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모든 사람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인간은 사랑해야 될 의무가 있다. 사랑은 많은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랑의 조건은 조건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언제나 한결같은 침묵이다. 사랑하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사랑하지 않는다(愛者不言 言者不愛). 사랑이 많은 사람은 스스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그는 실로 깊고 큰 사랑을 지닌 사람이다. 그래서 남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세속의 눈에는 그 무엇인가 모자란 듯 보인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렇듯이... 사랑엔 지성도 학문도 가문도 합리적 논리도 참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삶으로써 가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과 생명이 아닌가 한다. 몇년간 유럽 기독교 문화의 중심지에 살면서 갈수록 심하게 느끼는 것은 사랑의 개념에 대한 몰락, 자아상실, 무신론적 크리스챤의 삶에서 오는 정신적 빈곤과 도덕적 양심의 결핍(성당과 학교의 상황안에서)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은 스스로 족한 분이시다. 하느님은 사랑자체이시기에 그 어떤 것을 더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사랑하나로 족하다.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들 스스로를 위해서 결코 존재하지 않는 사랑, 즉 자신을 비우고 십자가(이웃)를 향해 어린양처럼 말없이 죽어가는 그런 사랑이다. 사랑엔 종류도 없고 단계도 없다. 사랑은 모든 것 위에 있고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을 선택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해서 오직 사랑하나만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은 곧 사랑이신 하느님께만 조건없이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인간 안에서 자연 안에서 그분을 발견하고 사랑을 삶으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사랑할 때만이 내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조건없는 하느님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세상의 문자를 극복할 수가 있다. 세상의 문자는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오지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다 준다. 즉 예수의 순명과 사랑을 우리는 그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또 늙으막에 얻은 외아들 이사악을 주저없이 산 재물로 바친 아브라함은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이며 순종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철학과 신학을 배우는 목적은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알고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데 있다. 그것은 어떤 전문인이나 특수한 사람이나 초인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신에 대한 크리스챤의 사랑이란 종교적 가치이지만 철인 스피노자의 삶과 철학 안에서는 神의 사랑이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사실 그가 말하는 神은 전 우주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이 말하는 神에 대한 사랑이란 사실 초도덕적, 초우주적이 될 수 없는 것 같다. 크리스챤의 하느님은 인격적인 神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도덕적 믿음의 가치이다. 내 견해로는 예수님의 삶과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조건없는 사랑은 분명 참된 초도덕적 사랑의 극치였다. 그분은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자기 자신 안에서 재현시켰다.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크리스챤이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은 많은 반성과 건전한 비판을 필요로 한다(역사적으로). 살아가면서 더욱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동서양의 고대 철학자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또 다른 한 사람의 예수그리스도이다(부다,소크라테스,노자,공자,묵자,프란치스코,원효,간디,슈바이쳐,본회퍼,마더 데레사...). 이들은 자신들 속에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자신들 속에 知와 德과 信이 합일되어 행동하는 삶으로 나타났고 결코 분리될수 없었다. 그들의 철학과 믿음은 그 자신들이 앎을 삶으로 살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삶 전체가 철학적 믿음을 표현하는 길이며, 자기 생활이었다. 그들의 과제는 절대 진리이신 하느님과 일치하기위해 자기를 버리고, 자신을 잊음으로써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정화되지 않은 이기심과 탐욕과 어리석음을 초월한 순수 의식체험인 神人合一의 경지까지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했고 앎을 생활에 육화시켰으며 이런 과정을 일생동안 중단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중단이란 곧 이기심의 출현이며 참 자아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절대 진리에 대한 명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에게 주어진 부당한 죽음을 통하여 진리가 자신 속에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들의 정신은 죽지 않고 영원히 우리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다. 사랑은 영원하다.