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로 인해 악성질환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1875년 이후였다. 이때 파스퇴르가 전염병의 미생물학적 원인을 발견했고, 다른 학자는 암의 화학적 원인을 찾아냈다. 색스니 지역의 갈탄 지대와 스코틀랜드의 이판암 지대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피부암에 자주 걸렸고, 타르와 역청에 노출된 사람들 역시 암에 걸렸다.
19세기 말까지 산업적 발암물질 6~7종이 알려졌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암 유발 물질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했고 일반인, 태아도 이런 물질에 쉽게 접촉하게 되었다.
1959년 7월 미국의 인구동태통계국의 따르면 1900년 전체 사망 원인의 4퍼센트에 불과하던 림프계와 혈액 생성 조직에서 발생하는 악성질환이 1958년에는 15퍼센트로 증가했다고 한다. 이 추세로 볼 때, 미국암학회는 인구 중 4500만 명이 암에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두세 가구당 한 명 꼴로 암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더 위협적. 1~14세 어린이 사망자 중 12퍼센트가 암으로 밝혀졌다. 악성종양 환자의 상당수가 5세 미만이었다. 방금 태어났거나 태아에게서도 암이 발생.
비소는 초기에 발암물질로 추정된 살충물질 중 하나이며, DDT는 간에 종양을 일으킨다고 추정되고, 제초제 IPC, CIPC는 피부에 종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DDT는 1942년 군인들에 처음 노출되었고, 1954년에 일반인들에 노출되었다. 그 밖에 화학 살충제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은 1950년대 초반 이후로 추정.
현대적인 살충제가 등장한 이래 백혈병의 발병률이 서서히 증가. 1960년 미국에서 백혈병 환자가 1만 2290명에 이르고, 혈액, 림프계의 악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2만 5400명. 전 세계적으로 백혈병 발병률이 매년 4~5퍼센트씩 증가하고 있다.
바르부르크의 이론은 미량의 발암물질을 반복 흡수하는 것이 다량을 한 번 흡수하는 것보다 왜 더 위험한지를 설명해준다. 다량의 발암물질을 한 번 흡수하면 세포가 바로 죽지만 소량을 반복적으로 흡수하면 세포들이 상해를 입은 채로 살아남게 된다. 이렇게 살아남은 세포가 암세포로 전이되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암을 치료하는 물질이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물질은 방사능이다. 이 두 가지 물질은 모두 세포호흡 과정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잘못된 방식으로 호흡하고 있는 암세포에 또다시 손상을 입히면 그 세포는 죽지만, 정상세포는 처음으로 호흡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므로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악성질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가 만든 기준으로 측정한 결과 대부분의 살충제는 완벽한 발암물질로 판명- 염화탄화수소류, 페놀계 화학물질, 제초제의 상당수는 세포 내 산화와 에너지 생성을 방해한다.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전이되는 또 다른 방식은 염색체 이상 -방사능이나 화학물질의 영향을 받은 세포는 세포분열을 관할하는 신체의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통제불능 상태에 놓여 조절 불가능할 정도로 세포수가 급증하게 된다.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물질 – 벤젠, 우레탄
간접적인 원인으로 암이 발생하는 경우 – 성호르몬의 균형 파괴로 발생하는 생식기암 등은 간이 호르몬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록펠러 의학연구소는 간이 손상된 토끼에서 자궁근종의 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을 관찰. 간이 혈중 에스트로겐 농도를 조절하지 못해 발암물질이 급속도로 늘어나 암을 유발한다. 자궁암 환자 150명 중 2/3에서 평균치보다 훨씬 높은 농도의 에스트로겐이 검출됐다는 보고가 있다. 간이 손상되면 에스트로겐 조절이 불가능해 아주 적은 양으로 간세포에 변화를 일으키는 염화탄화수소류는 비타민 B군의 결핍을 초래한다. 즉 살충제는 간에 문제를 일으키고 비타민B 공급을 저해하여 간접적으로 암을 유발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세 종류의 발암물질이 함께 작용하여 그 영향력이 합해져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백혈병은 2단계로 진행되는데, X선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악성종양이 우레탄과 같은 화학물질에 자극 받아 백혈병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방사능물질로 인한 식수원 오염은 이미 갖가지 화학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여기에 이온화 방사능이 작용하기라도 하면 원자 배열이 바뀌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화학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레이스 칼슨은 질문한다. “발암물질의 ‘안전 허용량’을 인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발암물질은 전혀 검출되지 않아야 정상이 아닐까?”
