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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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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교훈
마가복음 11장 12-25절 / 이동원 목사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버틀란트 러셀이라는 분이 쓴 책 가운데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Why I'm not a Christian?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그가 마가복음 11장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무화과나무를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이 사건을 예로 들면서, 이 사건을 보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분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이 반드시 믿을 수 있는 그런 최선의 신앙이라고 우리가 말 하기는 어렵다. 라는 그런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물론 버틀란트 러셀은 매우 탁월한 우리시대의 철학자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가 매우 무지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는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서 그가 실패한 것을 들어내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첫째는 그가 팔레스타인의 자연으로서의 무화과나무의 생태를 이해하는 일에서 그가 무지 했고,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예수님께서 왜 이런 기적을 행하셨는가? 그 기적의 의미를 그는 이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가지면 저는 그 분의 성경적 무지, 다른 면은 뛰어나지만 그 면에 대해서는 그 분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이 무화과나무의 생태를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본문을 피상적으로만 들 여다 보면 러셀의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돼요. 왜냐하면 여기 13-14절에 ➤“13. 멀리서 잎사귀 달린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 알려고 가셨으나 그 나무로 가서 보시니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더라. 14. 예수님께서 그 나무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아무도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것을 듣더라.”
13절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무화과 때가 아니었다. 아니 무화과나무 때도 아닌데 가서 열매를 기대 했다가 열매가 없다고 그래서 이 나무에서 다시는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 말이나 되느냐? 얼른 피상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렇지요? 상당히 일리가 있는 얘기처럼 우리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무화과나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본격적인 무화과나무의 추수기는 6월이나 7월경입니다. 그 때까지 본격적으로 무화과나무가 많은 열매를 냅니다. 그러나 이 무화과나무는 더 이른 시기에, 봄철에 이른 무화과나무 열매를 맺기도 하고 좀 늦은 시기에, 가을에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무화과의 열매 시기
이른 무화과나무의 열매의 경우에는 3월이나 4월에도 열매를 맺어요. 저는 몇 차례에 걸쳐서 성지연구의 차원에서 성지 순례팀을 제가 가이드하고 인도했는데 한 번은 3월에 갔습니다. 3월에 가서 아주 맛있는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친히 손수 따서 잡수셨습니다. 3월에도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얼마든지 먹을 수가 있어요. 그런가 하면 9월이나 10월에도 얼마든지 따 먹을 수가 있습니다. 늦은 무화과나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1년에 세 차례씩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것이 무화과나무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 열매는 먼저 잎사귀를 냅니다. 그런데 잎사귀가 나면 열매가 있어요, 거기에. 다른 나무와 달리 잎사귀가 있으면 무화과나무는 이미 열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화과나무 아주 독특하면서도 일반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잎사귀가 있으면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른 때가 바로 이맘 지금 이 때쯤 되는 시기였을 것이라고 생각돼요. 유월절 직전, 바로 이 사순절,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절을 바로 앞둔 시기였으니까 바로 이만한 때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잎사귀가 있으니까, 이때도 무화과나무 열매가 있으니까 그것을 기대한 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상식적인 기대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열매가 없었단 말이지요. 이건 정상이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있으면 열매가 있는 법인데 열매가 없었다. 그래서 비정상적인 나무, 이것은 어쩌면 창조주의 기대처럼 그렇게 열매를 맺어주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나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나무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하등의 비상식적이라고 할 이유가 없는 그런 사건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기적의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나무를 도대체 왜 저주를 하셨느냐? 어떤 뜻을 가지고 했느냐?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타난 기적들을 공부해 보시면 그 기적은 기적 자체에 뜻이 있지 않아요. 그 기적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기적을 가리켜서 복음서는 아주 독특한 표현을 쓰는데 표적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표적, 그것은 기적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어떤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래 히브리사람, 이스라엘 사람들은 때로는 괴팍하기도 하는 기이한 행동을 통해서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교훈을 전달하는 민족적인 하나의 교수의 방편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기괴한 행동은, 행동 자체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요. 행동을 통해서 저 사람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느냐? 하는 그것 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그런 사례가 성경에는 굉장히 많아 요. 그러나 제가 한 두가지 예를 들자면 열왕기상 11장 29절에 보시 면 아히야라는 선지자가 나타납니다. 이 선지자가 어느 날 여로보암이라는 왕 앞에 나타나서 새 옷, 새 의복을 가지고 그 옷을 열 두 조각으로 찢어요. 찢은 다음에 열 조각을 여로보암 왕에게 가서 받칩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 자, 이것은 이스라엘 왕국은 잠시 후에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갈라진다. 그 다음에 북방 이스라엘 왕국에는 10지파가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두 지파는 남쪽에 속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메시지 전달이에요. 그래서 10조각을 북방 여로보암 왕에게 10조각을 받칠 때 당신에게는 10지파가 속할 것입니다. 그 메시지를 지금 전달하고 있는 것예요. 그러니까 메시지를 알아듣는 것이 참 중요하지요. 그렇지요? 우리가 예레미야서 한 번 보겠습니다. 예레미야서 27장에 보면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리던 예레미야! 예레미야 27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어느 날, 예레미야 선지자를 불러서 이상한 행동을 명령하십니다. "예레미야야" "네 주님" "너 줄과 칭칭 감는 줄과 멍에를 네 목에다 얹고 -이게 실감이 안 나면 모가지에 얹고- 줄과 멍에를 목에다 두르고 거리를 돌아다녀라" 이상한 행동이지요?
