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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모든 것] (22) 전례의 ‘절’과 보편 지향 기도
고개 숙이고 허리 굽혀 하느님께 찬미와 공경 드리다
- 가톨릭 전례에서 절을 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찬미와 공경을 드리는 표지이며, 하느님 자비와 겸손에 대한 일치와 따름을 드러내는 동작이다. 통상 ‘고개를 숙이는 절’과 ‘허리를 굽히는 절’ 두 가지로 구분한다.
나처음: 미사 중에 신앙 고백을 할 때 어느 부분에서 신자들이 모두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더라고요. 왜 그렇게 하죠.
조언해: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또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사도 신경) 하는 부분에서 모두 고개를 숙여 깊은 절을 하는 거야.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과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는 이 부분에서 모두 무릎 절을 하는데 한국 교회는 무릎 절 대신 깊은 절을 해.
라파엘 신부: 언해가 잘 설명해 주었구나. 미사의 통일된 동작과 자세는 거룩한 전례에 모인 그리스도인이 이루는 일치의 표지라고 설명했었지. 통일된 동작은 미사 참여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표현해 주지. 신앙 고백을 할 때 깊은 절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교회는 미사의 동작과 제사를 민족의 문화와 건전한 전통에 맞게끔 지역 교회 주교회의에 맡기고 있단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무릎 절 대신 고개를 숙이는 깊은 절로 대체하고 있어.
조언해: 미사 중에 신앙 고백 외에도 절을 하는 경우가 많죠.
라파엘 신부: 절은 어떤 이나 그의 표상에 공경과 영예를 드리는 행동이지. 가톨릭 전례에서 절은 통상 ‘고개를 숙이는 절’과 ‘허리를 굽히는 절’ 두 가지로 구분한단다. 고개를 숙이는 절은 하느님의 세 위격을 한꺼번에 부를 때, 그리고 예수님이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이름을 부를 때, 어떤 성인을 공경해 거행하는 미사에서 그 이름을 부를 때 해요. 영광송을 바칠 때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하는 부분에서 고개를 숙이는 절을 하는 게 이 부분에 속하지.
허리를 굽히는 절, 곧 깊은 절은 사제가 제대에서 예식을 행할 때 주로 하는 동작이란다. 사제가 복음을 선포하러 갈 때 “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을 깨끗하게 하시어 합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라며 기도하면서 제대를 향해 허리를 굽혀 깊은 절을 하지. 또 예물 준비 때 사제는 빵과 포도주를 담은 성반과 성작을 성체포 위에 올려놓고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라고 속으로 기도할 때 허리를 굽혀 깊은 절을 한단다. 아울러 미사에 참여한 모든 이가 신앙 고백을 하면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할 때 허리를 굽혀 깊은 절을 하지. 또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축성한 다음 모든 이가 허리를 굽혀 깊은 절을 한단다.
조언해: 무릎 절은 언제 어떻게 하나요.
라파엘 신부: 무릎 절은 오른쪽 무릎이 땅에 닿도록 꿇는 게 올바른 자세야. 전례에서 이 자세는 하느님께 ‘흠숭’을 드러내는 동작이지. 그러므로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께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께도 마찬가지-, 그리고 거룩한 십자가에 무릎 절을 하지. 한국 교회에서는 좀 전에 말했지만 깊은 절로 무릎 절을 대신하고 있지. 그래서 성당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께 깊은 절을 하고, 또 미사 때 행렬 십자가가 입당할 때 절을 하며, 거룩한 성체가 자기 앞을 지나 거동할 때 깊은 절을 하는 것이지. 미사 중 주례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거양한 다음, 그리고 영성체하기 전, 이렇게 세 번 무릎 절을 해요.
나처음: 동양과 달리 서양 문화에선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숙여 절을 하는 것은 ‘복종’을 뜻하는데 어떻게 교회 전례에 이런 동작이 도입됐나요?
조언해: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인들이 세례받은 이는 그리스도에 의해 자유인이 되었고, 이제는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는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적절치 못한 일이라고 무릎 꿇기를 거부했다는 말을 저도 들었어요.
라파엘 신부: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 사람들은 무릎을 꿇는 것은 노예가 하는 행동이라고 여겼지. 자유인의 체통에 맞지 않는 행위라며 거부했어. 아리스토텔레스조차 무릎을 꿇는 것은 야만적인 행동 양식이라고 비난했지.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전례 안에서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굽혀 깊은 절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노예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흠숭의 예를 표하는 것이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그리스도의 겸손과 십자가의 사랑이 세상 권세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기 때문에 바로 그 겸손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지. 그리스도의 겸손이 무엇이겠니?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인간이 되신 것이 바로 ‘겸손’이지. 주님의 겸손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그리스도 찬가’에서 잘 드러나요.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6-11)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자비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깊은 절을 하는 거야.
