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시를 암송하는 남자. 어릴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다는 만년 소년 같은 배우. 오광록(45)이다.
그는 건물 옥상에서 강아지를 안고 투신하는 남자로 각인된 <올드보이>를 비롯해 그동안 <와이키키 브라더스> <복수는 나의 것>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친절한 금자씨> <소년, 천국에 가다> <흡혈형사 나도열> <잔혹한 출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에 출연했다. 1982년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데뷔한 연극배우 출신. 영화 <파란자전거>(프라임엔터테인먼트, 권용국 감독·19일 개봉) 개봉을 앞둔 그를 5일 마주했다.
●"효리가 오빠라고 불렀으면…"
-이효리의 뮤직드라마에도 출연했던데 실제로 이효리를 만나보니 어땠나.
"무엇보다 인사를 잘 해 좋았다. 난 인사 잘하는 후배가 제일 예쁘다. 성격도 까탈스러워 보였지만 의외로 털털하고 소탈하더라. 작년엔 <닥터깽> 하면서 한가인과도 호흡을 맞췄는데 미녀들과 연기하면 나야 고맙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3주일 동안 찍었는데 너무 많이 편집됐다. 쫑파티도 안 했고. 효리가 '선배님' 대신 '오빠'라고 불러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허허."
-<파란자전거>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LJ필름 송년회에 갔다가 거기에서 권용국 감독을 만났다. 나와 '작업하고 싶다'고 말하더니 정확히 네 달 만에 시나리오를 보냈더라. 나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이라는데 마음이 안 움직일 수 있나. 감독의 선량한 눈빛이 좋아 출연하게 됐다. 아름답고 시적인 내용이다."
"아들의 가슴 속 멍울을 없애주려고 애쓰는 아빠다. 돈 없고 빽 없는 자전거포 수리공이지만 부정(父情) 만큼은 뜨겁다. 어린 아들과 동물원에 자주 놀러갔는데 아들이 손 없이도 잘 사는 코끼리를 좋아해 나중에 코끼리 사육사가 된다. 천진함과 맑음이 이 영화의 주제어다. 제목처럼 자전거가 파란 창공을 달려가는, 동화같은 영화다. 좋지 않나? 추위와 아픔, 멍울과 얼룩이 봄날의 시냇물을 만나 씻겨져 내려갈 것만 같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말을 참 잘 하는 것 같다. 하하."
-'착한 영화'인데 흥행은 걱정되지 않나.
"걱정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영화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나는 수제품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투자자는 공산품이라고 볼 수 있는 거지. 내일 언론·배급 시사가 있는데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다."
●"어릴 때 꿈은 시인이나 저널리스트"
-어릴 때 꿈은 뭐였나.
"시인이나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특히 사회 비평쪽에 관심이 많았다. 푸른 저항 같은 거. 시는 저절로 가슴에서 생겨난 것 같고 학창시절 백일장이라는 백일장은 거의 다 나가본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 사설과 컬럼을 많이 읽었다. 일기도 스물 세 살 때까지 썼다. 사춘기 때 쓴 일기를 보면 웃기지. 그땐 무슨 감정이 그렇게 범람했을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무기를 만드는 공사창에서 근무한 군인이셨다. 아주 다혈질이셨지. 대신 싫은 소리 잘 안 하시고 뒤끝도 없으셨다. 일흔이 넘었는데 지금도 노동을 하시며 어머니와 산다."
-만일 연기자가 안 됐다면.
"문화나 사회 비평쪽 일을 하지 않을까. 아니면 산에 들어가거나 배를 탔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나그네가 돼 있겠지. 풀을 워낙 사랑해 식물학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배우는 해봤으니까 안 할 것 같고. 허허."
-저음의 목소리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목소리 관리 비법이 있나.
"차를 즐겨 마신다. 녹차와 보이차를 특히 좋아한다. 무엇보다 공갈을 치지 말아야 한다. 나쁜 생각을 하면 소리가 들뜨게 되고, 특히 공갈을 많이 치면 제 목소리를 잃게 된다."
"작년 9월부터 합류했는데 첫 방송이 계속 늦춰진다. 5월에서 또 7월로 미뤄졌다. 주말부터 완주·나주에서 배용준과 촬영 한다. 배용준도 거드름 같은 거 없더라. 아직까진 선배들한테 꾸벅꾸벅 인사도 잘 한다. 난 인사만 잘 하면 된다. 인사란 게 뭔가. 먼저 아는 척 하는 거다.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