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의 흑인폭동을 지켜보면서---
글/ 차길진(차법륜)
지난 1992년 4월 29일 LA에서 일어난 흑인폭동.
당시 나는 그 현장에서 이것을 지켜봤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한인타운 올림픽가의 중심부에 있었던 뉴서울호텔. 올림픽가를 중심으로 한 한인타운 전체가 방화, 약탈의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나는 어쨌든 가장 핵심에서 역사적 사실을 지켜본 셈이다.
내가 남가주불교청년연합회의 강연 초청을 받고 LA에 도착한 것이 사건이 나기 며칠 전이다. 무사히 강연을 마치고 LA구경을 하고 가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하루는 호텔종업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고 손님들도 얼굴이 굳어 서로 모여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때가 이미 사우스 센츄럴 부근에서 방화가 시작된 29일 저녁.
라디오 코리아를 통해 한인타운으로의 폭도진입 뉴스가 연속으로 나오자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지 M16 등 장총과 권총들이 쏟아져 종업원들이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옥상에 올라가보니 남쪽 하늘에 전쟁이 난 것 같이 붉은 불기운이 군데군데 뻗쳐 있고 이어지는 총소리가 밤하늘을 뚫고 있다. 동행했던 친구가 옛날 솜씨를 발휘하려는지 총기를 구해 허공에 대고 공포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어스름 어둠속에 올림픽가는 전체 불이 꺼져 어두운데 가끔 지나는 히스패닉계의 젊은이들 뿐 지나는 차들도 없다.
4월 30일 아침 남쪽하늘에 방화로 인해 타오르는 검은 구름이 군데군데서 올라가기 시 작한다. 객실에 묵고 있는 손님들이나 종업원들 모두가 로비등에 모여 다급하게 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듣고 있다. 경찰들이 현재 한인타운을 포기하고 외곽지역으로 벗어나고 있다는 한인아니운서의 분노어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비버리힐스에 일부 접근했던 폭도들이 경찰 페츠롤카 수십대에 의해 전격 진압됐다는 소식도 전한다.
30일 밤. 1일 아침, LA 방송들에서 나오는 폭동의 확대 소식과 맞물려 한인방송 라디오코리아 등에서 백인경찰들의 한인 타운 약탈• 방화 방조사실 등을 지적하는 뉴스 등이 나오기 시작한다.
스와르미(저가도매시장)과 주유소, 백화점 등을 지키기 위해 한인들 일부가 무장을 하고 폭도대와 충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연이어 동포단체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2 백여명의 자위대가 구성됐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5월 1일밤 한인청년들을 중심한 자위대가 동포상가 주요지역을 수비하기 시작 하던 때 이미 대부분의 한인업소들은 잿더미로 변했던 때였다. 아비규환이었다. 불을 지르고 흩어지는 자, 총을 쏘며 가게에 접근하는 자, 회회낙낙하며 남의 물건을 훔쳐가는 자, 또 그것을 막으려고 지키려는 자, 지옥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인간사 기본적인 질서규범이 무너지자 삽시간에 세상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공공의 안녕을 지키고 민중의 지팡이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경찰들은 이미 저 살려고 도망가버렸다. 해묵은 한국인들과 흑인들의 감정이 폭동을 통해 폭발, 파괴, 약탈 행위를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다.
4일 아침 주방위군이 올림픽 타운내로 진입하고 뒤이어 경찰들과 연방군이 중무장을 한 채 경비에 투입됐다. LA 흑인폭동의 중심 사우스 센츄럴 부근은 대규모 폭격을 맞은 전쟁터처럼 불에 그을린 벽돌들과 타버린 물건들로 참옥하다.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로드니 킹을 구타한 백인경찰들, 그들의 탓인가, 아니면 그들이 무죄라고 평결을 내린 배심원들 때문인가. 미국의 사법제도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면 폭동을 직접 일으킨 흑인들. 히스패닉계의 책임인가. 아니면 흑인 지역에서 장사하면서도 그들과 화합하지 못한 우리들의 책임인가.
나는 여기저기서 불에 타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사우스 센츄럴 부근에서 망연히 서서 이렇게 되뇌이고 있었다.