나처음: 그럼, 무릎 꿇기와 허리를 굽혀 절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자세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자유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라파엘 신부: 그렇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무릎 꿇는 것을 모르는 신앙이나 전례는 그 핵심 자리에 병이 든 것이다. 무릎 꿇기가 없어졌다면 다시 노력해 익혀야 한다. 그래야 기도 안에서 사도와 순교자의 공동체, 우주 공동체와 함께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통합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지.(「전례의 정신」 214쪽 참조) 이처럼 무릎을 꿇고 깊은 절을 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과 우리 신앙의 다양한 신비에 대해 찬미와 공경을 드리는 표지이며, 하느님 자비와 겸손에 대한 일치와 따름을 드러내는 동작이라고 할 수 있단다.
나처음: 보편 지향 기도 때에 왜 개인의 청을 바치지 못하나요.
조언해: 공동체의 기도이기 때문이야. 보편 지향 기도는 말 그대로 신자들의 기도이기에 하느님께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기도를 바쳐야 해. 보통 거룩한 교회와 위정자와 온 세상의 구원, 온갖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이들, 그리고 지역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지.
라파엘 신부: 맞아. 보편 지향 기도는 신자 공동체가 함께 바치는 기도라는 뜻이란다. 보편 지향 기도는 인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시고 당신 자신을 구원의 제물로 봉헌하신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삶과 그분의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더욱 적극적으로 본받고 실천하기 위해 바치는 기도란다. 초대 교회 때부터 세상 구원과 고통받는 이, 국가 지도자, 평화를 위한 기도를 미사 중에 바쳤단다.
보편 지향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례 때 받은 그리스도의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음을 드러낸단다. 또 교회가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에 따라 항상 세상 구원을 위해 기도할 사명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단다. 그리고 미사에 참여한 교우들이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라 거행자임을 드러내 보여준단다. 그래서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은 모든 예식과 기도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바지해야 하지. 보편 지향 기도가 바로 신자들이 주체가 되어 바치는 기도로서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식이라 할 수 있어.
[미사의 모든 것] (21) 신경
가톨릭교회 신앙 내용이 요약된 ‘신앙 고백문’
- 신경은 가톨릭교회의 신앙 내용을 간추려 놓은 글이다. 사도 시대 초대 교회에서 세례 때 행해진 신앙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조언해: 주일과 대축일 미사 때 강론이 끝나면 모두 일어서서 신앙 고백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라파엘 신부: 미사 독서와 강론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인 신자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흠숭으로 닫힌 마음을 열고 신앙 고백을 한단다. 아울러 신자들은 성찬 전례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의 믿음을 상기하기 위해 신앙 고백을 하지. 하느님의 말씀을 신앙 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믿는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지.
나처음: 신앙 고백은 예비신자 교리 시간에 배운 신경을 말하는 거죠.
라파엘 신부: 맞아. 신앙의 유산을 지키고 계승하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 교회에 맡기신 사명이란다. 교회는 이 사명을 항구히 수행해 오고 있지. 교회가 미사 중에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지. 그리스도인은 자기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고 선포할 의무가 있단다. 우리가 고백하고 선포할 신앙 내용이 모두 신경에 담겨있지. 신경은 전능하신 창조주 성부에 대한 신앙과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그리고 거룩한 교회 안에 계신 성령에 대한 신앙의 내용을 요약해 놓았단다.
나처음: 신경도 여러 개가 있나요?
라파엘 신부: 신앙 고백은 “저는 믿나이다”라는 라틴어 첫 글자를 따서 ‘크레도(Credo)’라고 해. “저는 믿나이다”라는 말로 시작하기에 ‘신경(Symbola fidei)’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 헬라어 ‘σμβολον(심볼론)’은 깨트린 물건의 반쪽을 의미하는 말로 신원을 확인하는 증표를 뜻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헤어질 때 훗날 다시 만날 때 신원을 확인하는 징표로 물건을 나누는 것을 심볼론이라고 하지. 이런 의미로 신앙 고백은 가톨릭교회 신앙의 징표이기 때문에 심볼론 또는 라틴말로 ‘심볼라 피데이’, 우리말로 ‘신경’이라고 해. 따라서 신경은 가톨릭교회 신앙의 근본 기준이라 할 수 있지.
