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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최고의 소드마스터' 척준경 [ 고려 ]
[ 정주성 전투, 1104 ]
임간이 패퇴할 당시,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 한 명의 목을 베고 아군 포로 두 명을 송환
그런 뒤 교위(校尉) 준민(俊旻)·덕린(德麟)과 함께 활을 쏘아 각각 적장 한 명씩을 사살
여진족 1백 기병이 추격하자, 또 다시 대상(大相) 인점(仁占)과 함께 적장 두 명 사살
[ 석성 전투, 1107년 12월 ]
고려군의 공성 도중 여진족의 저항이 너무 강해서 척준경이 직접 결사작전을 감행
이후 칼과 방패를 들고 홀로 성벽 위로 올라가 추장 여러 명을 참수하며 석성 점령
[ 가한촌 전투, 1108 1월 ]
여진족의 기습에 윤관의 본대가 고립되고, 아군도 10여 인만 남은 상황에서
동생 척준신의 만류를 뿌리치고 큰 함성과 함께 적진으로 돌진, 10여 명을 벰
곧이어 최홍정과 이관진이 이끄는 지원군이 도착해 반격을 가하고,
척준경은 이후로도 퇴각하는 여진족을 추격, 36명을 참수
[ 영주성 전투, 1108 1월 ]
가한촌 전투이후 윤관이 영주성으로 물러난 이후, 여진족이 군사 20,000여 명을 이끌고 영주성을 공격
이때 농성을 주장하는 다른 장수들과는 달리 척준경은 공세를 주장하며 결사대를 이끌고 성문을 나섬
이후 척준경은 여진족을 몰아내고 19개의 수급을 취해옴
[ 공험진 전투, 1108 1월 ]
왕자지(王字之)가 윤관의 명령에 따라 영주로 향하다가 사현(史現)이 이끄는 여진족에게 기습을 당함
갑작스런 기습이라 고려군은 크게 패하고 왕자지는 타고있던 말까지 잃어버려 걸어가야 할 정도였음...
곧바로 척준경의 구원군이 도착하자 사현의 군대는 일거에 패해 도주함
척준경은 말을 잃은 왕자지를 위해 철갑마 한 필을 노획해 선물
[ 웅주성 전투, 1108 2월 ]
웅주성 수령의 지원요청으로 척준경은 밤 중에 해진 옷을 입고 성벽을 타고 내려온 이후
단신으로 여진족의 포위망을 돌파, 고려의 국경인 정주까지 내달려서 병력들을 집결시킴
이후 척준경은 통태진, 야등포, 길주를 거치며 만나는 여진족을 격파
연이어 웅주성 방어군과 연합해 성을 포위한 여진족을 격파
[ 기타 전공, 1108 ]
8월, 왕자지(王字之)와 함께 함주(咸州)와 영주(英州) 2주(州)에서 여진족 33명의 목을 참수
9월, 왕자지(王字之)와 함께 사지령(沙至嶺)에서 여진족 27명의 목을 베고 3인을 사로잡음
[ 이자겸으로부터 인종을 지키다 ]
척준경이 갑옷으로 무장하고 급히 입궐하며 이자겸의 자객들을 피하려던 인종을 호송
이자겸의 자객들이 화살을 쏘려 하였으나 척준경이 칼을 빼어 들고 위협하여 실패
'진만인적' 한세충 [ 송 ]
[ 18살 당시, 병졸 신분으로 서하와의 은주성 전투에 참가 ]
서하의 장수는 농성을 하면서 지구전 끝에 송나라 군을 지쳐서 물러나게 하려 했으나
곧 한세충이 단신으로 관문을 부수고 적장을 찾아 목을 벤 뒤 성 밖으로 내던져버림
기세가 오른 다른 송나라 병사들도 성을 타고 올라가 성을 함락
[ 서하와의 호평령(蒿平嶺) 전투 ]
난전 중 한 장수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아서 알아봤더니 서하 국왕의 사위인 올위라 함
곧바로 기습을 감행해 참수함, 송 조정은 이 전공이 너무나 말이 안되니까 믿지 않았음
[ 1121년, 요나라와의 전투 ]
송나라는 요나라로부터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북벌을 감행하다가 패배
이때 한세충은 50여기의 기병을 거느리고 후방을 막는 어려운 임무를 맡음
곧이에 한세충은 아군 병력을 높은 고지대에 배치시킨 이후 곧장 적진을 습격
진영을 지키고 있던 군사 2천을 포로로 잡고 군기를 획득하며 전공을 세움
이후 사기가 오른 50명과 함께 추격하던 요나라 병사 2천명을 또다시 패퇴
[ 반란군 진압 ]
'방랍의 난' 당시 '분투끝에 방랍을 사로잡는 큰 공을 세우며 승절랑이 됨
1천 병사로 전란중에 갑자기 들고 일어난 산동의 반란군 수만 명을 격파
수천 군사를 이끌고 단기필마로 반란군에 일갈 뒤 수만의 반란군을 항복
'명수의 난' 때는 수도인 임안을 반란군으로부터 해방시키고 황제를 구출
[ 금나라와의 전투 ]
준주 전투 - 관군 수만 명이 바로 붕괴되자 이 와중, 여기에 있었던 한세충은
창 한자루만 가지고 수십겹으로 둘러쌓인 금나라 병사들의 진영을 돌파
