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은 아련한 동경이다. 낭만과 신화가 가득 쟁여져 있는 곳이다. 섬마을 선생님은 왠지 달콤한 로맨스와 깊은 사연을 지닌 주인공 일 것만 같다. 그래서 섬마을 유람에 나섰다. 섬마을 선생님들의 훈훈한 휴먼스토리와 낙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지면에 담아낼 작정이다. 서해의 백령·연평군도에서 남해 한려수도를 돌아 동해의 울릉도까지….
청산도에 내렸다. 그날의 마지막 배였다. 도청항엔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초로의 한 남자가 휘적휘적 다가온다. 개량한복 위에 잠바를 걸쳤다. 머리엔 헌팅캡을 쓰고 있다. 외모에서부터 예술인 분위기를 팍팍 풍긴다. 청산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화가 김상일(55) 선생님이다.
“아이고, 뭐 하러 마중은 나오셨어요.”
“워매 서울에서 손님이 오시는디 마땅히 모시러 나와야지라.”
걸쭉한 남도 사투리에 정이 뚝뚝 묻어난다. 수인사를 마친 뒤 선생님이 잰 걸음으로 앞장서 걷는다. 꼬불꼬불 언덕길은 벌써 깊은 어둠에 묻혔다. 숨이 조금 가빠올 즈음 환하게 불을 밝힌 아담한 2층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1~3학년 통틀어 40여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인 청산중학이다.
왼편으로 학교를 끼고 언덕길을 더 오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학교 오른편 산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관사였다. 관사의 주방은 응접실로도 쓰이는 곳이다. 연잎차와 감잎차, 뽕잎차 등 각종 차들이 다기와 함께 방 한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선생님이 연잎차를 우려 내놓는다. 산중 암자의 도인과 마주 앉은 느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크고 작은 미술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어요. 조선대 주최 전국사생대회 특선도 했고, 전남매일신문에서 주최한 전국파스텔대회에서 최고상을 받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아주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어릴 때 양조장에 다니셨는데 월급날이면 도화지를 잔뜩 사오고는 하셨어요. 그림 특기생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목포 제일중학에 진학했습니다. 광주 농고 미술부를 거쳐 조선대 미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지요.”
대학시절엔 인상파 화가들의 세계에 푹 빠져 지냈다. 서울에서 마네와 모네, 르느와르의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면 열일 제쳐놓고 달려갔다.
대학 졸업 후 전남 화순에 있는 춘양중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제자들 교육에 젊은 열정을 쏟았다. 40대 초반 들어 웬일인지 자꾸 몸이 쇠약해져 갔다. 우선 몸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은 20년 교직생활을 접는다. 평소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전업화가의 꿈도 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여기서 선생님이 잠시 말을 끊는다. 찻잔들을 치우고는 대신 술잔들을 내놓는다. 해삼과 멍게를 안주로 내놓는다. 권커니 잣커니 몇 순배 소주잔이 돌아가고 난 뒤 선생님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학교를 그만 둔 뒤 낙안으로 내려가 화실을 냈어요. 대학 동창인 송팔영이란 친구가 거기서 도예 공방을 열고 있었거든요. 그 친구랑 워낙 친하기도 하고, 풍광도 좋은 곳이고….”
이후 작품 활동에 매진한 선생님은 1989년 전남 광주에서 제1회 수채화 개인전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모두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연다. 선생님이 화첩을 보여준다. 화첩 속의 작품들은 주로 고향과 어머니를 통해 세월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과 퇴락해가는 고향 골목길의 풍경 속에 슬픈 노스탤지어가 가득 담겨 있다.
2009년 4월 선생님은 청산도로 왔다. 청산중학의 정연국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기간제 미술교사직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던 것이다.
“정연국 교장선생님은 학교 급식개혁과 우리농산물이용 운동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제가 평소 존경하던 분이었어요. 그분 덕에 십 수 년 만에 다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게 된 셈이지요.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인 청산도라면 작품 활동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을 했지요. 저에게 청산도는 폴 고갱의 타히티 섬 같은 곳입니다.”
취흥이 도도해 질 무렵 선생님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화구를 챙겨온다. 물감을 개고는 붓을 잡는다. 필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일필휘지로 붓 끝을 놀린다. 불과 2~3분이나 됐을까. 도화지 위엔 크로키로 잡은 필자의 프로필이 살아있는 자신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 표정과 특징을 화폭위에 옮겼을까. 취중에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크로키는 상대방을 내 가슴에 담는 것입니다. 상대방과의 교감이 중요해요.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을 내 안에 들이는 작업이 바로 크로키입니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단순함 속에 있다고 했던가? 선생님은 미술의 경지 역시 단순화하고 비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얼마나 잤을까.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꼬끼오, 꼬끼오…. 관사 바로 옆에 있는 닭장에서 들여오는 소리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수탉 울음소리인가. 청산도의 자명종은 수탉의 울음소리였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뜰로 나섰다. 순간 눈앞에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눈을 시리게 하는 쪽빛바다와 그 위를 지나는 작은 고깃배,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 포구 안쪽으로 포근하게 안겨 있는 도청항…. 어두운 밤에 도착한 탓에 하룻밤을 자고 나서야 청산도와 사실상 첫 대면을 하게 된 것이었다.
