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은 신라와 백제의 분쟁지역으로 영호남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호남지방의 곡창지대를 노리는 왜구의 침입을 차단하고 저지했던 교통과 군사상의 요충지였던 셈.
연화산(蓮花山 444m)은 산의 모양이 연꽃모양으로 생겨서 붙은 이름으로 남강이 북쪽에서 흘러와 연화산을 에두른 뒤 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조선시대 함양의 자료에는 연화산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함양군지』에는 "연화산은 영동면에 있다. 군 동쪽으로 20리 거리이다.
사암산(蛇岩山)의 남쪽이다. 산 위에는 옛 성이 있다. 산 높이는 443m이다."라고 적혀있다.
사암산은 오늘 우리가 이어탈 승안산 북쪽에 있는 새암산을 일컫는 듯하다.
연화산의 9부 능선에는 사근산성(沙斤山城, 사적 제 152호)이 있다.
사근산성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함양)에는 "군 동쪽 17리 지점, 사근역 북쪽에 있다.
석축이며 둘레는 2,796척이고, 높이는 9척이다. 성안에 못이 셋이다.
경신년에 감무(監務) 장군철(張群哲)이 성을 지키지 못하여 왜구에게 함락 당한 뒤에 폐해 버리고 수리하지 않았다가 성종 때 다시 수축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사근산성은 지역 주민들에게 연화산성이라고도 불리어진다.
이 산성은 고려 말(1380년경) 장군철 함양감무(군수)와 삼도원수 배극렴, 박수경, 배언, 도흥장군 외 500여명이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3000여명의 적과 싸우다 전사한 곳이다.
버스이동 후 두 번째 오르는 산은 승안산(△昇安山 311.1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승안사(昇安寺)는 사암산(蛇巖山)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뿐 창건 연대나 폐사된 경위는 알 수 없다.
승안사가 창건되면서 사암산을 승안산(昇安山)으로 부르게 된 것인지, 아니면 승안산이 새로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승안사지에는 경남 유형문화재 제33호인 승안사지 석조여래좌상(昇安寺址 石造如來坐像)과 보물 제294호인 승안사지 삼층석탑(昇安寺址 三層石塔)이 유물로 남아있다.
나는 승안산과 새암산을 이어타다 딱바실재로 내려갈 계획을 지닌 채 먼저 승안사지(昇安寺址)부터 답사에 나섰다.
그러나 승안산은 지형도에만 존재할 뿐 형체가 없는 유령의 산이다.
산길이라곤 50여년 전에나 있었던 흔적으로 지금은 오수리나 너구리도 다니지 못할 정도로 묵어 있었다.
능선에 올라선 뒤 찾아나선 승안산은 '링반데룽(ringwanderung)'현상으로 맴돌다 '개구리어덩치기'로 승안산(△311.1m) 삼각점을 찍었을 뿐이다.
* 링반데룽(ringwanderung): 등산에서 짙은 안개 및 폭풍우를 만났을 때나 밤중에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계속 맴도는 현상의 독일어.
연화산(사근산성) 궤적. 1코스로 올라 3코스로 내려왔다.
파일.
약 4km에 1시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산길샘.
승안사지에서 도중 포기한 트랙.
'하동정씨구충각'과 춘수정, 승안사지석조여래좌상', '승안사지3층석탑'을 답사하였고, 승안산 삼각점을 찍었다.
나의 계획은 승안산~새암산~딱밭골재였지만 결국 도중 포기하고 말았다.
파일.
<승안산~새암산~딱밭골재>가 처음 계획이었으나 도중 포기하고 말았다. 빨간색 트랙은 승안산 삼각점만 찍고 내려온 나의 동선..
처음엔 호기롭게도 (1)연화산(사근산성), (2)승안산~새암산~딱밭골재~사별산~골무산~상백리였다.
파일.
(1)연화산(사근산성)을 가기위하여 네비에 '수동면사무소'를 입력하였다.