자, 줄로 칭칭 목을 감고, 멍에를 메고 그리고 거리를 돌아다녀라. 이것은 메시지예요. 다시 말하면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보다 더 커다란 메시지를 지금 예레미야는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이렇게 줄을 칭칭 감은 노예처럼 걷고 있지요? 우리 민족이 잠시 후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빌로니아에게 포로고 끌려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 리 민족은 노예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기괴한 상징적 행동을 통해서 메시지를 지금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이 어느 날 지나가던 길가의 무화과나무를 보고 저주하셨습니다. 도대체 이 사건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는 메시지는 도대체 뭘까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세 가지의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누구시냐?
예수님이 누구시냐? 전달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자, 도대체 이 행동이 예수님의 무엇을 전달하고 있습니까? 나무보고 길거리를 지나가다 나무보고 나무여! 열매를 맺지 못할지어다. 나무가 말을 들었다는 얘기예요. 도대체 이 분이 누구예요? 이 분이 한 마디 말하면 나무도 복종하는 이 분, 그리고 나무에 대해서 이 분이 감정이 안 좋았단 말이지요. 정상적인 나무라면 자, 잎을 내고 있으면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 그런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 너는 이렇게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앞으로 돼도 마땅하다, 라고 명령하시는 이 분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바로 이 나무를 만드신 분, 그리고 나무를 다스리는 분 그리고 나무가 창조주의 기대를 저버렸을 때 그 나무를 심판할 수 있는 분, 메시지가 뭘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자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섭리자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자이시다. 바로 이것이 메시지예요.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자요, 섭리자요, 심판자이시다. 식물만 그랬나요? 여러분, 예수께서는 배를 타고 가다가 파도가 일어나니까 어떻게 하셨어요? 파도여, 바다여! 잠잠 할지어다. 파도도 바람도 이 분에게 복종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묻잖아요? 도대체 저 분이 누구냐? 저 분이 뉘시기에 바 람과 파도도 복종하는고? 이 바람과 파도를 만드시는 분, 그리고 이것을 다스릴 수 있는 분, 창조의 어떤 뜻을 가지고 이것을 섭리할 수 있는 분, 그는 창조자, 그는 섭리자. 이것 이 메시지가 아니겠어요? 또 뿐만 아니라 어느 날, 귀신들린 사람보고서 그 안에 귀신을 향해서 명령합니다. 나와라! 그러니까 귀신이 나와요. 그 다음에 돼지 떼에 들어가라! 하니까 돼지 떼에 들어갔어요.
돼지 떼가 막 귀신이 들어가서, 물속에 들어가서 몰사하는 그런 장면도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어요? 도대체 영들 을 부리시는 분, 그는 누구일까요? 영들을 지으신 분 그리고 영들을 심판할 수가 있는 분 그는 창조자, 그는 심판자. 심지어 동물도 복종합니다. 식물의 주인, 동물의 주인, 영들의 주인,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 얼마나 자주 그 분의 치병의 사건, 병자를 고치는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었습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분,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예수님께 서 그 청년을 향해서 이런 명령을 하지 않았습니까? “청년아 내가 네가 말하노니 일어나라.” 시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시체도 복종하는 이분,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기도 하는 분, 생명을 거둬갈 수도 있는 분, 그리고 다시 생명을 줄 수가 있는 분, 도대체 이 분은 누구일까요? 그는 창조자요, 그는 섭리자요, 그 뿐 아니라 그 분은 사람을 다스리고 심판 할 수 있는 심판자 바로 그것이 메시지입니다.
