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마중
그녀의 굽은 등에 파도가 친다
오롯이 숨의 깊이를 다녀온 그녀에게
둥근 테왁 하나가 발 디딜 곳이다
슬픔의 중력이 고여 있는
물의 그늘 속에 성게처럼 촘촘히 박힌 가시
물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엔 딸의 물숨이 묻어있다
끈덕진 물의 올가미
물숨을 빠져나온 숨비소리가 휘어진 수평선을 편다
바다의 살점을 떼어 망사리에 메고
시든 해초 같은 몸으로 갯바위를 오를 때
환하게 손 흔들어 물마중 해주던 딸,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
눈 뜨면 골갱이랑 빗창을 챙겨 습관처럼 물옷을 입었다
납덩이를 달고 파도 밑으로 들어간 늙은 어미가
바다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테왁 같은 낡은 집이 대신 손을 잡는다
저녁해가 바닷속으로 자맥질하고 있다
등꽃 목욕탕
꽃 뭉치가 샤워기 같다
일 년에 단 열흘만 개장한다는 등꽃 목욕탕
강변의 사각정에 올려놓은 등꽃, 사방에서 틀어놓은 샤워기처럼 보라색 물이 쏟아진다
등꽃 그 뜨신 향기에 먼저 민들레가 몸을 담그고 멧비둘기도 날개를 적시고 바람은 털썩 바닥에 앉아 신을 벗는다 막 들어온 햇살이 꽃 뭉치 샤워기를 끝까지 틀어놓는다
어질어질 물길은 깊어져 온통 보랏빛 향기 속으로
자주 응급실을 들락거리던 한 여자가 시든 몸을 담근다
부은 발을 주무르고 훈김 오르는 물방울이 안경 속으로 후드득 떨어진다
돌아앉은 그녀의 등을 멧비둘기가 꾸욱꾸욱 밀어준다
풀어진 여자가 탕 속에서 나오자 참새 몇 마리 슬픔의 각질들을 서둘러 치우고 등꽃 목욕탕은 노을을 받을 채비를 하고 있다
유계자 <약력>
2023년 시집 『물마중』, 세종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사업 공모 선정
2022년 시집『목도리를 풀지 않아도 저무는 저녁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2년 중소 출판사 출판콘텐츠 선정
2021년 애지문학작품상 수상
2019년 시집 『오래오래오래 』, 세종문화재단 수혜
2016년 《애지》 신인상 등단
2013년 웅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