바로 위 수동중학교 안내판을 따른다.
우측으로 수동교회와...
수동면 보건지소를 지나면...
수동중학교 정문을 우측으로 돌아...
중학교와 수동초등학교 사이를 끼고 오르면...
우측 화살표 방향.
3번국도를 굴다리로 통과하자마자...
좌측 안내판이 안내하는 데로...
본격 산길로 진입을 한다.
데크로 잘 정비된 길.
철탑을 지나고...
숲길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곽이 나타난다.
좌측을 돌아보다...
우측으로 난 성곽을 따라 진행을 한다.
연못. 사근산성에는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보수가 안 된 성곽을 따르자....
무덤.
그러자 새로 정비된 성곽이 드러난다.
무더운 날씨에 탈출할 수 있는 지점. 우리 회장이 후미들을 규합하여 탈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측으론 미륵골 이정표.
나는 뙤약볕에 노출되어 성곽을 따르기 싫어 좌측 숲속으로 숨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성곽으로 빠져나왔고...
또다시 좌측 숲속으로 숨어 들었다.
금세 산불감시초소와...
커다란 연화산 돌비가 버티고선 꼭대기.
그리고 삼각점 안내판.
파노라마 대신에 동영상을 찍었다.
정북(正北)에 나중에 오를 새암산이,
그 좌측 멀리 대봉산 계관봉(?).
우측 멀리는 어데고?
그만 기념사진 찍고 내려가야지.
하산길은 반대편 보수된 성곽길.
개보수된 성곽을 따라 나무계단이 이어져 있다.
한 차례 살짝 떨어졌다 오름짓.
그런 뒤 내려다 보이는 3코스 하산길.
돌아보는 2개째의 연못.
아까 우리 회장이 섰던 지점에서 내려오는 길.
내가 내려온 성곽길과 내려갈 임도.
돌아보는 길과...
안내판.
다시 돌아보는 모습. 성호 씨 아주머니는 중간에서 질러 내려오네.
함양 사근산성 안내판.
조금 내려오자 팔작지붕의 정자.
현판엔 망북정(望北亭). 망북정은 임금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예를 갖췄다는 곳. 전국에 망북정이 여럿 있다.
망북정기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남계 임희무(林希茂)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15년 후손들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남계 선생은 남명 조식(曺植)선생의 문인으로 명종7년(1552)에 강익, 정복현과 함께 남계서원을 세웠다
임희무(1527~1577)의 자는 언실(彦實), 호는 남계(蘫溪),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바로 아래 사근산성 추모사당인 '연화사(蓮花祠)가 있다.
솟을 삼문 안으로 들어가...
잡초 우거진 마당 건너에 맞배지붕의 사당이 있다.
연화사 현판.
개망초가 아무렇게나 자라는 마당 한켠에 비석 세 기.
사근산성사적비와 순국선열 추모비, 추모사당 건립비가 세워져 있고, 뒷면에는 빼곡히그 유래가 설명되어 있다.
연화사 뒷쪽으로 돌아가니 커다란 무덤 한 기가 있다.
비정한 역사는 패전지 사근산성을 패장지성(敗將之城)이라 일컬으며 오랫동안 역사의 뒤편에 묻어왔다.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이끄는 3천여명의 왜군에 5백여 군사는 중과부적으로 전멸하고 말았다.
당시 전사한 의총(義塚)이다.
이제나저제나 역사는 잊혀져 갔고, 주차장은 텅 비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납골당.
블루베리.
우리 차가 대기중이고...
서둘러 탑승한 뒤 다음 산행지인 승안산을 향한다.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을 지나 물이 불어 남강을 건너지 못한 마안산 팀들을 도중에 태운다.
두 서원 답사가 간절하였지만 차창으로 그저 스쳤을 뿐이니 다음을 기약한다해도 그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단체 일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체념할 수밖에...