오늘 이 무화과나무의 사건을 통해서도, 식물의 사건을 통해서도 그가 한 번 말을 하면 식물도 복종합니다. 식물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창조자예요. 그러나 만들고 손 떼는 분이 아니라 여전히 그 만드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분, 그리고 그 만물이 창조주의 의도를 거스릴 때 그 만물을 심판할 수 있는 분! 정신 차리세요, 여러분! 우리가 이 만물을 무화과나무를 향해서 심판하시던 그 분 이 바로 나도 하나님의 의도대로 창조된 피조물이라면, 여러분 믿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 고 믿으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면 그런데 내 인생이 하나님의, 창조주의 의도대로 살지 못한다, 네 그러면 우리를 심판할 수 있는 하나님이요. 그렇지요?
심판할 수 있는 하나님!
제가 미국에서 이 지구촌 교회를, 건물을 지을 때 보니까 한국보다 건축 규정코드가 훨씬 더 까다롭고 복잡해요. 그래서 자주 - 우리 한국에서는 마지막 준공검사만 통과하면 되는데 - 이 검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콘크리트 쳐놓고 와서 검사하고 그 다음에 벽 세워놓고 와서 또 검사가 나오고... 그런데 이 검사를 받을 때마다 제일 제가 신경을 썼던 것이 설계도를 다 갖고 와서 뭐라고 가끔 말하냐 하면 이게 설계도대로 안 되었네요. 그럼 다 뜯어 고쳐서 다시 해야 합니다. 뭐, 타협도 없고 뇌물도 안 통하는 사회니까 그대로 해야 합니다. 창조주의 설계자 의도대로 안 되었네요! 그럼 다 뜯어 고쳐야 해요. 저는 그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만약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이것 설계대로 안 되었네!" 나를 보시면서, 내 인생이 하나님의 의도하신 계획대로 안 되었네. 그는 나를 창조하신 자, 나를 다스리고 섭리하는 자, 그리고 내 인생이 그 분 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 나를 심판할 수 있는 분,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자 심판자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 거예요.
두 번째로 형식뿐인 종교에 대한 심판
오늘 이 무화과나무의 저주의 사건을 통해서 그 분이 전달하려고 하는 둘째의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내용 없는 형식뿐인 종교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 메시지를 계시하는 거예요. 내용 없는 형식뿐인 종교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장면 입니다. 이 무화과나무라는 것은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제일 많이 이스라엘 민족을 비유하는 상징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가끔 포도나무도 나와요. 포도나무와이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나무로써 기록됩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가 어떤 나무였어요? 잎이 있었어요? 네, 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없었어요? 열매가 없었어요. 잎으로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던 나무, 그것이 그 당시의 이스라엘의 민족,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스라엘의 종교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의 상태가 바로 껍데기만, 잎만 있었고 내용이 없었다. 이것이 남의 얘기일까요?
어쩌면 오늘 우리를 보고서 어떻게 말씀하실까? 자, 예배는 드려요. 열심히 예배는 드려요. 찬양도 곧 잘해요. 자, 설교도 곧 잘 들어요. 조는 사람도 있지만. 곧 잘 듣습니다. 자, 누가 보아도 우리는 종교 형식에 어느 정도 잘 적응하고 있어요. 자, 이것은 형식이요. 여기까지는 다 형식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배를 드렸다. 이것도 중요해요. 예배를 잘 드린 것도 참 중요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어떻게 달라지느냐?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느냐?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어떻게 달라지느냐? 자,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참된 예배를 드렸냐는 것은 예배 시간 가지고는 몰라요.