“참 예쁘지요? 고갱의 타히티 섬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요?”
어느 틈엔가 선생님이 옆으로 다가서면서 말했다. 바다도, 산도, 나무도, 햇빛도 이만큼 찬란한 빛을 내는 곳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은 처음입니다. 바다의 색깔이 하루에도 여러 바뀐답니다.”
아침의 태양은 조물주의 붓이다. 조물주의 붓은 새벽의 하얀 여백 위에 천사만물의 찬란한 모습을 하나 둘 그린다. 매 순간 다른 빛으로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다.
“요즘 통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어요. 저렇게 이쁜 것을 어떻게 화폭에 옮길 수 있겄소. 가끔 팔레트와 물통, 와트만지(수채화를 그리는 데 쓰는 두꺼운 순백색 도화지)등을 펼쳐놓고 붓을 들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냥 넋을 잃고 바라보고만 있지요.”
방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이리저리 구도를 잡아가며 셔터를 눌러본다. 무기력감이 밀려온다. 카메라인들 자연의 저 찬란함을 무슨 수로 담아낼 것인가. 붓을 들고도 그리지 못하는 선생님의 심정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그래 굳이 사진 속에 다 담아내겠다고 안달복달 할 건 무언가. 저 아름다움을 마주한 행운만으로도 행복한 것을.
선생님은 3학년 수업 중이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복도까지 울린다. 열댓 명 정도의 아이들이 19세기 근대미술에 관한 선생님의 열강을 듣고 있었다. 간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진다. 수업을 종료하는 종이 울린다. 갑자기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선생님에게 묻는다.
“사부님, 연예계 데뷔하신다더니 언제 하실 꺼예요? 저를 매니저로 임명하신다는 약속은 지키실 거지요?”
“그래 범진이는 매니저하고, 부지런한 광주는 운전기사, 동률이는 덩치가 크니까 경호팀장하면 되겠네.”
선생님이 연예계 데뷔를 한다니 무슨 소릴까? 수업을 마치고 교실 문을 나서던 선생님이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수업은 겁나게 재미있게 해야 된다는 게 저의 평소 지론입니다. 교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아 있으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웃음교육부터 합니다. 얘들아, 우리 한바탕 웃어 볼까나? 안동 하회탈처럼 다 함께 하하하! 그러면 아이들의 웃음이 깔깔깔 터지지요. 하루는 한 학생이 ‘선생님, 코미디언 하시면 대박날 거예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네가 매니저해라’ 하면서 또 웃었지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웃음보따리’만 안기는 게 아니다. 틈만 나면 ‘칭찬 보따리’도 안긴다. 그림을 잘 그린 녀석에게 ‘오늘은 네가 피카소다’ 혹은 ‘야, 마네와 모네가 쌍으로 울고 가겠네’ 하고 칭찬 해준다. 실제로 선생님은 ‘청산도의 피카소’를 꿈꾸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아침 8시부터 아침 조회 전까지 미술반 학생 여덟 명을 지도하고 있어요. 대도시 아이들의 그림은 딱딱하고 도식적인데 비해 여기 아이들 그림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개성을 담고 있습니다. 2009년 여름 목포대학 주최 미술사생대회에 여섯 명이 참가 했는데 이중 두 명은 특선, 한 명은 입선을 하는 좋은 성적을 올렸답니다. 방학 기간에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지도도 하고 있어요.”
그날 오후 선생님은 도청항 선착장으로 나갔다. 뭍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온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예술적 끼를 닮았는지 도예를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배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미리 나가 서성인다. 배에서 걸어 나오는 아들을 발견하는 순간 선생님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오랜만에 만난 부자가 회포를 푸는 처방으로 술만 한 게 있을까?
예술인 부자를 이끌고 선착장의 수산물 공판장으로 들어갔다. 어제 저녁에 진 신세를 갚고 싶었다. 커다란 고무 함지 속에서 펄떡펄떡 뛰는 우럭과 놀래미를 몇 마리 잡고, 자연산 돌멍게와 홍합도 한 접시씩 시켰다.
횟집 주인 아주머니가 능숙한 솜씨를 회를 뜨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데 부자는 벌써 소주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들아, 우리 집 가훈이 뭐라고 했지?”
“신간 편하게 살자! 내 인생 내가 찾자!”
