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 중략 ……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
…… 하략 ……
□ 김재홍 교수 시평
1980년대를 흔히 '시의 시대'라고들 불렀었지요. 이른바 노동자 시인으로 불리던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이 사회변혁운동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추동력이자 견인차가 되기도 했지요. 『접시꽃 당신』그리고 이 『홀로서기』등 시집이 수십만 권씩 팔려 나가기도 하면서, 또 한 해에 천 권 이상의 시집이 발간되기도 한 것이 바로 1980년대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서정윤 시인의 이 『홀로서기』는 이른바 시의 베스트셀러시대를 열어 가면서 '홀로서기'란 말을 유행시킨 바로 그 시집이지요. 이른바 홀로서기 신드롬이라고나 할까요? 어떻게 보면 이 시를 상식적이고 감상적인 느낌을 주는 시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시는 때로는 우리의 아픈 마음,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주고 긴장을 풀어 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겁니다.
누구나 다 홀로 태어나, 이 세상을 홀로 또 더불어 살아가다가, 마침내 홀로 죽어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데 대한 너무나 평범한 그러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을 새삼 환기해 준 데서 나름대로 쉽게 읽힐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말씀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인생은 미완성, 죽을 때까지 '홀로서기' 연습을 하다가 홀로 떠나는 것이 아닌가요. 새삼 착한 모습 그대로, 슬픈 듯이 재미있게 저 멀리 대구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을 서정윤 시인의 모습이 그리워지는군요.
출처: [작은 들꽃이 보고 싶을 때], 문학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