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스님도 알아챘던 용인 '빛의 비밀'
용인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화가가 있다.
'촌화가'를 자칭하는 용인토박이 허만갑(1953~) 화백이다.
그냥 수사로 하는 말이 아니다.
용인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 고장의 빛이 가장 풍성하고 따스하기 때문이란다.
한반도 삼천리에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은 없지만 지형이나 혹은 위치 때문인지 이곳처럼 이토록 빛이 풍성하고 따스하게
빛이 비치는 곳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신라말 고승 도선선사가 말한 '생거진천 사거용인 : 사는 데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이란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라고 한다.
왜 죽어서는 용인에 있는 것이 좋은가.
도선국사는 용인 땅의 형세가 '금닭 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금닭은 바로 '햇살'이며 '알을 품고 있는 것'은 바람을 막아주고 온기를 보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죽은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을 만큼 양지 바른 곳이며 늘 한결같은 빛을 받는 지역이라는 얘기다.
용인의 '빛'이 좋다는 뜻은 풍경이 아름답다는 뜻과도 같다.
풍경이란 말 자체가 바람과 햇빛이라는 의미다.
허만갑 화가는 세계를 돌아다녀 보아도 용인만큼 빛이 좋은데가 없더라고 말했다.
유럽의 햇살은 구름의 미묘함이 덜해
물론 남프랑스 같은 지역은 해가 길고 빛이 풍성하지만, 거기엔 한반도처럼 수시로 등장하는 구름이 없어서 풍경의 변화가 적고
미묘함이 덜하다.
구름들이 가리고 내놓는 빛의 온갖 변화들을 지니고 있는 한반도에서 가장 햇살 좋은 땅이 바로 용인이라는 것이다.
용인에서 만나는 풍경은 그래서 저마다 절경이 아닐 수 없다.
그속에서 사는 사람들 또한 그 빛처럼 평화롭고 단란하며 자연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만갑 화가가 용인 풍경화에 이토록 깊이 빠진 까닭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사시사철의 풍경을 지닌 용인의 한 순간 빛너울이
깃든 낙원들을 결코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다.
'한 오십년 이 땅의 풍경을 담아오다 보니 이제는 제가 마치 고향의 옛집같은 존재로 되어가는 듯 합니다.
지역이 있는 마을의 돌담, 슬레이트나 함석 지붕, 방앗간은 그 자체가 '예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작품의 대상이 되어
오래 응시하는 풍경이 되기도 합니다.
백암 용천리에는 반쯤 기울어진 건초장이 있죠.
그 앞에서 숨을 쉬면 우리 집이고 우리 동네입니다.
제 작품의 내부이기도 하고요.'
허만갑은 풍경을 우선 사진부터 찍어 화실에서 그리는 법이 없다.
그에게 회화는 그의 시선과 그의 시간과 그의 시적 감수성이 직동하는 현상의 행위예술에 가까운 지도 모른다.
운무처럼 사라지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자연과 인간이 호흡하는 황홀한 혼연일체를 꿈꾼다.
'나의 그림은 용인이며 용인의 마음이며 용인의 역사입니다.
동백의 설경, 지곡동의 풍광, 맹리, 사암리, 모현 갈담리, 초부리가 내 영혼처럼 거기 피어있습니다..'
그는 이런 마음에서 용인이 좀 더 아름답고 인간적인 삶의 터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개발이 전통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당부해 왔다.
그림에 나오는 풍경을 직접 가서 확인해보니
화가 허만갑은 경기미술작가회장을 맡고 있고 대한민국 미술인과 용인시문화상을 받은 바 있다.
개인전을 19회 열렀고, 그룹전을 700여회 가졌다.
제주화가 변시지 선생(1926~2013)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제자이기도 하다.
2023년 10월 17일~31일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마가미술관에서 그의 초대전이 열렸다.
비가 죽죽 내리는 10월 19일 마가미술관으로 가서 그를 인터뷰했다.
잘 매만진 하얀 콧수염이 인상적이다.
그의 화풍에는 '야외'라는 전위로 뛰쳐나간 유럽 인상파들의 의욕이, 잘 무르익은 이땅의 감수성으로 담긴 것 같다.
자연은 인위적인 화면에 정제된 구도로 드라마틱하게 들어 앉는 것이 아니다.
빛과 안개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미묘한 아름다움들이 명멸한다.
조선시대 화단에서 전개된 진경산수 바람도 이런 실상 재현에 대한 갈증이다.
하지만 재현의 욕망은 다시 추상을 기웃거리며 인간미학의 폭을 확장해나가는 것 같다.
마치 갈필처럼 메마른 붓질로 그려진 작품 (오메기마을)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들수록 채우는 그림보다 그것을 비우는 그림에 더욱 마음이 가게 됩니다.
비울수록 마음이 담은 풍경의 실상에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 삶의 의미 또한 거기에 닿아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허만갑의 풍경은 우리의 시계를 잠시 과거로 돌려 맞춰준다.
지금도 격동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변화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저 그림 속의 아스라한 집과 숲과 길들은 '붙잡고 싶은 공간'이며
'늦추고 싶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작품들을 감상한 뒤에 작품에 등장하는 곳을 화가와 함께 직접 가보기로 했다.
빗속을 뚫고 우리는 용인의 갈담리와 맹리의 현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알아볼 수 있는 건 갈담리의 뒷산 능선의 곡선과 희미한 마을의 윤곽 뿐이었다.
또 한 곳은 아예 사라지고 주택들이 들어서서 어디가 거기인지 분산할 수 없었다.
도시 발전에 따른 변모와 개발이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들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살펴 지킬 것과 놓을 것을 분별하고 그 무게를 측정하는 지혜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인소식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