승안사지 입구에 버스를 댄 뒤...
하동정씨구충각을 먼저 들린다.
구충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목조 기와집으로 중앙칸에는 ‘하동정씨구충각(河東鄭氏九忠閣)’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구충각은 조선시대 하동정씨 일가 여덟 문중에서 아홉 충신의 정려각(旌閭閣)이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안음(지금의 안의면)에서 정희량 등이 난을 일으켰는데 이를 진압한 이들이 하동정씨 아홉 사람이다.
이에 나라에서 공을 인정하여 정려를 내렸다.
9인은 정희운, 정찬헌, 정윤헌, 정소헌, 정중헌, 정상헌, 정승헌, 정사헌, 정진후이다.
하동정씨구충각 내부에는 9기의 정려비가 있다.
비석의 형태는 비대와 비신만 갖춘 형태이며 비신 머리부분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정려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좌에서 우로).
「충신 증조봉대부호조좌랑행후릉참봉 정희운지려(忠臣 贈朝奉大夫戶曹左郞行厚陵參奉 鄭熙運之閭)」
「충신 정찬헌지려(忠臣 鄭纘獻之閭)」
「충신 증통정대부이조참의행연풍현감 정윤헌지려(忠臣 贈通政大夫吏曹參議行延豊縣監 鄭胤獻之閭)」
「충신 정소헌지려(忠臣 鄭紹獻之閭)」
「충신 증조봉대부동몽교관 정중헌지려(忠臣 贈朝奉大夫童蒙敎官 鄭重獻之閭)」
「충신 정상헌지려(忠臣 鄭尙獻之閭)」
「충신 정승헌지려(忠臣 鄭承獻之閭)」
「충신 정사헌지려(忠臣 鄭師獻之閭)」
「충신 정진후지려(忠臣 鄭鎭垕之閭)」
하동정씨구충각 옆에는 정여창 신도비가 있다.
승안사지를 가기 위해 조금 더 이동하니 오석 큰 비석에 새겨진 무오사화란 싯귀가 눈에 들어온다.
아! 슬프도다, 무오사화 일어난 일/ 푸른 하늘에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은데,
하늘에 오를 수 없어 호소하기 어려워/ 눈물이 울분 따라 옷깃에 젖어드네.
嗚呼 戊午年間事/ 欲向蒼天 問厥由/ 天不可階 難可訴/ 涕隨遺憤 滿衿流
이 시는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지 종성에서 눈을 감은 뒤 갑자사화로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한 증조부 일두 정여창을 생각하며 정수민이 쓴 시이다.
춘수정(春睡亭)이다.
춘수정은 1947년 정수민(鄭秀民 1577~1658)의 후손들이 정수민을 기리는 정자(춘수정)를 짓고 사적비를 세웠다.
정수민은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고, 자는 자빈(子賓), 호는 춘수당(春睡堂)·동리(東里)이고,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증조할아버지가 우의정을 지낸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이다.
'춘수당정수민선생사적비'.
뒷편 산 위에 있는 팔작 기와집을 당겨 보았더니 현판엔 동리재(東里齋)다. 동리(東里)는 정수민의 또다른 호다.
춘수정 중앙엔 작은 방을 들였다.
춘수정 안내판.
승안사지 가는 입구에 두 기의 돌비는 승안산 하동정씨 묘소와 문헌공 일두 정여창 선생의 묘소를 가리키고 있다.
산좇는 꾼들은 능선으로 바로 붙어 승안산을 갔지만 나는 승안사지 답사를 먼저 하기 위하여 포장 도로를 곧장 따르다...
우측으로 바라보니 뽈록 솟은 봉이 보인다. 저게 승안산이라면 이통 안테나들이 나란히 선 잘록이로 붙으면 되겠다.
승안사지 유적들을 답사한 뒤 이 곳으로 올랐다가 이 곳으로 내려왔다. 능선 잘록이까지는 그런대로 길이 나있다.