대부분의 발암물질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바로 인간이다. 그러므로 원하기만 한다면 그 위험물질의 상당수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15. 자연의 반격
오늘날 곤충 방제 사업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첫번째는 정말 효과적인 곤충 방제는 인간이 아닌 자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 자연계는 고유한 ‘환경 저항’이 존재해서 특정 종마다 개체수가 일정하게 조절되어 왔다. 먹이, 기상, 기후조건, 경쟁상대, 포식종 등이 모두 환경 저항의 중요한 요소이다. 곤충학자인 로버트 메트컬프는 “이 세상이 곤충으로 뒤덮이지 않게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곤충들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화학약품은 인간의 친구든 적이든 구분하지 않고 모든 곤충을 없애버린다.
두번째, 환경 저항이 약해지면 종족을 재생산하려는 폭발적인 힘이 발휘된다는 사실- 밭과 삼림의 포식곤충이 죽으면 그들의 먹이가 되던 곤충의 개체수가 갑작스럽게 증가한다.
1958년까지 과학 관련 학술지에는 자연의 균형이 깨지면서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은 곤충이 50여 종이나 보고되었다. 최근에는 살충제로 인해 곤충 개체수에 심한 동요가 일어난다는 보고나 문제 제기의 논문이 215편이나 등장했다. 화학방제의 결과 없애려던 곤충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팽창했다.
1960년대 전체 응용곤충학자의 2퍼센트만이 생물학적 방제 분야에서 일하고 나머지 98퍼센트는 화학 살충제 관련 연구에 몰두했다.
노바스코샤의 A.D. 피켓 박사 – 살충제 사용은 최소화 하고 자연 방제를 최대화하는 방안을 고안. 가능하면 해충만 방제하고 기생곤충과 포식곤충에게 해가 적은 화학물질을 고르는 데 특별히 관심.
그는 유독물질 대신 라이아니아(열대식물의 줄기에서 추출), 황산니코틴, 비산납 등을 사용한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농도가 약한 DDT나 말라티온을 사용한다. 피켓 박사의 방제법을 실시한 노바스코샤의 과일 재배농들은 화학물질을 사용한 사람들보다 일등품 사과 생산 비율이 더 높았고 품질, 비용도 우수했다. 무엇보다 자연의 균형을 해치지 않는다.
16. 밀려오는 비상사태
1914년 멜랜더 교수- “곤충은 살충제에 저항력이 있을까?”
DDT가 등장하기 전인 1945년 기존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된 곤충은 12종 정도였다. 그런데 새로운 유기화학물질이 널리 사용된 1960년대에 이르자 화학물질에 내성을 지닌 곤충이 137종으로 급증했다. 이 문제를 주제로 1000종 이상의 과학 논문이 발표되었다.
세계보건기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경고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말라리아, 티푸스, 페스트 등 해충이 옮기는 전염병을 막기 위한 노력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의료 목적으로 근대적 살충제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43년 이탈리아에서 티푸스를 박멸하기 위해 연합군이 사람들에게 DDT를 뿌렸을 때였다. 남은 약은 2년 뒤 말라리아모기를 없애기 위해 살포되었다. 이듬해 문제의 징후가 나타났다. 집파리와 큘렉스모기가 이 살충제에 내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1948년에는 새로운 화학물질 클로르데인이 DDT 대용으로 사용되었고 내성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1951년 말, 더 이상 해충에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화학약품 대열에 메톡시클로르, 클로르데인, 헵타클로르, 벤젠헥사클로라이드가 합류했다. 그동안 파리는 급증했다.
