 거론되지만
이 노래를 부른 중심인물은 드보라입니다.
드보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다른 지도자들, 즉 왕들과 통치자들에게
자신의 찬양을 들으라고 초청합니다.
1.여호와를 찬양(5:2-11)
먼저 드보라는 찬양의 대상인
여호와의 장엄한 현현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행진은 지진과 폭우와 비구름을 동반합니다.
천지를 울리며 돌진하시는 위엄스러운 여호와가
바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시내산의 그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드보라는 하나님을 가리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비구름을 몰고
땅을 울리며 달려오시는 분으로 그려냅니다.
이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다급하게 나선 아버지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오셔야 했을까요?
드보라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시대를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 또는 야엘의 날”이라고
표현합니다.
어떤 이는 왜 삼갈과 야엘이라는 두 이방인에게
그 시대의 이름을 붙인 것은
이스라엘의 지도력 결핍을
한탄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황은 세 가지로 그려집니다.
첫째, 가나안이 대로를 점령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꾸불꾸불한 작은 길로 다니는 모습입니다.
둘째, 지도자의 부재입니다.
드보라가 일어나기 전까지
이스라엘에는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드보라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당신에게로 돌이켜 간구하는 자녀를
어려움에서 건지시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셋째 이스라엘의 비참함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선택한 것에서 드러납니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은 섬긴 이스라엘은
적의 손에 넘겨져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성문에 이른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적군이 턱밑까지 이르렀지만
이스라엘은 창과 방패 같은
기본적인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드보라는 이런 심각한 정치적, 군사적,
영적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어났습니다.
드보라는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스라엘에 속한 각양 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5:10에 등장하는 “흰 나귀를 탄 자들”은 일반 백성들이고
“양탄자에 앉은 자들”은 말안장 위에 앉은 사람들,
즉 말을 타고 다니는 귀족들이나 군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길에 행하는 (걸어 다니는) 자들”
별다른 이동 수단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당당하고 즐겁게 큰길로 다니는 모습은
전쟁 전에 꾸불꾸불한 작은 길로 다니던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5:11은 “활 쏘는 자들의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여호와의 의로움”을 선포하라고 요청합니다.
“물 긷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일상에서 잡담과 소소한 정보들이 오가며
소문이 퍼지는 장소입니다.
떠들썩한 우물가에서 하나님이 하신 의로운 일,
즉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을
계속해서 찬양하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여호와의 구원이 이런 일상적이고 시끌벅적하며
유쾌한 삶을 이스라엘에 다시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모인 곳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경험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2.참여 지파와 불참 지파(11-18절)
11-18절에서는 전쟁에 참여한 지파들과
참여하지 않은 지파들의 목록을 보여줍니다.
드보라는 전쟁에 참여한 자들은 칭송하고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비난합니다.
사사기5:11에서 “그때”라는 지시어와 함께
과거로 돌아가 전쟁이 코앞에 닥친 상황이 재현됩니다.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위급한 상황에서
적들과 싸우기 위해 한곳에 모입니다.
그리고 지도자인 드보라에게
일어나라고 간절히 요청합니다.
그리고 네 번이나 반복되는
“깰지어다”라는 청원에 잘 드러납니다.
‘깰지어다’라는 말은 잠에서 깨다,
‘일어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주로 도움을 요청할 때 많이 사용되는데
드보라의 노래에서는 마치 위험에 처한 아이가
잠자고 있는 엄마를
급하게 흔들어 깨우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어서
바락에게도 일어나라고 요청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락에게 전쟁에서 이겨달라고 요청합니다.
재판을 담당하며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드보라가 백성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듣고
구원자로 나서게 된 과정을 드보라는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노래에는 4장과 달리 바락의 불신앙과
주저함에 관한 부정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노래의 관심이 전쟁에 참여한 자와
참여하지 않은 자에 대한 축복과 비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락은 비록 주저하기는 했지만 참전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바락은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사사 드보라와 바락이 일어나자
각 지파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전쟁을 위해
모이기 시작합니다.
“내려오다”라는 동사의 반복된 사용은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그리고 사사기 5:13에서 최종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내려오시므로 전쟁의 준비가 완성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도자들과 백성이 내려오신 후
마지막으로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내려오십니다.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비구름을 몰고 세일산을 지나서
이제 가나안 땅에 도착하신 것입니다.
사사기5:14-15은 이번 전쟁에 참여한
지파의 명단을 보여줍니다.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마길-므낫세과
스불론과 잇사갈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렇게 전쟁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내려온 지파들과 달리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지파들도 있었습니다.
