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4부 23
심장을 비껴 가긴 했지만 브론스끼의 부상의 위험한 것이어서, 그는 며칠 동안이나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처음으로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방에는 형수인 바랴밖에 없었다.
“바랴!” 그가 그녀를 엄숙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본의 아니게나 자신을 쏘았어요. 그러니 제발 이 일에 대해 절대로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모두에게도 그렇게 일러 주시고요. 그러지 않으면 일이 아주 우스꽝스럽게 될 거예요.”
바랴는 아무 대답도 없이 몸을 숙이고는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해맑았고 열이 오르지도 않았지만, 표정만은 엄숙했다.
“천만다행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아프지는 않아요?”
“여기가 약간.” 그가 가슴을 가리켰다.
“붕대를 다시 감아 줄게요.”
자신의 몸에 붕대를 새로 감는 동안 그는 넓적한 광대뼈에 힘을 꽉 주고서 말없이 형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일을 마치자 입을 열었다.
“허투루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제발, 내가 자살 기도를 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게끔 해주세요.”
“아무도 그런 말 안 해요. 단지 앞으로는 본의 아니게 총을 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녀가 의혹의 기색이 어린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그래야죠.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하지만 차라리……”
이어 그의 얼굴에는 음울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랴로서는 무척이나 염려스러웠던 그 말과 미소에도 불구하고 염증이 사라지고 회복되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의 일부분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그러한 처신을 통해 지금껏 겪은 수치심과 굴욕감을 모두 씻어 버린 것만 같았다. 이제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 대해서도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의 관대함을 인정했지만, 자신이 굴욕을 당했다는 느낌은 이미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전의 생활 패턴을 되찾았다. 수치심 없이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습성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그는 실감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감정과 씨름을 하면서도 마음속에서 털어 버릴 수가 없었던 단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녀를 영원히 잃었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에 가까운 회한이었다. 그녀의 남편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속죄한 지금 그녀와 절연해야만 하며, 앞으로는 참회한 그녀와 그녀의 남편 사이에 결코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굳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사랑을 잃은 데 대한 상실감은 도무지 마음 한구석에서 털어 낼 수가 없었으며, 그녀와 함께하며 알게 된, 당시에는 소중히 여길 줄 몰랐으나 지금에 와서는 온갖 매력을 띠고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그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한 추억을 그는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세르뿌호프스꼬이가 그를 위해 따시껜뜨로 부임하는 방법을 궁리해 냈고, 브론스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떠날 때가 다가올수록 그래야 마땅하다고 여기며 치르는 희생은 점점 더 괴로워졌다.
상처가 아물었고, 그는 이미 밖을 나다니며 따시껜뜨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를 딱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어딘가에 파묻혀 살든 죽든, 아무려면 어떠리.’ 그는 이런 생각을 했고, 작별 인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벳시에게 그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의 의사를 전달하러 안나에게 갔던 벳시는 부정적인 답변을 가지고 그에게 왔다.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라.’ 소식을 접한 브론스끼가 생각했다. ‘그건 나의 마지막 남은 힘을 거세해 버릴지도 모를 나약함이었어.’
다음 날 아침 벳시는 몸소 브론스끼를 찾아와 오블론스끼로부터 긍정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공표했다. 얘긴즉슨,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이혼을 하기로 했으며 따라서 안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브론스끼는 벳시를 배웅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자신이 결심한 바도 모조리 잊어버린 채, 언제 만날 수 있는지, 그녀의 남편은 어디 있는지 묻지도 않고서 그 즉시 까레닌가로 갔다. 계단을 내달리면서 그는 아무도,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달음질을 간신히 자제하며 재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방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방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지도, 알아채지도 못한 채 그녀를 껴안고서 얼굴과 두 손과 목덜미에 입맞춤 세례를 퍼부었다.
안나는 이 만남을 준비하면서 그에게 할 말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중 한 마디도 할 틈이 없었다. 그의 열정에 그녀 또한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를 진정시키고 자기 자신도 진정시키려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그의 감정이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입술이 너무 떨려서 한참 동안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요, 당신이 나를 사로잡았어요. 나는 당신 거예요.” 그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으며 그녀가 마침내 내뱉었다.
“그렇게 되었어야 했어요!” 그가 말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이제야 그걸 알겠어요.”
“맞아요.” 그녀가 말했다. 점점 더 파리해져 가는 낯빛으로 그녀가 그의 머리를 얼싸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벌어진 뒤에야 이렇게 되었다니, 무언가 무서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게 지나갈 겁니다, 다 지나갈 거라고요. 우리는 아주 행복해질 겁니다! 만일 우리의 사랑이 더 강렬해진다면, 바로 그 속에 무언가 무서운 면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가 고개를 들고서 예의 단단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자 그녀 또한, 그의 말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그의 눈동자에 미소로써 화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집어다가 자신의 차가워진 두 뺨과 짧게 깎은 머리털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머리를 짧게 깎다니 몰라보겠습니다. 참 예뻐졌군요. 소년 같아요. 하지만 너무나 창백해요!”
“네, 무척 쇠약해졌어요.” 그녀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입술이 또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우리 이탈리아로 갑시다. 그러면 당신도 회복될 거예요.” 그가 말했다.
“정말로 그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남편과 아내처럼 단둘이서, 당신과 내가 한 가족처럼 될 수 있을까요?” 그녀가 그의 눈을 가까이 응시하며 물었다.
“나로서는 지금까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희한할 뿐입니다.”
“스찌바가 그러더군요. ‘그이’가 모든 것에 동의했다고요. 하지만 나는 ‘그이’의 관용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녀는 생각에 잠겨 브론스끼의 얼굴을 외면한 채 입을 열었다. “나는 이혼을 원치 않아요.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다만 그이가 세료자에 대해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조우하게 된 이 순간 어떻게 아들과 이혼 문제를 떠올리고 생각할 수 있는지,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 얘긴 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아요.” 그는 그녀의 손을 돌려잡고 관심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를 외면했다.
“아아, 왜 나는 죽지 않은 걸까요, 죽었으면 좋았으련만!” 이 말에 이어 흐느낌도 없이 눈물만 그녀의 두 뺨 위로 흘러내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브론스끼의 애를 태우지 않도록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다.
과분하고도 위험한 따시껜뜨로의 임관을 고사하는 것은 과거 브론스키의 관념으로는 있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를 거절하였으며, 고위층에서 자신의 처신에 대한 비난이 오간다는 걸 눈치채고는 곧바로 퇴역해 버렸다.
한 달 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아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 남고, 안나와 브론스끼는 이혼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단호하게 거부한 채 외국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