초대 교회 때부터 이어진 전통에 따르면 신앙 전체를 사도들의 수로 상징하고자 신경을 열두 절로 구분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해. 사도 신경이 그 대표적이지. 열두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히 요약한 사도 신경은 열두 가지 신앙 고백을 요약해 놓았지. 시대가 흐르면서 지역과 전례에 따라 신경은 여러 양식으로 발전했단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2세기에 나온 ‘예루살렘의 세례 신경’이야. 그러나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3세기 초엽 히폴리토 교부가 저술한 「사도 전승」에 수록된 세례 고백문이지. 현존하는 신경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사도 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아타나시오 신경’, ‘트리엔트 신경’ 등이 있단다.
조언해: 저는 유아 세례를 받아 기억할 수 없지만 대녀의 세례식 때 신앙 고백을 하면서 펑펑 울었어요. 세례 때 첫 신앙 고백을 하잖아요.
라파엘 신부: 맞아. 신경은 무엇보다도 세례 신앙의 고백이란다.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베풀어지므로, 세례 때 고백하는 신앙의 진리들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을 중심으로 연결돼 있지. 그래서 신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단다. 먼저 ‘성부와 그분의 놀라운 창조 업적’, 다음에는 ‘성자와 인간 구원의 신비’, 끝으로 ‘우리 성화의 근본이며 원천이신 성령’에 대한 부분이야.
나처음: 사도 신경은 열두 사도가 만든 건가요.
라파엘 신부: 사도 신경은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 고백문이야. 사도 신경은 사도들의 권위를 부여받아 2세기 무렵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식으로 완성돼 사용된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 고백문이지. 따라서 사도 신경 자체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이자 표상이라고 할 수 있어.
열두 사도가 사도 신경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4세기 말께 나타나. 트란니우스 루피노가 사도 신경에 대한 주석에서 신경의 사도적 기원을 처음으로 주장했지. 성령을 충만히 받은 열두 사도가 복음 전파를 위해 각지로 떠나기 전에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을 확인하고자 각자 신앙에 대한 관심을 짧은 형식으로 표현해 사도 신경을 만들었다는 것이야. 이 전승에 대해 교회는 별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단다. 현대 신학자들도 사도 신경의 내용 모두를 성경과 사도적 기원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지. 사도 신경이 열두 사도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으나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히 요약했다는 점에서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지극히 마땅해.
나처음: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관해서도 알려주세요.
조언해: 교리교사인 내가 설명해줄게. 교회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 제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지상 교회가 생기면서부터 신앙에 대한 수많은 이단과 이교의 공격을 받아. 특히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성령의 신성까지 부정하는 이단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지. 교회는 이에 맞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개최해. 교회는 두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에 대한 교리들을 결정하고, 두 공의회에서 결정된 신앙 조문들을 정리해 하나의 신경을 만들었는데 바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야.
라파엘 신부: 언해가 잘 설명해 주었구나.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현존하는 모든 신경 중 동ㆍ서방 교회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는 유일한 신경이란다. 동방 교회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외 가톨릭교회가 사용하는 사도 신경과 아타나시오 신경 등을 보편 공의회에서 선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단다.
가톨릭교회는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고 고백하는 반면 동방교회 즉 정교회는 “성부로부터 발하시며,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신다”고 믿고 있단다. 가톨릭교회는 성부를 성자와 성령의 근원으로 본 것이라 아니라 본질적인 하나의 신성이라고 고백하지만, 정교회는 성부를 다른 두 위격의 근원으로 보아 성자와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온 것으로 성자는 성부에게서 태어났고, 성령은 유출된 것이라고 믿고 있지.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589년 제3차 톨레도 교회 회의를 통해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성자로부터(filioque)’라는 표현을 삽입해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고 분명히 했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이 표현이 삽입됨으로써 동ㆍ서방 교회가 갈라지게 되는 한 원인이 되었단다.
조언해: 신경이 미사에 도입된 것은 언제부터죠.
라파엘 신부: 미사에 신앙 고백문을 도입한 시기는 5세기 후반이야. 동방의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지.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를 비롯해 비잔틴 전례를 거행하는 대부분의 동방 교회 지역에 미쳤단다. 서방 교회에서는 6세기 말 스페인 톨레도 교회 회의를 통해 도입돼 점차 확산되었단다.
신앙 고백문이 로마 전례에 도입된 것은 11세기 초엽이야. 비교적 늦었지.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2세 황제가 대관식을 거행하기 위해 로마에 방문해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였다가 신앙 고백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교황에게 건의해 도입되었다고 해.