이를 제거하는데 DDT를 가장 먼저 사용한 곳은 나폴리로,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1945~1946년 겨울, 일본과 한국에서 이 퇴치를 위해 200만여 명에게 DDT를 사용해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1948년 에스파냐에서 유행한 티푸스 발병 때 사용한 DDT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1950~1951년 겨울, 한국 군인들에게 DDT 가루를 뿌렸는데 오히려 이가 더 많이 퍼졌다. 그 외 여러 나라에서도 DDT에 이가 내성을 보였다.
말라리아를 없애기 위해 모든 집에 살충제를 뿌린 결과 아노펠레스모기의 내성은 놀라운 정도로 증가했다.
일반적인 집모기가 내성을 확보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살충제 살포를 잠시 재고하게 되었다.
해충 방제업자가 한 때 가장 선호하던 클로르데인에 대해 북미 전역에 퍼져 있던 독일바퀴벌레가 내성을 보이자, 대신 유기인산계 화학물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염병 방역기관은 해충이 내성을 지니게 되면 다른 살충제로 교체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지만, 이는 한계에 이르렀다.
곤충이 어떻게 화학물질에 내성을 지니게 되는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화학 방제에서 살아남은 곤충들은 어떤 구조적 장점을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DDT에 내성을 지닌 파리들은 이 물질을 비교적 독성이 덜한 DDE로 바꾸는 효소를 갖고 있다. 특정한 습성 덕에 화학물질을 피할 수 있는 곤충도 있다.
한 계절만에 내성이 생기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내성을 확보하려면 2~3년, 심한 경우 6년 정도 걸리다.
1952년 미국 농무부<연감>은 해충이 점점 더 내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해충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는 살충제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7. 가지 않은 길
생물 방제- 곤충의 생명력을 사용해 그 곤충을 없애는 것,
곤충에게 X선을 투사해 불임곤충에 돌연변이를 만들어 1959년 미국 남부지역에서 검정파리 유충을 성공적으로 박멸했다. 최근에는 화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곤충불임을 만들고 있다.
곤충이 만드는 여러 물질을 모방해서 해충에 대응하는 무기로 사용- 곤충들은 다양한 독물과 유인제와 기피제를 만들어내는데, 유인제를 과립 형태로 만들어 비행기로 살포하거나, 유인제와 독극물을 섞어 살포하려는 계획이 몇몇 해충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소리도 경고나 유인을 위한 수단이 된다- 암컷 모기가 내는 소리를 녹음해서 수컷에게 들려주었더니, 이 소리에 이끌린 수컷 모기는 전류가 통하는 그물에 걸려들어 죽고 말았다.
유인음보다 격퇴음이 더 효과적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찌르레기의 비명소리를 녹음해서 다른 찌르레기들에게 들려주었더니 이들이 모두 놀라 달아났다.
초음파는 실험실의 모든 모기 유충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효력이 있다.
미생물을 이용하는 방제법- 본격적으로 시도한 사람은 19세기의 동물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 전염병을 이용해 해충을 방제한 첫 사례는 1930년대 바실루스라는 박테리아로 장수풍뎅이에 유화병을 옮긴 일이었다. 미생물 살충제는 화학 살충제와 달리 의도한 목표물을 제외한 다른 생물체에는 무해하다.
천적- 포식곤충과 기생곤충을 이용하는 생물학적 방제를 이미 시도해왔다. 거미, 거미줄을 치는 거미는 특히 중요한데, 이 거미줄은 아주 촘촘해서 날아다니는 모든 곤충을 잡을 수 있을 정도다. “고치 3개면 거미 1000여 마리가 부화하는데 그러면 날아다니는 곤충 20만 마리를 잡을 수 있다” 고 루페르츠호펜 박사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