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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피에르 오귀스탱 카롱 드 보마르셰 <세비야의 이발사>
대본 체사레 스테르비니
초연 1816년 로마 아르젠티나 극장
<2016년 6월 글라인드본 페스티벌 / 165분 / 한글자막>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글라인드본 합창단 연주 / 엔리크 마촐라 지휘 / 애너벨 아덴 연출
피가로...............이발사. 바르톨로의 단골 이발사........비외른 부르거(바리톤)
알마비바 백작.....세비야의 젊은 백작.........................테일러 스태이턴(테너)
로지나...............바르톨로의 후견을 받고 있는 처녀.....다니엘레 드 니세(메조소프라노)
바르톨로 박사.....의사. 로지나의 후견인.....................알레산드로 코르벨리(바리톤 혹은 베이스)
돈 바질리오........음악 선생. 로지나의 개인 교사..........크리스토포로스 스탬보글리스(베이스)
피오렐로............알마비바 백작의 하인......................?(베이스)
베르타...............바르톨로 집안의 늙은 하녀...............제니스 켈리(메조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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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세비야의 이발사>. 최고의 화질과 음질로 만나다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 2016년 6월 실황. 바로크부터 이탈리아 오페라를 두루 섭렵한 로지나 역의 다니엘레 드 니세가 눈길을 끈다. 투명하고 낭랑한 목소리에 유머 감각까지 더해진 니세의 노래는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애나벨 아덴의 연출은 시각적 세련미와 웃음의 분위기를 선사하며, '가디언'지로부터 "빈틈없는 앙상블"이라는 찬사를 받은 엔리크 마촐라가 런던 필과 빚어내는 음악에는 윤기가 흐른다. Full HD 1080p의 화질과 카메라 워킹은 영화적 재미를 더하고, 24비트 스테레오와 DTS HD 마스터 오디오 기능은 지휘자·성악가·오케스트라의 경쾌한 호흡을 여실히 드러내어 로시니의 작품이 지닌 웃음의 정수를 보여준다. 다니엘레 드 니세와 엔리크 마촐라가 공연영상을 보며 설명하는 코멘터리 필름(약 165분)과 메이킹 필름(약 7분)이 포함되었다.
1934년부터 개최된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은 새로운 프로덕션을 부지런히 선보이는 영국의 중요 페스티벌이다. 이 공연은 이 페스티벌에서 2016년 6월에 선보인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실황이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1816년 로마에서 초연된 작품. 로지나는 바르톨로 박사의 아름다운 피후견인으로, 박사는 그녀와 결혼할 계획을 세워둔다. 그런데 로지나와 사랑에 빠진 알마비바 백작이 솜씨 좋은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을 받아 박사의 집에 잠입한다. 처음에는 그 집에 숙소를 배정 받은 군인으로, 그 다음은 노래 선생으로 변장한다. 알마비바 일당이 바르톨로 집안 사람들을 속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고, 박사의 집안사람들도 똑같은 방법으로 로지나의 사랑을 얻으려 하면서 이야기의 재미가 더해간다.
로지나 역의 다니엘레 드 니세는 매혹적이다. 몬테베르디 <포페아의 대관식>에서 포페아를, 헨델 <줄리오 체사레>에서 클레오파트라 등을 노래한 그녀는 바로크 음악계의 흑진주로 떠올랐으며, 본 작품의 로지나 역을 통해 영국 유력지 '인디펜던트'로부터 "강력하게 노래를 구사한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투명하고 낭랑한 목소리에 유머 감각까지 더해진 니세의 노래는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알레산드로 코르벨리는 분노에 치를 떨고, 자존심에 상처 입고, 절망하는 바르톨로 박사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모차르트 <마술피리>, 몬테베르디 <율리시즈의 귀환>, 푸치니 <잔니 스키키> 등을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단골연출가 애나벨 아덴의 연출은 시각적 세련미와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의 연출에 의해 지휘자 엔리크 마촐라도 무대를 향해 "고맙네, 친구들. 기타는 한 대면 충분하네"라며 연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엔리크 마촐라와 런던 필이 빚어내는 음악에는 윤기가 흐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으로부터 "빈틈없는 앙상블"이라는 찬사를 받을만하다.
그 외에 다니엘레 드 니세와 엔리크 마촐라가 함께 공연영상을 보며 해설하는 코멘터리 필름(약 165분, 자막 없음)과 메이킹 필름(약 7분, 자막 없음)이 포함되어 있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정주은 글>
세비야의 이발사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
〈세비야의 이발사〉는 오페라 부파의 거장 조아키노 로시니의 대표작으로, 1816년에 작곡되어 초연 이후부터 지금까지 널리 연주되고 있다. 젊은 귀족 알마비바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여인 로지나와 결혼하는 해프닝을 다룬 이 작품은 보마르셰의 희곡 3부작 중 1부를 오페라로 옮긴 것으로, 19세기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 전성시대를 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보마르셰 희곡 3부작
〈세비야의 이발사〉는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오귀스탱 카롱 드 보마르셰가 쓴 희곡 3부작 가운데 1부에 해당하는 《세비아의 이발사》를 원작으로 하여 체사레 스테르비니가 이탈리아어 대본을 만들고, 로시니가 곡을 붙인 오페라이다. 이른바 보마르셰 3부작이라 불리는 희곡은 1부 《세비아의 이발사》(Le Barbier de Séville), 2부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 3부 《죄 많은 어머니》(La Mere Coupable)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인기가 높아서 18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다양한 오페라로 제작되었다.