그러나 초기에는 지금처럼 주일과 대축일 미사마다 신앙 고백을 하지 않고 주님 성탄부터 성령 강림 사이 주일과 마리아 축일, 사도 축일에 신앙 고백을 했다고 해.
미사에 사용하는 신앙 고백문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사도 신경이야. 가톨릭교회는 미사의 공식 신앙 고백문에 대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으로 정하고 있으나, 1967년 주교 시노드의 결정에 따라 지역 교회가 판단해 사도 신경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그러나 교회는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단지 길다는 이유로 사도 신경을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단다.
[성모님 마음으로 전례를] 성찬의 여인이신 성모 마리아
III. 성찬의 여인이신 성모 마리아(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서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53~57항 참조)
우리가 교회와 성체성사의 깊고 풍요로운 관계를 재발견하고자 한다면,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모범이신 성모님을 소홀히 여길 수 없다. 성모님께서는 이 지극히 거룩한 성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이 거룩한 성사로 이끄실 수 있다.
1) 우리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는 첫 공동체에서 “마음을 모아”(사도 1,14) 기도하던 사도들 가운데 성모님께서 계셨음을 알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빵을 나누어 먹는 일에 전념한”(사도 2,42)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성찬례 거행에 분명히 함께 계셨을 것이다.(53항)
그러나 성모님께서 성찬의 잔치에 참석하신 일 외에도, 우리는 성모님의 내적 자세에서 성모님과 성체성사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성모님께서는 온 생애를 통하여 ‘성체성사의 여인’이시다. 성모님을 모범으로 삼고 의지하는 교회는 성모님께서 이 지극히 거룩한 신비와 맺고 계시는 관계에서도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
2) 성체성사가 하느님의 말씀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기를 요구할 정도로 우리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신앙의 신비라면,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갖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은 성모님 밖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행하신 것을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또한 주저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고 하시며 그분께 순명하라시는 성모님의 초대를 받아들인다. 성모님께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보여 주신 어머니다운 관심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주저하지 말고 내 아들의 말을 믿어라. 그가 물을 술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면, 빵과 포도주도 그의 몸과 피가 되게 하고, 이 신비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부활의 생생한 기억을 전해 줌으로써 ‘생명의 빵’이 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54항)
3) 어떤 의미에서 성모님께서는 순결한 당신의 태를 하느님 말씀의 강생을 위하여 바치심으로써 성체성사 제정 이전에 이미 성체성사의 신앙을 실천하셨다. 성체성사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면서 또한 강생의 연속이기도 한다. 주님의 탄생 예고 때에 성모님께서는 몸과 피라는 육체적 실재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셨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성모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시는 모든 신자 안에 성사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당신 안에서 선취하셨던 것이다.
성모님께서 천사에게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Fiat)라고 말씀하신 것과 모든 신자가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실 때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깊은 유사점이 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도록 요청받으셨다(루카 1,30-35 참조). 동정 성모님의 신앙과 일치하여, 우리도 성체성사의 신비를 통하여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성모님의 아드님이시기도 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그분의 완전한 인성과 신성으로 현존하심을 믿도록 요청받고 있다.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카 1,45). 성모님께서는 또한 강생의 신비로써 교회의 성체성사 신앙을 선취하셨다.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 성모님께서는 이미 사람이 되신 말씀을 잉태하고 계셨으므로,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현존하신 역사상 최초의 ‘감실’이 되셨다. 성모님의 태중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직 우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시나, 말하자면 성모님의 눈과 목소리를 통하여 당신의 빛을 비추심으로써 엘리사벳의 흠숭을 받으셨다. 갓 태어난 그리스도를 품안에 안고 들여다보시는 성모님의 기쁨에 넘치는 그 눈길이야말로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실 때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비할 데 없는 사랑의 모범이 아니겠는가?(55항)
4) 성모님께서는 해골산에서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예수님 곁에 계시면서 성찬의 희생 제사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다.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를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가셨을 때(루카 2,22) 늙은 시므온은 성모님께 이 아기가 장차 “반대의 표적”이 되고 예리한 칼이 성모님의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루카 2,34-35 참조).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형의 비극은 이렇게 예고되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십자가 아래 서 계신 고통의 성모님(Stabat Mater)도 예시된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날마다 해골산을 준비하면서 일종의 ‘선취된 성찬례’를 경험하셨다. 이는 다시 말하면 당신 아드님의 수난과 일치함으로써 절정에 달하고 부활 뒤에 사도들이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거행한 성찬례에 참례함으로써 드러나게 될 갈망과 봉헌의 ‘영적 친교’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그리고 다른 사도들의 입에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라는 최후 만찬 때의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성모님의 느낌은 어떠하였겠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시고 성사적 표징 아래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몸은 바로 성모님께서 당신의 태중에 잉태하셨던 그 몸이었다! 성모님께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신의 심장과 하나 되어 고동친 그 심장을 당신의 태중에 다시 받아들이고, 십자가 아래서 겪으신 일을 다시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였을 것이다.(56항)
5)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성취하신 모든 것이 해골산의 ‘기념제’ 안에 현존한다. 따라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당신 어머니께 해드린 모든 것도 현존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를 성모님께 맡기셨으며, 그 제자를 통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맡기셨다. 성모님께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이다.” 하고 말씀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이렇게 말씀한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참조).
