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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왜 나의 슬픔은 당신의 슬픔과 다른 것일까?”
심리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전하는 지금껏 당신이 몰랐던 감정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며, 인간은 이성에 의해 통제받아야 하는 감정에 휘둘리기만 하는 존재일까? 심리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 리사 펠드먼 배럿은 심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학, 법률 제도, 자녀 양육, 명상, 심지어 공항 보안 분야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감정과 마음과 뇌에 관한 새로운 과학이 밝혀낸 연구 성과와 감정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들의 일상과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지금껏 감정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대부분 틀렸다!”
30년간의 연구와 900여 편에 달하는 학술자료 분석, 감정에 관한 혁명적 이론
리사 펠드먼 배럿 교수는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이론, 즉 구성된 감정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서양의 문화권에서 멀리 떨어진 나미비아의 힘바족을 찾아가 기본 감정 이론의 여섯 가지 표정을 재현한 사진을 제시하고 감정별로 구분 짓는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은 미소 짓는 얼굴은 ‘행복’이 아닌 ‘웃는’, 눈을 크게 뜬 얼굴은 ‘두려움’이 아니라 ‘바라보는’과 같이 안면 움직임을 감정이 아닌 행동으로 구분했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의 지문이 존재하지 않으며, 감정이 문화와 전후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각각의 개념이자 일련의 개체군 사고임을 알려준다.
“우리는 스스로 감정을 구성하는 설계자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예측하고 검증하는 뇌의 메커니즘
우리는 감정의 개념을 알고 있을 때 비로소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감정의 개념이 구성되는 과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가 있다. 바로 과거의 경험이 전무한 갓난아기가 감정을 학습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불쾌한 느낌을 받는 것에 대해 울음을 터뜨리거나 음식물을 뱉거나 누군가를 때릴 때 부모가 “화났니?”, “화내지 마”라고 반응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과 부모의 말을 결부시키는 법을 통해 ‘분노’에 대한 감정을 통계적으로 학습한다. 즉, 다양한 신체의 변화와 맥락을 ‘화남’이란 단어를 통해 하나의 개념을 학습하고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늘의 경험이 내일을 바꾼다.”
평범한 일상에서 의학, 법률, 경제, 공항 보안까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내일을 180도 바꿀 감정에 관한 실질적인 제안들
저자는 개인의 감정 경험이 개인의 행동에 의해 능동적으로 구성되며, 우리가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환경의 설계자이자, 감정의 설계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감정 개념은 사람들 사이의 집단지향성을 통해 사회적 실재로서 존재한다. 우리가 서로의 감정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적 동물임을 자각할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시작해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내일을 바꿀 수 있다. 책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예측하고 검증하는 뇌의 메커니즘을 탐구함으로써 뇌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어떻게 착각하는지, 인간의 심리를 추론하면서 어떤 오류를 범하는지 등을 밝힌다. 또한 의학, 법률 제도, 자녀 양육, 명상, 심지어 공항 보안 분야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감정과 마음과 뇌에 관한 새로운 과학이 밝혀낸 연구 성과와 함께 감정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책속으로 추가]
한 아이가 세 가지 다른 상황에서 누가 ‘슬픈’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치자. 이 세 사례는 이 아이의 뇌에 조각조각 표상된다. 이 사례들은 어디에 구체적으로 ‘함께 분류’되어 있지 않다. 네 번째 상황에서 이 아이는 교실에서 다른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때 선생님은 ‘슬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아이의 뇌에서는 현재 상황과 어떤 식으로든 통계적으로 비슷한 다른 예측들과 함께 이전 세 사례가 예측으로 구성된다. 이 세 사례의 예측 집합이 바로 ‘슬픔’ 사례들 사이의 순전히 정신적인 몇몇 유사성을 바탕으로 이 순간에 창조된 개념이다. 그리고 다시 현재 상황에 가장 비슷한 예측이 이 아이의 경험이, 즉 이 경우에는 하나의 감정 사례가 된다. _6장.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 중에서
진화는 또 다른 종류의 실재를, 즉 인간 관찰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실재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의 마음에 부여했다. 우리는 공기 압력의 변화를 바탕으로 소리를 구성한다. 우리는 빛의 파장을 바탕으로 색을 구성한다. 우리는 구운 반죽을 바탕으로 이름만 빼곤 구별이 안 되는 컵케이크와 머핀을 구성한다. 어떤 것이 실재한다고 두 사람이 동의만 해도, 그리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기만 해도, 두 사람은 실재를 창조한다. 정상 작동하는 뇌를 가진 모든 인간은 이 작은 마술을 부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늘 이것을 사용한다. _7장. ‘감정은 사회적 실재다’ 중에서