1부 《세비아의 이발사》는 1816년 로시니가 오페라로 만들기 전인 1780년대에 이미 이탈리아 작곡가 파이시엘로가 먼저 오페라로 만들었으며, 2부 《피가로의 결혼》은 1786년 모차르트가 오페라로 작곡했다. 3부 《죄 많은 어머니》는 오랫동안 오페라 작곡가들의 관심 밖에 있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음악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전체 작품이 오페라화 된 것은 아니어서, 1991년 존 코릴리아노가 자신의 오페라 〈베르사유의 유령〉(The Ghosts of Versailles)을 제작하면서 3부의 내용을 일부 인용한 것에 그쳤다. 그러나 한 작가의 연작 희곡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음악가들의 관심을 받았던 예는 드문 것이기에 보마르셰의 희곡은 18세기 후반 오페라 부파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파이시엘로와의 맞대결
1809년 첫 번째 오페라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오페라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한 로시니는 1816년 보마르셰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 부파 〈세비야의 이발사〉를 완성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로시니보다 34년이나 앞서 조반니 파이시엘로가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를 발표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대중의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는 대선배 작곡가와 같은 내용의 오페라를 발표한다는 것이 젊은 로시니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선배 작곡가에 대한 도전이나 정면 대결로 비쳐질 것을 우려한 로시니는 파이시엘로와 비교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오페라의 제목도 ‘알마비바’ 또는 ‘부질없는 걱정’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완성된 로시니의 오페라는 1816년 2월 20일 로마 아르젠티나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제목은 바꾸었지만, 파이시엘로와 같은 내용의 오페라를 발표한다는 것을 안 파이시엘로의 추종자들이 극장을 찾아 훼방을 놓는 바람에 초연 무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들은 객석에서 야유와 고함을 지르고 휘파람을 부는 것은 물론이고 무대 위에 고양이까지 풀면서 고의적으로 공연을 방해했다.
오페라의 초연 무대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얼마 뒤 파이시엘로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로시니는 오페라의 제목을 〈세비야의 이발사〉로 바꾸고 적극적으로 공연을 이어갔다. 초연 당시에는 파이시엘로 작품의 인기가 높았지만 오늘날에는 〈세비야의 이발사〉하면 당연히 로시니의 작품을 떠올릴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벨칸토 아리아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18세기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수도 세비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람기 많은 젊은 귀족 알마비바와 그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 로지나가 결혼에 성공하기까지의 해프닝을 유쾌하게 그린 오페라는 내용이 밝고 유머러스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희극 오페라, 즉 오페라 부파이다. 두 연인이 오해와 갈등으로 엇갈리다가 마침내 사랑을 확인하기까지의 과정 안에는 둘 사이를 방해하는 늙은 후견인과 반대로 둘 사이를 적극적으로 돕는 마을의 해결사 피가로 등 개성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극에 긴장과 재미를 더한다.
로시니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을 특징으로 한 벨칸토 아리아를 통해 오페라 부파의 음악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콜로라투라의 화려한 기교를 요구하는 여주인공 로지나가 부르는 ‘방금 들린 그대 음성’이나 마을의 만물박사이나 만능 재주꾼임을 과시하는 피가로가 부르는 아리아 ‘나는야 이 거리의 만물박사’ 등은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아리아이자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또한 오페라 부파에서 빠질 수 없는 저음의 베이스 가수들이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파를란도풍의 음악들, 예를 들어 ‘험담은 미풍처럼’ 등도 음악적 재미와 완성도를 더한다.
1막
젊은 귀족 알마비바는 우연히 만난 여인 로지나에게 반해 매일 새벽 악사들을 동원해 그녀의 집 앞에서 세레나데를 부르지만, 후견인 바르톨로가 바깥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에 로지나의 방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알마비바는 세비야의 만능 해결사인 피가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피가로는 술 취한 장교인 척하며 로지나의 집에 들어가 재워달라고 청하라는 조언을 한다. 한편 린도르라는 가명으로 세레나데를 부른 알마비바를 사랑하게 된 로지나는 그에게 편지를 쓰고, 마침 피가로가 오자 린도르에게 전해달라며 편지를 준다. 그때 술 취한 장교로 변장한 알마비바가 로지나의 집을 찾아와 재워달라고 청하고, 그를 견제하는 후견인 바르톨로는 그 청을 거절한다. 때마침 군인들이 로지나의 집에 들이닥치고 알마비바는 군인 대장에게만 귀족인 자신의 신분을 은밀히 밝혀서 정체가 탄로 날 위기로부터 벗어난다.
2막
알마비바 백작이 음악선생으로 변장하고 다시 로지나의 집을 찾아온다. 몸이 아픈 음악 선생을 대신해 수업하러 왔다며 로지나의 방에 들어간 알마비바는 로지나와 행복한 시간을 갖고, 그동안 피가로는 바르톨로에게 면도를 해주면서 로지나의 방 발코니 열쇠를 빼낸다. 그때 진짜 음악선생인 돈 바질리오가 나타나 알마비바는 정체가 탄로 날 위기에 처하고, 백작은 돈 바질리오를 돈으로 매수해 다시 한 번 위기에서 벗어난다.
한편, 불안함을 느낀 후견인 바르톨로는 로지나와 결혼을 서두르기로 하고 린도르는 로지나에게 자신의 이름이 가명임을 밝힌다. 린도르(알마비바)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로지나는 배신감에 바르톨로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그날 밤 알마비바는 피가로가 준 열쇠로 로지나의 방에 들어와서 자신의 신분을 솔직히 밝히고 로지나의 오해를 푼다. 때마침 바르톨로가 로지나와 결혼하기 위해 공증인을 데려오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힌 백작은 로지나의 재산을 바르톨로에게 넘겨주고 로지나와 행복한 미래를 약속한다.
주요 음악
서곡(overture)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세비야의 이발사〉의 서곡은 새로 작곡한 것이 아니라 로시니가 1815년에 작곡한 오페라 〈영국 여왕 엘리자베타〉의 서곡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서곡 또한 1813년에 완성한 오페라 〈팔미라의 아우렐리아노〉에서 가져온 것으로 당시에는 이렇게 서곡을 차용하는 일들이 통용되었다.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은 오페라 부파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연상시키듯 E장조로 경쾌하게 펼쳐진다. 또한 곡이 진행될수록 템포가 빨라지고 다이내믹도 커지면서 극적으로 몰아가는 이른바 ‘로시니 크레셴도’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름다운 아침은 밝아 오고(Ecco ridente in cielo)
1막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알마비바 백작의 카바티나이다. 카바티나란 18~19세기에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에서 자주 나타나는 독창 노래로, 아리아보다 형식이 단순하고 곡도 비교적 짧으며 프레이즈나 가사의 반복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1막의 카바티나는 로지나의 창 아래에서 악사들과 함께 세레나데를 부르던 알마비바 백작이 로지나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날이 밝아 오자 실망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아름다운 아침은 밝아오고. 사랑하는 그대여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가? 그대를 향한 벅찬 이 가슴 속에 빨리 일어나 달려와 내 품에 안겨 주길”이라는 내용의 가사가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과 잘 어우러진다.
