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법과 치료효과는 어떻게 탄생하며
보증되는가?
치료 효과와 그 검증
인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1492). 출처/ Wikimedia Commons
우리는 흔히 동양과
서양의 의학이 오래전부터 달랐던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근대 해부학과 생리학이 탄생하기 전까지, 이들이 인간 몸을 바라보는 관점은
많은 부분에서 유사했습니다. <황제내경>에서 음양의 조화가 깨질 때 인간 몸에 병이 생긴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히포크라테스나
갈레노스는 4체액설(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을 기반으로 몸을 바라보며 그 균형이 깨질 때 인간이 병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치료의 측면에서도 유사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역병으로 알려진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숨졌던
14세기, 중세 서양 의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치료 중 하나는 사혈, 즉 인간 몸의 특정 부위에서 피를 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의사들은
부패한 피를 빼내서 몸을 정화시키면, 신체의 모든 기관을 통제하는 심장이 강화된다고 믿었습니다.[1]
한의학에서도 사혈은 오래된 치료법 중 하나이고, 오늘날까지도 여러 한의원에서 침을 이용해 피를 빼내는 시술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치료가 탁해져서 뭉친 피를 제거하여 증상을 개선시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동양과 서양 의학의 유사성이 어느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균의 존재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없이 인간 몸을 치료해야 했던
시기에, 의료진이 쓸 수 있는 수단은 극히 제한되었고, 서양과 동양의 의학 연구자들은 그 한계 안에서 분투했던 것이지요. 힘없는 무기로 싸워야
했던 질병과의 전쟁에서 인간은 무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중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구요.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시기에 고행을 통해 질병을 내린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고자 하는 의식이 독일에서 유행하기도 했습니다.[2] 또한
조선시대 사람들은 당시 치명적인 질병이었던 천연두의 전파를 막고자, 집에 찾아온 그 질병을 돌려보내기 위해 ‘마마손님’으로 부르며 경건하게
섬기기도 했습니다.[3]
근대 이전 치료법, 동서양의
공통점들
더 나아가 근대 이전의 치료법에서는, 구체적인 행위뿐 아니라 그런 치료법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서양과 동양이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해부학이나 생리학 같은 현상에 대한 관찰과 실험보다는 인간 몸을 바라보는 이론에 기반하여 치료를 진행했다는 점이지요.
사혈을 통해 4체액 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심장의
근육 수축으로 혈액이 혈관을 통해 신체를 순환하고 돌아온다는 해부학적 지식과 혈액이 인간 몸에서 담당하는 생리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면,
사혈을 치료법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여기는 혈액순환설의 역사는 인류가 불과 50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17세기 초 윌리암 하비(William Harvey)가 혈액이 인간의 조직에서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훗날 말피기가 발견한 어떤 조직을
통해서 동맥의 피가 정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하면서 시작된 것이지요.[4]
또 다른 공통점은 동양과 서양에서 모두 효과에 대한 경험적 근거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그러한 치료가 계속되었다는 점입니다. 좀 더 명확히
이야기하면, 역학적(epidemiologic) 근거없이 치료법이 계속 시행되었다는 것이지요. 내가 30명에게 사혈을 시행했더니 25명에서 효과가
있었다는 주장이나, 어떤 동네사람들의 병이 모두 나았다는 식의 기술은 동양과 서양 의학의 역사 모두에서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드물지만 몇몇
기록들은 다른 약을 복용하는 것보다 이 치료를 받은 사람에서 결과가 더 좋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치료 대상을 어떻게 선정했는지, 어떻게 치료 받지 않은 대조군을 설정해 비교했는지, 치료 효과와 더불어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인한
위협은 감당할 만한 것인지 등에 대한 체계적인 고민이 없었던 것이지요. 특정 치료가, 예를 들어 사혈의 치료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검증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교란인자가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형태의 선입견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엄밀히 통제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학문인 역학은 역사가 채 150년이 되지 않습니다.