1992년 6월호
글/ 차길진(차법륜)
지난 1992년 4월 29일 LA에서 일어난 흑인폭동.
당시 나는 그 현장에서 이것을 지켜봤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한인타운 올림픽가의 중심부에 있었던 뉴서울호텔. 올림픽가를 중심으로 한 한인타운 전체가 방화, 약탈의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나는 어쨌든 가장 핵심에서 역사적 사실을 지켜본 셈이다.
내가 남가주불교청년연합회의 강연 초청을 받고 LA에 도착한 것이 사건이 나기 며칠 전이다. 무사히 강연을 마치고 LA구경을 하고 가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하루는 호텔종업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고 손님들도 얼굴이 굳어 서로 모여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때가 이미 사우스 센츄럴 부근에서 방화가 시작된 29일 저녁.
라디오 코리아를 통해 한인타운으로의 폭도진입 뉴스가 연속으로 나오자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지 M16 등 장총과 권총들이 쏟아져 종업원들이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옥상에 올라가보니 남쪽 하늘에 전쟁이 난 것 같이 붉은 불기운이 군데군데 뻗쳐 있고 이어지는 총소리가 밤하늘을 뚫고 있다. 동행했던 친구가 옛날 솜씨를 발휘하려는지 총기를 구해 허공에 대고 공포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어스름 어둠속에 올림픽가는 전체 불이 꺼져 어두운데 가끔 지나는 히스패닉계의 젊은이들 뿐 지나는 차들도 없다.
4월 30일 아침 남쪽하늘에 방화로 인해 타오르는 검은 구름이 군데군데서 올라가기 시 작한다. 객실에 묵고 있는 손님들이나 종업원들 모두가 로비등에 모여 다급하게 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듣고 있다. 경찰들이 현재 한인타운을 포기하고 외곽지역으로 벗어나고 있다는 한인아니운서의 분노어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비버리힐스에 일부 접근했던 폭도들이 경찰 페츠롤카 수십대에 의해 전격 진압됐다는 소식도 전한다.
30일 밤. 1일 아침, LA 방송들에서 나오는 폭동의 확대 소식과 맞물려 한인방송 라디오코리아 등에서 백인경찰들의 한인 타운 약탈• 방화 방조사실 등을 지적하는 뉴스 등이 나오기 시작한다.
스와르미(저가도매시장)과 주유소, 백화점 등을 지키기 위해 한인들 일부가 무장을 하고 폭도대와 충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연이어 동포단체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2 백여명의 자위대가 구성됐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5월 1일밤 한인청년들을 중심한 자위대가 동포상가 주요지역을 수비하기 시작 하던 때 이미 대부분의 한인업소들은 잿더미로 변했던 때였다. 아비규환이었다. 불을 지르고 흩어지는 자, 총을 쏘며 가게에 접근하는 자, 회회낙낙하며 남의 물건을 훔쳐가는 자, 또 그것을 막으려고 지키려는 자, 지옥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인간사 기본적인 질서규범이 무너지자 삽시간에 세상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공공의 안녕을 지키고 민중의 지팡이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경찰들은 이미 저 살려고 도망가버렸다. 해묵은 한국인들과 흑인들의 감정이 폭동을 통해 폭발, 파괴, 약탈 행위를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다.
4일 아침 주방위군이 올림픽 타운내로 진입하고 뒤이어 경찰들과 연방군이 중무장을 한 채 경비에 투입됐다. LA 흑인폭동의 중심 사우스 센츄럴 부근은 대규모 폭격을 맞은 전쟁터처럼 불에 그을린 벽돌들과 타버린 물건들로 참옥하다.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로드니 킹을 구타한 백인경찰들, 그들의 탓인가, 아니면 그들이 무죄라고 평결을 내린 배심원들 때문인가. 미국의 사법제도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면 폭동을 직접 일으킨 흑인들. 히스패닉계의 책임인가. 아니면 흑인 지역에서 장사하면서도 그들과 화합하지 못한 우리들의 책임인가.
나는 여기저기서 불에 타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사우스 센츄럴 부근에서 망연히 서서 이렇게 되뇌이고 있었다.
1992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