조주성 전투 - 결사대 3백으로 적의 진영을 공격, 대추장이 창에 맞아 죽는 등
금나라 군대는 혼란을 겪다 도주
문가사 전투 - 정진의 지원 부대가 한세충을 두고 도주했음에도
결국 한세충은 화살로 온몸이 고슴도치가 되면서도 살아돌아옴
목양 전투 - 금나라 종한과의 대결에서 패배, 휘하병력 전멸의 치욕을 맛봄
황천탕 전투 - 자신의 사병인 8천 한가군으로 완안종필의 10만 금군 궤멸
'여진족 최강의 전사' 사묘아리 [ 금 ]
[ 17세 당시, 사도 토벌전 ]
사도의 동생인 사리지 생포
[ 대고려전 ]
목리문전 전투 - 고려군 장수를 일기토에서 참살, 고려군은 사기가 약화되며 궤멸
도문수 전투 - 석적환(石適歡)과 함께 싸우며 선봉장으로 고려군 격파, 2성을 함락
갈라수 전투 - 요해처 수비도중 고려가 철군하자 갈라수까지 추격, 고려 중심군을 궤멸
고려군 5만과 조우해 격파, 같은 날 고려군 7만과 또 조우해 격파, 이후 타길성 함락
[ 요나라와의 전투 ]
영강주, 신주, 빈주 함락 - 금 태조 완안 아구타 수하에서 종군, 맹안(병력 1천) 수여
홀사리성을 공격하는 요군 수만 명을 겨우 100기로 계략을 부려 철군시킴
소주와 복주의 10만 반란군과 10여 차례 싸워 격파, 강물이 시체로 막혔다 전함
27척의 배로 도주한 거란족과 해족을 추격해 격파, 1천 척의 배를 획득
이전 사례에서 화살에 맞아 죽을 고비를 2번이나 넘긴 이후 소주, 복주, 파속로를 평정
현주, 영산현, 양어무를 함락하고 소고아 + 구근의 병력 수만을 8모극(800명)으로 격파
야율여도 격파, 장각 토벌전에서 누봉구의 잔당 처리, 평주 함락
[ 송나라와의 전투 ]
1126년과 1127년에 연달아 이뤄진 송나라 공략전에서 모두 승리
: 개봉 침공 당시 수천 병력으로 적들을 격파, 야밤에 북송군 1만의 급습을 격퇴, 조주 함락
1128년 남송 토벌전에서 양곡현과 신현 함락, 해주의 남송군 8만 명 격파
양산박에서 남송 수군의 소전선 1만 척 격침, 등양 · 동평 · 태산의 도적떼 항복
당해 + 대고와 함께 회남에서 남송군 10만 격파, 항주의 남송 복병 2천 격파
포로혼과 함께 정병 4천으로 동관과 고교진 함락, 명주를 함락하고 조백악을 사로잡음
하로에서 남송 수군 격파, 이후 60리를 추격하여 소통을 사로잡음
연수 수채의 남송 수군 격파, 1138년 - 1140년 사이에 석주의 도적떼 토벌
12세기 초... 척준경과 사묘아리는 동북 9성을 놓고 고려와 여진이 전쟁중일 때,
사묘아리와 한세충은 금나라와 남송이 장강을 두고 전쟁을 벌였을 때 만났을 가능성이 높지만
정작 저 셋이 서로 전장에서 만났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동시대 최강의 인간흉기로 언급되는 인물들이고 활동한 지역도 겹치는데
전장에서 격돌한 기록이 없는게 신기할 따름이죠...
- 참고 -
http://gil092003.egloos.com/696084
http://gil092003.egloos.com/9855028
'길공구' 님의 『금사』 「사묘아리전」 번역
http://gil092003.egloos.com/9983697
'길공구' 님의 『송사』 「한세충전」 번역
http://db.history.go.kr/KOREA/item/level.do?itemId=kr&types=r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 고려사
http://db.history.go.kr/KOREA/item/level.do?itemId=kj&types=r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 고려사절요
첫댓글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의 감소 그로인하여 역량을 총동원하지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음
여진도 고려도 서로간의 모든걸 걸고 전쟁을 치뤘죠. 그에 반해 거란이나 송은 모든걸 걸 도박을 하기도 힘들었으니.
척분경은 낄 레벨이아닌거 같네요. 아무리 싸움을 잘했어도 기껏해야 병사인데 나머지 둘을 전역 지휘관이니..
근데 뭔 고려군을 오만이나 격퇴하나..그 산지에 오만 기동할 땅이 있긴하나 모르겠네요.
여진정벌에 실제로도 십여만의 군 전체가 동원된것도 된것도 아니었고 척준경의 경우를 보면 알듯이 수백에서 수천사이의 군사가 전투를 버린건데..
진짜 역대급이네요
길공구님이.. 여기서 왠 등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