치료법 유산들…‘정말로 치료 효과가
있는가’
저는 근대 이전에 서양에서 사용한 치료법들이나 동양의 의학에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사용하는 치료법들 중에는 효과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치료법들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지요. 근대 과학이 탄생하기 이전에, 인류가 분투하며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몸으로 체험하며 얻은 지식들이니까요. 소중한 유산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유산 중에서 오늘날 계승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일입니다. 그 질문의 핵심은 당연히 ‘치료
효과가 진짜로 있는가?’입니다. 그 치료의 내용이 무엇이건, 어느 지역에서 생겨났건, 어느 학제에서 기인한 것이건, 치료법이 효과가 있어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사용해야지요. 설사 오늘날 생리학적, 생화학적 지식으로 온전히 그 효과를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확실히 있다면 그 치료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답하려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지난하고 엄밀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충분한 수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결과에 대한 여러 비판에 대응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검증하고 인정받기 위해 학술 연구로 출판하기도 하고요.
치료 효과 확인은 생각처럼 쉽진
않다
하지만 그렇게 도달한 결론조차도 때로는 틀릴 때가 있습니다. 폐경기 여성에게 일반적으로 호르몬 치료를 권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에 의해 1996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JM)>에 관련 논문이 출판되고 나서,[5] 의학계는 호르몬제 처방을 내리는 것이 확고한 근거를 갖춘 사실처럼
여겼습니다. 폐경으로 인해 몸에서 부족해진 호르몬을 채워주는 치료는 직관적으로도 맞는 이야기였고, 더 나아가 심장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연구는 보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채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결론을 의심하는 연구 결과가 출판되고,[6] 그러한 연구들이 쌓여 결국에는 1996년 논문과는 부분적으로 반대되는 결론에
도달합니다.[7] 호르몬제 치료로 인해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들이
나타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장병 발생과 같은 부작용이 호르몬 사용으로 인한 이득보다 더 클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모든
폐경기 여성에게 호르몬 치료를 권하지는 않습니다.[8]
저는 연구를 통해 폐경후 여성의 호르몬 치료 효과에 대한 입장이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어떤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고 면밀히 분석해야 하는 일인지를 절감했습니다. 5만 9000여명의 폐경후 여성을 최대
16년 동안 관찰한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조차 때로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요.[5]
‘투명한 검증’이 환자를 위하는
길
그래서 더더욱 어떤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비판에 노출해 검증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경우에 우리는 그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 토론할 수 있고 그에 기반해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요.
칼 포퍼가 이야기했던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으로 인해, 우리는 장기적으로 더 신뢰할 수 있는 치료를 찾게 될 테니까요.
앞서 언급한 폐경후 여성에 대한 호르몬 치료에 대한 연구도 그렇습니다. 연구가 연구를 반박했던, 데이터에 근거한 주장을 더 나은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이 무너뜨렸던 그 과정을 거쳐, 우리는 이제 어떤 사람에게 호르몬 치료가 도움이 되는지 또 어떤 사람에게는 득보다 실이 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간혹 모든 치료의
효과에 대한 투명한 검증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접근을 동양 의학에 대한 서양 과학의 폭력이라고 말하는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한된 지식 속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동양의 과학자들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20세기
제국주의가 들어오면서 퍼트린 서양의 합리와 구분되는 동양의 신비를 강조한 오리엔탈리즘과 닿아 있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저는 허준이나 정약용이
21세기에 살고 있다면 당연히 동양 의학의 여러 치료법에 대한 투명한 역학적 검증에 찬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환자를
위하는 길이니까요.◑
[주]
[1] 박흥식(朴興植), 흑사병 논고. 역사교육, 2008.
106: p. 183-210.
[2] 필립 지글러, 흑사병. 2003: 한길사.
[3] 박동욱, 천연두, 그 아픔과 상실의 기억-장혼 (張混)
의 [기척 (記慽)] 을 중심으로. 우리어문연구, 2015. 52(단일호): p. 261-288.
[4] Ribatti, D., William Harvey
and the discovery of the circulation of the blood. Journal of angiogenesis
research, 2009. 1(1): p. 1.
[5] Grodstein, F., et al.,
Postmenopausal estrogen and progestin use and the risk of cardiovascular
disease. N Engl J Med, 1996. 335(7): p. 453-61.
[6] Hulley, S., et al., Randomized
trial of estrogen plus progestin for secondary prevention of coronary heart
disease in postmenopausal women. . JAMA, 1998. 280(7): p. 605-13.
[7] Manson, J.E., et al., Estrogen
plus progestin and the risk of coronary heart disease. N Engl J Med, 2003.
349(6): p. 523-34.
[8] Moyer, V.A., Menopausal
hormone therapy for the primary prevention of chronic conditions: 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 recommendation statement. Ann Intern Med, 2013.
158(1): p. 47-54.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