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이 과학 혁명의 구조에 관해 논하면서 말한 것처럼 “한 패러다임을 거부하면서 그것을 대체할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과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1960년대에 고전적 견해가 재등장하자 반세기에 걸친 반본질주의적 연구 성과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날 있지도 않은 감정의 실체를 찾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허비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망각 때문에 그만큼 더 가난해진 셈이다. _8장.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 중에서
감성지능은 개념의 관점에서 더 잘 규정될 수 있다. 당신이 아는 감정 개념이라곤 ‘기분이 아주 좋다’와 ‘기분이 더럽다’라는 두 개밖에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당신은 감정을 경험할 때마다 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각할 때마다 오로지 이 거친 붓으로 범주화를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감성지능이 높을 수 없다. 반면에 만약 당신이 ‘기분이 아주 좋다’의 의미를 …… 더 미세하게 구별할 수 있다면, 그리고 …… ‘기분이 더럽다’의 50가지 뉘앙스를 안다면, 당신의 뇌는 예측과 범주화와 감정 지각의 훨씬 더 많은 옵션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더 유연하고 효과적인 대처를 위한 도구를 갖추게 될 것이다. _9장.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 중에서
당신 뇌 속의 염증은 매우 나쁜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예측, 특히 신체 예산 관리 예측에 영향을 미치고, 예산의 초과 인출을 초래한다. 당신의 신체 예산 관리 회로가 먹통이 되어 당신의 신체가 보내는 수정 요구에 거의 귀를 귀울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염증은 바늘을 ‘완전 먹통’ 쪽으로 옮긴다. 당신의 신체 예산관리 부위는 당신의 상황에 둔감해져 예산을 계속 초과 인출시킬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피로와 불쾌한 느낌에 사로잡힐 수 있다. 만성 적자 예산은 당신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당신의 신체를 소모시키며 결국에는 전염증성 시토킨을 더욱 증가시킨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실제로, 정말로 곤경에 처한다. _10장. ‘뇌의 잘못된 예측이 내 몸을 망친다’ 중에서
미국의 법률 제도는 감정이 이른바 동물적 본성의 일부이며 이성적 사고로 통제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행동과 폭력적 행동도 유발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여러 세기 전, 법률가들은 사람들이 열 받은 때는 아직 ‘냉정을 되찾지’ 못해 분노가 저절로 폭발하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분노는 끓어올라 폭발하고 그 길에 파괴 자국을 남긴다. 분노했을 때는 자신의 행동을 법에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에 행동에 대한 책임이 일부 경감된다. 이런 논거를 ‘흥분 상태의 항변’이라고 한다. _11장. ‘감정이 법률에 미치는 영향’ 중에서
“개가 으르렁거리면 화가 난 것인가?”라는 물음은 우선 잘못된 물음이 다. 또는 적어도 불완전한 물음이다. 이 물음은 어떤 객관적인 의미에서 개가 어느 정도 화나 있거나 화나 있지 않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당신이 학습한 것처럼, 감정 범주는 일관된 생물학적 지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감정은 언제나 몇몇 지각하는 사람의 관점으로부터 구성된다. 따라서 “로우디는 화난 것인가?”라는 물음은 실제로 두 개의 분리된 과학적 물음이다. “로우디는 소년의 시각에서 볼 때 화난 것인가?”, “로우디는 로우디 자신의 시각에서 볼 때 화난 것인가?” _12장. ‘동물도 화를 내는가?’ 중에서
과학의 중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과학 혁명에도 우리의 건강과 법률과 우리가 누구인지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잠재력이 담겨 있다. 이것은 새로운 실재를 만들어내는 잠재력이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이 당신 경험의(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경험의) 설계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함께 이 새로운 실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_13장. ‘뇌가 창조한 마음, 뇌를 오해한 마음’ 중에서
목차
추천의 글
들어가며 2천 년 된 가정
1부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
1장 감정의 지문을 찾아서
표정으로 감정 읽기
신체의 상태로 감정 읽기
뇌를 분석해 감정 읽기
다양성이 표준이다
2장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설계한다
극적인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는 이유
구성된 감정 이론의 세 가지 접근법
똑같은 쿠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험으로 만들어낸 감정
3장 보편적 감정의 신화
행복과 미소는 동일한 개념일까?