나는야 이 거리의 만물박사(Largo al factotum della citta)
1막에서 피가로가 등장과 함께 부르는 경쾌한 아리아로 피가로가 으스대며 자신을 소개하는 이 아리아는 〈세비야의 이발사〉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 ‘라라라레라~ 라랄라라~’의 경쾌한 도입부로 시작한다. 자신감 넘치고 유쾌한 피가로의 성격을 대변하는 아리아로,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선율에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가사가 희극적인 재미를 더한다. 자신은 천하제일 수완 좋은 이발사이자 해결사로 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문제만 생기면 찾는다는 내용으로 “여기, 저기, 여기, 저기···” 혹은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등의 대조적인 가사가 빠르게 이어지면서 선율적으로도 해학적인 재미를 느끼게 한다.
방금 들린 그 목소리(Una voce poco fa)
여주인공 로지나가 린도르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알마비바 백작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에 부르는 서정적인 아리아다. 린도르의 정체를 모르는 로지나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여인이 설레는 마음을 편지에 담으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다카포 아리아의 ABA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고음역을 오가는 가볍고 화려한 기교를 강조하는 콜로라투라의 목소리로 부르는 벨칸토 아리아이다.
험담은 미풍처럼(La calunnia e un venticello)
‘험담은 미풍처럼’은 1막 2장에서 로지나의 음악 교사로 등장하는 돈 바질리오가 부르는 아리아이다. 돈 바질리오는 바르톨로에게 로지나가 알마비바 백작에게 마음을 두고 있음을 말하며, 둘을 떼어놓으려면 백작에 관한 험담을 늘어놓으라고 조언하는 부분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돈 바질리오는 비중이 큰 역은 아니지만 갈등의 실마리를 제공하거나 유쾌한 웃음을 주는 감초 같은 배역이다. 오페라 부파에서 이런 배역은 주로 베이스가 맡아 말하듯이 읊조리는 파를란도 풍의 음악으로 재미를 주는데, ‘험담은 미풍처럼’ 역시 그런 베이스 아리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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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1년 3월 23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클래식 명곡 명연주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Il Barbiere di Siviglia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희극 오페라를 꼽으라면 역시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의 [세비야의 이발사 Il Barbiere di Siviglia]가 1순위입니다. 이 소재로 오페라를 만든 작곡가는 모두 열 명이 넘지만, 이 오페라와 관련해 우선 세 사람의 이름만은 기억해둘 만합니다. 보마르셰, 파이지엘로, 로시니가 그들입니다.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오귀스탱 카롱 드 보마르셰(1732-1799)는 ‘피가로 3부작’의 제 1부로 이 [세비야의 이발사]를 써서 1775년에 연극으로 초연했습니다. 그리고 로시니의 선배 작곡가인 이탈리아의 조반니 파이지엘로(1740-1816)는 보마르셰의 작품을 토대로 페트로셀리니가 쓴 대본에 곡을 붙여 이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1782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무대에 올렸지요.
파이지엘로는 당시 대단히 역량 있는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을 뿐 아니라 러시아 궁정작곡가로 일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는 러시아 초연 후 유럽 30여 개 도시에서 장기공연 레퍼터리가 되었습니다. 로시니가 1816년에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발표하기까지 34년 간 파이지엘로의 이 작품은 변함없는 인기를 누렸답니다. 로마의 ‘테아트로 디 토레 아르젠티나’라는 극장에서 초연된 로시니의 ‘이발사’는 파이지엘로의 제목을 감히 쓸 수 없어 ‘알마비바 또는 소용없는 예방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이 초연은 음악사의 유명한 스캔들이 되고 말았지요. 극장 건물은 지저분하고 부실한데다 파이지엘로의 추종자들은 떼로 몰려와 공연을 방해했으며, 고양이까지 무대를 휘젓고 다니면서 가수들을 놀래키는 등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관객은 오페라의 유머러스한 내용 때문에 웃은 것이 아니라 황당한 공연 분위기에 웃음을 연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해에 파이지엘로가 세상을 떠나자 상황은 반전되었습니다. 대선배가 죽자마자 로시니는 두 달만에 자기 작품에 당당하게 [세비야의 이발사]라는 제목을 붙였고, 초연 때는 로시니의 음악이 괴상하다며 흠을 잡던 관객들도 볼로냐 공연 이후로는 차츰 로시니에게 환호하며 오히려 파이지엘로의 [이발사]를 잊어갔습니다. 파이지엘로는 대체로 보마르셰의 희곡에 충실한 대본으로 작곡을 했지만, 로시니는 대본작가 스테르비니와 함께 대본의 많은 부분을 수정했는데, 두 작품 모두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적극적이고 당찬 메조소프라노 여주인공
마드리드에서 우연히 마음에 꼭 드는 처녀를 본 젊은 알마비바 백작은 그녀를 사귀려고 세비야까지 따라옵니다. 처녀의 이름은 로지나(Rosina). 하지만 처녀의 젊음과 재산 양쪽에 다 욕심을 내며 그녀와 결혼하려는 바르톨로라는 나이 든 의사가 후견인으로 버티고 있어 어떤 남자도 그녀를 만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매일 아침 로지나의 창문 아래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던 백작은 운 좋게도 한때 자신의 하인이었던 피가로를 우연히 만나죠. 현재 자영업자 이발사로 일하는 피가로는 자신이 이 세비야에서 얼마나 인기있는 인물인가를 들려주는 아리아 ‘나는 마을의 만능일꾼 Largo al factotum’을 부릅니다.
피가로의 계략대로 평민으로 가장하고 린도로라는 가명을 써서 로지나의 사랑을 확인하는 데 성공한 백작은 욕심 많은 후견인의 감시를 피해 로지나를 데리고 도망가려고, 한 번은 술 취한 군인, 한 번은 음악선생의 대타(백작은 로지나에게 노래 지도를 하는 음악선생 바실리오가 앓아누웠다고 바르톨로에게 거짓말을 합니다)로 변장해 로지나의 집을 찾아오지요. 그러나 이 시도는 두 번 다 들통이 나 실패로 돌아가고, 천둥번개 요란한 밤에 사다리를 이용해 몰래 로지나를 탈출시키려던 피가로와 백작은 로지나와 결혼하려고 바르톨로가 불러들인 공증인과 바실리오에게 발각됩니다. 그러나 바실리오는 백작에게 매수되어 바르톨로 대신 백작의 결혼식 증인이 되고, 뒤늦게 쫓아온 바르톨로가 발을 동동 구를 때 모두는 그의 욕심을 비웃어 줍니다.