사사기5:15-17은 불참 지파 명단을 보여줍니다.
먼저 르우벤 지파와 관련하여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5:15)라고 보고합니다.
여기서 큰 결심이라고 번역된 말은 확고한 결심을 못하고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라는 표현은
16절에서도 똑같이 반복되는데,
이는 장자 지파인 르우벤이 끊임없이 갈등하며
전쟁에 나서지 않은 것을 강하게 비판하기 위해서입니다.
르우벤 지파는 자신들의 안전한 터전인 시냇가에 앉아서
전쟁에 참여할지 말지를 고민만 할뿐,
생업에 몰두하며 양들 사이에서
목가적으로 지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요단 동편에 거하던 길르앗 지파는
서편 지역의 전쟁에 관해 무관심했습니다.
그리고 단과 아셀 지파는 배 위에,
혹은 해변에 머물며 전쟁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불참 지파의 공통점은
주로 물가에 있다는 것과 “거주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이는 그들이 안정된 거주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사사기5:18은 그들과 대조적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며 참전한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를 이야기합니다.
이 역시 극명한 대조를 통해
불참 지파를 향한 비난의 강도를 높여줍니다.
드보라가 노래를 남긴 주요한 목적 중 하나는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한 자들에 대한 축복과
불참한 자들에 대한 비난입니다.
3.므깃도 전투의 승리(5:19-22)
5:19-22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주인공들이 실제로 치른 전쟁을 다룹니다.
여기서는 전쟁 장면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면서
시적인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별들이 하나님의 시종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이는 가나안과의 전쟁이 철저히 여호와의 전쟁임을
나타내기 위한 문학적인 장치입니다.
사사기 5:19을 전쟁을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가나안 왕들이 탈취물을 얻지 못했다는 표현은
가나안이 전쟁에 패배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줍니다.
4장에서 나오지 않는 “왕들”이란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는 시적인 과정으로
이 전쟁을 시스라와 바락의 대결이 아니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가나안 전체와
이스라엘의 대결로 바라봅니다.
사사기5:20-22은 전쟁을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이 구절은 이번 전쟁이 천상의 존재인 하나님과
땅의 존재인 시스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별들이 시스라와 싸웠다는 표현은 매우 독특합니다.
“별들의 전쟁”이라는 개념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이곳에 단 한 번 등장합니다.
고대 근동의 서사시에서 별들은
폭우의 근원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드보라의 노래에 등장하는
“별들이 싸웠다”는 표현은
고대 근동의 이미지를 빌린 것으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한 엄청난 폭우가
시스라의 군대 위에 퍼부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구름을 몰고 에돔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오신 여호와 하나님이 기손강에 모인
시스라의 군대에 폭우를 쏟아 부으셨습니다.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발맞춰
드보라는 “나의 영혼아, 힘차게 짓 밟아라”고 외치며
진군 명령을 내립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과 끝까지
싸우도록 독려합니다.
여기서 드보라는 전쟁을 이끄는 사사로서의
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사기5:22은 시스라의 군대가 범람한 기손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말굽 소리가 땅을 울리도다”/
“그의 군마가 따그닥 따그닥 거렸다” 정도가 됩니다.
이처럼 드보라는 의성어를 사용해 군마들이 우왕좌왕하며 극도로 혼란에 빠진 적군의 모습을 자세히 그려냅니다.
이런 생생한 모습은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던
가나안의 철 병거가
여호와 하나님의 압도적인 권능 앞에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4장에서는 전쟁 준비와 진행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지만
전쟁 자체를 설명할 때는 여호와가 적군을 칼날로 혼란에 빠뜨리셨다고 은유적으로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일반적으로 여호와의 전쟁은
전쟁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참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시의 형식으로 구성된 사사기 5장은
앞서 말한 여호와의 칼날이 폭우이며
그로 인해 시스라의 병거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시적 언어로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해줍니다.
4.전쟁 후의 상벌(5:23-31)
전쟁 후의 상벌을 논하고 결론을 짓는 부분입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메로스는
대표적으로 저주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시스라를 죽인 야엘은 축복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야엘의 용감한 행동은 허구적 인물인
시스라의 어머니가 품는 헛된 기대와
대조를 이루어 두드러집니다.
드보라는 이런 대조를 통해
여호와의 편에 선 자와 여호와에게 대적하는 자의 운명이
어떻게 갈리는 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메로스의 대한 저주(5:23)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 즉 천사가 갑자기 등장한다.
이로 볼 때 드보라가 하는 저주와 축복은
드보라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예언자로서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분명합니다.