예배가 딱 끝나고 나가면서, 나가면서 저 주차장에서 차를 운전하는 태도가 얼마나 달라졌느냐? 은혜 받고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나는 이제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 하나님 말씀을 받았으니까 이 말씀대로 살겠다. 결심하고 돌아가면, 돌아가면서 좀 변화가 나타나야지요. 주차장에서 옛날보다 더 친절하고 감사할 줄 알고 그리고 저기 나가서 이제 신호등 앞에 딱 섰습니다. 빨간불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빨리 빨리 가야해요? 아닙니다. 서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의 ABC는 거기 있어요. 거기서부터 신앙생활이 제대로 되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집에 돌아가서, 가정에서 남편을 향해서 아내를 향해서 어떤 태도로 대하십니까? 은혜 받은 사람답게 내가 내 아내 사랑해야지, 남편 사랑해야지, 우리 가정을 진리의 말씀위에 세워야지, 거기서 나타나십니까? 예배의 결과가? 또 내일 아침 직장에 가십니다. 오늘 주일 날 와서 은혜 받았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답게 나는 비전을 얻고 용기를 얻고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직장 생활할 때 태도가 달라져야지요.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빛을 드러내고 소금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직장생활의 현장에서 나타나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내용이요. 그것이 없다면 뭡니까? 잎사귀뿐. 그러면 어떡할까요? 하나님이 보시면서, 너는 맨날 잎사귀만, 잎사귀만 만드는구나. 내용이 없구나. 어떻게 할 수가 있어요? '너 인생 끝내라!' 그렇게 할 수도 있어요, 심지어는. 뭐 별로 내 기대대로, 내 뜻대로, 내 의도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이것이 이스라엘 종교의 모습이요.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 본문이 마가복음 11장 12-14절까지, 그 다음에 쭉 20절부터 25절까지 읽었어요. 무화과나무의 스토리만 추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에피소드가. 그 사건이 무슨 사건입니까? 그 가운데 15절부터 18절까지의 내용은 뭡니까? 그것은 소위 성전 청결의 사건이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장사 터로 만든 사람들을 다 쫓아내신 사건입니다. 그러면서 내 성전을 기도하는 집인데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라.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 어떤 분은 이런 말씀 보고 와서 고민이 되어 저한테 와서 질문을 해요. "목사님, 우리 교회에 와 보니까 책방도 있고 커피숍도 있는데 그것 장사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요.
여러분, 장사라는 것은, 상행위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이익이 전제된 것입니다. 이익이 전제된 거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목회자나 사무 행정이나 스탶 가운데 아무도 1원 한 푼도 이익을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저희 교회에서는 두 가지의 차원에서 합니다. 하나는 봉사의 차원,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봉사의 차원이고, 또 하나는 사역의 차원입니다, 사역의 차원. 저는 이 책방 사역이라고,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사명감을 가지고. 왜냐 하면 여러분, 이 책들. 저는 예수님 믿고 나서 저에게 제일 큰 도움이 됐던 것은 책입니다. 건강한 책, 영적인 책들이 내 신앙생활에 주는 감동과 영향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이것은 사역의 차원에서 이것을 여러분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테입도 카세트 테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미국 가면, 우리 한국서도 그렇지요. 사실 이게 뭐 가수들이 노래한다든지 그러면 테입에 대한 판권은 노래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카세트 테입이 그 판권으로 따진다면 그 판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저에게 판권이 있어요. 지금까지 팔린 테입의 돈을 다 적립했더라면 아마 적지 않아 꽤 됐을 것 같아요.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제가 이 테입을 통해서 지금까지 단 1원도 저는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받을 계획이 없습니다. 이것은 사역입니다. 테입을 통해서 얼마나 사람들이 유익을 얻어요? 약간의 유익은 다시 선교사역을 위해서 선교사나 이런 분들에게는 무상으로 제공이 됩니다. 선교사역 리포트가 들어왔는데 보니까 제로예요. 우리가 샀지만은 다시 그것이 선교사에게 투자가 됩니다. 철저한 사역의 차원에서 이 일이 진행됩니다. 여러분 이대로 변질 없이 이런 사역이 진행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성전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사장 들이 이방인의 뜰에서 제사를 드리러 오면 제사 제물을 사야 돼요. 제물을 사는 과정에 있어서 흠 없는 제물을 사도록 권고하면서 거기서 막대한 이익을 제사장과 상인들이 짜고서 그 이익을 제사장들이 취하고 있었던 거예요. 또 심지어는 외국에서 오는 유태인들이 이제 헌금을 드려야 하는데 외국돈 드리면 안 된다. 그래서 돈을 바꿉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 이방의 뜰에는 환전소가 다 있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 있어서 제사장과 상인들이 짜고서 막대한 이익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는 제사장들이 밤낮 그들이 제사를 집행하지만 머리에는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요?