오페라에서 테너는 일반적으로 젊음의 패기와 열정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로지나에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백작은 테너 배역입니다. 이발사 피가로 역시 젊고 패기에 넘치긴 하지만 돈을 아주 좋아하고 돈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시민사회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능청스런 음색의 바리톤에게 이 역할을 맡깁니다. 기지와 계략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운명을 개척해가는 로시니 희극의 여주인공들(로지나, 안젤리나, 이사벨라)은 대개 메조소프라노 배역입니다. 소프라노는 연약하고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에게 더 어울리기 때문이죠.
기악부의 독립, 저음 가수의 기교적 가창
상트 페테르부르크 궁정의 의뢰를 받아 이 오페라를 작곡했던 파이지엘로와 프리랜서 작곡가로 이 작품을 만든 로시니 사이에는 34년의 세월뿐만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엄청난 사회 변화의 동인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소재라 해도 두 작품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일례를 들면, 파이지엘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궁정극장이 동의하지 않아 이 오페라에 합창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로시니는 작곡에 관한 한 뭐든지 맘대로 할 수 있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합창을 썼습니다. 1막과 2막 피날레에서 솔로, 2중창, 3중창을 거쳐 6중창까지 발전한 선율이 다시 합창과 합류하며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피날레를 이루는 장면을 들으면(이런 식의 점층법을 ‘로시니 크레셴도’라고 부릅니다) 이 작품에서 합창이 희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답니다.
파이지엘로의 [이발사]에서는 당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성악부와 기악부 사이의 뚜렷한 주종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반주가 가볍고 우아하게 성악부의 선율을 흉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시니의 [이발사]에서 오케스트라는 성악부의 멜로디를 따라가지 않고 독립적이고 색채감 있는 연주를 들려주며, 장면이 전환될 때는 성악부의 선율을 예고하거나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파이지엘로가 여주인공 로지나에게만 대단한 콜로라투라 기량을 요구한 것과는 달리 로시니는 넘치는 열정과 희극성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인물 모두에게 이를 요구했습니다. 또 바리톤이나 베이스 같은 저음 가수들도 랩처럼 빠른 속도로 노래하는 ‘파를란도(parlando)’를 능숙하게 구사해야 했지요. 음악적으로는 파이지엘로의 선율이 더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역시 대혁명 이후의 시민 정서를 담뿍 담은 로시니의 개성적인 인물들이 우리를 훨씬 큰소리로 웃게 해줍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로지나 / 알마비바 백작 / 피가로 순
[음반] 마리아 칼라스/루이지 알바/티토 곱비 등, 알체오 갈리에라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58년 녹음, EMI
[음반] 엘리나 가랑차/로렌스 브라운리/나탄 군 등, 미구엘 고메스 마르티네스 지휘, 뮌헨 방송교향악단 및 바이에른 방송합창단, 2005년 녹음, Sony
[DVD] 테레사 베르간사/루이지 알바/헤르만 프라이 등,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장 피에르 포넬 연출, 1972년(영화판), DG
[DVD] 조이스 디도나토/후안 디에고 플로레스/피에트로 스파뇰리 등,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모셰 라이저 & 파트리스 코리에 연출, 2009년 실황, Virgin Classics
[네이버 지식백과]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Rossini, Il Barbiere di Siviglia]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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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2월 4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나는야 거리의 만능 일꾼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극작가 보마르쉐(Baumarchai)의 원작에 의한 이 오페라는 그 뒷이야기가 모차르트의 [휘가로의 결혼]이다(모차르트가 먼저 작곡해서 선후가 뒤바뀌게 되었다). [휘가로의 결혼]에 비해 로씨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세비야의 이발사)]는 한 없이 밝고 쾌활한 희극이며 독일과 이탈리아의 작곡가의 체질이 그만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로씨니는 이 오페라 붓화(Opera Buffa=희가극)를 불과 13일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겨우 24세였다. 대본은 스테르비니(Cesare Sterb ini)이다.
거리의 해결사 휘가로의 활발한 등장
18세기, 스페인 안다루시아의 옛 도시 세빌리야(세비야)다. 알마비바 백작이 문득 어쩌다 한번 본 로지나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의 창문 밑에서 세레나데를 불러 사랑을 호소한다. 그러나 여자는 대답이 없다, 아니, 실은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후견인인 바르톨로가 결혼하면 막대한 재산이 따라오기로 되어 있는 그녀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난처한 처지에 놓여있는 백작 앞에 휘가로가 등장한다. 동 트는 새벽 거리에 “나는야 거리의 만능 일꾼”하고 경쾌하게 노래하면서 발걸음도 가볍게 나타난다.
'나는야 거리의 만능 일꾼'
라란라레라, 라란라라.
비켜라 이 몸은 거리의 만능 일꾼.
서둘러 가게로, 벌써 날이 밝았으니.
아, 이 얼마나 멋있는 삶이냐,
신나는 놀이냐,~
이발사 신세로, 좋은 솜씨만 있다면.
아, 훌륭해 휘가로, 훌륭해, 최고로 훌륭해,
운도 최고, 정말로. 훌륭해
준비만 잘 하면 뭐든 다 해,
밤이건 낮이건 가리지 않고
언제나 여기저기 출장을 가지.
최고의 극락(極樂), 이발사 신세로,
이처럼 고상한 생활은 없어.
면도칼에 빗,
수술용 칼에 가위는
언제나 쓸 수 있게
모두 여기 있다.
~~
더구나 거기에는
일의 밑천이 있어,
부인네가 찾아도, 신사 분이 찾아도 (염려 없어).
아, 이 얼마나 멋있는 삶이냐,
신나는 놀이냐,~
이발사 신세로 좋은 솜씨만 있다면.
모두가 나를 찾는다.
모두가 나를 바란다.
귀부인, 젊은이,
늙은이, 아가씨.
여기서는 가발
저기서는 서둘러 콧수염...
여기서는 피를 빼 달라고...
저기서는 서둘러 편지를...
모두가 나를 찾는다.
모두가 나를 바란다.
여기서는 가발
저기서는 서둘러 콧수염...
저기서는 서둘러 편지를...
휘가로, 휘가로......
세상에, 이 광란이란!
세상에, 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한 분씩 부디 부탁합니다요.
어이 휘가로! 여기 있습니다.
