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종량제 봉투
장은선
머리가 아플 때 어느 숲에 가면 스트레스를 담는
종량제 봉투를 나눠 준다는 데요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무지막지하게 담장까지 올라온 폭설이나 후덥지근한 폭염에
쉽게 찢어지는 성질이 있어요
물론 LP판 흐르듯 잔잔히 비 오는 날이나
산들바람이 부는 날에는 저절로 혼자서 허밍을 해
용량이 넘치지는 않아요
친구가 학연으로 승진됐다고 자랑하거나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집을 나간다거나
접대 술로 인해 간 수치가 나빠졌다거나
여러 가지 사연으로 용량이 모자랍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함부로 버리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봅니다
꼬리 달린 바이러스처럼 전염되어
차갑고 험상궂은 마스크가 되겠지요
언제나 종량제 봉투에 담아
꼭 묶어 정해진 곳에 내놓아야 합니다
소리 지르는 노래방이라든지
푸른 잔디의 골프장이라든지
해외 여행을 갔다 온다든지
버릴 곳은 여러 곳에 있습니다
가격 따라 천차만별 이지만요
굶주린 도둑고양이 마침내 봉투를 찢었네요
스트레스 짜꺼기들
마른 귤껍질 치킨 조각 배즙 봉지
오물 묻은 기저귀 떨어진 운동화 낡은 브래지어
고장 난 탁상시계 모형 범선
마침 바람이 불어오네요
쓰레기가 만선인
모형 범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볼까요
시계가 멈췄군요 아니 세계가 멈춘 건 아닐까요
기상대에선 내일 해가 꿈꾸는 시각을 계몽했네요
도둑고양이가 치킨 조각을 오물거립니다
역시 먹는게 스트레스에는 최고인가 봅니다
마구 욱여넣은 종량제 봉투는 점점 거대해져서
에어백 터지듯 집을 터뜨릴 것 같아요
스트레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개인이나 사회에
매우 위험한 물질 임에 틀림 없습니다만
잘 다루어진다면 평화롭게 공존할 수도 있겠지요
ㅡ2026 호미곶 흑구문학상 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