돈에 대한 이익- 그것이 그들의 머리를 채우고 있었어요. 이런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소위 신앙의 행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을까요? 그들의 머리에는 이익밖에 없었어요. 신앙의 본질은 외면되고 그리고 잘못된 것들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예루살렘 종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우리에게서 얼마나 중요한 것은 신앙의 본질, 예배의 본질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결과로 내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을 안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얼마나 주 앞에 올바른 삶을 살고, 살 수가 있을까요? 저는 저의 가장 커다란 관심이 우리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삶이 얼마나 변화되는가?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 머리 속에 만약 다른 생각이 있다면 저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를 저는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삶속에 하나님의 변화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대로 사는 것, 이것이 우리 교회의 유일한 관심이 되기를 기도 하십시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우리의 삶이 만약 껍데기만 내비치는 다시 말해서 무화과의 잎만 무성한 삶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본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엄숙한 경고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메시지 내용 없는 형식뿐인 종교
그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오늘 이 말씀에서 사랑하는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아픈 마음으로 전달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의 행태 속에서는 어떨까요? 형식은 있어요. 이미 예배당 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여러분들에게 형식은 있습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이 겨냥한 다시 말하면 무화과나무 사건을 통해서 세 번째 메세지가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삶속에 있어야 할 열매에 대한 교훈, 그것이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주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세 번째 메시지입니다. 이 무화과나무라는 것은 시각적으로 별로 아름다운 나무가 아닙니다. 별로. 또 이것은 무슨 땔감이나 재목용, 건축용으로는 전혀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꽃도 없어요. 무화과나무는 꼭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무엇일까요? 열매입니다. 열매를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자, 저와 여러분. 크리스챤들이 존재하는 목적, 하나님의 백성들이 존재하는 목적, 우리가 살고 있는 목적, 유일한 목적. 꽃을 위해서가 아니요. 폼 잡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을 뭘까요? 열매입니다. 하나님 이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 그 열매를 통해서 주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려고 존재하는 것. 여러분 믿으십니까?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 바로 열매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열매를 맺습니까? 오늘 내 신앙이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교회당 나온 지 몇 년 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당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어떻게 열매를 맺고 있을까요?
신앙생활의 연륜은 계속되고 있지만 열매 맺지 못하는 사람, 무력한 삶,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을 사는 내 모습은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또 실패하고 또 넘어지고 왜 이렇게 무력할까요? 왜 열매를 맺지 못할까요? 그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달라 질 것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것이 첫 번째 열매를 맺는 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일단 저주하셨지요?
➤14-22절을 읽습니다. “15. ¶ 그들이 예루살렘에 오니라.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성전 안에서 사고파는 자들을 내쫓기 시작하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탁자들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들을 뒤엎으시며 16. 아무도 성전을 통해 용기를 나르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가르치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모든 민족들에 의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너희가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시매 18. 서기관들과 수제사장들이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자기들이 그분을 죽일까 꾀하니 이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교리에 깜짝 놀랐으므로 그들이 그분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더라. 19. 저녁이 되매 그분께서 도시에서 나가시더라.”
“14. 예수님께서 그 나무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아무도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것을 듣더라. 20. ¶ 아침에 그들이 지나갈 때에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 버린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기억이 나서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나이다. 하니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
여러분, 말씀을 믿으십니까? 이 말씀이 진리라고 믿으십니까? 생명이라고 믿으십니까? 능력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더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네 하나님을 믿으라. 정말 신뢰하라! 이 말이요.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래야 열매 맺어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 하면 열매가 없어요. 어떤 성도들이 그럴 것입니다. 목사님, 저 하나님 신뢰해요. 하나님 분명히 믿어요. 그런데도 열매가 없어요. 그렇다면 여러분,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열매가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정말 신뢰한다면 여러분이 신뢰하는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정말 기도하고 계십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그것이 그 다음절의 말씀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세요. ➤23-24절에 “23.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에게 이르기를, 옮겨져서 바다에 빠지라, 하며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말하는 그것들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그가 무엇을 말하든지 다 받으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데도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 기도하라! 왜 내 삶이 무력해졌는가? 내 삶의 열매가 없는가? 기쁨이 없는가? 능력이 없는가? 활력이 없는가? 내 삶이 생동하지 못 하는가? 기도가 사라졌기 때문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살아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엎드리는 순간, 진지하게 기도 하는 순간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줄 믿습니다. 기도하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주님은 기도의 제목을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도의 영역을 제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내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어진다. 세상에 이것보다 신바람 나는 것이 어디 있어요? 생각해 봐요.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이루어진다. 눈이 안 돌아가요? 누가 와서 여러분에게 무엇이든지 말해보세요. 내가 다 해결해요.