어이 휘가로! 네, 여기 대령했습니다.
휘가로가 여기 있다, 휘가로가 저기 있다!
휘가로가 올라간다, 휘가로가 내려 간다
재빨리, 남 달리 재빠르게
마치 번개불 같아요.
나는 바로 거리의 만능 일꾼.
아, 훌륭해 휘가로 훌륭해, 최고로 훌륭해,
운도 최고, 최고, 최고~, 정말로!.
아, 훌륭해 휘가로 훌륭해, 최고로 훌륭해,
너에게 행운이
내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바로 거리의 만능 일꾼~~~!
휘가로의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통쾌한 아리아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사랑의 주역은 로지나와 린도로(알마비바 백작의 거짓 이름)이지만 사건의 진행은 거리의 어느 골목이든 출입하고 누구나가 소중히 여기는 휘가로가 끌고 나간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 행동도 재빠른데다 거리 최고의 정보통이기도 한 그의 맹활약이 없다면 모든 일이 그렇게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뒤를 이어 계속되는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은 이 오페라의 경쾌한 감초 휘가로가 “비켜라 거리의 만능 일꾼이 나간다”(Largo al factorum)하고 속사포처럼 쏟아낼 때 이미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추천할 만한 음반과 DVD
[CD] 구이 지휘, 로이얼 휠하모니 관현악단/글라인드본 합창단(1962) 브루스칸티니(Br) EMI
이탈리아 태생의 구이(Vittorio Gui,1885-1975)는 휘렌쩨 음악제와 세계 제2차 대전 후는 글라인드본 음악회를 주최하여 활약했고 모차르트와 로씨니 음악에 대한 해석에는 일가견을 가진 대가였다. 아바도 이전의 제1기 로씨니 르네상스의 중심인물이었다. 로스 앙헬레스, 알바(Luigi Alva), 브루스칸티니(Sesyo Bruscantini)의 품위 있는 교묘한 기교적인 노래와 인간적인 따뜻함, 여기에 즉흥성뿐이 아닌 확신에 찬 아름다운 로씨니 크레센도를 구이가 펼치고 있다.
[CD] 아바도 지휘, 런던 교향악단/앰브로지아 합창단(1971) 프라이(Br) DG
정교(精巧)한 리듬, 미묘하게 움직이는 강약의 율동, 억지가 없는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약동하는 음악, 지금까지의 한낱 우스갯거리였던 오페라 붓화와는 완전히 다른 모차르트의 유연함과 자유로움까지 느끼게 해주는 음악극으로 만들어 놓았다. 베르간사(Teresa Berganza)와 알바의 노래는 이미 로씨니 오페라 역에서 정평이 나 있어 재론의 여지가 없는 명연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프라이(Hermann Prey)의 휘가로 또한 상쾌 명랑하여 다른 출연진과 조금도 위화감이 없다. 아마 독일 가수 중 프라이만큼 로씨니를 올바르게 노래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제타(Alberto Zetta)의 교정보를 쓰고 있으므로 흔히 듣던 연주와는 다른 부분(서곡 전반부의 끝 따위)이 있다.
[DVD] 아바도 지휘, 밀라노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72) 프라이(Br) 포넬 연출 DG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로씨니 지휘자로 명성을 떨치며 두각을 나타낸 아바도의 자신감 넘치는 발랄한 연주이다. 이상적인 로지나 역으로 지목되던 베르간사의 콘트랄토 콜로라툴라와 로씨니 테너로 명성을 떨친 알바(알마비바 백작)의 테노레 레쩨로, 그리고 호쾌한 프라이(휘가로)의 바리톤 브릴란테가 혼연일체의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최고의 연주를 펼친다. 그 밖의 가수들도 모두 각기 나무랄 데 없는 자기 몫을 다 하고 있고, 또 귀재 폰넬(Jean-Pierre Ponnelle)의 인상적인 무대 연출이 이 오페라의 감칠맛을 더해 주고 있다. 같은 시기의 CD 녹음(DG)도 출연진이 같다. 다만 악단은 런던 교향악단이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으로 바뀌어 더욱 섬세한 연주를 하고 있다.
[DVD] 지안루이지 젤메띠 지휘, 마드리드 왕립극장관현악단 /시민합창단(2005) 스파뇰리(Br), 사기 연출 DECCA
최근에 화제가 된 오페라 전곡이다. 젤메띠(Gianluigi Gelmetti)의 지휘 아래 악단이나 노래는 전체적으로 전혀 무겁지 않고 경쾌하다. 알마비바 백작 역의 훌로레스(플로레스, Juan Diego Florez)의 트릴(trill=떨리는 음의 창법)은 능숙하기 이를 데 없고 휘가로 역의 스파뇰리(Pietro Spagnoli)는 정교한 노래 솜씨로 활달하며 경쾌하다. 아울러 의사 바르톨로 역의 프라티코(Bruno Pratico)는 능청맞다. 로지나 역의 바요(Maria Bayo)는 따뜻하고 맑은 미성(美聲)과 구석구석 배려한 싱싱한 표현으로 매혹적인 노래를 뿌린다. 그리고 사기(Emilio Sagi) 연출은 화려하면서도 간소하다. 서곡이 끝나자 원근법을 이용한 세빌리아의 새벽 거리 풍경이 열린다. 둥근 달이 떠있다 차츰 사라지며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휘가로가 나타나 경쾌한 “나는야 거리의 만능 일꾼”을 내뱉으면 알마비바 백작이 돈을 내비추며 휘가로를 꼬인다. 하도 경쾌하고 재미있어 약 2시간 50분이 금시 지나가 버린다. 유쾌한 악흥(樂興)의 시간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는야 거리의 만능 일꾼 -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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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8월 11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방금 그 노래 소리는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모차르트의 [휘가로의 결혼]의 전편(前篇)인 이 오페라 붓화(오페라 부파, opera buffa)의 걸작을 로씨니(로시니, Gioachino Rossini)는 1816년 초 불과 13일 동안에 썼다. 당시 24세였던 로씨니의 창작력이 얼마나 왕성했는가를 말하는 에피소드이다. 다만 그렇게 속필(速筆)이었던 그도 서곡을 작곡할 시간이 없었던지 결국 전 해에 작곡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의 서곡을 그대로 썼다. 그러나 그 음악은 이 오페라를 위해 쓴 것처럼 경쾌하고 싱싱한 생동감이 넘치는 곡이 되었다.