보편적 표현 프로젝트가 초래한 오해들
얼굴에 드러난 감정이 전부가 아니다
2부 감정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4장 느낌의 기원
날아오는 야구공과 예측하는 뇌
감정과 신체 에너지의 불균형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
우리는 뇌가 느끼는 대로 느낀다
경제를 망친 합리적 경제인
당신의 세계도 당신이 구성한다
5장 개념과 단어의 통계학
맥락에 따라 개념을 창조하는 능력
창조적 통계학자들
아이들은 어떻게 분노를 학습하는가?
피자 효과
뱀을 발견한 사람의 다중 감각
6장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
아기의 예측은 오류투성이다
개념과 예측이 만들어낸 기억된 현재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통제 신경망
감정은 의미의 구성이다
7장 감정은 사회적 실재다
문명의 전제 조건: 공유와 상징
너와 내가 함께 느끼는 바로 그것
우리는 저마다 감정 사전을 갖고 있다
일곱 색깔 무지개와 여섯 색깔 무지개
새로운 문화가 살아남는 법
3부 감정이 세상을 움직인다
8장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
문화가 진화의 효율을 높인다
우리는 다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본질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자연과 신과 진화 vs 환경과 문화
심리학을 어지럽힌 행동주의
오늘의 경험이 내일을 바꾼다
9장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
신체 예산을 관리하는 생활 습관
감정 표현에 서투른 사람을 위한 조언
나와 나의 모든 감각을 해체하기
과학자와 바텐더처럼 대화하기
당신의 지각은 추측일 뿐이다
10장 뇌의 잘못된 예측이 내 몸을 망친다
왜 불안과 우울은 함께 발생하는가?
감정의 또 다른 이름, 스트레스
잘려 나간 팔에서 고통을 느끼는 이유
우울증은 정신의 질병이 아니다
불안과 우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들
약물 중독에 시달리는 사회
11장 감정이 법률에 미치는 영향
왜 법률은 냉정한 범죄자만 처벌하는가?
남성과 여성에게 내려진 모순된 판결
범죄를 위한 뇌는 없다
무엇으로 범죄자의 양심을 판단하는가?
배심원의 편견과 목격자의 기억 왜곡
공명정대한 판사는 존재하는가?
감정의 괴롭힘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올바른 법률 제도를 위한 다섯 가지 조언
나의 행동은 누구의 책임인가?
결국 법정도 감각의 지배를 받는다
12장 동물도 화를 내는가?
인간 아기와 원숭이 새끼의 차이점
목표에 기초한 개념형성의 부재
개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가?
우리가 몰랐던 개의 감정 구성
꼼짝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심리 추론 오류
동물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4부 감정과 마음의 관계
13장 뇌가 창조한 마음, 뇌를 오해한 마음
신경망에서 창조된 마음
인간의 마음에 설정된 세 가지 모드
확실성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우리는 더 나은 질문을 통해 진보한다
https://naver.me/IMpbnuwl
(책) 구성주의의 반격: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
편도체-공포 가설과 옴니제닉 모델
인간은 불완전하다
빅테크의 표정-감정 연구는 낭비인가
소리는 실재하는가, 감정은 실재하는가
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기계
느낌을 측정할 수 있다면 (ft. 다윈과 스키너 비판)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노씨가 묻고, 이효석 박사가 답하다
뉴스페퍼민트 이효석 대표는 슬로우뉴스와는 귀한 인연을 가진 분입니다. KAIST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양자 컴퓨터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에서는 오늘날 AI의 배경 기술 중 하나인 정보이론을 연구했습니다. 하버드 연구원 시절 시작한 외신 번역 미디어 ‘뉴스페퍼민트’를 10년 이상 운영하며, 과학 전반의 다양한 영역과 번역 및 저작권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귀국 후 헬스케어 업계에서 일하며 AI와 진화, 노화에도 깊은 관심과 고민을 하며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독서 편력을 가진 이효석 대표가 추천한 ‘좋은 책’을 함께 읽고 그 책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저는 ‘보통의 독자’를 대신해 책에 관한 이런저런 궁금증을 묻고, 이효석 박사는 이에 관해 답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첫 번째 책은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입니다. 이 책은 저도 너무너무 좋아하는 책이고요. 이효석 박사도 아주 높게 평가하는 책으로, 저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 교수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려고까지 했다고 하네요.