생각해 보세요. 이게 얼마나 위대한 사건이요.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이루어진다.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가 얻지 못함은, 우리가 얻지 못함은 왜 그래요? 구하지 아니함이요. 우리가 정말 진지하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내 삶이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부요를,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삶이 달라 질 것입니다. 진지하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세요? 왜 불안해하세요? 또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목사님! 제가 열심히 기도하는 데도, 기도하는데도 제가 열심히 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기도하려고 그래도 애를 쓰는데도 저는 기도 응답의 경험이 없습니다. 뭐, 기적도 임하지 않고 뭐, 그저 그렇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기도가 막혔는지도 모릅니다. 기도의 파이프라인이 막혔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기도해도 소용이 없어요.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기도의 파이프라인이 막고 있는 것,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관 계의 갈등입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내가 어떤 사람과 갈등관계에 있다 면 그래서 내 마음속에 이웃을 향해 서 미움이 있다면, 용서치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기도를 막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어요.
그것이 바로 25절의 말씀이에요.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을 대적할 어떤 일이 너희에게 있거든 용서하라. 그러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너희 범법들을 용서하시리라.” 너희가 기도해도 만약 어떤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누군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들을 용서하라. 그리하면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리라. 뭐가 생각나세요? 주기도문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자, 주기도문의 한 대목이 어떤 대목입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그 다음에 뭐예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이웃들을 용서할 때 하나님! 저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제가 용서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용서합니다. 미움을 포기하고 용서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 하늘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기도가 역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제가 얘기하면 여러분이 한 분도 그 분의 이름을 모를 사람이 없을 한국의 고위 관리가 있는 구치소에 제가 최근 에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참 감사 한 것은 그 분이 성경을 읽고 그 옆에다 어떤 기도제목을 갖고 쭉 이름을 썼습니다. 뭡니까? 자기가 용서해야 할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하고 있더라.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용서하면 하늘의 문이 열려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고 생동하기 시작하고 주의 권능과 능력이 우리의 삶속에 역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막혔거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 주변을 돌아보세요. 내 이웃들을 돌아보세요. 용서하지 못한 사람, 내가 품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그를 깨끗이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를 사랑하세요. 그 순간부터 여러분, 기도가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내 삶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살아있는 신앙,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살아 있는 신앙, 여러분! 신앙이 살아있 지 못하다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것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면 끝난 것 아니요? 살았어도 끝난 인생이요.
제가 어떤 책을 읽다가 이런 얘기를 봤는데요. 아주 깊은 동굴에 조그만 호수가 있어요. 그 호수 안에 고기들이 있는데 어떤 동물학자가 그 고기들을 연구해 보니까 그 고기 중에서 소경 고기, 보지 못하는 고기가 그렇게 많더래요. 그래서 왜 그런가? 연구해 보니까 깊은 동굴 속 어둠속에서 빛을 봐야할 필요가 느끼지 않은 이 고기는 시간이 가면서,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장님이 되고 말았다. 소경이 되고 말았다. 보아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존재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눈이 있어도.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존재할 필요가 없는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가치가 없는 인생.
여러분, 우리 인생 이 얼마나 존재할 가치가 있는 인생으로 지금 여기서 살고 있습니까? 주 앞에 영광을 돌리고 이웃들에게 필요한 인생, 쓰임을 받는 인생, 열매를 맺는 인생, 여러분! 이런 인생 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 길은 하나밖에 없어요.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와 굴복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요? 내 삶을 돌아보시고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보시고 그를 용서하십시오.
그 순간 하늘의 문이 열리고 주의 능력이 쏟아질 것입니다. 내 삶이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만약 내 인생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잎만 무성한 나무라면 주님은 내 인생의 나무 앞 에 오시면서 나를 향해 이렇게 말씀 하실 것입니다. 너는 존재할 필요가 없느니라. 너로부터 영원히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이 저주가 두렵거든 열매를 맺는 인생을 향해서 새롭게 태어나십시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녹취 / 김은영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