승안사지의 너른 터(址)만 봐도 승안사는 제법 큰 규모였으리라.
하동정씨 문중묘소를 관리하는 한옥건물 여재각(如在閣) 앞 사각형 비석은...
문헌공 일두 정여창 신도비.
그 옆에 작은 보호각이 있어...
안을 살펴 보았더니 돌부처 한 기가 오도카니 앉아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호인 '승안사지 석조여래좌상'이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하반신이 땅에 묻힌 채 오른쪽 팔과 머리가 떨어져 있던 것을 수습해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이 불상은 부처의 신체적 특징인 상호(相好)를 따르지 않아 보통의 양식과 달리 머리 장식이 없는 민머리이며 목에 삼도(三道)도 없다.
조금 떨어진 곳의 '승안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4호)'.
대체로 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기단과 탑신의 균형이 잘 맞지 않으며 장식의 비중이 커진 고려 초기 석탑의 특징을 보인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는데, 위층 기단에는 부처, 보살, 비천 등의 모습을 새겨두었다.
또한 위층 기단의 맨 윗돌에는 연꽃조각을 새겨 둘러 놓았는데, 이러한 장식은 보기 드문 모습이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고 있다.
2층부터는 몸돌의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데, 1층의 몸돌에는 각 면마다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놓았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넓고,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의 경사는 급하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며 네 귀퉁이가 거의 들려있지 않아 둔중해 보인다.
탑의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받침) 위에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과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가 남아있다.
1962년에 원래 있던 자리에서 15m 정도 옮겼는데, 이때 탑을 해체하면서 묵서(墨書)와 사리장치 등이 발견되었다.
사리장치는 황동제합(黃銅製盒) 안에 든 향 조각·유리 사리병·유리구슬·은가락지·은 조각 등의 장엄구로 이루어졌는데 1494년(성종 25)에 석탑을 옮겨 세웠을 때 안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여창(鄭汝昌, 1450~1504)과 관련된 전설이 전하는데, 그가 모친상을 당해 승안사 경내에 묘를 쓰려고 하자 승려들이 반대했다.
운구 중에 홍수가 나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는데, 정여창이 상여를 붙잡고 통곡하니 강물이 갈라지고 길이 생겼다.
승려들도 하늘이 낸 효자라고 하여 묘 쓰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정여창이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부관참시당하면서 이 절도 함께 쇠락했다고 한다.<자료인용>
위로 올라 보았더니 무슨무슨 제단 비석이 있는 황량한 터.
다시 내려와 일행들의 꽁무니를 따르려다 저 아래 봉우리가 승안산이니 그 밑 잘록한 안부로 쉽게 붙기로 하였다.
결론은 일행들을 따라야만 정여창 묘역을 갈 수 있었다. 묘역 올라가는 방향은 석탑 조금 아래 좌측 열린 철망을 넘어야 하는 것.
무식한 귀신은 부적도 몰라 본다더니, 내가 꼭 그랬다. 그래서 최상열 님의 사진을 빌려왔다.
<최상열 님 사진>갑자사화로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한 선생의 묘. 바로 이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무식한 나는 그렇게 정여창의 묘를 답사치 못하고 그냥 아까 보았던 잘록한 안부로 붙었다.
승안산을 찍고 새암산으로 쭈욱 뽑을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습지를 지나 안부로 오르는 길.
그 길은 묵은 임도급 산길.
금세 묵은 묘가 있는 능선 안부로 붙었으나 그 이후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이 일대 가시잡목 지대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 위리안치(圍籬安置): 귀양지에서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 가두어 두는 형벌.
<바로 옆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산짐승인가?
"누고?"
"내요." 깃대봉 정욱 씨다.
"그 뭐하요?"
"아~이, 길이 없어요."