4장에서 언급되지 않던 메로스가
5장에서는 야엘의 축복과 대조를 이루며 등장합니다.
원어 성경에 따르면 여호와의 사자는 “저주하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메로스에 강한 저주를 퍼붓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메로스를 저주하는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돕지 않고
자기가 사는 곳에 그대로 거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앞에서 보았던 물가나
초장에 거하며 참전하지 않은 지파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따라서 메로스에 대한 저주는
참전하지 않은 모든 지파에 대한 것으로
확대해석할 수 있습니다.
메로스는 이 시에서 여호와를 돕지 않은 자들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야엘의 축복
야엘에 대한 축복은
메로스에 대한 저주와 대조를 이룹니다.
드보라는 야엘이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라고 노래합니다.(5:24)
야엘은 여인 중에 가장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막에 있는 여인”이란 말은
평범한 가정주부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야엘이
왜 가장 축복받는 여인이 되었는지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사사기5:25-27절은 그 이유를 설명하며
야엘이 시스라를 죽이는 장면을 다시 한 번 묘사합니다.
4장에서는 야엘이 시스라를 자신의 장막으로 불러들여
숨겨주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면
이번에는 야엘이 시스라를 죽이는 장면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장면은
더 자세하고 감각적으로 서술됩니다.
사사 5:25에서 시스라는 야엘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물은 죽음과 저주를 상징합니다.
저주받은 불참 지파 대부분이 물가에 있을 뿐 아니라
시스라의 군대가 대패한 이유도 물 곧 비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시스라는 죽음의 물을
간신히 피하여 도망쳐 왔지만
야엘을 만나 물을 먼저 요구합니다.
이는 시스라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야엘은 물을 구하는 시스라에게
우유를, 그것도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줍니다.
이는 야엘이 시스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겠지만
시스라의 처참한 최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그래서 야엘에 의해서
말뚝이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뚫고 들어가므로
시스라는 꾸부러지고 엎드러졌습니다.
27절은 그것을 세 번이나 반복하여 죽었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시스라 편에서 볼 때
이런 구체적인 묘사와 강조는 매우 불쾌한 것입니다.
몸부림치다 철저히 파괴되어 죽어 넘어진 자의
비참함을 조롱하는 듯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편에서 보자면
자신들을 수십 년 간 끔찍하게 괴롭혀온 적장이 죽는
장면은 반복해서 들어도 기쁘고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포츠에서 이길 때 장면, 만루홈런으로 승리할 때)
이처럼 가나안의 적장 시스라는
여자의 손에 의해 여자의 발 사이에
쓰러져 죽는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반대로 야엘은 이스라엘의 승리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기에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추앙되고 축복을 받습니다.
4장에서는 드보라의 예언의 성취가
야엘에게서 이루어졌음을 중심에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5장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상벌에 관한 이야기로
야엘의 행동이 영웅적이었다는 평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시스라의 어머니의 비극(삿5:28-30)
시스라 어머니의 이야기는 시적 상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치 텔레비전에서 이원 생중계를 하듯이
상상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시스라의 어머니와 시녀들은
불안감을 억누르고 전쟁에서 이긴 시스라가
가져올 노획물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첫째로 언급되는 노획물이 “처녀들”입니다.
여기서는 여성을 자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엘이 시스라를 죽이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딸들은
가나안의 남성들의 성적 도구로 끌려왔을 것입니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예상보다 늦게 돌아오는 아들을
걱정하는 모성애를 가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포로로 잡혀 오는 여자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며 노획물이 많기를 바라마지않는
무정하고 탐욕스런 인물이기도 합니다.
노래의 결론
사사기5:31은 노래의 결론입니다.
이 구절은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선 자와
반대편에 선 대적의 운명에 관한 대조를 분명히 하며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여기서 주를 사랑하는 자는
여호와와 언약의 관계를 맺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드보라는 이처럼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전쟁뿐입니까?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을 그 일을
하나님께서 혼자 하시지 않습니다.
함께 할 자를 부르십니다.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내가 누리던 것을 버리고 가야 하는 일입니다.
평안한 삶을 포기하고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그런 분리가 있습니다.
교회 일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멀리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부르는 전쟁이나 일은
승리가 보장되는 전쟁이고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4-5장에서 보여 지는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참여하여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거두기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축복과 저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순종한 자와 순종하지 않은 자는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전쟁에
하나님의 일에 적극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락처럼 불안하고 의심도 있지만
그래도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일 때문에 나와 상관없어 보인다고
참여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에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는 일이 무엇이십니까?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
복을 받고 칭송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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