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향기를 안고 나를 찾아온다. 바닐라와 코코아가 묻어있는 초콜릿향은 눈을 감게 하고 신선한 과일향은 편안한 자세를 만든다. 아름다운 꽃향기는 입가의 미소를 부르고 입술을 촉촉히 자극한다.
그는 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혀끝을 감싸며 뜨겁게 물결치듯 움직이며 입안으로 들어온다. 갈색빛이 감돌고 촉감과 움직임은 부드러워서 입에 들어오는 순간 감각적인 에너지를 모두 빼앗는 강력함이 있다. 온몸에는 짜릿한 전율이 흐르고 귀에는 종소리가 들리며 감은 눈앞에는 모든 것이 공중에 떠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촉감은 현실을 잊게 하는 마법을 걸고, 코끝에 맴도는 달콤한 향은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소망하는 중독된 노예로 만든다. 이 매혹적인 중독은 그가 떠나간 후에도 짙은 여운으로 남아 하루에도 몇 번씩 기다리게 한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키스처럼 달콤한 알싸함이 혀에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이기에 또 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일까.
혀에 남겨진 흔적은 가장 달콤한 키스 페인팅(kiss painting). 캔버스는 가장 감각적이며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 혀이고, 붓 역시 가장 잘 안착시킬 수 있는 혀이며, 물감은 바로 에스프레소다. 캔버스에 신속하게 그려진 후의 반응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다. 이런 미소를 만들어내는 일리(illy) 에스프레소는 어떤 특별한 물감을 쓴 걸까.
오감을 자극하는 특별한 경험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인 일리카페(illy caffe)는 1933년 헝가리 출신의 프란체스코 일리에 의해 트리에스테시에 세워졌다. 그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고객의 오감만족을 중시하여 한결같은 ‘맛과 향’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스팀을 압축 공기로 대체하는 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일레타(illetta)를 발명했고, 향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커피가 담긴 캔 내부 공기를 질소로 대체하여 포장하는 새로운 압축포장기술도 개발했다. 지구상 어디에서라도 최고 품질의 향을 풍기는 일리 커피 한 잔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혀에 그림을 그리는 완벽한 에스프레소는 크레마(crema·거품층), 맛, 향을 통해 알 수 있다. 크레마는 엷은 갈색의 크림층으로 커피원두에 포함된 오일이 증기에 노출되어 표면 위에 떠오른 것이다. 두툼한 크레마가 에스프레소 표면을 빈틈없이 덮어야 최고의 맛과 향을 낸다는 증거다. 맛은 신맛이 느껴지다가 점차 쓴맛이 느껴지고 마지막으로 단맛이어야 한다. 향은 아몬드, 초콜릿, 과일, 꽃 등 1000가지가 넘는다.
커피 중 완벽한 커피로 여겨지는 에스프레소는 커피원두 50개를 분쇄해 7g의 커피가루로 만들어진다. 섭씨 90도의 물에 9기압의 압력을 가해 커피가루를 30초 동안 신속하게 통과시켜 추출한 30㎤ 소량의 커피다. 커피의 순수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에스프레소(Espresso)의 영어식 표기인 ‘익스프레스(express)’는 ‘빠르다’라는 의미로 추출 과정에서 얻어진 명칭임을 알 수 있다.
화학자가 사랑한 과학적인 음료
▲ 작가들의 사인이 들어가 있는 일리컬렉션.
일리에스프레소의 창업자 아들이자 2대 회장이었던 에르네스토 일리(Ernesto illy)는 “훌륭한 에스프레소는 혀에 그림을 그린다(Fine espresso paints the tongue)”고 말한다. 에르네스토 일리는 ‘에스프레소 선교사’ ‘파파빈(papa bean)’ 등의 별명을 갖고 있고, 화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커피에 접목시킨 화학자이다. 에스프레소는 그에게 흥미로운 화학실험 대상이기도 했다. 1500개의 화학물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800여개가 휘발성 물질. 제조과정에서 적어도 13개의 화학적·물리적 변수가 작용한다. 화학자 출신답게 그는 입안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향이 조화를 이루도록 실험하고 또 실험하여 신기술을 개발했다. 또 커피대학을 만들어 과학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만들려면 50개의 커피콩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오믈렛 요리에 썩은 달걀 하나가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에스프레소 자체가 완벽한 음식인 것이다. 에르네스토는 완전하지 않은 생두를 제거하는 전자분류시스템, 114단계를 거치는 품질검사 체크 시스템, 향기전문연구소 등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한결 같은 맛과 향을 가진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과학을 토대로 품질에 대한 완벽성뿐 아니라 에스프레소 한 잔에 예술을 담아 커피 문화를 미학적으로 더욱 차별화했다. 일리컬렉션은 입에 닿는 커피잔의 두께에도 신경을 썼고 1992년부터 에스프레소 잔과 받침을 캔버스 삼아 세계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했다.
완벽한 한 잔의 완성은 예술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 토끼, 풍선, 달걀을 거대하게 확대하여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만화 주인공 같은 귀여운 형체들은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일리 에스프레소 커피잔에 그려진 제프 쿤스의 동물들은 파스텔톤 색상으로 그려졌고 동물의 간략한 특징만 표현됐다.
잔과 받침에도 동물을 크게 확대하여 그려 넣었다. 진한 에스프레소가 담긴 제프 쿤스의 잔은 시각적으로 생동감과 즐거움을 준다. 파스텔 색상의 제프 쿤스 동물 잔은 진한 에스프레소와 조화를 이룬다. 또 에스프레소를 다 마시고 나면 마치 귀여운 동물들과 하늘 위를 떠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유혹을 느낀다.
파스텔 색상의 동물들은 에스프레소가 혀에 그린 그림의 실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혀에 부드럽게 퍼진 듯한 기린, 코끼리, 토끼 등이 앙증맞은 느낌을 준다. 색소가 든 사탕을 먹고 물들어 있는 혀를 거울에 내밀며 확인하는 어린아이처럼,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을 그림으로 확인하면 이런 귀여운 동물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도 일리컬렉션에 동참했다. 일리잔을 작은 텔레비전 삼아 화려한 색감과 속도감 있는 터치들을 잔에 가득 표현했다. 속도감 있는 선은 과학적으로 계산된 에스프레소를 빠른 시간에 추출하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전자파와 그래픽 플래시를 통해 창조되는 영상은 1500개의 화학물질이 만들어내는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의 제조과정을 입체적으로 형상화시킨다. 일리에스프레소의 과학과 예술은, 과학과 예술의 만남인 비디오아트와 닮았다.
에스프레소 한 잔의 완벽함에 숨어있는 욕망은 아무래도 행복일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완벽함은 예술이 완성해줄 수 있다. 예술은 불안과 고통을 통해 현대와 소통하지만 결국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라는 맛과 향을 풍긴다. 예술에 중독되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