대화는 6월 초에 있었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좀 길어졌습니다. 6~7차례에 걸쳐 나눠서 올립니다.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 1963년 캐나다 토론토 출생)
민노: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감정에 관한 본질주의에 입각한 전통을 구성주의의 입장에서 비판한 책입니다. 저자의 표현처럼 “뇌에 관한 새로운 발견들을 바탕으로 혁명적으로 뒤바뀐 인간 존재의 의미”에 관해 탐구하는 학구적인 책인데요. 그런 학술적 면 외에 이 책이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우리 각자가 삶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자신의 체험을 좀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단단하게 만들면 우리 미래가 충분히 바뀐다.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마치 친근한 이웃 아주머니의 덕담처럼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리사 펠드먼은 반복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의 설계자”라고 말합니다.
이효석: 맞습니다. 이 책은 제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기준에 정확히 들어맞는 책입니다.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을 부수면서, 새로운 주장이 말이 되는 동시에 기존의 생각 때문에 느끼던 모순을 해결해 주는 그런 책을 좋아하고요.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이 인생에서 참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슬로우뉴스에 서평을 쓰기도 했던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 (2015)가 그랬고요. 이 책도 바로 그런 책입니다. 일단 말씀하신 희망을 주는 부분을 보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스티븐 핑커의 책 [빈 서판]을 언급하죠.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1954년 9월 18일 ~, 몬트리올 출생, 위키미디어 공용)
스티븐 핑커 언급 부분 1.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감정이 신체 기관과 비슷하게 전문화된 기능을 담당하는 일종의 정신 기관이며, 몇몇 유전자가 감정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8장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 중 ‘우리는 다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생각연구소:2017. 중에서
스티븐 핑커 언급 부분 2.
책의 의미: 구성주의의 반격
이효석: 저는 이 책을 하드 사이언스 분야에서 구성주의를 다시 되살리는 책으로 보았습니다.
20세기를 바라보는 한 가지 관점 중에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1)(실재론,객관주의) 과학이 객관적 실재를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2)(구성주의) 과학적 개념이 사회적으로, 그러니까 과학자 집단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입니다.
전자는 실재론, 객관주의 등으로 불리고 후자는 구성주의라 불리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도 관련이 있고요. 실제 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대부분 전자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반면, 후자는 과학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가지는 입장이지요.
물론 과학 절대주의나 과학 맹신주의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전자 결정론이나 우생학이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민노: 우생학은 너무 악명 높죠.
이효석: 그렇죠. 문제가 있었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구성주의에는 과학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가 있습니다. 과학자가 받는 가장 중요한 트레이닝이 바로 실험 결과에 관해서는 겸허할 것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 결과를 무시해서는 안 되며, 어떤 결과를 바라거나 기대하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바른 과학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과학의 역사는 그런 자세와 관련된 행운이나 실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객관적 실재가 존재하고 과학은 이를 밝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구성주의는 객관적 진실을 부정하는 면이 있습니다.
위에서 잠깐 이야기가 나온 스티븐 핑커가 쓴 [빈 서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마음은 빈 서판이고 환경이 그 인간을 결정한다는 빈 서판 이론을 반박하는 책인데요. 그러니까 빈 서판 이론은 인간은 모두 평등한 빈 서판으로 태어난다는 내용이지요. 아름답고 듣기 좋은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사실이라 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 가진 특성의 아주 많은 부분이 유전자에 의해 미리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자들(객관주의나 본질주의)이 보기엔 이들(포스트모던, 상대주의, 구성주의)이 하는 이야기가 현실과 다른 그냥 듣기 좋은 이야기처럼 들린 것이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념이 진실을 가린 것처럼도 보이고요. 그래서 최근까지도 하드 사이언스를 하는 이들은 구성주의를 이야기하는 주장에 그리 귀를 기울이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물론 구성주의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또 학문의 영역에 따라 그 양상이나 진리의 무게추가 기우는 정도가 매우 다를 것도 같고요.