그렇게 깃대봉과 만난 뒤 둘이서 잡목 가시밭을 헤매다 등네미, 청한수호, 철인, 나한 등 6명과 추가로 합류하였다.>
그렇게 가시 잡목숲을 헤매다 삼각점을 만났다. 오래 헤맨 것 같았으나 이동 반경은 크지 않았으니 ㅉㅉ.
지형도의 삼각점이 있는 승안산(△ 311.1m)이다. 안내판엔 309.8m라고 적혀있다.
아무 표식도 없는 삼각점에 우선 철인과 함께 서명한 시그널을 걸었다.
능선을 타고 올라온 일행들은 아까 본 높은 봉우리(약 385m)에 청산수산악회에서 오래전 달아놓은 승안산 표식을 보았단다.
승안산 삼각점 아래 하늘이 열린 하동 정씨묘에서 구수회의가 열렸다.
"포기할 줄도 알아야 돼."
그만 여기서 내려가자고 한 뒤 버스에 전화를 하여 대기하라 부탁해 놓았다.
그런 뒤 하산을 위하여 능선에 다시 오르자 "아~ 이만하면 길 좋네."하며 다시 진행하려고 한다.
너구리나 기어다닐 잡목 터널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장수 씨~"
포기한 사람은 나와 장수 씨 둘이고, 그들은 질주본능으로 금세 사라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조금 더 진행하니 솔밭길이 괜찮더라는 것.
묵묘가 안부 갈림길 포인터. 내가 올라온 지점이자 다시 내려갈 지점.
멧돼지 목욕탕을 지나자...
펑퍼짐한 임도급 산길.
안부에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길 옆 다리로 나왔다.
돌아보니 잘록한 안부. 우측에 이제 제철을 만날 연지(蓮池).
길가에서 우선 타는 목마름을 해소하였다. 산에선 갈증을 해소할 염(念)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으니...
춘수당을 지나자 좌측 3번국도 거함대로변에 대기하고 있는 우리 버스의 지붕이 보인다.
대로변 승안사지 안내판. 이미 많은 회원들이 삼삼오오 회귀하여 버스에 탑승하고 있었다.
맑은 계곡을 찾아 딱밭골재를 넘었지만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다가 골무산이 올려다 보이는 상백리 금호교 아래를 찾아 들었다.
옷을 벗고 물속에 잠수 직전 악취가 코를 찌른다. "이 무슨 냄새고?" "축사에서 나는 냄새 같다." "앗 뜨거라,"
나는 물에서 퍼뜩 올라와 그곳을 벗어났다. 어제 내린 빗물에 축사농가들이 오수를 강으로 흘러 보낸 모양인 듯.
상백마을회관으로 돌아가면서 골무산을 짚어본다. 골무산(鶻舞山)은 '송골매(鶻)가 춤(舞)을 추는 형상'이라는 뜻.
그러고보니 골무산 상공에 날개를 활짝 펴고 송골매가 날고 있는 듯하다.
당겨보는 골무산.
박원순 서울시장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또다시 우리 사회가 두 동강 나고 있다.
현대사의 증인이자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도 파란만장한 세상을 작별하였다.
두 거인들의 죽음으로 네편 내편 편가르기는 극에 달한다.
이 즈음에 만난 안치환 작사작곡의 신곡 ‘아이러니’의 노랫말이 흥미롭다.
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진보의 힘 자신을 키웠다네
아이러니 왜이러니 죽쒀서 개줬니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게 없잖니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끼리끼리 모여 환장해 춤추네
싸구려 천지 자뻑의 잔치뿐
중독은 달콤해 멈출 수가 없어
쩔어 사시네 서글픈 관종이여
아이러니 왜이러니 죽쒀서 개줬니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게 없잖니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아이러니 왜이러니 죽쒀서 개줬니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게 없잖니
잘가라! 기회주의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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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사진)
연화산(444m,함양),사근산성,승안산(311m),승안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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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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