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브랜드 백과 - 아스피린[ Aspir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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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12. 18:10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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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브랜드 백과
아스피린
[ Aspirin ]
요약 아스피린은 펠릭스 호프만이 1897년 개발한 해열, 진통, 항염에 작용하는 가정상비약이자 심혈관 질환 예방 의약품으로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이 제조 · 판매함
아스피린(Aspirin)은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해열·진통·항염제이자 심혈관 질환 예방 의약품이다. 1897년 독일 부페르탈(Wuppertal)에 위치한 바이엘(Bayer) 연구소에서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n) 박사가 세계 최초로 아스피린의 주요 성분인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을 순수하고 안정된 형태로 합성하는 데 성공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스피린은 주성분인 아세트 산(Acetic Acid)의 ‘A’와 버드나무의 학명인 스피라이아(Spiraea)의 합성어로 버드나무 껍질 추출 성분으로 만든 약이라는 뜻이다.
이후 1978년 아스피린의 아세틸살리실산 성분이 혈소판의 응집을 차단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각종 연구와 임상을 통해 저용량의 아스피린 복용에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가 있음이 공고해졌다. 심혈관 질환은 심장과 주요 동맥과 관련된 것으로, 고혈압(Hypertension), 심근경색(Myocardial Infarction)증, 뇌졸중(Cerebrovascular Accident) 등이 여기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아스피린은 식도암, 대장암 등의 예방 치료제로도 쓰인다. 아스피린은 현대인의 대표적인 가정상비약으로 오랜 시간 사랑 받아 왔으며 바이엘 그룹에서 제조 · 판매하고 있다.
2. 아스피린의 탄생 및 설립자
1) 아스피린의 기원: 히포크라테스도 사용한 천연 진통제
아스피린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1500년경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기록인 ‘에버스 파피루스(Ebers Papyrus)’에는 800여 종의 약 처방과 700여 종의 동식물, 광물성 약에 대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나무인 버드나무를 강장제나 진통제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Greece)의 의사 히포크라테스(Hippokratēs, 460~377 B.C.)와 ‘식물학의 아버지’인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 372~287 B.C.)는 모두 버드나무 껍질로부터 추출한 즙의 활성성분인 살리실산에 진통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후 약초 전문가들이 버드나무 껍질을 삶은 혼합물을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 치료약으로 주기 시작하면서 살리실산은 주요한 민간요법으로 자리잡았다.
1763년에는 에드워드 스톤(Edward Stone) 목사가 50명의 발열 환자를 대상으로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을 실험한 결과, 해열과 진통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영국 왕립협회(British Royal Society)에 보고했다는 기록이 있다. 1829년에는 프랑스(France) 약사인 피에르 조세프 르루(Pierre Joseph Leroux)는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에서 ‘살리신’이라는 물질을 결정체화 했고 이를 이탈리아(Italy) 화학자인 라파엘 피리아(Raffaelle Piria)가 살리실산(Salicylic Acid)으로 발전시켰다.
2) 젊은 화학자의 역사적 발견: 살리실산의 아세틸화
최초의 아스피린을 개발한 펠릭스 호프만 박사
살리실산은 효과는 좋았으나 맛이 고약하고 귀가 울리는 이명과 구토, 그리고 심각한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19세기 말경까지 환자들이 살리실산을 좀더 편하게 복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이러한 노력은 1897년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1890년 독일의 조그만 제약사였던 바이엘사에 당시 23세의 청년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이 신입연구원으로 입사했다. 펠릭스 호프만은 독일의 명문 뮌헨대학교(Ludwig Maximilian University of Munich)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화학자였다.
펠릭스 호프만 박사는 그의 부친이 겪던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인한 통증을 덜어주기 위해 복용 중이던 살리실산 나트륨의 약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밤을 새워가며 연구, 탐색했다.
당시 관절염의 경우 복용해야 하는 살리실산 나트륨의 양은 6~8g 정도로, 이로 인한 위장 장애 등의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펠릭스 호프만은 1897년 살리실산을 아세틸화 하여 아세틸 살리실산으로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가 만든 아세틸 살리신산은 복용이 보다 용이하고 점막에 자극이 덜 가는 것이 특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