사실 ‘빈 서판’은 본성 대 양육(nature vs. nurture) 논쟁과 그대로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말 그대로 인간을 결정하는 것이 본성이냐 양육이냐 하는 것이죠. 대체로 과학자들이 본성의 진영에 있었고요. 핑커는 20세기 내내 양육을 주장하는 이들이 우세했지만, 과학적 증거는 그 반대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유전자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키 같은 경우에는 80% 이상 유전자를 통해 결정됩니다. 서로 다른 환경을 경험한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도 그렇게 말하고요.
물론 그렇다고 양육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요. 실제로 구성주의 쪽에서도 과학에 근거한 새로운 반격들이 있었죠. 유전자의 경우에도 ‘후성 유전학'(에피제네틱스; Epigenetics)이라는 게 있습니다.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정보인데,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어떤 유전자는 켜지고, 어떤 유전자는 안 켜지게 만드는 것을 말하고요. 그 환경에 당연히 사회가 포함되고, 따라서 개인의 특성에 사회가 영향을 준다는 것, 곧 양육이 개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물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도 자주 언급되는 예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의 질병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가 성인이 된 뒤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이런 식으로 사회나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들이 이제 다시 또 많이 발견되면서 과학자들 역시 구성주의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상황에서 한때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감정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이 책이 나온 것이죠.
폴 에크먼(Paul Ekman, 1934년 2월 15일 ~ ) 미국의 심리학자, 감정과 표정 관계 연구의 선구자.
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름으로, 70년대 표정을 연구한 폴 에크먼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 표정 연구를 통해 모든 문화에는 동일한 감정이 존재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이 책은 그걸 정면에서 반박하고요. 저도 이 책 앞부분인 1, 2장을 읽을 때는 정말 그런 것일지 갸우뚱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계속 읽다 보니 설득이 되었습니다.
폴 에크먼의 주장과 리사 펠드먼 배럿의 주장, 곧 감정은 지문처럼 객관적 실체가 있다는 주장과 감정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뇌에서 구성되는 것이라는 주장에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기쁨과 슬픔과 같이 크게 구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감정은 호르몬과 같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체가 있을뿐더러 심지어 사회를 가지지 않는 동물들에게도 다 존재한다고 보거든요.
이 책에선 사실 감정의 진화 자체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데, 그래서 그 내용을 저자한테 질문하려고 했던 것이고요. 저자도 그 부분을 부정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뇌가 진화한 건 분명하니까 인간의 정신이나 감정도 진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지만, 유전자와 문화가 같이 진화하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론(Gene-culture Co-evolutionary Theory)과 같은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 같고요.
그러면 기본적인 감정, 곧 나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거나 이성을 좋아하는 것처럼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상황을 좋아하는 감정, 그리고 생존과 번식에 불리한, 예를 들어 음식을 먹을 수 없거나 나의 사회적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을 싫어하는 감정은 분명히 모든 인간, 모든 생명체에 공통으로 존재할 것이거든요.
민노: 그렇겠죠
이효석: 이게 정동(Affect; ”가장 단순한 느낌. 유쾌와 불쾌 및 평온과 동요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동”)에도 있죠. 정동에서 보면 유인성(베일런스; Valence; “유쾌부터 불쾌까지 우리가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기초적인 느낌. 정동의 한 속성”), 이게 좀 이상한 번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좋고 싫음에 관한 개략적 기준이예요. 그 다음에 흥분의 정도로 2차원으로 정동이 나뉘어져 있고요.
그 두 가지 기준(좋고 싫음, 흥분과 평온) 안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적당히 좋으면서 적당히 흥분되는데 이때 만약 주변 상황이 이러저러할 경우 문화권에 따라서 그 감정을 어떤 이름의 감정으로 분리해서 부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고요. 저도 거기에는 동의합니다.