그래, 신간 편하게 사는 거야. 욕심도 미움도 원망도 훌훌 털어버리는 거야. 마음속엔 그저 허허로움을 남겨두면 그뿐. 그나저나 내 인생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하지?
박상주 오지여행가
서편제 처럼 꼬불꼬불한 청산도
청산도는 곡선이다. 들락날락 해안선도, 일렁일렁 파도도, 꼬불꼬불 논두렁도 하나같이 곡선이다. 곡선은 서두르지 않는다. 막히면 둘러가고, 힘들면 쉬었다 가면 그만이다. 길은 서편제 가락을 닮았다. 꺾이는 곡절마다 유연하고 애절하다.
굽이굽이 오솔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청산도는 느림의 미학으로 충만한 곳이다. 뒷짐을 진 채 청보리밭 사이를 걷는 할아버지, 다랭이 논둑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누렁소, 툇마루 아래 양지에서 하루 종일 졸고 있는 고양이….
2007년 12월 청산도는 전남 신안 증도, 장흥 장평·유치면, 담양 창평면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Slow City)’로 공인을 받았다. 느리지만 멋진 삶을 추구하는 범지구적 민간운동인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2010년 현재 16개국, 120여 곳의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슬로시티 심사기준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우선 인구가 5만 명 이하여야 하고, 자연생태계가 철저히 보호돼 있어야 하고, 지역 주민이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야 하고,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지역 특산물이 있어야 하고, 대형 마트나 패스트푸드점도 없어야 한다.
제주도에 올레길, 지리산에 둘레길이 있다면 ‘슬로시티’ 청산도엔 ‘슬로길’이 있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처럼 다소 인위적으로 조성한 길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길이라고 해서 ‘원래 길’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시발점인 도청항을 출발해 도락리 해변~서편제 촬영지~화랑포~구장리 몽돌해변~권덕리 말탄바위~범바위~장기미~상서리 옛 담장~동촌리~신흥해수욕장~목섬을 거치는 총 19.7km의 길이다. 말탄바위~범바위~장기미 구간만 다소 가파를 뿐 나머지 구간은 심심하지 않을 정도의 오르락내리락 길이 이어진다. 천천히 걸으면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와 TV 드라마 ‘봄의 왈츠’를 촬영했던 세트장을 둘러본 뒤 남쪽의 화랑포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좁은 길이 푸른 숲의 속살을 파고든다.
호젓한 산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초가지붕처럼 이엉으로 엮어놓은 볏짚더미가 오른 편 길섶에 놓여 있었다. 아하,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초분(草墳)이로구나. 초분은 남해와 서해의 섬 지역에서 주로 행해지던 장례 풍습이다. 이엉으로 엮은 볏짚 속에 고인을 모셔 두었다가 2~3년 후 땅에 묻는 장례 풍습이다. 시신이나마 조금이라도 더 이 세상에 붙들어 놓고 싶었던 것일까. 남도사람들의 끈끈한 정과 깊은 효심을 엿볼 수 있는 풍습이었다.
초분을 끼고 왼편으로 나있는 샛길로 접어든다. 깎아지른 절벽의 허리에 걸려 있는 길이다. 왼편으로는 푸른 산을, 오른편으로는 쪽빛 바다를 끼고 걷는다. 바다 건너 구장리와 권덕리 푸른 해안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하, 이래서 청산도로구나!
어, 그런데 저건 뭔가. 저만치 앞쪽에 흑염소 떼가 길을 막은 채 우르르 몰려 있었다. 야생 흑염소들이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출현에 잔뜩 긴장을 한 모습이다. 앞으로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흑염소들이 후다닥 몇 걸음 물러서더니 다시 멈춰 선다. 나아가면 물러나고, 또 나아가면 그만큼 물러난다. 마치 게임이라도 하자는 모양새다. 그러다가는 결국 하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숲 속으로 사라진다.
길은 깊숙이 만입(灣入)한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다. 절벽길이 끝나자 넓은 억새밭이 나타난다. 억새밭은 완만한 내리막으로 바다를 향해 달린다. 길은 억새밭 사이를 구불구불 가르며 이어진다. 억새밭을 지난 길은 다시 가파른 해안의 산기슭으로 올라선다. 조금 전까지 만의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던 구장리와 권덕리의 산기슭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기복이 거의 없는 완만한 산허리 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쫓아오는 이도 없고, 오라고 손짓하는 이도 없는 마당에 발걸음을 바삐 할 까닭은 또 뭔가? 슬로시티 청산도에 가면 우리는 모두 게으른 신선이 된다.
|
첫댓글 시간 좀 될때..다시읽으렴니다..................죄송~!
ㅋㅋ 섬지기님 죄송혀유~~ 지는 눈깔이 까칠까칠해서.. 낸중에 찬찬히 볼깨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