린도르의 세레나데에 화답하는 로지나의 카바티나
‘방금 그 노래 소리는’ 여주인공 로지나가 부르는 카바티나(cavatina, 아리아보다 단순한 독창곡)이다. 로지나는 린도르(알마비바 백작)의 사랑의 노래를 듣고 북받쳐 오르는 기쁨을 노래하다가, 문득 늙은 후견인(後見人)이 생각나자 순식간에 “나는 순종(順從)하고 친절하지만 사랑을 방해하면 독사가 되겠다”는 태도로 표변(豹變)한다. 이런 감추어 둔 표독(慓毒)한 기질은 젊고 서민적인 기질로, 나중에 아내의 자리를 차지하여 귀부인이 되면 없어지고 만다. 훗날 [휘가로의 결혼]의 백작부인이 된 뒤에는 틀림없는 로지나인데 처녀 시절의 모습은 그림자도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지난 날 서민에게 오페라 붓화는 오락 이상으로 처세 방법이나 행동의 표본이었다. 사람들은 웃으면서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된 희극의 여러 사건을 겪고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던 것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세비야의 이발사)]의 경우도 로지나와 휘가로를 재치와 임기응변으로 온갖 곤란을 헤쳐 나가는 인물로 만듦으로서 새로운 시민상(市民像)을 제시하고, 또 그들은 그 시민적 자질과 활력으로 서민의 영웅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붓화의 주인공을 단순한 희극적 인물의 유형(類型)으로만 보아서는 중요한 점을 놓치게 된다. 그들은 언제나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숨겨두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방금 그 노래 소리는'
방금 그 노래 소리는
내 마음에 울려 퍼졌어요.
내 마음은 이미 찍혔어요,
린도르가 상처를 냈어요.
그래, 린도르는 내 사람이에요.
그래요, 나는 맹세코 뜻을 이룰 거에요.
그래, 린도르는 내 사람이에요.
후견인이 반대해도
내가 머리를 짜내 볼 게요.
끝내는 그를 진정시키고
내가 흡족하도록 만들어야지.
그래, 린도르는 내 사람.
그래요, 나는 맹세코 뜻을 이룰 거에요.
그래, 린도르는 내 사람이에요.
나는 온순하고
남에게는 친절하며
말을 잘 듣고,
친절하고 정이 깊어,
참을성도 있어요
참을성도 있어요
남의 가르침도 얌전히 잘 들어요.
남의 가르침도 얌전히 잘 들어요.
허나 어디 내 허물을
들추어낸다면,
독사가 되어 주지.
얼마든지 함정을 파서
항복할 때까지
괴롭혀 주겠어요.
의사 바르톨로는 운이 좋으면 로지나와 결혼하여 막대한 유산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를 새장처럼 집 속에 가두어 두고 있다. 그러나 엄격한 보호 속에 있는 로지나는 창 밖에서 호소하는 린도르(실은 알마비바 백작)라는 청년의 사랑의 노래에 그만 흠뻑 마음이 젖어 화답하는 노래를 부른다. 막상 린도르는 그녀가 자기의 마음을 받아 들였는지 확신할 길이 없지만 반대로 로지나는 분명 사랑을 깨닫고 그 때문에 생기는 어떤 곤란도 극복하고 이겨낼 결심을 한다.
자기의 마음을 확인한 여자의 전투개시 선언
‘방금 그 노래 소리는’은 안단테(andante)로 시작하는 전반에서는 오직 린도르에 대한 사랑의 맹세와 지금의 생활에서 탈출할 것을 결심을 노래하지만 결코 수동적인 면은 없다. 린도르의 사랑의 호소에 이미 ‘찍혔어요’(ferito)와 ‘상처를 냈어요’(piago) 라고 반응하는 그녀는 후반의 ‘나는 온순하고’(Io sono docile)이하는 모데라토로 빠른 콜로라투라의 기교를 충분히 발휘하여 분수처럼 노래를 뿜어낸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로지나가 자기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심한 이후에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전투 개시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후견인 앞에서는 얌전히 있던 그녀지만 '그러나'(Ma) 상대방이 음흉하게 나온다면 ‘독사’(vipera)가 되겠다고 선언할 정도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 내린다”는 우리나라 속담을 실감한다.
추천 음반과 DVD
[CD]갈리에라 지휘, 휠하모니아 관현악단/합창단(1957) 마리아 칼라스(Ms) EMI
칼라스가 [토스카], [노르마], [메디아]등에서 보여준 전성기의 격렬한 정열은 없지만 스테레오로 녹음한 로지나 역을 남겨준 것은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로씨니 테너 알바(Luigi Alva)는 이 무렵이 전성기를 누릴 때여서 목소리에 눈부신 빛이 서려 있다. 그리고 칼라스와 곱비(Tito Gobbi)의 대형 가수에 맞추어 갈리에라(Alceo Galliera)의 지휘도 다이내믹한 음악으로 색 다른 맛을 경험케 한다.
[CD]라인스토르후(라인스토르프, Leinsdorf) 지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8) 피터스(Ms) RCA
같은 메트로폴리탄이라도 매우 오래된 녹음이며 가수들도 한 세대 이전 사람들이지만 피터스(Roberta Peters)의 로지나 역은 완벽하고 충분한 가창력을 발휘하고 메릴(Robert Merril)의 자유 활달한 낭랑한 휘가로 역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밝고 명랑한 양키 기질이 호감이 간다.
[CD]파타네 지휘, 볼로냐 시립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88) 바르톨리(Ms) DECCA
로씨니의 전문 가수인 바르톨리(Cecilia Bartoli)가 능숙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자유자재의 기교를 구사하는 솜씨는 듣는 이를 압도한다. 파타네(Giuseppe Patane)는 그의 주장대로 전통적인 연주를 살려 작곡자 로씨니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고 있다. 누찌(Leo Nucci)의 휘가로(B)도 거침없이 활달한 기교를 발휘하고 있다.