Novelty as a Dimension in the Affective Brain (Mariann Weierich, Christopher I Wright, Alyson Negreira, Lisa Feldman Barrett, 2010)
그 다음에 감정 입자도(Emotional granularity; “감정 경험과 지각을 섬세하게 또는 거칠게 구성하는 능력”)라는 말이 나오는데 저는 해상도라는 게 좀 더 직관적인 번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핵심은, 우리가 어릴 때는 어색하다든지 민망하다든지 겸연쩍다, 이런 감정을 모르잖아요. 동아시아에서는 체면이 중요하니까 그런 개념들이 있는 거고요. 그런 세부적인 감정들은 특정 문화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좋고 나쁨, 흥분과 고요함 이런 것들은 보편적으로 문화와 상관 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의 핵심 키워드로 구성주의의 반격이라는 말을 쓰고 싶고요. 그리고 그 반격이 구성주의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과학자들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굉장히 성공적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고요. 이 책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더불어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아름다움의 진화] (리처드 프럼, 동아시아: 2019)라는 책인데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만큼 어마어마한 책입니다. 이 책은 진화 자체에서 구성주의적 요소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진화론에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진화론의 주요 기작으로 자연선택만이 중시되었는데, 이는 생존에 유리한 개체가 살아남는다, 혹은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개체군 내에서 증가한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공작의 화려한 꼬리처럼 생존에 명백하게 불리한 데도 그저 암컷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발달한 형질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기존의 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그냥 무시하거나 아니면 핸디캡 이론이라는 것으로 설명하려 했고요. 핸디캡 이론은 꼬리가 큰데도 잘 살아가는 것을 보면 다른 생존 능력이 매우 강할 거라는 신호를 암컷에게 준다는 이론이고요. 그런데 그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이론이죠. 그렇게 강한 생존 능력을 가진 개체 중에 꼬리가 작으면 더 잘 살아남겠죠.
자연 선택이 아니라, 암컷의 선호에 따라서 형질이 선택되는 것을 성 선택이라고 하는데 지난 100년 동안 무시되어 온 성 선택을 [아름다움의 진화]는 살려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전의 진화는 센 놈 잘 적응하는 놈이 살아남는다는 거였고, 사실 기본적으로 이 말은 맞는 말이죠. 하지만 동시에 암컷의 변덕, 혹은 그저 우연에 의해서도 선호가 만들어지고 그런 요소들이 생물의 다양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요.
본질주의와 구성주의와 대립을 넘어서
민노: 이효석 박사께서는 구성주의와 본질주의의 대립에서 본인은 어느 쪽이 더 타당하다거나 어느 쪽이 더 약점이 있다거나 하는 가치판단이나 경향성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효석: 그 부분과 관련해, 책 마지막에 저자는 그동안 양측이 상대방의 허점을 과장해서 허수아비 때리기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민노: 그렇죠. 상대방 이론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그것을 과장해서 때리는 걸 했죠.
이효석: 네. 저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으며 확신을 버리고, 의심을 함양하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음의 이런 세 가지 필연적 측면을 통해 구성적 견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회의적인 태도다. 당신의 경험은 실재를 열어 보이는 창문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뇌는 당신의 신체 예산에 중요한 것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당신의 세계를 모형화하도록 배선되어 있으며, 당신은 이 모형을 실재로서 경험한다. 이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이어지는 당신의 경험이 마치 실에 꿴 구슬처럼 별개의 정신 상태가 연달아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살펴보았듯이 당신의 뇌 활동은 핵심 내인성 신경망들(Intrinsic network; “우리가 별다른 일도 하지 않는데 작동하면서 예측을 내놓는 모든 신경망) 전체에 걸쳐 연속성을 지닌다. 당신의 경험은 두개골 밖의 세계가 촉발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예측과 수정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가운데 형성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뇌가 창조한 마음이 뇌를 오해한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3장 ‘뇌가 창조한 마음 뇌를 오해한 마음’ 중 ‘확실성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제가 [스켑틱: 회의주의자의 사고법] (마이클 셔머, 이효석 옮김, 바다: 2020)이라는 책을 번역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회의주의가 바로 과학의 기본입니다. 곧, 어느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기보다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근거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생각을 지지하되, 언제든지 그 생각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염두에 두는 것이죠. 하지만 한편으로, 적어도 하드 사이언스를 하는 과학자 상당수는 객관적 실재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구성주의를 약간은 비토하고, 거부하는 입장이 많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민노: 과학자 다수는 구성주의에 반감 갖고 있을 것이다?
이효석: 위에서 빈 서판을 이야기할 때 말씀드린 것처럼, 과학자는 자신의 바램과 무관하게 실험 결과가 나오면 그걸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구성주의에서는 평등과 같은 가치가 객관적 실재보다 우선하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 곧 자연이라는 심판관을 부정하는 태도를 적어도 하드 사이언스를 하는 과학자들은 과학 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보았을 듯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