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23]
2001년 무렵이었을 때였다. 내가 사는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대구 경북고를 나오고 서울법대 출신인 인천 인하대학교 법학대학에 다니는 Y교수가 있었다. 관악산 등산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Y교수는 나이가 나보다 8년이 많았고 신기하게도 나의 어릴 적 대구 중앙초등학교의 선배였다. 그는 퇴근하면 항상 슈퍼에 들러 캔 맥주를 사가지고 집으로 가곤했다. 때로는 집근처 호프집에 들러 생맥주를 마시곤 했다. 그런데 외상으로 주로 마시는 그는 단골 술집에서 술값문제로 가끔 시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유인즉 자기가 계산하고 있는 금액과 주인이 장부에 기재한 금액과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그는 하루도 맥주를 마시지 않을 때가 없는 것 같았다.
필자와도 여러 번 맥주를 먹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맥주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온 나도 Y교수의 맥주실력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하루는 Y교수의 타 대학 후배교수와 종로구 청진동에서 함께 어울렸다. 그날 우리는 3차까지 가며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는데 피로에 지친 타 대학 후배교수는 먼저 집으로 가고, 나와 Y교수만 남아 최후결전을 치르게 되었다. 우리는 새벽까지 계속 마시다가 여의도로 돌아와서 다시 몇 차례 장소를 옮겨 그 날 오후까지 연 이틀을 숨 돌릴 새도 없이 마셨다. 그러다가 나는 약간 피로해지며 졸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무의미한 술판이 갑자기 지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가겠다고 했더니 Y교수는 나를 붙잡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술로부터 마음이 떠났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Y교수의 완강한 고집에 정상적인 파작(破酌)은 어렵다고 보고, 마침내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도망을 쳤다.
그런데 이를 눈치 챈 그는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나를 따라오다가 그는 몸의 중심을 못 잡고 길에 넘어졌다. 나는 다시 그와 술을 계속하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아 집으로 오고 말았다. 집에 와서 침대에 들어 누었는데 갑자기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아내가 문을 열었더니 Y교수가 와서 나를 찾는 것이었다. 상황을 눈치 챈 아내가 내가 집에 없다고 하였지만, 그는 도망간 나를 원망하며 한참(1시간가량)을 버티다가 집에 갔다. 유명한 문인 중에 누군가 잠도 자지 않고 몇날 며칠을 연속해서 술을 마셨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Y교수에게 나는 그 시간이후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었다. 세월이 흘러 Y교수는 인하대학교서 법대학장을 거치고 정년퇴직한 후 오랜 음주로 인한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 세월과 술에 장사 없다는 말이 불현 듯 생각났다.
그는 슬하에 딸 둘을 길렀는데, 두 딸 모두 미국에서 살며 전문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첫댓글 다저스 선배님께서
지나온 날들을 마치 어제일 처럼 생생하게 기억을 하시고 계시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쌓아오신 수많은 삶의 경험들이 지혜의 등불이 되어
늘 건강하고 평안한 날들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전형을 보여주시는 Y교수님이시네요. ㅎㅎ
대단한 주량에다가 날마다 음주를 하셨다니, 풍류랄 수도 있으나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축내신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오늘도 다저스님의 풍성한 경험과 기억 창고에서 꺼내주신 흥미로운 회고담 잘 읽고 갑니다. ^^
요즘은 이정도로 드시는 분은 많이 안계신듯합니다. 술로 인하여 건강을 혜치셨지만 낭만도 살짝 느껴지네요.
옛날에는 집을 다 알아두고 지내는 시대라서
취해서 집까지 찾아왔네요.ㅎ
요즘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ㅎㅎ
저 같은 사람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뭐든지 즐기는 것이 되어야지, 그 것이 무엇이 되었던 심하게 집착 한다면,
이미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집착이나, 괴로움 이겠죠~^
ㅎ
술을 즐기며 마시면 나름
낭만적일 수 도 있는데
Y교수님은 술이 술을 마시는 격이 되어 결국은 건강을
헤치고..
요즘은 다들 건강에
관심들이 많아 지나친 음주는 안하는 분위기다 보니 옛날
같은 음주 문화 가 아니니 참 다행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