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4(종회)
20대에 하루는 동네의 천년들 놀음판에서 돈을 완전히 잃고는 본전을 찾으려고 오밤중에 부모님이 주무시는 머리위로 고양이가 기듯 살금살금 기어가 돈이든 서랍을 살그머니 열고 돈을 꺼낸 적이 있는데 이성을 잃게 하는 투전은 겁이나 경우를 훨씬 앞지른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후천적인데 아버님 대부터 장남이었고 맏손자로 대우를 받고 자란 영향도 큰 것 같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의 이치인 코 흘리게 어린시절의 한 가지 나쁜 버릇은 꼭 있게 마련이다.
외가로 보드라도 외할아버지가 안계시고 외할머니와 이모님만 네 분이시니 내가 유일한 양쪽 집안의 장남이고, 생활 밑천이고, 어릴 때부터 양가의 사랑을 독차지하니 최고대우이며 만약 내가 외할머니께 “이할매!”하고 부르면 “할매지 왜? 이(外)할매니?” 하시며 무지(無智) 싫어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장고 춤을 배우셨고 시조창(時調唱)학원에서 교습(敎習)을 받으셨는데(내가 보관하는 어머니께서 사용하시던 책에는 4선지에 서양음악처럼 음절이 있음)가창력이 뛰어나고 폐활량이 크며 여음(餘音)에 바이브레이션을 잘 넣으시니 전국최고의 향토문화제인 남원 춘향제(최근 것은 재천 문화원)등 전국의 여러 곳에서 열리는 시조창 가창 대회에 참가 여러 번 입선을 하셔서 6장의 상장을 받은 일이 있는데 내가 가보로 보관중이다.
어머님의 재능은 진 흙 속에 묻혀 있던 보석을 발견한 셈인데 잠재재능이 영원히 빛을 발하지 못하고 묻혀 버릴 뻔 했으며 나도 들어 본적이 있지만 듣는 동안만은 나를 움츠려 들게 하여 모자지간의 격차를 느끼게 했는데 듣는 이의 심금으로 하여금 공명(共鳴)을 일으키기에 조금의 손색도 없었다.
어머니께서도 조혼을 하셔서 그해 말에 나를 낳았으니 나와의 나이 차이가 16년밖에 안되며 젖이 모자랐다고 하며 연소(年少)며느리가 되셔서 집일은 할머님께서 하시고 어머니는 도롱이를 깔아놓고 그 위에서 나를 보기만 하면 되셨단다.
그 후 한번은 베틀에 전대(纏帶)를 길게 하여 나를 묶어놓고 우물을 길러 가셨는데 잠박 위의 누에를 집어 먹으니 입으로부터 푸른 물이 툭툭 터져 나왔다고 하신 것도 모유부족에서 온 것 같으며, 너무 많이 업혀 다녀서 나의 다리가 보우렉(bowleg)이라고 활모양의 ‘0’ 형의 다리가 되어 오래 서 있지를 못한다.
정강이뼈가 자라는 것은 휘거나 고무줄모양 길어지는 것이 아니고 나무모양으로 무릎 쪽 부름켜가 바깓쪽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고 전대로 묶으니 어머니 등에 맞추기 위하여 여문뼈가 휘어져있는 상태 그대로이다.
연어가 몇 년을 해엄치기에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이 없는 넓은 대양에서 살다가 자칫하면 부딪치는 돌멩이가 있는 야트막한 모천(母川)을 거슬러 돌아올 수 있는 것 역시 귀소법칙에 해당되는 것은 어릴 때의 환경을 기억하기 때문이라는데 사람에게는 향수(鄕愁)로 나타나는 것 같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우는 죽어도 자기의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인데 뒷마당에서 죽은 여우를 보니 역시 머리를 숲 쪽으로 두었으니 격언이 증명된 셈인데 내가 숲속의 땅을 파고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오로지 추억 속에서만 가 볼 수 있는 내가 자라던 고향의 환경은 근대화의 물결에 힘입어 쇠바퀴 궤도차의 삽날에 밀리어서 훼손되고 변했을 지라도 뇌리속의 한구석에 자리 잡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 옛 모습은 변할 수가 없으며 또한 버릴 수도 또한 보탤 수도 없는 ‘신비 역사의 장’ 인 것이다.