성찬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은 이러한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요한처럼 우리의 어머니로 새롭게 우리에게 맡겨지신 분을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모셔 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동화되고자 노력하는 여정에서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학교에 들어가 그분을 우리의 동반자로 모셔 들인다는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교회와 함께 계시며 교회의 어머니로서 현존하신다. 교회와 성찬례가 서로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면, 성모님과 성찬례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모님을 기념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서방과 동방 교회의 성찬 거행의 변함없는 일부가 되어 왔던 것이다.(57항)
IV. 성모님과 일치하는 성찬의 전례(레지오 교본의 가르침)
레지오 단원들은 언제 어디서나 늘 성모 마리아와 한 마음으로 일치하여 행동해야 한다. 그 일치는 미사성제, 곧 성찬전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신 아들의 몸인 성체와 깊이 일치되어 계신 성모 마리아는 우리 신자들을 성체께로 인도하시는 ‘성체의 모후’이시다(레지오 교본 8장 4항, 80쪽 ; 9장 1항, 84쪽 ; 40장 4항, 477쪽 참조 ; 구세주의 어머니, 44항). 성모 마리아는 우리 생명이신 예수님을 잉태하실 때부터 ‘성체의 모후’가 되셨다고 할 것이다. 루카 복음사가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는 ‘생명의 빵집’이시니, 그것은 예수님이 ‘빵집’을 뜻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그가 누여지신 곳이 ‘구유’(소먹이통)였음으로 상징되는 바,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빵이시고,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낳으신 마리아는 생명의 빵인 성체의 모후, 성체의 어머니이신 것이다. 가난한 목동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오고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를 드렸듯이 성모 마리아는 우리 신자들이 미사성제에 기꺼이 찾아와 생명이신 성체를 경배하고 모시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교회가 미사, 성찬 전례에서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것은 성모님께서 미사성제에서 제관이요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제직에도 깊이 관련을 맺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구세주의 생애 전체에 깊이 결합되어 계셨고, 인류를 대표하는 ‘여인’(요한 2,4 ; 19,26 참조)으로서 십자가상의 제사에도 동참하셨다.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마리아 공경’도 성찬의 전례와 관련하여 마리아를 십자가상 제사에서 아드님과 함께 ‘봉헌하는 동정녀’로 소개하고 있다. “갈바리아 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하느님께 흠 없는 제물로 바치셨고(히브 9,14),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 서서(요한 19,25 참조) 당신 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다.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고(교회헌장 58항) 당신 자신까지도 영원하신 성부께 봉헌하셨다.”(마리아 공경 20항 ; 50-51쪽)
레지오 교본은 마리아께서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십자가 제단 곁에 계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사 제대 곁에도 어머니로서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그리스도교 백성들은 성찬의 전례에서 마리아의 모성을 특별히 이해하고 체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이 미사를 올바로 봉헌하기 위해선 예수님의 어머니시요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모성에 대한 공경과 사랑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 마땅하다. 성모님께 대한 효성의 마음과 함께, 성모님의 마음과 자세로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들은 마리아의 의향과 일치하여 갈바리아의 숭고한 희생의 계승인 미사에 가급적 자주 참례하고 영성체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 마리아와 일치하여 성찬의 전례에 참여한다면 미사 후 제대를 떠날 때에도 마리아는 당신의 단원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로 하여금 당신이 맡고 계시는 은총의 관리 직무에 한 몫을 들게 하실 것이다. 성모 마리아께서 맡고 계시는 은총의 관리 직무란 하느님의 자녀들이요 성모님의 자녀들인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더욱 풍성히 받도록 전구하시고, 신자들을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에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 구원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친교에 이르도록 하시는 직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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