[DVD]<칼라스 독창회>(Maria Callas in Concert)/니콜라 레시뇨(Nicola Rescigno) 지휘/북독일 교향악단(1951)
전곡 녹음은 아니지만 이 “방금 그 노래 소리는”(Una voce poco fa)는 1951년 5월 15일 리사이틀의 실황녹화이다. 로지나 역으로 걸맞지는 않으나 초절기교를 과시하는 칼라스를, 비록 화면이 좋지는 않지만 직접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방금 그 노래 소리는 -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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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5년 9월 23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기자 김성현 글>
문학과 클래식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와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언젠가 사랑은 변하게 마련이라고 해도
1785년 8월 19일 프랑스 궁정에서 보마르셰의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가 상연됐다. 이날 공연에서 루이 16세의 남동생인 아르투아 백작이 피가로 역을 맡았다. 로지나 역을 맡은 이는 다름 아닌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불과 4년 뒤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으로 자신의 목이 잘려나가리라고는 당시 왕비 자신도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속편인 희곡 「피가로의 결혼」은 프랑스혁명에 불씨를 붙인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작가와 프랑스 왕가의 운명은 참으로 얄궂었다.
작가와 작품의 수난
보마르셰(Pierre 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가 「세비야의 이발사」를 집필했던 시기는 역설적으로 작가의 인생에서 비극이 잇따르던 때였다. 1770년 두 번째 부인 즈느비에브가 결혼 2년 만에 타계했다. 2년 뒤에는 둘 사이에서 태어난 네 살배기 아들 피에르 오귀스탱 외젠마저 세상을 떠났다. 작가는 ‘소송광(狂)’으로 불릴 만큼 법정에 뻔질나게 다녔지만, 이 시기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관매직으로 인한 고발과 시민권 박탈 등 시련이 잦아들지 않았다.
당초 보마르셰가 「세비야의 이발사」를 구상할 때 염두에 두었던 장르는 희가극이었다. 그는 루이 15세의 딸들에게 하프를 가르칠 정도로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훗날 오페라를 직접 작곡해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772년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 희가극을 제안했지만 퇴짜를 맞자 희곡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 작품은 이듬해 코메디 프랑세즈의 공식 상연 작품으로 채택됐지만 실제 연극 공연까지는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우여곡절 끝에 1775년 2월 23일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5막의 연극으로 초연됐다. 하지만 첫 반응은 좋지 않았다. 평단에서는 “보마르셰의 명성은 추락했고, 공작의 깃털을 뽑고 나면 남는 것은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검은 까마귀뿐이라는 걸 정직한 사람들은 확신하게 됐다”라고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보마르셰는 초연 당일의 광경에 대해 “전쟁 당일에 독기 오른 적들이 객석에서 흥분해서 파도처럼 물결치고 으르렁거렸다. 이런 소란스러움과 격렬한 전조는 난파 사고를 초래하고 말았다”라고 적었다.
개작 뒤의 대성공
하지만 타고난 흥행 감각을 갖춘 보마르셰는 평단보다는 관객의 반응에 작품의 생명이 달려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내 목적은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선의만 있다면 관객이 작품에 즐거워하든 나를 비웃든 내 목적은 이룬 것이다”라고 말했다.
초연 실패 직후 보마르셰는 재빨리 원고를 거둬들여서 사흘 만에 5막에서 4막으로 줄였다. 타의에 의한 개정이었지만, 그는 배짱 있게 말했다.
“야유를 보내거나 코를 풀고, 기침을 하거나 침을 뱉어대는 훼방꾼들이여, 꼭 피를 보아야 하겠는가? 내 4막을 들이켜고 분노가 잦아들기를! 내 수레는 5번째 바퀴 없이도 문제없이 굴러가니까.”
4막을 통째로 덜어낸 데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지만, 그럴 때조차 보마르셰는 위트를 빼먹지 않았다.
마침내 사흘 뒤 다시 열린 「세비야의 이발사」 공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보마르셰는 “금요일 밤에 묻힐 뻔했던 불쌍한 피가로가 일요일에 되살아났다”라고 술회했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작가의 행복한 삶이 낳은 결실이라기보다는 필사적인 자구책의 결과물이었다.
당대의 로맨틱 코메디
보마르셰의 연작인 「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은 발표 순서 때문에 단단히 골치를 안긴다. 보마르셰의 원작은 분명히 「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의 순이다. 하지만 오페라의 경우에는 1786년 초연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1816년 초연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에 비해 30년 앞선다. 이 때문에 종종 착시 현상이 일어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규칙만 이해하면 실은 어렵지 않게 교정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는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여기에 해당하는 로맨틱 코미디가 [세비야의 이발사]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랑은 해피엔드로 지속되기 힘들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대사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처럼 말이다. 이 짓궂은 상상력에서 출발한 속편이 「피가로의 결혼」이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랑(「세비야의 이발사」)이 변하는 과정(「피가로의 결혼」)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두 작품을 함께 읽거나 보는 재미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우리의 「춘향가」처럼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 공식을 따른다. 알마비바 백작이 이 도령이라면 로지나는 춘향이다. 둘의 사랑을 이어주는 방자가 피가로다. 향단이에 해당하는 수잔나는 「피가로의 결혼」에야 등장하지만, 이 속편에서 수잔나의 정절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이 도령과 춘향의 사랑을 가로막는 변 사또처럼, 바르톨로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의 결합을 방해하는 악역이다. 바르톨로는 후견인이라는 지위를 악용해서 로지나를 사실상 감금한 채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다. 권력을 남용해서 수청을 강요하는 변 사또의 못된 심보와 똑같지만, 속편에서 피가로가 바르톨로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운명은 또 한 번 똬리를 튼다.
어차피 결론은 해피엔드로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도 엄연히 ‘게임의 규칙’은 있다.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가 결혼하기 위해서는 공증인과 2명의 증인이라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이들 연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4시간. 이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면 로지나는 연모하는 알마비바 백작 대신 바르톨로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분신, 피가로의 고군분투
이 희극에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는 인물은 피가로다. 마을의 이발사이자 중매쟁이, 실패한 작가 지망생이라는 ‘팔방미인’ 피가로의 복잡한 경력은 시계 수선공이자 왕실의 비밀 외교관이기도 했던 작가의 삶을 연상시킨다.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의 결말 장면에서 피가로가 언급하는 오페라 [부질없는 조치]는 원작 희곡의 부제이자 로지나가 일일 음악 교사로 변장한 알마비바 백작과 함께 연습하는 작품의 제목이다. 이 부제에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의 결합을 방해하려는 바르톨로에 대한 풍자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바르톨로가 아무리 훼방을 놓으려고 해도 백작과 로지나는 결국 행복하게 맺어질 것이라는 암시다.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전권을 피가로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피가로는 이 작품에서 사실상 작가의 분신이자 전지전능한 존재다.