지금이 과거에서 볼 때는 가장어린 아들이라지만 나는 이미 촌로가 되어 초로의 내 머리카락에도 지금은 희끗희끗한 실로 수를 놓는데 짧기는 해도 과거와 현재(지금도 태고가 되고 있는 한 중도인 셈)에 대한 것은 기술할 수 있지만 무지렁이라 앞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언급할 수 없다.
그림은 지우고 고칠 수도 있지만 감미로움으로 회상되는 추억은 고칠 수도 지울 수도 없으며 자기 혼자만의 비밀이 되어 죽을 때까지 소중히 간직 하다가 세상을 하직하니 혹시 마음이 켕기지 않아 글로서 남기지 않으면 영원히 사장(死藏)될게 아닌가? (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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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대 단발총은 총열길이가 41인치(104cm)인데 앉은 꿩은 복치기로 쏘고, 나는 꿩은 날치기로 쏘는데, 여러마리가 있을경우 연발총은 복치기로 쏘고 나는 넘은 날치기로 여러발을 쏠수가 있지만 단발총은 한마리밖에 잡지를 못하니 배가 한창 고플때 밥이 부족, 반그릇의 밥을 먹은 허전함같은 느낌이었다.
다른사람이 가진 미국산 5연발총을 보면 부러워서 나의 심첨박동이 빨라졌는데 지금은 갈망해오던 소원을 성취했다.
정부법에 5연발총은 짐승을 너무많이죽인다고 3발만 장전하라고 하니 보는이가 있든없든 법을 지켜야하는데, 새로나온 총은 아예 3연발로 만들어져있다.
내가 심은 단풍나무.
아내와 절친한 친구가 선물한 넥타이다.
그녀의 남편은 한국에서 위암이 걸린상태로 급하게 이민을 온 후에 직장을 가기전 그의 아내가 바로 뒤따라 들어왔으니 그녀는 무일푼중에 남편이사망하니 나의 아내는 워싱턴시안에 위치한 링컨 메모리얼 묘지 장례식 비용을 빌려주었는데 우리딸의 시할머니도 이 묘지에 안장이 되었다.
아내는 돈을 빌려줄적에 받지못하리라고 이미 예견을 했다는데 그래서 지금은 돈걱정없이 사는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이민을 올적에 가져온 새 넥타이를 선물로 주고 필라델피아로 결혼을 하여 이사를 갔으니 값비싼 넥타이가 된다.
우연히 남에게 도움을 주게 되니 보상으로 나중에는 3600평의 집터를 소유하게되는걸까?
내가 나 자신을 원시인처럼 느끼는 것은 좁은 이마, 내가 짐승처럼 귀바퀴를 움직일수가 있고 얼굴이 털로 덮혀있으며 손가락 끝마디 하나만을 꾸부릴수가 있고, 소년시절에 먹어본적이 없는 현대식 가공음식. 햄버거, 아보카도, 피자, 술, 커피, 담배, 햄버거, 치즈, 콘칲, 수돗물등은 먹지 않는다.
글쟁이가 아닌 내가 머리속으로부터 기억하는 것 들을 꺼집어 내어서 글로 옮긴 단어를 합산하면 약 25만개가 되니 스스로 놀라움(且驚且喜)을 금치 못한다.
나도 면도를 하지않으면 이런 분들처럼 되었을것이다.
최초의 전형적인 유럽인. 지구 최초의 후계자. 내가 보관중.
내가 잡지 수백권을 보관하고 있는데 그 당시 20전은 지금의 5불 53전에 해당한다.
'바다와 노인'의 저자 어네스트 해밍웨이. 그가 한 말 중에
"세상은 멋진곳이며 싸워볼만한 가치가 있고, 나는 떠나기가 싫다
(The world is a fine place and worth the fighting for and I hate very much to leave it.)"
내가 보관중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