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불 참선 / 청화 큰스님
지금 현대란
사회는 우리가 함부로 다른 그런 성인들 가르침을
비방한다거나 또는 섣부른 비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행히 모두를 다 하나의 진리로 수용할 수 있는
부처님가르침을 지금 배우고 있어놔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배우는 부처님 가르침은
원만스럽게 모두가 다 하나의 진리로 봅니다.
하나의 생명으로 봅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바로 우주 생명입니다.
모두가 다 부처님 아님이 없다, 모두가 다 신(神)이 아님이 없다.
이런 것이 이른바 철학적으로 말하면
범신론(汎神論pantheism) 아닙니까.
넓을 범(汎)자, 귀신 신(神)자, 범신론이라.
우리 불자님들께서 조금 어려우셔도
기본적인 논리나 철학은 가지셔야 됩니다.
지금 세상이 모두 철학의 빈곤이라,
철학의 부재라, 그런 말 쓰지 않습니까.
관리나 누구나 대통령이나 어느 사람이나 기본적인 철학이 필요합니다.
철학이 무엇인가 모든 존재의 근원을 의미한단 말입니다.
천지우주(天地宇宙)는 진여불성(眞如佛性)뿐인데
잘나거나 못나거나 도둑놈이거나 어느 사람이나
결국은 우리가 본래 성품을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다 진여불성이란 말입니다.
다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정치도하고 법을 집행해서
남한테 벌을 주고 하는 사람도 본래 하나의 생명이란 것을 알고 해야
그래야 그때그때 오류를 안 범합니다.
소중한 사람의 그런 존엄인데,
인간이 존엄스럽다는 것은 무엇 인고 하면
우리 인간자체의 생명이 어느 누구나 다 개개원성(箇箇圓成)이라
모두가 다 모두가 다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어느 죄인을 심판할 때도 우리는
“저 사람은 죄를 지었으니까
마땅히 거기에 상응되는 벌을 받고서 고생을 해야 된다” 이러면
그것은 철학이 없는 그런 소리입니다.
어떤 사람도 그 본래마음은 부처입니다.
인연 따라서, 악연(惡緣)을 만나서
과거 숙세에 무수 생(無數生) 동안에
자기 지은 바 업장 따라서 금생에 나쁜 짓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지
실상은 모두가 다 부처님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알아야 실상(實相)을 알아야
그래야 이른바 철학을 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어느 것을 하든지 간에 다른 사람의 아버지가 되나
또는 어머니가 되나 어느 입장에서이든지 간에
꼭 그렇게 알고 하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자기 인생을 행복으로 유도 하는 그런 길입니다.
우리가 농사를 짓는다 하더라도 그래요.
한 포기의 벼, 또는 사과 한 개 모두가 다 그냥 그것이 물질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우주 생명의 한 뭉치라 말입니다.
우리가 부처님법이 연기법(緣起法)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진 법이다.
연기법이란 것은 그냥 보통 이것과 저것과
인(因)과 연(緣)이 합해져서 이루어졌으니까
고유한 것이 없다.
이런 정도가 아니라 연기법의 가장 시초원인이 무엇인가.
연기법의 줄거리를 이렇게 더듬어 올라가면
차근차근 올라가면 끄트머리는 무엇이 돼 버리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진여법성(眞如法性)입니다.
어떠한 것이나 그 본래적인 자리는 다 진여법성입니다.
진여불성입니다.
따라서 육조단경(六祖壇經)이나, 참선하는 법문도 그래요.
그 본래면목(本來面目)자리,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를 안 여의여야 참다운 공부가 됩니다.
우리가 가령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덮어놓고 애쓰고 외워도
물론 공부가 되고 가피(痂皮)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외면 그것은 하나의 염불(念佛)은 돼도
참선(參禪)은 못 됩니다.
어째서 그런 고 하면 참선이란 것은 본래의 자리, 본래면목자리,
즉 진여불성자리를 여의지 않아야 참선이란 말입니다.
가령 이뭐꼬 이뭐꼬 하고, 무무(無無) 하고
우리가 화두공안선을 한다 하더라도
본래면목자리 진여불성자리를 안 여의야 참선이 되는 것이지,
그냥 공안을 그대로 상대적인 마음 가지고 해서는
그것은 참선이 못 됩니다.
그와 똑 같이 염불도 그래요.
부처님이 저 저만치 대상으로 계시다가 우리가 열심히 하면
우리를 그때는 가피하는 타력적(他力的)인
그러한 우리를 가호(加護)하는 그런 분이다.
이래서는 참다운 염불도 못되고 또한 동시에 염불참선이 못 돼요.
우리 불자님들이 기왕이면은
그냥 염불이 아니라 염불참선이 되고 싶어 하시겠지요.
염불인 동시에 참선이 되면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참다운 염불은 바로 그것이 염불 참선이어요.
그건 어떠한 것 인고 하면 우리마음이 본래의 자리,
그 진여불성이라는 실상자리를 안 여의면
그때는 같은 염불도 염불인 동시에 염불참선이 됩니다.
다른 것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외고 싶어서 하나님을 그렇게 염송하신 분도 그래요.