그렇기에 속편인 「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를 넘보는 알마비바 백작의 탐욕에 왜 그토록 피가로가 분개했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피가로는 주인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였지만, 정작 속편인 「피가로의 결혼」에서 그 주인은 피가로의 은공을 까맣게 잊은 채 삐뚤어진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런 작품 설정은 보마르셰가 프랑스 왕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단하게 애썼지만, 투옥과 시민권 박탈이라는 시련을 겪었던 상황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세비야의 이발사」에도 작가 특유의 풍자적 표현은 곳곳에 숨어 있다. 피가로가 알마비바 백작의 핀잔에도 “귀족들이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우리를 돕는 거야”라고 응수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게으르고 행실이 글러먹었다는 백작의 타박에도 피가로는 천연덕스럽게 “하인들에게 강요하는 미덕을 그대로 갖춘 주인님은 과연 많을까요?”라고 말대꾸한다.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에 주목하다
당초 희가극을 염두에 두고 썼던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의 음악적 매력에 주목했던 작곡가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였다. 선배 작곡가 조반니 파이시엘로(Giovanni Paisiello, 1740~1816)가 먼저 이 작품을 오페라로 작곡해서 1782년 러시아 왕궁에서 초연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위대한 희가극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로시니는 개의치 않았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18세 때 데뷔작 [결혼 어음]을 발표한 ‘오페라 신동’ 로시니의 17번째 작품이었다.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할 당시 로시니의 나이는 불과 23세였다.
1815년 12월 로시니는 테너 마누엘 가르시아를 위한 새 오페라를 써달라는 위촉을 받고 「세비야의 이발사」를 떠올렸다. 당시 가르시아의 출연료는 로시니의 작곡료보다 높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당시 오페라 [토르발도와 도를리스카]의 공연을 위해 로마에 머물고 있던 로시니는 한 달여 만에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을 끝냈다. 훗날 작곡가는 “12일 만에 작곡을 마쳤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본 작가와 극장이 계약을 체결한 날짜는 1816년 1월 17일이었다. 로시니는 2월 6일 1막의 음악을 완성했고, 초연 당일인 2월 20일에는 부랴부랴 2막 작곡까지 끝냈다. 12일은 과장에 가깝지만, 놀라운 작곡 속도만은 분명했던 것이다. 오페라 서곡부터 [팔미라의 아우렐리아노]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등 이전 오페라의 선율을 노골적으로 우려먹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예전에 썼던 작품에서 선율이나 주제를 주저 없이 다시 가져다 쓰는 ‘자기 복제’의 달인이었다.
참패 뒤의 인기몰이
1816년 2월 20일 로마에서 열린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초연은 작곡가 파이시엘로의 열성 팬들이 보낸 야유 탓에 참패로 끝났다. 설상가상으로 알마비바 백작 역의 가르시아가 노래할 때 반주하기로 했던 기타는 조율이 풀려 있었다. 가르시아는 무대에서 노래하면서 조율하고자 했지만, 기타 줄 하나가 끊어지는 바람에 객석에서 폭소와 야유가 쏟아졌다. 1막 종반에는 난데없이 고양이가 무대 위로 튀어나와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급기야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이날 공연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했던 로시니도 관객의 야유를 피하지는 못했다. 첫날 공연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던 희곡의 운명과도 흡사했다.
하지만 원작의 유쾌한 익살과 로시니 특유의 밝고 서정적인 선율은 차지게 맞물렸다. 1822년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자신보다 스물한 살이나 어린 로시니를 만난 자리에서 필담으로 건넨 말은 예언처럼 적중했다.
“당신이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군요. 축하합니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존재하는 한 이 작품은 공연될 거요. 희가극만 쓰도록 해요. 다른 스타일은 당신 성격에 맞지 않을 테니.”
베토벤의 말대로 이 작품은 세계 오페라극장에서 빠지지 않는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방금 들린 그대 목소리가 내 마음을 흔드네요. 내 마음에는 린도르가 쏜 화살이 박혔어요. 네, 린도르는 내 사랑이 될 거예요. 맹세코 성공하고 말겠어요. 후견인은 막겠지만, 꾀를 짜내 그를 굴복시키면 행복하겠지요. 저는 온순하고, 사람들을 존중하며 잘 섬기고 부드럽고 정이 많아요. 들은 대로 하고 이끄는 대로 따르지요. 하지만 나를 자극하면 독사로 변할 거에요. 수백 개의 덫을 놓을 거에요.”
- 로지나의 아리아 [방금 들린 그 목소리]
가난한 학생 린도르로 가장한 알마비바 백작과 사랑에 빠진 로지나가 오페라의 1막 2장에서 부르는 아리아가 [방금 들린 그 목소리]다. 첫사랑의 설렘을 서정적인 선율로 노래하며 시작한 아리아는 화려한 기교가 조금씩 보태지면서 사랑에 대한 결연한 의지로 변한다. 서정성과 기교, 풍부한 성량까지 모두 담아내야 하기에 이 노래는 메조소프라노의 기량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아리아로 꼽힌다. 로지나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남편의 바람기에 괴로워하며 [아름다운 날은 가고]를 부르는 백작 부인과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세월의 속절없음에 마음 한구석이 서글퍼진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설렘을 전하는 음악
하지만 로시니의 이 오페라를 들으며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변심과 음모, 프랑스혁명 이전의 봉건적 모순까지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로맨틱 코미디이자 장밋빛 동화니까.
1987년 이 오페라를 연출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다리오 포는 로시니 음악의 매력을 이렇게 요약했다.
“로시니는 음식을 탐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음악가다. 로시니의 음악은 올리브와 토마토, 장미와 로즈메리, 커버와 식탁보, 와인과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연상시키며 허브 향기로 가득하다.”
모두들 사랑은 변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빠진다. 로시니의 수많은 희가극 중에서도 유독 이 작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설렘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과 웃음소리, 허브 향기처럼 기분 좋은 그 느낌 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와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 언젠가 사랑은 변하게 마련이라고 해도 (문학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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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막 피날레의 테너 아리아, 즉 알마비바 백작이 부르는 아리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Cessa di piu resistere>가 생략된 버전입니다.
알마비바 백작을 노래한 테너 테일러 스태이턴의 음역과 기량으로 봤을 때 "무조건 도전" 해야 했는데...왜 빼먹고 마무리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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