하나님이란 것이 어느 구분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우주 진리다, 이렇게 보편적으로 인식을 하고서 동시에
그런 자리, 천지우주가 하나님 아님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오! 주여 하면
그때는 그것도 하나의 훌륭한 참선이 됩니다.
그 본래면목자리 본래 고향자리를 안 떠나면 다 참선입니다.
아까 제가 말씀을 몇 번 더 했습니다마는
용수보살 이행품, 쉬운 것이 무엇 인고 하면
그냥 다른 공부도 다 중요하지만
우리 일반적인 우리 바쁜 생활을 지내는 우리중생들을 위해서는
부처님을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부처님을 인격적으로,
천지우주가 모두가 다 부처님생명뿐이다 부처님뿐이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도
시방여래(十方如來)는 법계신(法界身)이라,
모든 부처님은 모든 부처님은 우주를 몸으로 한단 말입니다.
우주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우주를 몸으로 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가 모두가 다 부처님을
이렇게 나누어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은 분할 할 수 있지만
그 보이지 않는 생명자체는 분할이나 구분 할 수 없단 말입니다.
모두가 다 온전히 천지우주가 부처님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서 염불을 하신다고 생각할 때는
바로 참다운 염불인 동시에 바로 염불참선입니다.
그렇게 부처님 명호(名號)를 외는 것이 어째서 빠른가.
그것은 그 사람의 근기라든가 여러 가지로 작용이 되겠지만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님의 생명뿐이기 때문에
우주자체가 바로 생명자체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을 하나의 자기생명과 공통됨과 동시에
똑 같은 절대적인 생명이다,
이렇게 우리가 느끼면서 부처님이름을 외는 그것은
우리마음을 가장 편안히 하고 동시에 모든 가피를
우리가 거기서 받들고 거기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우리 중생계(衆生界)는 사람이 있고,
사람의 눈에 안 보이는 신장(神將)이나 그러한 존재는
보통은 무시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우리 사람 외에도 모든 그런 신장도 있고
또는 금생에 살다 간 영가(靈駕)도 있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영가들이나 선신들이나 또는 더러 악신도 있고 합니다.
그런 존재들이 부처님의 이름,
부처님의 명호는 만덕장엄불(萬德莊嚴佛) 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 자체에 가서
모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능력(能力)이라든가
또는 행복(幸福)이라든가
또는 모든 복덕(福德)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부처님 이름은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을 영원적인 의미에서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목숨 수(壽)자, 한도 끝도 없는 생명이라 그래서 무량수불이라.......
또는 부처님의 지혜광명(智慧光明)은
우주의 어느 때나 빛나고 있다
그래서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빛 광(光)자, 무량광불이라.
우리는 광명(光明)이란 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천지우주는 사실은 지금 광명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지금 현대 물리학자도 역시 모든 물질,
모든 물질을 이른바 쪼개 들어가서 소립자나 그런 단계,
그런 단계에 이르면 일체존재가 모두가 다
전자기장(電磁氣場)광명이라,
방사광명(放射光明)이라, 이 우주의 근본은
그런 전자기장, 방사광선으로 충만하여 항시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중생들은 기술에 따라서
그런 것을 볼 수가 있을 뿐인 것이지
우리 육안으로는 그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과학이 다 증명하는 것이고,
또는 우리 스스로 공부를 깊게 한다고 생각할 때는
과학자가 아닌 어느 누구도 우리 마음의 정화(淨化)에 따라서
광명을 느끼고 감득(感得)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능엄경(楞嚴經)에서 억불염불(憶佛念佛) 이라,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 이름을 외면,
현전당래(現前當來) 필정견불(必定見佛)이라,
금생에든지 내생에든지 틀림없이 우리가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과 하나가 된단 말입니다.
부자간이나 모자간이나 부부간에도
역시 금생에 서로 그리워서 인제 살다가 헤어지면
내생에 가서 꼭 다시 만납니다.
똑 같은 처지로는 안 만나도 꼭 다시 만납니다.
그와 똑같이 우리 중생은 부처님하고 본래가 둘이 아니기 때문에
억불염불이라, 우리가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또는 부처님의 그러한 이름을 외운다고 생각할 때는
현전당래 필정견불이라.
현생이나 또는 내생이나 틀림없이 부처님을 만나 뵌단 말입니다.
만나 뵈옵는 경로는 다르겠지요.
훤히 빛나는 광명으로 만나 뵈올 수도 있고
더러는 사람 몸 같이 된 그러한 상징적인 광명상으로
우리한테 나투기도 하시고 그러시겠지요.
그와 같이 다른 것도 또 거기에 부수가 되어서,
악신도 선신도 모든 신장도 많이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이 어떤 존재나 근본자리는 부처님인지라
우리가 근본자리인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찬탄(讚嘆)한다고 생각할 때
그 나쁜 신들은 그때는 우리를 두려워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선신들은 그때는 좋아서 그냥 환희심(歡喜心)으로
우리를 지키고 한단 말입니다.
그런 것이 꼭 있습니다.
-淸華 大宗師 『마음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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